전라감영서 한지 제작…서적 발간 최적의 조건
목판인쇄술 주류 지역, 완판본 발달 바탕되기도
조선시대 전주는 전라북도, 전라남도, 제주도를 관할하는 전라감영이 있던 호남의 수도였다. 이를 반영하듯 전주에서는 전라감영의 영향으로 출판을 비롯해 서예, 공예 등 다양한 문화가 발전하게 됐다. 이러한 문화 발달의 밑바탕에는 전주한지가 있었다.
특히 전주한지는 우리나라 기록문화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완판본(完板本)이다.
전주는 조선시대 목판 인쇄술의 주류 지역으로 전주의 완판본은 서울의 경판본, 대구의 달성판본과 더불어 조선시대 3대 책판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전주가 서적을 발간하는데 필요한 종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지역이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번 화에서는 전주한지에 새겨진 완판본을 중심으로 전주 출판문화의 발달 배경과 특징들을 하나씩 짚어본다.
전국 최고 품질·수량 '전주한지'…전라감영 서적 발간 영향
조선시대 대표적인 종이 생산지는 전라도 전주·남원, 경상도 경주·의령 등이었다. 이 가운데 전주한지는 최상품으로 취급받았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전주를 상품지(上品紙)의 산지라고 했고, <여지도서>와 <대동지지>에는 조선시대 전주한지가 최상품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1910년대 한지의 종류는 40여 종이었다. 모두 닥 섬유로 만든 종이였다. 20여 종의 한지가 전라도에서 생산됐는데 가장 비싼 종이는 전라도에서 만든 태장지였다.
이렇듯 품질과 수량 면에서 전국 최고의 한지를 생산한 전주는 서적을 만들고 보존하는 데 필요한 조건들을 잘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전주에 자리한 전라감영에서는 중앙정부의 요청에 따라 한지가 제작됐고, 이는 자연스레 서적 발간으로 이어졌다. 전라감영의 시설로는 조지소(造紙所)가 있었고 여기에서는 다양한 종이를 제조했다. 조지소에는 종이 제작을 담당하는 지장(紙匠)이 있어, 질 좋은 한지를 만들었다. 또 전주 인근 상관, 구이, 임실 등에는 종이를 만드는 공장인 지소(紙所)를 두기도 했다.
이처럼 양질의 한지 덕분에 전라감영에서는 당시의 정치, 역사, 제도, 사회, 의서, 병서, 어학, 문학, 유학에 관한 60여 종의 서적을 출간했다. 전라감영의 영향으로 개인이 간행한 사간본(私刊本) 책이 250여 종이 출간됐고 이어서 판매를 목적으로 민간에서 간행한 방각본(坊刊本) 책이 발간됐다. 이때 발달한 나무에 글씨를 새기는 각수, 책판을 다루는 목수, 인쇄를 위한 시설 등은 전주의 출판문화가 크게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전라감영의 인쇄문화는 전주한지의 생산을 촉진해 한지의 질 향상을 이끌었다. 전주한지와 출판문화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 셈이다.
전라감영에서 서적을 출판할 때 사용한 책판은 전주 향교의 소유로, 현재 전북대 박물관에 기탁돼 5059판이 보관돼 있다. 이 책판은 1899년(광무 5년)에 전라관찰사 조한국이 향교로 이전했던 것이다. 주로 <자치통감강목> <동의보감> <성리대전> <율곡전서> <주자대전> 등의 책판이 있다. 이 책판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04호로 지정돼 있다.
서민을 일깨운 '완판본'…지식 전수·문화 전승 역할
완판본은 좁게는 조선시대 전주에서 출간된 옛 책, 넓게는 전라감영이 관할하던 지역(전라도와 제주도)에서 발행한 옛 책을 가리킨다. 전주를 뜻하는 완산(完山)의 '완'자와 목판(木板)의 '판'에 책을 나타내는 '본'(本)을 붙여 만든 이름이다. 전라감영에서 제작한 책의 목판본인 감영본(완영판)과 민간에서 제작된 목판본인 방각본이 있다.
완판본은 판본의 종류나 규모 면에서 전국 최고를 자랑했다. 상업적인 판매를 목적으로 출판된 방각본은 전국적인 보급망을 갖추고 서울의 경판본과 경쟁할 정도로 성행했다.
완판본의 종류를 살펴보면 완판본 한문고전소설은 한글소설이 대중화되기 전에 식자층을 중심으로 판매됐다. 전주에서는 전주에서는 <구운몽> <전등설화> <삼국지> 등이 간행됐다.
현재 전해지는 완판본 한글고전소설의 종류는 20가지가 넘는다. 이 가운데 판소리계 소설이 <열녀춘향수절가> <심청가> <화룡도> 등인데 이는 전라도 지역에서 소리로 불리던 판소리 사설이 소설로 정착한 것이다. 나머지는 영웅소설이 대부분이다.
이외에도 유교 경전인 사서삼경도 발행됐는데, 이 책들은 개화기 시대 전라도에서 가장 많이 발간된 판매용 책이다. 특히 책이 크기 때문에 한지가 생산된 전주에서 많이 출간됐다.
완판본은 목판본 외에도 서민들에 의해 작성된 필사본도 많이 생산됐다. 목판본의 출현으로 서적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되자, 목판본이라는 기성제품은 물론, 필사본이라는 수제품도 만들어낸 것이다.
이러한 완판본은 식자층의 전유물이었던 서적을 서민층에게 보급하는 계기가 됐다. 서민들의 자각을 일깨워 지식을 전수하고 문화를 전승하는 역할을 한 것이다. 완판본이 단순한 서적 보급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이유도 여기 있다.
안은주 완판본문화관 학예실장은 "완판본은 중앙정부에서 필요에 의해 제작된 것은 물론 서민들의 지식 욕구와 독서 욕구에 따라 만들어져 판매되기도 했다. 이로 인해 서민 문화가 상당한 수준으로 발전했다"고 설명했다.
현대에 들어서는 전주한지를 이용한 복본화(원본을 그대로 베끼는 일) 작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전주시는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전주한지에 복본화한 데 이어, 완판본 서적도 전주한지도 복본화 했다. 전주한지로 기록문화를 되살리는 작업이었다.
조선왕조실록 복본화 작업은 전주사고에 보관됐던 태조부터 명조까지 614책(5만 3102면)의 이미지 파일을 규장각으로부터 확보해 전주한지에 모양, 크기, 글씨 등을 원형 그대로 재현했다.
완판본 서적 복본화 작업은 17∼20세기 전라감영에서 간행됐던 완판본 70여 종을 대상으로 했다. 완판본 서적에 사용된 한지는 조선왕조실록용 보다 중급지 이하의 한지가 사용됐다. 이는 조선시대 제작 당시 낮은 등급의 한지가 사용된 데 따른 것이다.
이밖에 한지의 물성을 활용한 다양한 한지 산업화가 시도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한지 본연의 쓰임인 '종이'로서의 기능과 가능성을 되찾아 주는 일은 우리 앞에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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