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의 고장 명성 '흔들'⋯전통한지 보존·계승 힘써야
전통한지 정의·법률 필요⋯한지품질표시제 활성화도
전통한지·기계한지 영역 구분⋯한지, 용도 개발 중요
한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작업 속도내야
한지는 전주 출판, 서예, 공예 문화의 원류이다. '전주한지로드'는 이러한 인식에서 출발한 기획이다. 앞선 보도에서는 한지의 역사성과 우수성, 확장성 등을 차례대로 짚었다. 이 과정을 통해 한지산업이 직면한 과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를 토대로 전문가의 조언을 얻어 한지가 나아갈 미래 방향을 살펴봤다.
조선시대 전국 한지의 40%가량을 생산했던 한지의 본고장 전주. 그 명성은 여전히 유효할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산업적 측면에서는 그렇다. 다만 전통적 측면에서는 그렇지 않다.
△한지의 고장 명성 '흔들'⋯전통한지 보존·계승 힘써야
전주한지는 근대부터 현대까지 산업화 측면에서 발전을 이뤘다. 이 산업화는 한지의 품질 균일화, 대량 생산을 말한다. 생활 양식이 바뀌었고 전주는 품질, 용도에 따른 다양한 한지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면에서 전주한지는 타 지역에 비해 앞서 있다. 여전히 한지제조업체 수도 전국에서 가장 많다. 그러나 산업화에 치중하다 보니 전통한지 계승 측면에서는 타 지역에 뒤처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 인터뷰에서 문경전통한지 김춘호 전수조교가 "지금은 대부분 한지를 판매하는 데만 열을 올리지, 좋은 한지를 만드는 데는 열을 올리진 않는다"며 전주에서부터 천연재료,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전통한지를 늘려갔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임현아 한지산업지원센터 연구개발실장은 "전통한지 계승 차원에서는 약간 한발 뒤로 물러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통한지 제조기술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최근 문화재 보존용지로 전주한지를 사용하면서 전통한지에 대한 인식을 다시금 하게 된 것"이라고 했다.
임 실장은 "전주한지의 명성에 맞지 않게 장인(국가·도 무형문화재)이 부재하고, 산업화 용도에 맞춰 수입산 원료(닥나무)를 사용하면서 이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등 씻을 수 없는 오점을 남기고 있다"며 "문화재 보존용지는 장인과 함께 국내산 원료, 전통 제조방식에 가치가 부여되지만 다른 용도의 한지는 이와 같은 조건이 필수 조건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건들이 전주한지의 오점으로 남는다면 이에 대한 개선은 분명히 필요하다"고 밝혔다.
전통 측면에서는 장인들이 전통한지를 지속적으로 생산할 수 있도록 국내산 원료 확보, 판로 확보, 제조 기술 보존 등 국가 차원의 정책이 필요하다. 산업 측면에서는 새로운 제품 개발 등 민 차원의 대응이 요구된다.
특히 장인들은 판로 확보와 관련해 국가 차원의 전통한지 수요처 발굴, 수매제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산 원료 확보와 관련해서도 현재 전주시가 선도적으로 닥나무를 계약재배하고 있지만, 이는 아주 적은 규모다.
이와 관련 국민대 김형진 교수는 한지 원료의 안정적인 공급을 위해 닥나무 생산 향도마을 지정, 닥나무 수집 조합 설립(농협 하부조직 검토), 닥나무 은행제도 도입 등 장기적인 정책 시행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전통·산업 두 마리 토끼 잡아야⋯전통한지 정의·법률 필요
임 실장의 말처럼 지금 전주한지는 전통과 산업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 하는 시점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전통과 산업을 정확히 구분해 바라봐야 한다.
그러나 현재는 전통한지에 대한 정의, 전통한지에 대한 법률이 부재하다. 전통한지와 기계한지의 구분을 위해서라도 전통한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
전주시 '한지산업 육성 및 지원 조례'에서는 전통한지란 국내산 닥나무를 주원료로 이용하고 반드시 목재, 기타 펄프는 사용하지 않아야 하며 전통 제조 방식에 따르되 고해와 건조 공정만 동력을 이용해 제조한 한지를 뜻한다고 정의한다. 사람마다 기관마다 내리는 정의는 다르지만, 국내산 닥나무를 사용해 손으로 만든다는 것은 전통한지를 규정하는 두 가지 본질적인 특성이다.
현재는 유명무실해진 '한지품질표시제' 역시 미비점을 보완해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한지품질표시제는 한지 생산자, 제조 방식, 재료 원산지 등 한지품질을 좌우하는 제반 사항을 표기해 한지의 신뢰성을 확보하고, 한지 보급 활성화를 유도하기 위해 추진됐다. 구매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전통한지가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도록 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박후근·배관표 씨가 발표한 논문 '전통한지 정책의 현황과 문제 분석: 입법방안 도출을 위해'에 따르면 한지품질표시제 등록업체 수가 2017년과 2018년에는 각 41개, 2019년에는 12개였지만 2020년과 2021년에는 정보 자체가 없었다.
△전통한지·기계한지 영역 구분⋯한지, 새로운 용도 개발 중요
한지는 용도에 따라 전통한지와 기계한지의 영역 또한 구분된다. 그리고 이 영역에 따라 품질, 가격 차별화가 이뤄져야 한다. 전문가들이 "모두가 전통한지를 할 필요는 없다"고 하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 기인한다. 다만 모든 한지가 전통한지로 둔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조현진 한지연구소장은 "전통은 전통대로 흘러가고 현대는 현대대로 흘러가야 한다"며 "전통한지는 대중성, 소비성이 있는 소재가 아니다. 전통한지만으로 한지의 저변을 확대하기엔 제약적 요소가 많다. 보다 넓은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조 소장은 "이제는 시대에 맞는 새로운 용도 개발을 통해 실용성과 편리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전통한지와 기계한지에 맞는 분야 즉 각각의 분야에서 한지가 아니면 안 되는 분야,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는 분야, 이 분야를 찾는 것이 우리의 과제"라고 했다.
△한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속도내야
현재 한지와 관련된 가장 큰 현안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다. 한지 관계자들은 "장인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등재되지 않으면 기술이 없어질 수 있다"며 유네스코 무형유산 등재에 속도를 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지살리기재단 이사를 맡고 있는 국민대 김형진 교수는 "현재 전승되고 있는 기록유산이 후세까지 길이 보전돼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록유산의 주체인 한지 초지술이 계승돼야 한다"며 "또 한지가 지니는 무형의 가치, 문화가 후대에 전승돼 한민족의 정신과 정기를 유구히 남기기 위해서도 유네스코 무형유산 등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김 교수는 "한지가 유네스코 무형유산으로 지정되면 많은 국민이 관심을 가지고 응원할 뿐만 아니라 한지의 소비 진작을 통한 근원적인 육성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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