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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한지로드]⑥국내 한지 이야기: 원료 직접 재배·수작업 제조⋯시간·정성의 결과물

김삼식(문경), 안치용(괴산)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 닥나무, 황촉규 재배·사용
농촌 인구감소·고령화로 닥나무 수급 애로⋯노동집약 한지산업 고급화 전략
"전통한지 수요 있어, 유럽서도 인정⋯국가 차원 전통한지 수매 고민해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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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 보유자 김삼식, 신현세, 안치용 장인/ 사진=문화재청 제공

"종이를 모르는 사람에게는 이 종이가 전통의 종이라 강조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저 내 종이를 아는 사람들이 날 찾아주면 그게 행복한기라요." (문경전통한지 삼식지소 中)

지난해 7월 문화재청은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 보유자로 김삼식, 신현세, 안치용 씨를 인정했다. 기존 국가무형문화재 한지장 보유자는 홍춘수 씨뿐이었는데, 3명이 늘며 총 4명이 됐다.

김삼식 한지장은 9세부터 한지 만드는 일을 했다. 올해 만으로 79세이니 70년이 다 됐다. 문경전통한지는 10월부터 3월까지만 한지를 생산한다. 한지를 만든다는 것은 닥나무를 재배하는 것, 잿물을 내리는 것도 한지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한지의 원재료인 닥나무와 부재료인 황촉규를 직접 재배해 사용한다. 2004년부터 3000평 규모에 닥나무를 심어 직접 재배하고 있다. 닥나무는 1년생만 사용한다. 1년 생산량은 그해 기후에 따라 달라지지만 평균 6000㎏ 정도이고, 이는 한지 1만 3000장∼1만 5000장을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 황촉규는 200평 규모로 1년 생산량은 약 500㎏이다.

수입닥, 양잿물, 화학약품 등 손쉽고 값싼 방법이 있지만 장인은 한지를 만드는 데 필요한 닥나무, 황촉규, 고춧대 등을 모두 손수 재배한다. 닥나무 껍질도 직접 긁는다. 전통 방식 그대로다. 고된 몸과 지난한 시간이 그 비용을 다 치러낸다.

문경전통한지가 자리한 경북 문경시 농암면은 밭농사가 많은 시골로 닥나무가 많았다고 한다. 겨울이면 닥나무 주인이 닥을 거두어 주니 한지를 만들기엔 최적의 조건이었다. 그러나 농촌의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닥나무 수급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닥나무를 기르고 수확하고 삶고 껍질을 벗겨 백피를 만드는 일련의 작업은 많은 노동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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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호 전수교육조교 뒤편으로 닥나무가 보인다/ 사진=문민주 기자

지난달 말 경북 문경전통한지에서 만난 김삼식 한지장의 아들 김춘호 전수교육조교는 가을 햇살을 받으며 하늘로 곧게 뻗은 닥나무를 가리켰다. 그는 "닥나무가 거의 사라져 가고 있다. 경북 의성군 신평면에 닥나무가 많았다. 15년 전에 갔을 때는 백닥이 약 20톤 가까이 나왔다. 그런데 지난해 가보니 1.5톤 밖에 생산이 안 됐다"며 걱정했다. 문경전통한지가 닥나무를 직접 재배하게 된 것도 이처럼 닥나무 수급이 어려워지면서부터다.

김 전수조교는 "전통한지 값을 제대로 받아야만 닥나무 수급도 원활해 진다"며 "태국과 필리핀 등에서 표백된 닥을 수입하고, 쌍발뜨기로 한지를 만들면서 전통한지라고 팔면 안 된다. 그러면 전통한지는 가격 경쟁력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값을 제대로 못 받으니 원재료를 생산하는 이들에게 돈을 많이 줄 수 없다. 악순환의 연속"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지를 다 전통한지로 만들 필요는 없다. 그런데 모든 한지가 전통한지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잘못된 것이다. 그래야 전통한지를 하는 사람들이 다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삼식, 김춘호 부자는 '귀한 것은 누군가 찾게 돼 있다'고 믿는다. 노동집약적인 전통한지산업은 결국 고급품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내가 쉽게 만든 건 다른 사람도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김 전수조교는 "빚을 내며 닥나무를 심은 건 고급 종이를 필요로 할 것이라는 판단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종이와 물이 저렴하다고 인식해 왔지만 세월이 변했다. 이젠 그렇지 않다"며 "전통한지를 하면 팔 데가 없다고 하는 건 거짓말이다. 영업을 안 한 지 벌써 10년이 넘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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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문경시 농암면에 있는 문경한지장 전수교육관/ 사진=문민주 기자

2008년 겨울 루브르박물관이 문경전통한지를 방문했다. 그 인연을 시작으로 루브르박물관은 현재까지 문경전통한지에 한지를 주문한다. 김 전수조교가 2000년 가업을 이어받기로 했을 때, 그는 두 가지를 결심했다고 했다. 첫째는 전통한지만 한다. 둘째는 유럽에 판매한다. 그는 "루브르박물관이 처음 주문한 양이 200장이었다. 사람들은 그게 돈이 되느냐고 묻는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라며 "유럽은 보존·복원용으로 대부분 일본 화지를 쓰고 있다. 그런데 그 시장에 우리가 비집고 들어갔다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전통한지를 잘 만들어내야 하는데, 그는 우리나라는 준비가 미흡하다고 쓴소리를 했다. 하향평준화된 한지의 품질을 향상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그는 한지의 본고장인 전주에 대해서도 "전주가 바뀌지 않으면 우리나라 전통한지는 제대로 갈 수 없다"며 애정 섞인 조언을 건넸다. 그는 "지금은 대부분 한지를 판매하는 데만 열을 올리지, 좋은 한지를 만드는 데는 열을 올리진 않는다"며 전주에서부터 천연재료, 전통방식으로 만드는 전통한지를 늘려갔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또 정부에서 한지은행 제도 같은 걸 만들어 일정량의 전통한지를 수매하는 방안도 고려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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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괴산군 연풍면에 있는 괴산한지체험박물관/ 사진=문민주 기자

국가무형문화재 공개행사가 있었던 지난달 말 괴산한지체험박물관에서 만난 안치용(63) 한지장은 커다란 돌통에 닥섬유와 닥풀을 잘 풀고, 앞으로 옆으로 물질하며 창호지를 뜨고 있었다. 이날은 닥풀로 불리는 황촉규가 나올 시기가 아닌 관계로, 그 대용으로 마당에 심어진 윤노리나무를 잘라 사용했다.

무엇보다 눈길을 끈 건 돌로 된 지통이었다. 안 한지장은 "한지는 물 온도와 기온이 낮은 추운 날씨에 뜨는 것이 가장 좋다"며 "온도가 높으면 황촉규가 잘 삭는다. 돌통이 수온을 일정하게 유지해 한여름에도 한지를 뜨는 게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3대째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안 한지장 역시 닥나무와 황촉규를 직접 재배해 사용한다. 그는 1994년부터 닥나무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그가 운영하는 신풍전통한지의 1년 생산량은 한지 3만~3만 5000장 정도로 자체 수급하지 못하는 닥나무는 충북 제천·단양·충주 등에서 구매해 사용한다. 

안 한지장은 괴산한지체험박물관장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그가 수십 년 전부터 수집한 한지 관련 유물을 비롯해 3대 째 한지를 만들며 쓰던 도구들이 전시돼 있다. 그는 "선조들은 다 본 책, 글씨 연습한 종이를 버리지 않고 이를 붙이고 꼬아서 생활용품으로 만들었다"며 요람에서 무덤까지 함께한 한지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는 전통한지를 제작을 고수하면서도 기능성을 더한 한지의 현대화,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 1986년 황토한지, 백토한지를 시작으로 짚벽지, 낙엽한지, 흑색한지 등을 개발했다. 관련 특허만 10여 건이 넘는다. 안 한지장은 "한지도 현대적 감각에 맞게 변해야 발전할 수 있다"며 "벽지와 장판, 수의 등 한지가 현대사회에서도 유용한 생활용품으로 자리 잡는 데 일조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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