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 면의 시골 무사였던 이성계는 고려를 지키는 장군이 되었다가 새로운 나라 조선을 개국했다. 그 격동의 시간을 그는 어떻게 견뎠을까? 그의 마음속에 수없이 요동쳤을 욕망과 두려움과 흔들림이 궁금해서 경기전에 있는 태조 이성계 어진을 보러 갔다.
우리 전통 초상화는 터럭 하나라도 닮지 않으면 그 사람이 아니라고 했고, 겉모습뿐만 아니라 인격과 내면까지 그려야 한다고 했으니 어진을 꼼꼼하게 뜯어보면 뭔가 알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어진 속 태조는 푸른색 곤룡포와 익선관을 쓰고 있었다. 귀밑머리와 수염이 하얗고 눈썹 위 사마귀까지도 고스란히 그려낸 걸 보니, 본 모습 그대로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나이가 들었어도 정면을 응시하는 그의 운동자는 흔들림이 없었고 굳게 다문 입술은 굳은 의지를 드러내는 듯했다.
하지만 초상화만으로 그의 내면을 짐작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헛헛한 마음으로 하릴없이 돌아왔을 때 서철원 작가의 <달의 눈물>을 만났다.
작가는 고려 시대 무신의 난(1170년)부터 태조 이성계의 죽음(1405년)에 이르는 긴 시간의 서사를 소설 속에 담았다. 200년을 훌쩍 넘는 시공간을 물 흐르듯 넘나드는 자연스러운 전개와 굽이굽이마다 피어나는 이야기가 감탄스러웠다.
칼과 한 몸이 되기를 바랐던 이성계는 홍건적을 물리치고 공민왕에게 ‘무신의 달’이라는 별호를 받는다. 고려라는 세상을 비추는 한 줄기 희망 같은 달이 이성계였다.
"무신 이성계의 앞날은 무겁고 가혹했으나 별호가 품은 달의 품성은 무사와 상반된 부드러움과 온화함을 품고 있었다. 이성계는 아늑함을 딛고 칼끝처럼 일어서는 무사의 몸을 달의 감성으로 잠재울 줄도 알았다."
작가는 칼과 한 몸이 되고 싶었던 이성계의 열망과 고뇌를 절절한 문장으로 되살려냈다. 문장으로 만들어가는 사유의 세계가 매력적이어서 절로 몰입이 되었고, 책을 읽는 동안 가슴을 파고드는 문장에 빨려들어 수없이 밑줄을 그었다.
혼백을 앞세워 이성계의 꿈속으로 들어온 견훤이라든가 흡혈 무리를 쓸어내는 바람의 사제, 정몽주의 딸인 시간을 삼킨 아이 누오는 또 하나의 축이 되어 작품을 이끈다. 그들이 주는 긴장감 때문에 책을 놓을 수 없었고 신비로워 자꾸만 눈길이 갔다.
"백제든 고려든 한 자락 땅에서 나고 자라며 무너진들 다시 들어서는 게 나라인 것이지. 그것을 깨닫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을 이승에서 허비했어."
책을 덮으면서, 고려의 장수였던 이성계가 새로운 나라 조선을 연 것은, 무너진 백제를 추억하는 견훤의 말처럼, 달이 기울면 다시 차오르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은영 동화작가는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통일 동화 공모전과 이다 생명문화 출판 콘텐츠 공모전에서 상을 받고(공동수상), 전북아동문학상과 불꽃문학상을 수상했다. 2022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발표지원)을 받았다. 그의 저서로는 <책 깎는 소년>, <으랏차차 조선 실록 수호대>, <열 살 사기열전을 만나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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