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걸은 지령이다. 영험한 땅에서 걸출한 인물이 나고, 그 인물이 있어 그 땅은 더 큰 가치를 지닌다. 남원시·순창군·완주군·임실군에는 빛나는 행적으로 이름을 남긴 위인이 많다. △고려 말 남원에서 왜군을 물리친 황산대첩의 이성계(1335∼1408) △조선 초기 집현전 학사로 문화를 꽃피웠던 최덕지(1384∼1455) △임진왜란 때 이치전투를 이끌며 왜군의 전라도 침공을 막은 명장 황진(1550∼1593) △조선 영·정조 시대의 지리학자·실학자인 여암 신경준(1712~1781) △한국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1759∼1791)과 권상연(1751∼1791) △조선 후기 3대 명필로 꼽히는 이삼만(1770∼1847) △조선 성리학의 마지막 거장인 노사 기정진(1798∼1879) △동학 경전인『동경대전』을 쓴 수운 최제우(1824∼1864)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1944∼1960) 열사 등이다.
△“천하는 만백성의 것” 혁명가, 정여립
정여립(1546∼1589)의 탯자리로 알려진 완주군 상관면 월암마을에 정여립공원이 들어선 것은 2020년이다. 정여립이 오른손을 높게 치켜들고 있는 기개에 찬 모습을 형상화한 철판 조형물이 있고, 그의 생애와 사상, 기축옥사 등에 관한 설명이 8개의 오석 안내판에 적혀있다.
최기우의 희곡 「정으래비」(평민사·2022)는 ‘천하는 백성의 것’이라고 외쳤던 전주 출신 사상가 정여립과 기축옥사를 소재로 했다. 반상의 귀천과 남녀의 차별이 없는 대동계를 조직하고 왕위의 세습을 부인했던 혁명적 사상가인 정여립과 당시 억울한 죽음이 남긴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현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정여립의 삶을 다루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민중이 있다. 차별 없이 고른 세상을 향한 정여립의 꿈을 잇는 이들이다.
홍석영의 장편소설 「소설 정여립」(범우·2008)은 기축옥사가 뜻하는 정치적 함의가 무엇인지, 그 영향은 어떻게 남았는지 보여주고자 사료와 문헌을 탐구한 뒤 소설의 형식을 빌려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서철원의 장편소설 「별의 노래」(짓다·2023)는 마이산이 있는 진안의 밤하늘에 그려진 별의 천문을 통해 정여립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상향과 판타지를 보여준다.
정여립의 죽음은 참혹하고 뜨악한 역사를 남겼지만, 푸른 댓잎 같던 그의 대동사상은 후세에 큰 울림을 남겼다. 백성으로부터의 개혁을 지향한 그의 사상은 허균의 ‘호민론’과 정약용의 ‘탕론’으로 이어졌으며, 동학사상도 그 줄기로 엮여 있다.
△임실치즈를 만든 신부, 지정환
임실성당은 대한민국 치즈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벨기에 출신의 지정환(1931∼2019) 신부는 1964년 6월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척박한 땅을 일구며 가난에 시달리는 농민들을 가까이 지켜본 신부는 산양을 키우며 사제관에서 산양유를 이용해 치즈를 만들었다.
“치즈!”
사실, 지 신부는 벌써 며칠 전부터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면서 산양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꼼꼼히 헤아려 본 터였다. 연유나 분유 같은 가공식품도 고려해 보았지만, 얼핏 생각해도 엄청난 시설비용을 도저히 감당해 낼 재주가 없었다. 그리하여 궁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치즈였다. ∥고동희·박선영의『치즈로 만든 무지개』 중에서
1961년 1월 임실성당 주임대리로 6개월 동안 근무했던 지정환 신부는 부안성당을 거쳐 1964년 6월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다시 부임했다. 척박한 땅, 가난한 주민들을 위해 그가 찾은 것은 산양유를 활용한 치즈 만들기. 그러나 치즈 제작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산양유를 약탕기로 졸이고, 비눗갑에 담아 숙성시키고, 유럽의 치즈공장들을 둘러보며 방법을 배워오는 등 숱한 도전과 실패 끝에 치즈 만들기에 성공했다.
지정환 신부의 삶과 의지는 고동희·박선영의『치즈로 만든 무지개: 지정환 신부의 아름다운 도전』(명인문화사·2007)과 박선영의『지정환 신부: 임실치즈와 무지개 가족의 신화』(명인문화사·2014) 두 권의 책에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1959년 12월 사제의 신분으로 한국에 온 벨기에 출신의 지정환 신부가 전주·부안·임실·완주·서울 등에서 만났던 사람들, 임실치즈의 태동을 함께한 사람들, 다발성신경경화증으로 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오히려 평생 장애인들의 아버지로 살며 무지개장학재단을 이끈 이야기들은 큰 감동을 선사한다. 임실치즈테마파크에도 지정환 신부와 임실N치즈의 이야기를 담은 임실치즈역사문화관과 지정환신부역사관이 있다.
△붓으로 지켜낸 구국의 신념, 조희제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 절골(寺洞)은 대한제국 말의 학자이며 순국지사인 조희제(1873∼1939)의 삶터이며, 1895년부터 1919년까지 절의를 세운 의열선비와 의병들의 실적과 문헌을 수집해 편찬한『염재야록』을 집필한 곳이다.
조선의 국운이 쇠퇴하던 시기, 항일의식이 투철한 집안에서 자란 조희제는『염재야록』 집필을 마음먹고 수십 년 동안 한말 의병장과 초야에 묻힌 애국지사의 행적, 독립투사의 항일사적, 3·1운동 애국투사의 공판 등을 찾아 재판 실황을 기록했고, 자료를 수집해 야사 형식으로 엮었다. 그러나 1938년 책을 쓴 일이 일제에 발각되면서 조희제를 비롯해 서문과 발문을 쓴 최병심(1874∼1957)·이병은(1877∼1960)과 교정을 본 김영한, 서역을 맡은 조현수 등 많은 인사가 임실경찰서에 연행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잔혹한 악형과 고문을 당했다.
다행히 조희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염재야록』을 두 개로 편집해 책 표지에 ‘덕촌수록(悳村隨錄)’이라고 쓴 뒤, 한 질은 책상에 두고, 한 질은 궤짝에 넣어 마루 밑 땅에 묻었다. ‘덕촌’은 조희제가 살던 ‘덕치(德峙)’를 가리키는 말로 ‘덕치(덕촌)의 이야기를 기록한다’라는 뜻으로 이목을 피하려 한 것이다.
고문받던 조희제의 생명이 위독해지자 일경은 고문의 만행을 인멸하기 위해 병보석으로 석방, 임실병원에 입원시켰다. 이후 조희제는 일제가 단발 종용을 강요하자 “저들에게 모욕당하고 구차히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대의를 지켜 죽음을 맹세한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 순국했다. 그가 남긴 소중한 기록들은 후세에 길이 전해져 역사의 교훈이 되었다.
△춘향의 정절을 이은 최봉선
춘향사당은 남원을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 「춘향전」의 여성 인물인 성춘향의 일편단심을 되새기고, 그녀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세운 영정각으로 1931년 광한루원에 세웠다. 춘향사당은 이곳을 건립하고 오랫동안 제사 지내는 일에 앞장섰던 남원예기조합의 기생 최봉선(1900∼1974)의 꿋꿋한 삶과 의지가 담겨 있어 더 의미가 깊다.
1931년 단옷날 새벽, 단정하고 깨끗한 옷을 차려입은 기생 100여 명이 사당 앞에 줄지어 섰다. 남원 권번 기생들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모인 기생들이었다. 남원 출신으로서 경성뿐 아니라 전국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화중선, 이중선 자매도 와 있었다. ∥김양오의 동화 「백 년 동안 핀 꽃」
부산 출신인 최봉선이 남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24년 봄. 열녀 춘향에 대한 흠모의 정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던 그녀는 남원의 유지들과 사당을 짓기로 협의했다. 그러나 일제 관헌은 모든 협조를 거절했고, 몇몇 사람은 ‘천한 퇴기의 딸 춘향의 사당 건립은 점잖지 못한 일’이라고 반대했다. 그러나 최봉선은 뜻을 굽히지 않고 기금 2백 원을 내놓았으며, 동료들과 모금 운동에 나서 건축비 1천 2백 원을 모았다. 초상화는 ‘진주의 화가 강(姜) 모 씨’에게 맡겼으며, 1929년 춘향의 생일로 여긴 음력 4월 8일에 준공식을 올렸고, 1931년 6월 3일 춘향사당 낙성식과 제전을 열었다.
최봉선의 삶은 김양오의 동화『백 년 동안 핀 꽃』(빈빈책방·2021)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최초의 지역 축제 춘향제를 만든 최봉선’을 부제로 한 이 동화는 1931년 제1회부터 1967년 제37회까지 제주(祭主)를 맡아 춘향제향을 모셨고, 한국전쟁 때에는 춘향의 영정을 주천면으로 옮겨 전쟁의 화마에서 지켜낸 최봉선의 결의에 주목한다.
우리말과 우리글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했던 일제강점기에 춘향제를 통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되살리고 민족의 자긍심을 높인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 속 인물인 춘향을 현실 세계로 불러오고, 이야기 속 춘향의 얼을 오늘에 되살려 후손들의 본보기로 삼은 것은 춘향을 향한 열녀 최봉선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춘향사당과 춘향 영정은 춘향의 정절을 이은 최봉선과 같은 이들의 존재만으로도 감동을 준다. /최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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