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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기고

[전북의 문학 명소] 16. 연인과 함께 가면 좋을 문학 명소

연인과 함께하는 여행에 계절과 장소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봄이면 봄이라서 여름은 더위를 피해, 가을은 원숙한 사랑을 위해, 겨울에는 뜨거운 커피 한잔에 다가올 내일을 약속한다는 핑계로 어디든 떠나보자. 둘 사이에 문학이 슬며시 끼어든다면 더 좋을 여행이다. 남원, 정읍, 임실. 완주군 곳곳에 둘만의 사랑을 더욱 굳건히 할 문학 명소를 소개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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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전시장.

△사랑 이야기로 더욱 애틋한 여행

고전소설 「춘향전」은 남원을 배경으로 한 이도령과 춘향의 달달 구리한 사랑이야기이다. 우리나라 로맨스소설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춘향과 이도령처럼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다면 남원춘향테마파크를 소개한다. 테마파크 내부를 걸으면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을 통해 「춘향전」의 내용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춘향과 이몽룡이 사랑을 나누던 부용당 앞에서는 괜스레 얼굴이 붉어진다. 손을 넣으면 노래가 나오는 사랑의 탑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굳건한 사랑을 맹세하게 된다. 손을 잡고 사부작사부작 걷다 보면 김소월의 시 「춘향과 이도령」, 김영랑의 시 「춘향」, 복효근의 시 「춘향의 노래」를 만날 수 있다. 시 한 편 한 편에 사랑하는 이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한 층 한 층 커지리라.

사소한 일로 다퉜다면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도 좋다. 웃음을 잃어버린 연인에게 아기처럼 밝고 환한 웃음을 선물할 기회다. 종이 한 장에 꽉 들어찬 꽃송이 하나가 불편한 감정을 일순간 사라지게 한다. 어느 새 손을 맞잡고 꽃밭을 걷고 있는 서로를 만나게 된다. 화가이면서 작가인 김병종의 『화첩기행』 연작을 읽고 미술관을 나서면 그림마다 자연스레 스민 그의 깊은 사유가 담긴 문장도 함께 떠오르며 가슴이 벅차오른다.

쉼이 필요한 연인이라면 (구)서도역 영화촬영장을 권한다. (구)서도역 영상촬영장은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배경지다. 이제 기차가 서지 않는 폐역을 배경으로 영화 같은 장면을 연출해보자. 역할 놀이가 시들해질 때쯤이면 양쪽 선로에 나란히 서서 균형을 맞춰 걸어보자. 한쪽으로 기울었던 관계가 조금씩 평형을 이루면서 사랑이 더욱 안정되어간다. 꽃터널이 만든 그늘에서 말없이 쉬는 것도 좋다. 진짜 사랑은 말하지 않았을 때 더욱 깊어지는 법. 시간이 된다면 지척에 있는 「혼불문학관」에 들러 소설 속 서도역을 살펴보자. 역을 통해 들어오고 떠난 이의 삶을 통해 만남과 이별이 주는 삶의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그때가 내 옆 사람이 더욱 소중해지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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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례책마을문화센터 실내.

△데이트하기 좋은 삼례 여행

완주군 삼례는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가 정말 많다. 먼저 고풍스러운 느낌의 삼례예술촌은 일제가 삼례를 수탈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지은 양곡 창고를 개조한 문화공간이다. 외형은 그대로 두고 내부만 목적에 맞게 현대적으로 개조한 덕분에 일제강점기 수탈의 현장을 마주할 수 있다. 이곳에는 입구에 놓인 맹꽁이 조형물을 시작으로 4개의 전시관과 다목적관,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로스터리, 실내와 야외공연장을 만날 수 있다. 유수경의 동화 「한내천에 돌아온 맹꽁이와 금개구리」는 이곳 삼례가 한내로 불릴 때 겪었던 아픈 역사를 담은 동화다. 짬을 내어 나란히 벤치에 앉아 그림책을 읽으면 삼례 여행의 첫발을 제대로 디뎠다 할 수 있다.

삼례문화예술촌을 나와 (구)삼례역으로 걸으면 대각선 방향으로 삼례책마을문화센터가 보인다. 이곳은 10만여 권의 헌책을 보유한 전국 최대 규모의 헌책방이다. 빽빽하게 꽂힌 헌책 사이를 걸으며 책등을 쓸어 보아도 좋다. 연인에게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언어를 귓속말로 들려주고 싶은 충동이 저절로 느껴진다. 자신만의 내밀한 언어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확신을 주는 순간이다. 

걸음을 더 옮겨 비비정으로 날 듯 가보자. 비비정은 완주 8경 중 하나로 전주천과 삼천이 합류하여 들어오고, 고산천과 소양천이 한 몸이 되어 만경강으로 흘러가는 지점이다. 김은숙 시인의 「비비정에 달 뜨거든」에서 수천수만의 은빛 가루 날리며/ 중천으로 솟은 달이/ 물속으로 뛰어내린다는 비비정에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연인에게 노래 한 곡을 선물하고 싶어진다. 이곳에서 서로의 가슴속에 달을 품고 등을 맞대고 서보자. 등에서 뿌리가 돋아 서로가 하나로 이어지는 놀라운 판타지를 경험하게 될지 누가 아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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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물문화관 전시장.

△사랑의 언어로 가득한 섬진강 여행 

‘두꺼비 섬(蟾)’자를 붙인 섬진강은 시의 강이다. 시인 김용택의 시 「섬진강」 연작도 그러하거니와 수많은 문학 작품이 섬진강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진안에서 발원하여 임실, 순창, 남원, 곡성, 구례, 하동을 지나 남해로 흘러가기에 섬진강은 남도의 심성을 닮았다. 남도의 역사와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구불거리던 핏빛 처연한 아픔을 담은 강.

「섬진강3」의 “물 앞에 목말라 물 그리며/ 서러웠고 기뻤고 행복했고/ 사랑에 두 어깨 깊이 울먹였으니/ 그대 이제 물 깊이 그리움 심었으리.”을 낭송하노라면 기쁘고 행복했던 둘 만의 사랑이 섬진강 물줄기처럼 더욱 힘찰 거라 장담한다.

옥정호에 세워진 섬진강물문화관에는 김용택의 시『섬진강』을 비롯해 최명희의 소설 『혼불』과 박경리의 『토지』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섬진강이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담은 강이었나 싶은 순간, 찰랑거리는 섬진강에 발을 적시며 어깨를 기대고 있는 서로를 발견하게 된다. 주고받는 눈빛만큼이나 빛나는 윤슬에 마음을 뺏길지도 모르니 조심하시라. 옥정호가 보이는 시골 버스 정류장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박성우 시인의 「자두나무 정류장」을 소리 내어 읽어보아도 좋다. 무엇하나 버릴 것 없는 따뜻하고 다정하고 온전한 두 사람만의 시는 그렇게 탄생한다.

진실하고 특별한 관계일수록 틈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를 향한 간절함이 커진다. 서로에게 틈을 허락하자. 그것은 곧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마음이다. 그 틈으로 소살소살 사랑의 시와 이야기가 흘러가도록 하자. /김근혜(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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