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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의 문학 명소] 20. 남원·순창·완주·임실의 문학 명소 훑어보기

문학 명소는 곳곳에 있으며, 매일 새롭게 태어나고 있다. 전라북도 곳곳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은 꾸준하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남원시·순창군·완주군·임실군에서 찾은 문학 명소를 짧게 소개한다. 작가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곳과 문학 작품의 무대가 된 곳을 산책하거나 문학관·문학비 등을 찾는다면 무척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최기우(극작가) ◇남원시의 문학 명소 ○광한루원 춘향사당: 고전소설 「춘향전」의 여성 인물인 성춘향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1931년 광한루원에 세운 영정각으로, 김양오의 동화 「백 년 동안 핀 꽃」에 사당을 세우고 오랫동안 제사 지내는 일에 앞장선 최봉선(1900∼1974)의 꿋꿋한 삶과 의지가 담겨 있다. ○광한루원: 성춘향과 이몽룡이 손깍지 끼고 놀던 고전소설 「춘향전」의 무대다. 소설·수필·시·시나리오·희곡 등 숱한 문학 작품의 배경지이며, 남원시립국악단은 이곳에서 <가인 춘향>, <시르렁 실겅 톱질이야!>, <아매도 내 사랑아>, <열녀춘향수절가>, <월매를 사랑한 놀부> 등 「춘향전」과 「흥부전」을 활용한 창극·가무악극을 올리며 시민에게 흥겨운 시간을 선사했다. ○교룡산국민관광지: 남원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교룡산(520m) 중턱에 있는 교룡산국민관광지는 산책로 곳곳에 고전소설 「춘향전」의 「옥중시」와 「어사시」, 남원 출신 방원진(1577∼1650)의 「애련곡」, 김삼의당(1769∼1823)의 「화만지」, 박항식(1917∼1989)의 「도라지 꽃」, 복효근의 「다시 밝혀드는 동학의 횃불」 등이 돌에 새겨 있다. ○교룡산성: 옛 모습을 잘 보존한 백제 시대 산성으로, 돌 하나하나에 스민 선열의 숭고한 얼은 양성지(1415∼1482)의 시 「교룡산성에 올라」, 김동수의 시 「교룡산성」 등 여러 문학인이 시와 산문으로 엮고 있다. ○구 서도역 영상촬영장: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배경지로, 소설 속 효원이 신행 온 곳도, 강모가 만주로 떠난 곳도 서도역을 통해서다. 2002년 역의 기능은 멈췄지만,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인기를 끌며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 ○구룡계곡(국창권삼득유적비): 최초의 비가비 명창인 권삼득(1771∼1841)이 득음한 곳으로 알려졌으며, 최명희의 장편소설 「제망매가」를 비롯해 여러 문학 작품에 관련 일화가 전한다. 유적비가 있다. ○국립민속국악원: 국립민속예술기관이자 문화공간인 국립민속국악원은 남원 전통문화의 맥을 잇는 무대극들을 선보이고 있으며, 민속악 자료를 발굴하고 학문 정립을 위한 연구 활동에도 힘써 『대한민국 창극사』, 『이야기로 듣는 남원국악사』, 『전라도의 가락』, 『전북의 허튼가락 산조』, 『지리산 자락의 민요』 등 다양한 학술자료를 내고 있다. ○김주열열사 추모공원: 김주열(1944∼1960) 열사의 기념관·추모각·동상·묘가 있으며, 근처 독우물마을에 생가가 있다. ‘4·19혁명의 도화선’이기에 노경식의 희곡 「봄꿈(春夢)」, 조정래의 대하소설 「한강」, 윤석역의 소설 「4·19혁명」, 신현수의 동화 「사월의 노래」 등 4·19혁명을 다룬 문학 작품에서 ‘김주열’은 빠질 수 없다. ○남원 몽심재 고택: 1700년 박연당이 지은 양반가 건물로, 김양오의 동화 「꿈과 마음이 담긴 집 몽심재」에 품이 넓은 몽심재의 모습이 세심하게 그려 있다. ○남원무민공황진장군기념관: 임진왜란 때 이치전투에서 승리하며 왜군의 전라도 침공을 막은 명장 황진(1550∼1593)을 모신 곳으로, 김동진의 역사소설 「임진무쌍 황진」에 그의 불꽃 같은 삶이 있다. ○남원고전소설문학관: 남원을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 「춘향전」, 「흥부전」, 「변강쇠전」, 「최척전」, 「홍도전」, 「만복사저포기」를 한데 모아 소개한다.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예술기행 산문의 백미로 꼽히는 『화첩기행』의 저자 김병종 화백이 인문정신과 예술혼으로 아름답게 엮은 작품을 만나는 공간이다. ○달궁계곡: 피서지로 이름난 곳이지만, 시간을 거슬러 가면 치열한 싸움의 역사가 서린 현장이다. 하지만 결국 밤하늘의 달만이 달궁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을 서정인의 소설 「달궁」에서 일러준다. ○만복사지: 남원 최대 사찰이었던 만복사가 있던 자리로, 우리나라 한문 소설의 효시인 김시습(1435∼1493)의 「만복사저포기」 배경지다. 지금까지 소설·연극·창극 등 다양한 형태로 독자와 관객을 만나고 있다. ○만인의총: 정유재란 때 끌려간 도공들과 그 후손들이 기억하는 조선의 노래를 기념하기 위한 노래탑 <오늘이 오늘이소서>가 있다. 가사는 남원에서 채록돼 김천택의 『청구영언』(1728)에 실렸다. 일본에서 여러 대에 걸쳐 한국의 성(姓)을 유지하며 뿌리를 지킨 후손들의 이야기는 김양오의 동화 「도자기에 핀 눈물꽃」에도 있다. ○변강쇠백장공원: 옹녀와의 사랑을 위해 장승을 뽑아 땔감으로 쓴 변강쇠가 벌을 받아 장승처럼 굳어서 죽었다는 고전소설 「변강쇠전」을 소재로 한 쌈지공원이다. ○송흥록·박초월 생가: 운봉읍 비전마을은 동편제 판소리의 창시자인 송흥록이 태어나고, 명창 박초월(1917∼1983)이 성장한 곳으로, 윤영근의 장편소설 「동편제」에 동편제 명창들의 이야기가 신명 나게 쓰여 있다. ○실상사: 아늑한 들판에 있는 고찰이다. 문학인들의 출입이 유난히 잦아서 도종환의 시 「실상사-정도상에게」, 신경림의 시 「실상사의 돌장승-지리산에서」, 정동철의 시 「실상사 철조여래좌불을 만나다」, 정도상의 소설 「실상사」 등과 같이 시와 소설로도 자주 읽힌다. ○안숙선명창의여정: 남원 출신인 안숙선 명창의 이름을 딴 이곳은 판소리의 멋과 흥을 전하는 공간이며, 안숙선의 삶과 깊고 너른 소리 세계는 최동현의 『안숙선의 판소리』에서도 엿볼 수 있다. ○오리정·버섯밭: 「춘향전」에서 몽룡과 춘향이 가슴 아린 이별을 나눴다고 알려진 누각으로, 이야기를 더 애틋하게 만들기 위해 1953년에 세웠다. 최기우의 창극 「춘향, 네 개의 꿈」을 비롯해 춘향을 소재로 한 작품에서 빠지지 않는 상징적인 곳이다. ○유천마을 김삼의당시비: 담락당 하립(1769∼1830)과 김삼의당(1769∼1823) 부부의 고향에 있는 시비이며, 표성흠의 장편소설 「교룡」에 이들의 사연이 애틋하다. ○은적암터: 수운 최제우(1824∼1864)가 동학 경전인 『동경대전』과 포교가사집인 『용담유사』를 집필한 은적암이 있던 곳이다. ○정령치휴게소: 지리산 능선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정령치(1,172m)에는 이원규의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 새겨진 시비가 있다. ○지리산 바래봉 계곡: 매년 봄 철쭉이 흐드러진 바래봉은 김광원의 시 「바래봉 철쭉」, 안도현의 시 「철쭉꽃」, 우미자의 시 「바래봉 철쭉」, 정영자의 시 「철쭉꽃 무리로 피는 그리움」 등 많은 시인의 심장 같은 시들로 더 붉게 타오른다. ○지리산 뱀사골: 지리산 자락에서 나고 자란 복효근은 뱀사골 맑은 계곡물에 발을 씻으며 쓴 시 「환상적 탁족」을 통해 인간의 인간적 한계를 돌아본다. ○지리산지구전적기념관: 한국전쟁을 전후로 군경의 활약을 담고 있으며, 이병천의 소설 「사냥」은 그 전투의 이면에 가려진 비극을 풀어내고 있다. ○청호저수지: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 등장하는 마을의 저수지로, 마을 사람 모두 함께 잘살자는 의미가 넘실거린다. ○춘향묘: 묘 앞에 ‘만고열녀성춘향지묘(萬古烈女成春香之墓)’라고 새긴 비석이 있는 춘향묘는 고전소설 「춘향전」 속 성춘향의 빈 무덤이다. ○춘향문화예술회관: 남원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한 다양한 창작극이 무대에 오르면서 남원을 세계에 알리고,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 남원시립국악단의 창극 <만복사저포기>·<정유년 남원성싸움>·<여류명창 이화중선>·<춘향 아씨>, 가무악극 <남원뎐>, 창무극 <남원골이야기>, 국악뮤지컬 <시집가는 날>·<춘향 네 개의 꿈>, 퓨전창극 <소리꾼 청향>, 가족국악뮤지컬 <달래 먹고 달달, 찔래 먹고 찔찔> 등이다. ○춘향테마파크: 영화 <춘향뎐>(2000)의 촬영지로, 고전소설 「춘향전」과 남원을 소재로 한 20여 기의 시비와 노래비가 있다. 강은교의 시 「춘향이의 꿈노래」, 곽진구의 시 「오작교」, 길용숙의 시 「그리운 이몽룡」, 김동리의 시 「남원에서」, 김소월의 시 「춘향과 이도령」, 김영랑의 시 「춘향」, 박재삼의 시 「자연-춘향이 마음 초(抄)」, 복효근의 시 「춘향의 노래」, 성춘향의 시 「옥중시」, 양성지의 시 「광한루 예찬 시」, 진복희의 시 「춘향연가」 등이다. ○호암시비공원: 만동마을 들머리에 남원과 연관 있는 조선 시대 선비 18인의 시를 돌에 새겨 만든 쌈지공원이다. 1789년(정조 13년)에 창건된 호암서원이 가까이 있다. ○혼불문학관 정군수시비: 혼불문학관 마당에 최명희(1947∼1998) 소설가의 전북대학교 국문과 동창인 정군수의 추모시 「그 임의 하늘 아래서」가 돌에 새겨 있다. ○혼불문학관: 최명희(1945~1998)의 소설 「혼불」의 배경지인 사매면 노봉마을에 만든 문학관이다. ○황산대첩비: 고려 말 이성계 장군이 왜군을 물리친 황산대첩(1380)을 기리기 위해 왕명으로 세운 비석으로, 서권(1961∼2009)의 장편소설 「시골무사 이성계」에 황산대첩비에 담긴 의미와 기상이 굳건하게 살아 있다. ○흥부마을(아영면 상성마을): 고전소설 「흥부전」의 흥부가 놀부에게 쫓겨 와 살면서 복을 받았다고 알려진 마을로, ‘발복지’라 불린다. ○흥부마을(인월면 성산마을): 고전소설 「흥부전」의 놀부와 흥부가 태어난 마을로, 최기우의 희곡 「시르렁 실겅 당기여라 톱질이야」에 가족의 화해와 화합을 부르는 남원의 소리와 그 의미가 쓰여 있다. ◇순창군의 문학 명소 ○강천산: 산세가 빼어난 강천산은 시인 김용택이 ‘다 옳은 산’이라고 말하며 인생을 돌아본 것처럼 많은 문학인에게 깨달음을 주었고, 그 돌아봄은 고스란히 수려한 문학이 되었다. 김용택의 시 「강천산에 갈라네」, 우미자의 시 「강천산에 단풍들 무렵」, 정군수의 시 「강천사 가을나무」 등이다. ○국립회문산자연휴양림: 편백으로 가득한 ‘해원의 숲’은 김소월의 시 「산유화」가 새겨진 시비와 김용택의 시들이 쓰여 있는 나무 팻말이 걸음을 가볍게 한다. ○귀래정 체육공원: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라던 권일송(1933∼1995)의 시 「반딧불」이 새겨진 시비가 있다. ○귀래정(설씨부인·신경준선생 유지): 신말주(1429∼1504)와 부인 설씨가 지은 정자로, 장교철의 시 「귀래정에 앉아」를 비롯해 많은 시인의 시심이 탄생하고 있다. ○동계면 구미마을: 남원 양씨의 세거지로, 양규창·양건섭 등 많은 시인을 냈다. 이병천의 단편소설 「가위」의 배경지이자 작품을 쓴 곳이다. ○동계면 구미마을(섬진강 들꽃): 산문집 『섬진강, 들꽃에게 말을 걸다』를 낸 송만규 화백은 동계면 구미마을에서 낮게 흐르는 섬진강과 그 옆에 소담히 피어난 들꽃에 깃든 깨달음을 화폭과 원고지에 옮기고 있다. ○박덕은미술관: 시·소설·평론·동화·수필·희곡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쓰는 문학인이자 1천여 점의 그림을 그린 화가 박덕은의 미술관이다. ○복흥면 동산마을: 조선 성리학의 마지막 거장인 노사(蘆沙) 기정진(1798∼1879)의 유허비와 시비가 있다. ○설공찬전테마관: 채수(1449∼1515)의 「설공찬전」은 순창을 공간적인 배경으로, 순창을 본관으로 하는 설씨를 주인공으로 쓴 전기 소설로, 순창 설씨가 집성촌을 이룬 금과면에 설공찬전테마관이 있다. ○순창5일장: 사진작가 이흥재와 시인 김용택이 함께 낸 사진에세이집 『그리운 장날』에는 소박한 순창 사람들의 땀내 나는 삶과 고단한 일상을 꾸려가는 상인들의 한숨과 비탄이 녹아있다. ○순창국악원: 순창은 김세종·박유전·장재백·장판개 명창을 배출한 판소리의 고장으로 순창국악원이 그 맥을 잇고 있다. 최동현의 『순창의 판소리 명창』에서 순창 소리꾼의 맥을 짚는다. ○순창남계리석장승: 남계리에 있던 석장승으로, 지금은 순창문화원 뒤뜰로 옮겨왔다. 순창에서 태어나 순창을 지키며 사는 장교철이 시 「남계리 석장승」에 담았다. ○순창삼인대: 김정·박상·유옥이 단경왕후 복위를 위해 목숨을 걸고 상소문을 썼던 곳이며, 양상은의 시 「삼인대」를 비롯해 여러 문학인이 그 올곧은 정신을 문학 작품에 담았다. ○순창장류박물관: 어머니의 어머니의 어머니 때부터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익어간 맛있는 시간이 양병호의 시 「순창고추장」처럼 매일매일 익어가고 있다. ○쌍치면 피노리: 동학농민혁명을 이끌었던 전봉준이 붙잡힌 곳으로 한윤섭의 동화 「서찰을 전하는 아이」와 선우의 시 「피노리」 등에 안타까운 역사가 쓰여 있다. 한국 현대사의 비극적인 순간들은 계속 이어졌으며, 그런 까닭에 쌍치에서는 문학적으로 중요한 목소리가 탄생할 수 있었다. 신형식은 시 「웃동네 통시암」으로 하나의 우물에 매달린 수백 명의 사연을 전한다. ○유등면 오교리(신경준 묘역): 시 창작과 이해에 관한 이론서 『시칙』과 『산경표』 등 다양한 저서를 편찬한 조선 영·정조 시대의 지리학자·실학자인 여암 신경준(1712~1781)의 묘가 있다. ○장군목유원지: 장군목에 이른 섬진강은 고이 간직했던 솜씨를 발휘해 바위를 조각해 냈다. 최승범(1931~2023)의 시 「다슬기탕 이야기」는 바로 그 장군목의 물결을 아로새긴 다슬기와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완주군의 문학 명소 ○구이면 일대: 유영국의 대하소설 「만월까지」의 배경지로, 이 작품은 1920년대를 관통하며 3대에 걸친 노비 집안의 얽히고설킨 가족사와 반상의 갈등과 화해를 변증법적으로 그린 장편소설이다. ○그림책미술관: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그림책을 앞세운 미술관으로 삼례읍에 있다. ○대둔산: 동학농민혁명군의 최후 항전지다. 일본군의 기습으로 기암절벽에서 외롭게 투신한 농민군의 눈에 마지막으로 담겼을 하늘이 이병천의 소설 「마지막 조선검 은명기」에 있다. ○동상면 밤티마을: 우리나라 8대 오지마을로 불리는 밤티마을에는 만경강 발원지인 밤샘이 있고, 유수경은 밤샘으로 가는 길의 판타지를 동화 「하늘 아래 첫 동네 밤티」에 담았다. ○동학농민혁명삼례봉기역사광장: 삼례에는 1892년 삼례집회와 1894년 삼례봉기를 기념하기 위한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역사광장’이 있으며, 송기숙의 소설 「녹두장군」에 삼례에 모인 민초의 삶이 고스란히 묘사됐다. ○모악산: 모악산은 굽이굽이 시이고, 수필이며, 소설이고 극이다. 많은 시인과 작가가 산자락을 보고 거닐며 서로의 숨결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문학 작품들을 쌓아 올렸다. 산에 오르면 가슴 가득 생명이 차오르고, 저절로 삶을 사랑하게 되는 건 이 때문이다. ○봉동 상장기공원: 200년 전통이 살아 있는 봉동씨름의 현장이며, 동학농민혁명 농민군을 소재로 한 최기우의 희곡 「들꽃상여」에 봉동의 소년장사 이복룡과 봉동씨름에 얽힌 여러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겼다. ○봉실산: 봉동읍과 비봉면에 낮게 솟은 봉실산(373m) 능선 옥녀봉(324m)에 우보환의 시 「봉실산」이 소개된 팻말이 2007년부터 등산객을 만나고 있다. ○비비정: 만경강은 비비낙안의 정취를 품고 흘러간다. 갑오년, 비비정에 모여든 사람들의 함성이 밤마다 달빛처럼 쏟아진다. 김은숙의 시 「비비정에 달 뜨거든」을 읽으면 달과 비비정과 시와 사람이 하나가 된다. ○삼례공용버스터미널: 김헌수의 시「삼례터미널」과 황규관의 시 「삼례 배차장」은 빗물 고여 팔랑이는 흙바닥 길과 낡은 버스들이 몰려들고, 떠나고 돌아오는 사람들로 북적거리던 풍경을 기억한다. ○삼례문화예술촌: 1920년대 지어진 양곡 창고를 고쳐 지은 삼례문화예술촌 자리는 본래 만경강을 잇는 습지로 금개구리와 맹꽁이 이야기가 전한다. 유수경은 동화 「한내천에 돌아온 맹꽁이와 금개구리」에 그 이야기를 담았다. ○삼례시장: 김정경의 시 「이화식당」, 송하선 시 「삼례의 장날」, 이숙희의 시 「삼례장터에서」, 진창윤의 시 「구름 냉면」 등은 얼굴과 얼굴이 마주하고,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장터에서 우리의 삶이 비로소 인간의 형상을 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삼례역: 일제강점기 만경들의 쌀을 수탈해 가기 위해 세워졌다. 지금은 문화예술촌으로 탈바꿈했지만, 수탈의 역사는 지워지지 않았다. 안도현의 시 「기차」가 역사의 선로를 힘껏 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삼례책마을문화센터: 10만 권 이상의 헌책을 보유하고 있는 헌책 애호가들의 성지로 삼례읍에 있다. ○송광사: 최명희 작가는 소설 「혼불」에서 승려 도환이 입을 빌려 ‘완주 송광사 사천왕을 사천왕의 전형으로 보았다.’라고 말하며, 송광사 천왕문을 우리나라 최고의 천왕문으로 꼽았다. ○여산재: 국중하 수필가가 설립한 문화예술공간 여산재는 김남곤·정군수·조미애·황금찬·허소라 등의 시비가 있는 시의 숲이다. ○연석산 등산로: 연석산 들머리에 완주군 동상면이 고향인 배학기의 시 「그리운 연석산」이 새겨진 시비가 있다. ○연촌최덕지묘: 조선 초기 유학자인 연촌 최덕지(1384∼1455)는 최기우의 희곡 「은행나무연가」(2012), 「교동 스캔들」(2013), 「은행나무꽃을 아시나요」(2014), 「은행나무꽃」(2014) 네 편의 희곡에 등장한다. ○완주향토예술문화회관: 삼례읍에 있는 196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경천면 화암사의 창건설화를 바탕으로 한 연극 <비밀의 꽃 ‘화암우화전’>, 용진면 출신 명창 권삼득의 이야기를 다룬 창극 <내 소리 받아 가거라>, 삼례면의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리연극 <삼례, 다시 봄!>, 이서면 앵곡마을을 배경으로 한 창작뮤지컬 <新 콩쥐팥쥐뎐>, 용진읍 봉서사에 부도가 있는 진묵대사를 소재로 한 연극 <천년을 뜨고 지면-진묵, 노닐다 간 자리> 등 완주군을 소재로 한 다양한 창작극이 무대에 오르며 군민의 자긍심을 높이고 있다. ○용진면 시천마을: 이병천은 소설 「저기 저 까마귀떼」를 통해 고향인 시천(詩川)마을의 1960년대 풍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입에 착착 달라붙는 전주·완주 사투리의 맛깔스러움은 덤이다. ○용진읍 원구억마을(권삼득 생가·묘역·소리굴): ‘비가비 명창’ 권삼득(1771∼1841)이 태어나고 묻힌 곳이다. 박경리(1927∼2008)의 대하소설 「토지」에 그의 일화가 전하며, 곽병창의 창극 「비가비 명창 권삼득」(1999)은 권삼득의 삶과 예인의 모습을 무대극으로 처음 선보인 작품이다. ○우석대학교 교정: 정양은 우석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면서 뜨거운 청춘들의 함성과 그 함성이 잦아든 시절을 차분하게 되짚는다. 시 「철쭉꽃밭」은 시인이 그리워하는 ‘녹두광장’ 시절을 서럽게 서럽게 담아내고 있다. ○운주면 삼거리마을: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의 배경지로, 마을 입구에 ‘선녀와 나무꾼’이라고 새겨진 표지석이 있다. ○위봉사: 안성덕의 시 「목어」에 마음에 품고 싶은 정결하고 단아한 위봉사 한 채가 있다. ○위봉폭포: 유강희의 시 「위봉폭포」는 떨어지는 것이 숙명인 폭포를 보며 인간의 삶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깨닫게 한다. ○이치전적지: 임진왜란 당시 전주와 호남을 지켜낸 대첩이 벌어진 곳이다. 김동진 역사소설 「임진무쌍 황진」을 읽으면 전라 향병들로만 호남을 지켜내며 더 치열했던 당시의 전투를 생생하게 마주할 수 있다. ○정여립공원: 정여립(1546∼1589)의 생가로 알려진 완주군 상관면 신리 월암마을에 2020년 들어섰다. 황정수의 「아! 정여립」(1999), 최기우의 희곡 「정으래비」(2006), 홍석영의 「소설 정여립」(2008), 서철원의 「별의 노래」(2023)는 ‘천하는 백성의 것’이라고 외쳤던 정여립과 대동계, 기축옥사를 소재로 했다. ○창암이삼만선생묘역: 조선 후기 3대 명필로 꼽히는 이삼만(1770∼1847)은 정읍 출신으로 전주에서 필명을 알렸으며, 만년을 완주에서 기거하며 일생을 풍미했다. 최기우의 희곡 「달릉개」에 그가 남긴 재미있는 사연이 있다. ○초남이성지: 한국 최초의 순교자인 복자 윤지충 바오로(1759∼1791)와 복자 권상연 야고보(1751∼1791), 신유박해 순교자인 복자 윤지헌 프란치스코(1764∼1801)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 서철원의 소설 「최후의 만찬」은 죽었으나 죽지 않았다는 역설을 우리에게 증명한다. ○콩쥐팥쥐마을: 가장 오래전 출판된 고전소설 「콩쥐팥쥐」의 첫머리가 ‘전라도 전주 서문 밖 30리’로 시작된 것을 근거로 완주군 이서면에 콩쥐팥쥐마을이 만들어졌다. ○화암사: 낡고 작고 허름하지만, 세월에 지치고 늙어가서 더 마음이 가는 절이다. 안도현이 시 「花巖寺, 내 사랑」과 수필 「잘 늙은 절, 화암사」에 담으면서 찾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임실군의 문학 명소 ○강진면 갈담리: 광주에서 순창을 거쳐 전주로 이어진 길목인 임실 갈담은 어머니 품처럼 포근한 곳이다. 고려 때부터 역참이 있던 곳. 박두규의 시 「고향-갈담」에서 그런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있다. ○국사봉 전망대: 첩첩한 산자락 너머로 생명 탄생의 첫 호흡 같은 일출을 만날 수 있다. 이희정의 시 「일출-국사봉에서」는 그 생명력을 확인시켜 준다. ○덕치초등학교: 김용택의 문학적 고향 중 한 곳으로 계절마다 새로운 시가 태어났다. 그 학교에 다닌 아이들의 말과 표정과 몸짓과 생각이 시인의 마음에 담겨 「선생님도 울었다」와 같은 한 편의 시가 된 것이다. ○사선대 임실문학비: 임실문인협회에서 세운 임실문학비는 임실 문학인들의 기세를 높이는 문학비이다. 최풍성의 시 「글 동산에 모여」가 새겨 있다. ○사선대 조각공원: 임실이 고향인 가수 최갑석(1938∼2004)의 노래 <38선의 봄>과 <고향에 찾아와도>의 노랫말을 새긴 노래비가 있다. ○섬진강: 강은 사람들의 핏줄이 되어 펄떡펄떡 살아서 흘러간다. 김도수의 수필 「우리 동네 아이스링크 뱃마당」에 강과 한 몸으로 사는 강 마을 사람들의 풍경이 가득하다. ○진뫼마을: 많은 시인이 힘들고 애환 어린 역사를 간직한 ‘저문 섬진강’을 노래했으며, 김용택의 시와 산문에 가장 풍성하다. 그의 삶터가 진뫼마을이다. ○섬진강길: 진뫼마을에서 천담마을에 이르는 섬진강길에는 김용택의 시를 새긴 시비가 여럿 있다. 섬진강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며 시를 읽으면 누구나 시인이 된다. ○섬진강댐 물문화관: 김용택의 시 「섬진강」, 박경리의 소설 「토지」, 최명희의 소설 「혼불」 등 섬진강 물길에 담긴 문학 작품을 소개하며 강에 얽힌 역사·문화·사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성수면 일원: ‘임실 2·26사건’은 성수면·신평면·삼계면·오수면 등에서 1948년 정월 대보름을 기점으로 일어난 조직적인 민중항쟁으로, 김진명의 장편소설 「섬진강 만월」에 치열하게 쓰여 있다. ○신전마을(신전공소): 장현우는 시집 『귀농일기』에 자신이 귀농한 관촌면 신전마을의 풍경과 자신의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렸다. ○오수역: 붉은 벽돌의 단아함과 고적함은 다양한 영화에서 배경으로 활용되었고, 시인들에게 매력적인 시의 영감을 주었다. 오경옥의 시 「오수역」을 통해 오수 사람들의 정을 만날 수 있다. ○오수의견공원: 오수면은 자신을 희생해 산불로부터 주인을 구한 개의 전설이 전하며, 고려 시대 출간된 『보한집』(1230)에 처음 실린 이후 지금까지 많은 독자를 만나고 있다. ○옥정호: 옥정호는 매일매일 하늘의 표정과 바람의 줄기를 새긴 시를 쓴다. 옥정호 곁에서 옥정호를 내려다보던 박성우는 그 표정을 시집 『자두나무 정류장』에 옮겨적었다. 그 풍경은 그 자체로 맑은 시다. ○요산공원(섬진강댐 망향의 탑): 수몰민의 서러움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요산공원 망향의 탑에 김춘자의 시 「사라진 흔적 가슴에 새기며」가 새겨 있다. ○운암강: 김여화(1954∼2023)의 장편소설 「운암강」은 섬진강댐 건설로 통째로 물에 잠겨야 했던 입석리 잿말(嶺村)마을을 배경으로 마을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숱한 사연을 풀어 놓는다. ○운암면 금시내: 옥정호에 수몰된 금시내는 역사와 추억이라는 수면 아래에서 고요하다. 이시연의 시집 『금시내 안 마을에 부는 바람」은 눈을 감아야 볼 수 있는 고향을 담고 있다. ○이웅재고가: 조선 중기 종가의 규범과 품위를 갖춘 고택으로,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배경지 중 한 곳이다. ○임실박사골마을: 임실 출신 학자이며 작가인 허세욱(1934∼2010)의 문학을 기리기 위해 2012년 우리문학기림회에서 박사마을에 그의 공적을 적은 문학비를 세웠다. ○임실성당: 벨기에 출신의 지정환(1931∼2019) 신부가 임실성당 사제관에서 산양유를 이용해 우리나라 최초의 치즈를 만든 곳이며, 이 이야기는 고동희·박선영의 평전 『치즈로 만든 무지개』(2007)에 자세히 담겼다. ○임실역: 가난한 시절 서울로 떠났던 청춘의 눈빛이 그리워지면 정우영의 시 「임실역」을 읽어야 한다. ○임실치즈역사문화관: 지정환(1931∼2019) 신부와 임실N치즈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으며, 더 상세한 이야기는 박선영의 『지정환 신부』에 있다. ○임실호국원: 국가를 위해 희생한 유공자들이 영면해 있으며, 매년 나라사랑문예창작 공모전에 출품된 작품들에서 호국영령에 대한 진심을 읽을 수 있다. ○장진영기념관: 영화배우 장진영(1972∼2009)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곳으로, 고인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 원작 소설인 김하인의 장편소설 「국화꽃 향기」(2000)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절골마을: 독립운동가 조희제(1873∼1939)의 고향인 덕치면 회문리 절골마을은 1895년부터 1918년까지 절개와 의리를 세운 선비와 애국지사들의 항일투쟁 기록을 모은『염재야록』을 집필하고 간직한 곳이다. ○조삼대(釣蔘臺): 운암강에는 낚시로 산삼을 낚아 어머니의 병을 고쳤다는 운암(雲巖) 이흥발(1600~1673)의 조삼대 설화를 기록한 비석이 있다. 이흥발은 시문집 『운암일고』를 남겼다. ○주암서원: 세종대왕 때 집현전 학사로 문화를 꽃피웠던 최덕지(1384∼1455)의 위패를 모셨으며, 그의 삶은 최기우의 희곡 「은행나무꽃」의 소재가 되었다. ○진뫼마을 사랑비: 임실 진뫼마을 앞 고추밭 가장자리에 시인 김도수가 세운 작은 비석으로, ‘월곡양반 월곡댁/ 손발톱 속에 낀 흙/ 마당에 뿌려져/ 일곱 자식 밟고 살았네’라고 새겨 있다. 사람들은 이 비석을 ‘사랑비’라고 부른다. 그 사연은 김도수의 수필집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에 절절하다. ○청계리 폐금광: 한국전쟁 때 주민 7백여 명이 군경에 무차별 학살당한 곳이며, 지연의 시 「십자수」, 정우영의 시 「노랑나비 한 마리」 등은 비극의 현장을 시에 담았다. ○필봉문화촌: 임실필봉농악은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에서 전승된 호남 좌도 농악의 대표적인 풍물굿으로, 문병란(1935∼2015)의 시 「꽹과리 소리 한평생」, 김용택의 시 「당신이 밟고 간 모든 길 위에 굿소리 들립니다」, 윤미숙의 동화 「소리공책의 비밀」, 최기우의 희곡 「웰컴투중벵이골_ 춤추는 상쇠」, 양진성·양옥경이 엮은 『임실필봉농악』 등에서 협화의 세상을 꿈꾸는 필봉농악의 세계와 푸진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회문산: 동학농민혁명과 구한말 항일투쟁의 근거지였다. 1948년 여순사건 이후에는 빨치산들이 마지막까지 투쟁했던 ‘저항의 산’이며, ‘피의 산’, ‘피난의 산’이다. 이태의 소설 「남부군」에 한 많은 역사가 있다. ※[전북의 문학 명소] 연재는 얘기보따리와 혼불기념사업회의 ‘전라북도 문학 명소를 찾아서Ⅰ: 남원시·완주군·임실군·순창군’ 사업으로, 최기우(극작가), 김근혜(동화작가), 문신(문학평론가)이 필자로 참여했습니다.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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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21 10:00

[전북의 문학 명소] 19. 가족이 함께 가면 좋을 문학 명소

△멋과 맛을 찾아 떠는 가족 여행 어릴 때 자주 헤엄을 치러 갔던 계곡은 물귀신이 발목을 잡아챈다는 시퍼런 물속을 겁도 없이 뛰어든 나의 어린 시절의 여름을 풍성하게 했다. 그날의 풍경과 감정을 찾아 지리산 뱀사골을 찾아가 본다. 뱀사골 계곡은 깊고 온전하다. 이곳에서 쓰러져 간 수많은 청춘의 피로 붉게 물든 산천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시치미를 떼고 있지만 실은 뱀사골 계곡 돌 틈 사이사이에 처연하고 슬픈 이야기가 숨어 있다. 때로는 돌돌돌, 때로는 조졸조졸 흐르는 소리는 죽어간 이들이 남긴 모스 신호이다.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가족과 함께 듣는 뜻 깊은 시간을 갖자. 복효근 시인의「환상적 탁족」을 읊는 것도 뱀사골을 즐기는 방법이다. ‘한여름 염천을 피해/ 지리산 뱀사골 계곡에 발을 담갔다’는 시인이 글과 함께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는 지리산 바래봉도 추천한다. 하늘이 아닌 땅에 물든 노을을 감상하는 것으로 한 해의 출발을 선언하는 건 어떨까. 호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순창 강천산은 김용택 시인이 그토록 보고 싶어서 하는 진달래나무와 때동나무, 산딸나무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산행이 힘든 가족은 조금 덜 힘들고 신나는 여행지를 추천한다. 예로부터 고추장으로 유명하한 순창장류박물관을 찾아가 보자. 강천산 단풍보다 진하고 갓난아기 볼처럼 윤기가 자르르 도는 고추장. 양병호 시인의 시 「순창 고추장」에 ‘매콤 쏘면서도 달콤하게 앵기는 알싸한 그 맛’이라는 문구를 읽으면 입안에 저절로 침이 고인다. 장류박물관은 고추장 만드는 체험도 있다. 자녀와 함께 체험을 하면 하나의 먹거리가 식탁에 올라오기까지의 과정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저절로 터득이 된다. 임실치즈역사문화관으로 가면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의 치즈 이야기와 치즈 만들기 체험을 동시에 할 수 있다. 수많은 실패를 거듭한 끝에 만들어진 임실치즈의 역사를 통해 꿈의 완성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빤한 명언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이곳에서 가족끼리 치즈를 만들며 서로를 더욱 유연한 태도로 바라봐도 좋다. 순창 오일장과 삼례시장도 가족과 함께 가면 좋다. 카트의 크기를 욕망하기보다 까맣게 그을린 시골 할머니가 건넨 시금치 한 다발에 깃든 자연의 수고로움을 욕망하자. 시장이란 공간은 생산자와 판매자 사이에 오가는 돈보다 정이 먼저인 곳이다. 덤과 에누리라는 밀고 당기는 행위 속에서 정이 싹튼다. 그 과정에서 설득과 이해, 소통을 저절로 배우게 된다. 사진작가 이흥재와 시인 김용택이 함께 낸 사진에세이집 『그리운 장날』처럼 순창 오일장을 배경으로 생생한 삶의 현장을 찍어보는 재미를 느끼는 것도 방법이다.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갔다가 꽈배기 튀김 하나에 행복했던 그 시절의 나와 우리가 그리우면 삼례시장도 좋다. ‘우리의 얼굴을’ ‘모두 다 만나’는 삼례시장이기 때문이다. △사랑을 찾아서 떠나는 가족 여행 섬진강을 끼고 삶을 꾸리는 마을은 부지기수다. 그중 진뫼마을은 시인의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시인이 많다. 그중 부모를 향한 지고지순한 사랑을 노래하는 김도수 시인이 있다. 시인의 자택과 가까운 곳에 흔하디흔한 고추밭이 있다. 그 밭 가장자리에 자그마한 돌비석은 이름하여 ‘사랑비’다. 사랑비 앞에는 ‘월곡양반 월곡댁/ 손발톱 속에 낀 흙/ 마당에 뿌려져/ 일곱 자식 밟고 살았네’ 라고 새겨졌고, 뒤에는 ‘어머니 아버지, 가난했지만 참으로 행복했습니다.’라고 쓰여 있다. 김도수 시인의 사모곡은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전라도닷컴·2015)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곳에 오면 사랑비에 적힌 문구를 소리 내어 읽어보자. 부모를 바라보는 자녀의 눈빛이 사뭇 달라짐을 느낄 것이다. 부부의 사랑을 더욱 단단하게 하고 싶다면 남원 최대의 사찰이었던 만복사로 가보자. 만복사를 배경으로 한 「만복사저포기」의 주인공 양생을 만나면 부부간의 신뢰가 쑥 올라간다. 사랑보다 더 깊은 믿음이 둘 사이를 단단하게 한다. 부부의 정을 더 깊게 느끼고 싶다면 남원 유천마을 김삼의당 시비가 있는 곳으로 가자. 김삼의당은 가난한 살림을 꾸리는 여염집 여인으로 남편과 아이들, 시집살이와 같은 일상 속 크고 작은 일들과 자연의 멋을 소재로 260여 편의 한시와 산문을 남겼다. 조선 시대 여인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김삼의당은 남편 하림과 가문의 사정과 글재주가 비슷해 천상배필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함께 시를 쓰고 문학을 이야기하는 부부의 애정도는 글로써 꽃 피운다.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춘 가족 여행 어린이가 있는 가족은 어디를 가든 좋다. 아이들 눈에는 매양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 것투성일 테니. 우선 동화 속 배경지로 가자. 「콩쥐팥쥐」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이서면 앵곡마을에는 담벼락이 그림책이다. 담벼락을 한 장 한 장 넘기다 보면 아이는 어느새 콩쥐의 사정에 가슴 졸이고 팥쥐 엄마와 팥쥐의 못된 행동에 주먹을 불끈 쥔다. 실제 콩쥐가 살았음 직한 마을에 오면 착하게 살면 복을 받고 나쁘게 살면 벌을 받는다는 교훈을 굳이 입 아프게 말하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배경지가 주는 힘이다. 어찌어찌 살아야 한다는 잔소리가 필요 없다. 현장이 곧 가르침이다. 오수의견공원도 어린이에게 문학의 힘을 보여주는 현장이다. 충실한 개가 주인을 살리기 위해 온몸에 물을 적셔 불을 끈 의견의 동상을 세워놓은 이곳에 오면 진정한 희생을 저절로 생각하게 된다. 작은 희생부터 큰 희생까지 타인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알찬 시간을 통해 책에서 얻는 지식보다 더 값진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동화 속에서 나와 이제는 슬렁슬렁 산책하기 좋은 완주 봉동 상장기공원으로 가자. 과거에 이곳은 장마철에 제방이 자주 무너져 인명피해가 컸다. 제방을 재정비하고 강물의 범람으로 죽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매해 당산제를 지낸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오래전 당산제에서는 씨름대회를 열어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올리는데 이때 아이부터 어른까지 참여연령이 다양했단다. 동학농민혁명 농민군을 소재로 한 최기우의 희곡 「들꽃상여」에 봉동의 소년장사 이복룡과 봉동씨름에 얽힌 여러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겼다. 씨름터는 봉동 상장기공원. 200년 전통이 살아 있는 봉동씨름의 현장이다. 당산제에 맞춰 이곳에 온다면 우리 전통 스포츠인 씨름에 관심도 두고 씨름대회에 참가해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면 더 없이 좋다. △강바람을 따라 떠나는 가족 여행 강을 따라가는 여행은 어떨까? 임실 옥정호를 따라 달리면 일상의 노고를 잠시 잊게 된다. 옥정호가 내려다보는 국사봉에 오르면 더 자세하고 깊은 감흥을 얻을 수 있다. 국사봉 전망대에 서면 산 중턱을 따라 물을 가둔 옥정호수도 만나고 붕어섬도 조우한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운암대교와 최근 만들어진 출렁다리 또한 볼거리다. 옥정호는 수몰지다. 저 호수 바닥에는 아직도 납작 엎드린 초가지붕과 땅따먹기, 자치기를 하며 놀았던 공터가 아이들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그리움은 붕어섬으로 남아 하늘에 작은 구름을 띄운다. 떠나간 이들을 그리는 붕어섬의 노래는 구름을 따라가서 비가 되고 눈이 되어 곳곳에 기별을 보낸다. 차를 세우고 시골 버스정류장에 앉아 박성우 시인의 「자두나무 정류장」을 읽어보자. 비가 오고 눈이 오고 달이 오고 별이 오는 그곳에서 시를 읽으면 버스를 타고 내리는 비와 눈과 달과 별을 만날 수 있을지 누가 아는가. 기별 없이 오는 것은 더없이 반가우니 말이다. 가지각색으로 오는 그것들을 맞이하러 가는 운암호 여행은 어느 곳에 발을 디뎌도 후회가 없다. 기별 없이 딛는 발은 모든 것에게 기쁨이며 환호를 선물한다. 이제 문학적 감성에 젖었으니 섬진강을 따라 달려보자. 열린 창으로 팔을 뻗어 환호성을 질러보자. 스트레스 푸는 방법은 특별하지 않다.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털어내면 된다. 강이 담고 있는 역사와 숱한 이들의 눈물 나는 이야기를 함께 하는 것만으로 가족은 공유할 게 많아져서 더 단단한 관계가 된다. 가족이 별거 있나. 함께 자고, 먹고, 한 공간에서 호흡하며 가끔 여행을 통해 조금 솟았던 불신의 담을 슬쩍 무너뜨리자. 그 담은 너무 허성해서 언제 무너졌는지 모를 만큼 무너져 사라지고 없다. 가족이 있다는 건 든든한 배경을 둔 것과 같다. 말없이 나를 지지해주는 가족과 함께 하는 문학 명소체험은 오늘의 우리를 내일의 우리로 건너게 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 주저 말고 문학 명소를 따라 다정한 대화를 나누어보자. /김근혜(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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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20 10:00

[전북의 문학 명소] 18. 중·고등학생이 가면 좋을 문학 명소

배워야 할 모든 것이 교과서에 있다는 다소 믿기 힘든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도는 학교를 떠나 정글로 뛰어든 청소년이 있다. 호기심에 철벽을 치고 무모한 도전에 발을 거는 어른들에게 사이다 급 일탈로 청춘의 피가 끓고 있음을 증명하고픈 청소년이 뛰어든 그 길에 문학이라는 치트키를 뿌리자. 남원, 순창, 임실, 완주 곳곳에 숨은 문학여행 길은 의미 있는 일탈로 이어지리라. △역사를 잊은 청소년을 위한 여행 청소년의 역사의식이 갈수록 부족해지는 이때, 지리산지구전적기념관과 지리산전적기념비는 역사의식을 깨우는 최적의 장소다. 지리산국립공원 뱀사골 계곡 입구에는 기념관과 기념비, 지리산충혼탑, 공적비 등이 나란히 서 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이병천이 쓴 소설 『사냥』을 읽고 가면 더 좋다. 한국전쟁이 지리산 자락에 남긴 핏빛 아지랑이. 그 아지랑이 사이를 걷다가 닮은 표정의 두 소년이 만난다. 그들은 70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서로에게 스며든다. 한국전쟁이 남긴 깊은 상흔은 대한민국 곳곳에 선명하다. 임실군 청웅면 남산리에 있는 청계리 폐광굴은 1951년 3월 14일부터 3월 16일까지 남산리 주민 700여 명이 학살된 현장이다. 한국전쟁 당시 군인과 경찰이 주민들을 굴속으로 몰아넣고 입구에서 불을 지핀 뒤 뛰쳐나오는 사람들을 향해 총을 쏜 뒤 시체를 굴 안으로 밀어 넣고 또다시 불을 지폈다. 빨치산을 처리한다는 명목으로 자행된 극악무도한 학살은 규명조차 되지 않은 채 현재에 이르렀다. 정우영 시인이 ‘흩어진 저 정령들, 어떻게 돌아가나/ 노랑나비 한 마리 너울너울 곡하며 내려앉네/ 삶이 꺼져버린 허공이 땅속으로 기어가네/’ 하며 서러운 이들의 넋을 달랬다. 그래서일까. 그곳에 가며 서늘하다 못해 섬뜩한 냉기가 흐른다. 역사의 다이얼을 좀 더 뒤로 돌려보자. 다이얼이 멈춘 그곳에 완주 상관 정여립공원이 있다. 정여립(1546∼1589)은 반상의 귀천과 남녀 차별이 없는 대동계를 조직하고 왕조 세습을 부인했던 혁신적인 사상가로 천하공물설(天下公物說)과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을 주장했다. ‘서로 오가는데 문턱이 없고, 대문이 있지만, 잠그지 않고 편안하게 사는 나라, 나는 그것을 대동의 세계라고 부르겠다.’라는 정여립의 음성을 똑똑히 전한 희곡「정으래비」는 기축옥사를 소재로 한 최기우 극작가의 희곡이다. 혁명적 사상가인 정여립과 당시 억울한 죽음이 남긴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현장을 작품 정면에 내세웠다. 문학은 정여립을 다시 세상에 불러냈고 어른이 보지 못한 후미지고 어둡고 피로 얼룩진 자리를 볼 줄 아는 청소년을 기어이 찾아 낼 것이다. 여기 그대들과 또래인 김주열 열사가 있다. 1960년 마산상업고등학교 1학년 학생으로 자유당 정권의 3·15부정선거 규탄대회에 참가했다가 행방불명된 후 27일 만에 마산 앞바다에서 시신으로 발견되면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그의 처참한 이야기를 극작가 노경식이 희곡에 담았다. 그의 희곡 「봄꿈(春夢)」은 4·19세대인 작가가 생생하게 체험했던 그 날의 일들을 극화됐다. 꽃도 피워보지 못한 어린 생명의 몸에서 나온 빠져나온 혼불이 희곡 속에서 나비가 되어 너울너울 춤을 춘다. △고전 속으로 풍덩 뛰어드는 여행 중, 고등학생에게 고전소설은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없다. 기어이 정답을 맞춰야 할 시험 문제이기 때문이다. 고전소설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다. 하지만 걱정 마시라. 고전문학의 성지 남원을 여행하다보면 고전문학의 맛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다. 전북에서 고전소설의 배경지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이 남원이다. 남원에 고전소설문학관이 있는 것도 그런 이유다. 문학관에는 변사또의 모진 고문을 견디며 이몽룡을 기다린 「춘향전」과 꿈속에서 만난 여인을 잊지 못하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살았던 「만복사저포기」의 양생, 중국·일본 등 동아시아를 넘나들며 아내를 찾은 「최척전」과 「홍도전」이 있다. 남원을 배경지로 한 고전소설을 한꺼번에 만나는 고전소설 백화점이다. 이곳에서 고전소설 워밍업을 했다면 그곳 세상을 생생하게 재현한 곳으로 가보자. 가장 먼저 춘향테마파크로 가자. 이곳은 춘향전을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장소로 춘향마당과 돌탑, 동헌·관아·내아·월매집·부용당·옥사정 등이 각각의 이야기로 관광객을 맞는다. 성춘향을 향한 이몽룡의 절절한 사랑이야기는 이제 막 사랑을 시작했거나 사랑이란 단어에 가슴이 짜르르해지는 청소년에게 가장 와 닿는 고전소설이지 싶다. 남원에는 춘향이만 있는 게 아니다. 흥부와 놀부도 이곳 출신이다. 남원 아영면 성리 상성마을은 「흥부전」의 흥부가 제비 다리를 고쳐준 뒤 부자가 되었다는 발복지(發福地)이고, 인월면 성산마을은 흥부가 태어났다는 마을이다. 「흥부전」에 나오는 지명이 그대로 재현된 이곳을 둘러보다 보면 저절로 판소리 한 소절 흥얼거리게 된다. 고전소설 「만복사저포기」는 남원에서 순창 가는 길목에 있는 만복사를 배경으로 한다. 꿈속에서 만난 여인을 잊지 못하고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사는 양생의 이야기는 부부의 사랑과 의리, 믿음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한다. 현재 만복사는 절은 사라지고 터만 남아 있다. 터에 이불처럼 덮인 푸른 잔디를 밝고 절터로 들어가면 커다란 석불입상이 있다. 양생에게 내기했던 부처님이었나 싶어 자세히 보게 되고 문득 내기를 걸고 싶어진다. 그럼 망설이지 말고 양생이 그랬듯 대차게 내기를 걸어보는 건 어떨까. 간절한 소원을 내기로 걸면 이루고 싶은 욕망이 더욱 커지리라. △강 따라 산 따라 문학 따라가는 여행 진안군 백운면 데미샘에서 시작된 섬진강은 지나는 곳마다 불리는 이름이 제각기 다르다.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이 강줄기에 대한 토박이들의 애정이 깃들어 있다는 뜻과 같다. 진뫼마을을 비롯해 덕치마을, 천담·구담 마을, 장구목, 일중마을, 구미마을, 평남마을로 이어지는 이곳은 검은색 바위들과 기이한 모습의 요강바위가 강 중간에 있어 섬진강 상류에서 가장 아름다운 경관과 천혜의 절경을 선물한다. 완주 구이에서 강진 방향으로 가는 운암교 끝에 있는 섬진강댐물문화관도 있다. 이곳에서 주목할 것은 물길 따라 보는 ‘섬진강 문학 산책’이다. 한쪽 벽면을 채운 스크린에서 김용택 시인의 「섬진강」, 최명희(1947~1998) 작가의 「혼불」, 박경리(1926~2008) 작가의 「토지」가 잔잔한 음악을 배경으로 소개된다. 문화관에는 그 외에도 다양한 문학 체험이 있으니 이곳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문학을 이야기하고 재미있는 놀이를 하다 보면 빡빡했던 삶에 여유가 생기리라 장담한다. 전주에서 남쪽으로 보면 옥정호를 가리면서 막아선 봉우리가 국사봉이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옥정호는 새로운 세계다. 해발 475m 정상에서 아래로 시선을 두면 산 중턱을 따라 물을 가둔 옥정호수와 호수 한가운데 놓인 붕어섬을 볼 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운암대교와 최근 만들어진 출렁다리는 국사봉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새로운 풍경이다. 이희정 시인의 시「일출-국사봉에서」의 표현처럼 옥동자의 붉은 이마 같은 일출을 맞이할 수 있다. △나를 올곧이 세우는 여행 혼불문학관은 17년간 한 작품을 쓰면서 ‘언어는 정신의 지문’, ‘어둠은 결코 빛보다 어둡지 않다’라는 어록과 ‘아름다운 세상 잘 살다 간다’라는 삶에 대한 긍정적 메시지를 남긴 최명희 작가의 작품 『혼불』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지금 어둠 속을 걷고 있다고 여기는 청소년에게 작가가 걸어온 길고 긴 혼불의 터널을 걸어보시라 권한다. 자신이 지금 통과하고 있는 터널이 삶의 과정임을 깨닫게 된다. 친구와 함께 남원김병종미술관도 좋다. 김병종 화가는 남원이 낳은 화가이며 극작가, 수필가로서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1,2층에서 그림을 감상한 뒤 3층에서 외부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가면 희곡으로 등단한 김병종의 작품 세계를 만날 수 있다. 그곳에서 진정한 예술가의 다양한 면을 살피며 인간에게 한계가 없음을 깨닫자. 지금으로부터 오백 년 전, 조선 시대에 뿌리박힌 차별과 편견 그리고 사회 부조리를 비판한 공포소설 「설공찬전」이 있다. 중종 때 쓰인 이 작품은 독자들에게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쳤으며, 소설의 대중화를 이룬 첫 작품으로 평가된다. 잘못이 있다고 힘주어 말하지 못했던 시대에 택할 수 있는 제일 나은 방법이었던 소설. 소설을 통해 시대를 비판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는 것을 청소년들 마음에 깊게 새겨지길 바란다. /김근혜(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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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14 10:00

[전북의 문학 명소] 17. 초등학생이 가면 좋을 문학 명소

어린이에게는 동심이 있다. 동심은 어린이다운 마음이다. 그 마음을 키우기 위해 남원, 순창, 임실, 완주로 떠나보자. 그곳에서 심장을 쫄깃쫄깃하게 하고, 눈물이 찔끔 나게 하는 신나고 감동적이고 이야기가 어린이를 기다리고 있다. △걸음으로 읽는 옛이야기 여행 엄마는 대개 가슴에 옛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중 엄마들이 가장 많이 들려주는 옛이야기는 「콩쥐팥쥐」가 아닐까 싶다. 콩쥐팥쥐는 이렇게 시작된다. “전주 서문 밖 30리에 사는 최만춘은….”. 이 구절을 근거로 완주군 이서면에 콩쥐팥쥐 마을이 조성됐다. 앵곡마을로 불리는 이곳에 가면 집집마다 담벼락을 따라 콩쥐팥쥐 이야기가 펼쳐진다. 종이 책이 아닌 발품 팔아 읽어야 하는 담벼락 책이다. 담벼락 책은 뛰어놀면서 읽는 장점이 있다. 담벼락 책이 끝나갈 무렵이면 아이는 어느새 콩쥐와 친구가 되고 팥쥐를 혼내주는 원님이 되어 권선징악이란 교훈을 자연스럽게 습득한다. 오수에도 어린이에게 감동과 재미,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있다. 개 오(獒), 나무 수(樹)를 쓰는 오수면의 지명이 말해주듯 이곳에는 주인을 구하기 위해 온몸에 물을 적셔서 불을 끄고 죽은 개 이야기가 전해온다. 충심을 다한 개 이야기는 어린이에게 생명의 소중함과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 일깨워준다. 순창 설공찬테마관에 어린이 손을 잡고 들러보자. 한적한 마을에 나붓이 내려앉은 테마관에는 조선 시대 선비인 채수의 소설 「설공찬전」의 모든 것이 있다. 죽은 공찬이 사촌동생 몸에 들어와 저승에서 보고 들은 일을 이야기하며 당시 조선의 사회, 정치 문제점을 꼬집고 비판했다. 소설을 들여다보면 시대적 배경도 알게 되니 역사 공부가 저절로 된다. △동화 속 마을을 찾아가는 여행 일제강점기 때 삼례는 한내로 불렸다. 큰 강이라는 뜻이다. 지금의 삼례문화예술촌은 오래전 한내습지가 있던 자리다. 이곳에 양곡창고가 만들어지면서 사라졌다. 더불어 여기에 살던 맹꽁이와 금개구리도 사라졌다. 그 시절, 꽃잎처럼 연약하고 순했던 자연물과 인간의 이야기를 그림책에 자연스럽게 녹여낸 동화가 있다. 바로 유수경 작가의 『한내천에 돌아온 맹꽁이와 금개구리』이다. 이 작품은 삼례예술문화촌에서 뮤지컬로 각색돼 공연되면서 어린이 관객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삼례문화예술촌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역사의 쓸모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한다. 가까운 곳에 그림책미술관도 있다. 양곡창고를 개조해 만든 그림책미술관은 아담한 크기에 알차게 꾸민 내부가 특징이다. 1층은 벽면을 따라 기획전시가 이루어지고 중앙 홀은 공연 또는 놀이의 장이다. 1층에서 2층까지 이어진 계단은 계단참이 넓어서 엎드려 책을 보거나 딱지치기, 엄지 꺾기 같은 간단한 놀이를 하기에 좋다. 놀다 지치면 2층에 있는 <빅토리아 시대 그림책 3대 거장전>도 보고 박물관 곳곳에 설치된 동화 속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어도 된다. 이제 건물이 아닌 자연 속 동화의 세계로 떠나보자. 완주군 동상면 밤티마을은 토끼와 발 맞춤하는 깊은 산골이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이 마을을 배경으로 유수경 동화작가는 『하늘아래 첫 동네 밤티』동화를 썼다. 주인공 채연이가 숲속을 헤매다가 만난 여러 동물의 입을 통해 인간의 잔인함과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이야기다. 책을 읽고 밤티마을을 직접 찾아가면 독서가 두 배로 즐겁다. 자연과 인간의 공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만경강의 발원지 밤샘도 만나 수 있다. 인간의 삶에 없어서는 안 될 물. 내가 사는 땅을 풍성하게 하는 강의 참의미를 발견하는 뜻밖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우리 것이 좋은 여행 남원에는 몽심재라는 고택이 있다. 조선 숙종 26년(1700)에 박연당(1753∼1830)이 지은 이곳이 김양오의 동화 『꿈과 마음이 담긴 집 몽심재』(빈빈책방·2022)에서 다시 주목받고 있다. 필요한 사람이 언제든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열려있는 쌀 창고, 힘들게 일하는 하인들이 쉬도록 만든 정자와 같이 양반이든 천민이든 집에 사는 사람 모두 평등하게 서로를 배려하는 박연당의 마음이 책에 잘 나타나 있다. 최명희 소설『혼불』의 배경인 매안 이씨 종갓집 이웅재고가도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공간이다. 시간이 된다면 남도의 양반집에서 ‘에헴’ 하며 뒷짐 지고 걸어보기도 하고 ‘예, 나으리.’ 하며 허리 굽실거려 종살이 신분의 서러움도 경험하게 하자. 세상의 모든 차별에 관심을 두는 어른으로 성장하리라 믿는다. △한바탕 신명 나게 노는 얼씨구 여행 남원 광한루원에 가면 누구든 춘향과 이도령이 될 수 있다. 어린이라고 안 되는 게 아니다. 어린이도 사랑의 힘을 알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주신 사랑부터 이성 간의 사랑까지. 직간접적 경험으로 사랑은 정말 힘이 센 여리면서도 강한 마음이라는 걸 안다. 이곳에서 「춘향전」의 사랑가 한 대목을 불러보는 경연대회를 열어도 좋다. 멍석만 깔아주면 숨겨둔 끼를 맘껏 보여줄 어린이들이 수두룩하다. 놀다 보면 배가 고프기 마련. 이제 임실치즈역사관으로 떠나보자. 어린이 입맛을 유혹하는 치즈를 생산, 판매, 체험하는 임실치즈테마파크에는 지정환(1931∼2019) 신부와 임실N치즈의 역사를 담은 임실치즈역사문화관이 있다. 푸른 눈의 신부가 만든 치즈에 깃든 이야기를 통해 어린이 스스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굵직한 질문을 던지게 하자. 이제 덩실덩실 어깨춤이 절로 나오는 임실필봉문화촌에 가보자. 이곳은 30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호남 좌도 농악의 대표적인 풍물굿필봉농악을 전수하고 공연하는 공간이다. 임실필봉농악을 소재로 한 윤미숙의 장편동화 『소리공책의 비밀』(대교·2009)을 읽고 찾아가면 농악에 스민 농민들의 시름과 수확의 기쁨을 자연스레 느끼게 된다. /김근혜(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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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13 10:00

[전북의 문학 명소] 16. 연인과 함께 가면 좋을 문학 명소

연인과 함께하는 여행에 계절과 장소가 무슨 상관이 있을까. 봄이면 봄이라서 여름은 더위를 피해, 가을은 원숙한 사랑을 위해, 겨울에는 뜨거운 커피 한잔에 다가올 내일을 약속한다는 핑계로 어디든 떠나보자. 둘 사이에 문학이 슬며시 끼어든다면 더 좋을 여행이다. 남원, 정읍, 임실. 완주군 곳곳에 둘만의 사랑을 더욱 굳건히 할 문학 명소를 소개하려 한다. △사랑 이야기로 더욱 애틋한 여행 고전소설 「춘향전」은 남원을 배경으로 한 이도령과 춘향의 달달 구리한 사랑이야기이다. 우리나라 로맨스소설의 효시라고 할 수 있다. 춘향과 이도령처럼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다면 남원춘향테마파크를 소개한다. 테마파크 내부를 걸으면 곳곳에 설치된 조형물을 통해 「춘향전」의 내용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춘향과 이몽룡이 사랑을 나누던 부용당 앞에서는 괜스레 얼굴이 붉어진다. 손을 넣으면 노래가 나오는 사랑의 탑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굳건한 사랑을 맹세하게 된다. 손을 잡고 사부작사부작 걷다 보면 김소월의 시 「춘향과 이도령」, 김영랑의 시 「춘향」, 복효근의 시 「춘향의 노래」를 만날 수 있다. 시 한 편 한 편에 사랑하는 이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한 층 한 층 커지리라. 사소한 일로 다퉜다면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도 좋다. 웃음을 잃어버린 연인에게 아기처럼 밝고 환한 웃음을 선물할 기회다. 종이 한 장에 꽉 들어찬 꽃송이 하나가 불편한 감정을 일순간 사라지게 한다. 어느 새 손을 맞잡고 꽃밭을 걷고 있는 서로를 만나게 된다. 화가이면서 작가인 김병종의 『화첩기행』 연작을 읽고 미술관을 나서면 그림마다 자연스레 스민 그의 깊은 사유가 담긴 문장도 함께 떠오르며 가슴이 벅차오른다. 쉼이 필요한 연인이라면 (구)서도역 영화촬영장을 권한다. (구)서도역 영상촬영장은 최명희의 소설 「혼불」의 배경지다. 이제 기차가 서지 않는 폐역을 배경으로 영화 같은 장면을 연출해보자. 역할 놀이가 시들해질 때쯤이면 양쪽 선로에 나란히 서서 균형을 맞춰 걸어보자. 한쪽으로 기울었던 관계가 조금씩 평형을 이루면서 사랑이 더욱 안정되어간다. 꽃터널이 만든 그늘에서 말없이 쉬는 것도 좋다. 진짜 사랑은 말하지 않았을 때 더욱 깊어지는 법. 시간이 된다면 지척에 있는 「혼불문학관」에 들러 소설 속 서도역을 살펴보자. 역을 통해 들어오고 떠난 이의 삶을 통해 만남과 이별이 주는 삶의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그때가 내 옆 사람이 더욱 소중해지는 순간이다. △데이트하기 좋은 삼례 여행 완주군 삼례는 데이트하기 좋은 장소가 정말 많다. 먼저 고풍스러운 느낌의 삼례예술촌은 일제가 삼례를 수탈의 거점으로 삼기 위해 지은 양곡 창고를 개조한 문화공간이다. 외형은 그대로 두고 내부만 목적에 맞게 현대적으로 개조한 덕분에 일제강점기 수탈의 현장을 마주할 수 있다. 이곳에는 입구에 놓인 맹꽁이 조형물을 시작으로 4개의 전시관과 다목적관, 커피를 판매하는 카페로스터리, 실내와 야외공연장을 만날 수 있다. 유수경의 동화 「한내천에 돌아온 맹꽁이와 금개구리」는 이곳 삼례가 한내로 불릴 때 겪었던 아픈 역사를 담은 동화다. 짬을 내어 나란히 벤치에 앉아 그림책을 읽으면 삼례 여행의 첫발을 제대로 디뎠다 할 수 있다. 삼례문화예술촌을 나와 (구)삼례역으로 걸으면 대각선 방향으로 삼례책마을문화센터가 보인다. 이곳은 10만여 권의 헌책을 보유한 전국 최대 규모의 헌책방이다. 빽빽하게 꽂힌 헌책 사이를 걸으며 책등을 쓸어 보아도 좋다. 연인에게 세상의 온갖 아름다운 언어를 귓속말로 들려주고 싶은 충동이 저절로 느껴진다. 자신만의 내밀한 언어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고 확신을 주는 순간이다. 걸음을 더 옮겨 비비정으로 날 듯 가보자. 비비정은 완주 8경 중 하나로 전주천과 삼천이 합류하여 들어오고, 고산천과 소양천이 한 몸이 되어 만경강으로 흘러가는 지점이다. 김은숙 시인의 「비비정에 달 뜨거든」에서 수천수만의 은빛 가루 날리며/ 중천으로 솟은 달이/ 물속으로 뛰어내린다는 비비정에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연인에게 노래 한 곡을 선물하고 싶어진다. 이곳에서 서로의 가슴속에 달을 품고 등을 맞대고 서보자. 등에서 뿌리가 돋아 서로가 하나로 이어지는 놀라운 판타지를 경험하게 될지 누가 아는가. △사랑의 언어로 가득한 섬진강 여행 ‘두꺼비 섬(蟾)’자를 붙인 섬진강은 시의 강이다. 시인 김용택의 시 「섬진강」 연작도 그러하거니와 수많은 문학 작품이 섬진강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진안에서 발원하여 임실, 순창, 남원, 곡성, 구례, 하동을 지나 남해로 흘러가기에 섬진강은 남도의 심성을 닮았다. 남도의 역사와 사람들 그리고 그 속에서 구불거리던 핏빛 처연한 아픔을 담은 강. 「섬진강3」의 “물 앞에 목말라 물 그리며/ 서러웠고 기뻤고 행복했고/ 사랑에 두 어깨 깊이 울먹였으니/ 그대 이제 물 깊이 그리움 심었으리.”을 낭송하노라면 기쁘고 행복했던 둘 만의 사랑이 섬진강 물줄기처럼 더욱 힘찰 거라 장담한다. 옥정호에 세워진 섬진강물문화관에는 김용택의 시『섬진강』을 비롯해 최명희의 소설 『혼불』과 박경리의 『토지』를 한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섬진강이 이토록 많은 이야기를 담은 강이었나 싶은 순간, 찰랑거리는 섬진강에 발을 적시며 어깨를 기대고 있는 서로를 발견하게 된다. 주고받는 눈빛만큼이나 빛나는 윤슬에 마음을 뺏길지도 모르니 조심하시라. 옥정호가 보이는 시골 버스 정류장 벤치에 나란히 앉아서 박성우 시인의 「자두나무 정류장」을 소리 내어 읽어보아도 좋다. 무엇하나 버릴 것 없는 따뜻하고 다정하고 온전한 두 사람만의 시는 그렇게 탄생한다. 진실하고 특별한 관계일수록 틈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서로를 향한 간절함이 커진다. 서로에게 틈을 허락하자. 그것은 곧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마음이다. 그 틈으로 소살소살 사랑의 시와 이야기가 흘러가도록 하자. /김근혜(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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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07 10:00

[전북의 문학 명소] 15. 풍경으로 물들어가는 사람과 문학

△세월도 그리움으로 잠깐씩 정차했다가 떠나는 곳, 간이역 전라선 구간은 익산에서 여수까지다. 이 사이에 수십 개의 역이 놓여 있고, 역마다 어딘가로 떠나고 또 돌아오는 사람들로 북적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규모가 작은 역들이 하나둘 폐쇄되었다. 마찬가지로 간이역마다 들렀던 비둘기호와 통일호의 운행도 끝났다. 한 시절이 막을 내렸다는 뜻이다. 느림의 미학이 사라지고 속도가 철길을 지배하게 되면서, 역에서 만들어졌던 추억도 희미해졌다. 그 시절 기다림과 설렘으로 아름다웠던 대합실 풍경이 흑백사진처럼 시대의 앨범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완주의 삼례역에서는 어쩐지 상행선이 기다려진다. 갑오년 동학농민군의 발길이 향했던 것처럼, 삼례역에는 언제나 서울을 향해 눈 부릅뜬 사람의 표정이 숨어 있다. 가난했던 시절, 앳된 소년과 소녀들이 작은 보퉁이를 끼고 무작정 상경했던 곳. 까만 눈을 크게 두리번거리며 서울역에서 내려 구로공단으로 스며들었던 사람들이 이제는 손등 까만 노년이 되어 돌아올 것만 같다. 삼례역에서 뿡뿡 기적을 울리는 기차를 이렇게 묘사한 적 있다. “단 한 번도 탈선해보지 못했으므로 기차는 저렇게 서서 우는 것이다”라고. 그러니 삼례역에 가면 우리 앞에 놓인 운명으로부터 멋진 탈주를 꿈꾸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삼례역에서 하행 기차를 타면 전주를 거쳐 이내 임실역에 닿는다. 임실역이 궁금하다면 임실 출신 정우영 시인의 시를 읽어보라. “끝내 떨치지 못할 그리움이 개똥범벅된 침목처럼 나직나직 가라앉아서 그늘 파인 가슴속 깊숙이 갇혀 있다가도, 가끔씩 산굽이를 돌아오는 기적 소리에 헛험헛험 초첨 잃은 기침을 뱉으며 허리를 곧추세우는 곳”이라고 한 시인의 말처럼, 임실역은 임실 사람들 가슴속에 들어있다. 그래서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이 되면 임실 사람들은 저절로 밭은기침을 한다. 그게 임실역과 함께 살아온 임실 사람들의 그리움이다. 임실역에서 좀 더 내려가면 오수역이다. 오수역은 전라선 선로 개량공사와 더불어 새로운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가슴에는 옛 오수역에 기차가 정차한다. 가을이면 역 마당에 선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노랗게 하늘을 떠받들고 있던 곳. 붉은 벽돌로 지은 역사와 더불어 가을을 다투던 은행나무 그늘에서 기차를 기다리면 오래전 헤어졌던 연인이 어느새 옆에 서 있을 것만 같다. 오경옥 시인이 시 「오수역」에 쓴 것처럼, 오수역에는 “전라선 무궁화호 완행열차가 기적을 울리면/ 하늘거리며 작아지는 얼굴들이” 활짝 웃으며 개찰구를 빠져나올 것만 같다. 구 서도역은 남원역에 닿기 전에 있지만, 지금은 선로가 바뀌어 기차가 지나가지 않는다. 그래도 옛 역사와 선로가 남아 있어서 그 시절을 추억하게 만든다. 이곳은 최명희의 소설 혼불에 나오는 강모가 만주행 기차를 탔던 곳이다. 소설에서 “우리 마을 저 앞 서도역(書道驛)에 서는 기차를 보아라. 제아무리 그 형체를 거대하고 공교하게 만든다고 해도, 기계는 수(水) · 화(火)가 없으면 못 움직이는 것이다.”라고 하여 근대의 상징물인 기차에 관한 당대 사람들의 인식을 보여준다. 서도역은 2018년에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을 촬영했던 곳이기도 하다. 구동매(유연석 분)가 아씨 고애신(김태리 분)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서도역은 드라마틱하게 나타났다. △인생이 궁금하다면 우선 길 위에 서 보라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이 있다면 그건 단연코 길일 것이다. 움직이는 순간 길은 만들어진다. 그래서 길은 삶과 같다. 인간이 태어나 첫걸음을 떼기 시작하면서 길은 시작하고,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되면 그의 길도 사라진다. 철학자들이 길과 인생을 비유하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길이 다 걷고 싶은 건 아니다.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우리는 가고 싶은 길이 있다. 그럴 때 그 길은 평탄하지 않아도 좋다. 섬진강길은 문학적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 길이다. 완만하게 굽이치며 흘러가는 맑은 섬진강을 따라 길이 놓여 있고, 그 길가에 시를 새긴 돌이 서 있다. 김용택 시인의 생가에서 천천히 길을 잡고 나서면 섬진강 강물도 보폭을 늦춘다. 그리고는 시비 앞에 이르러 마치 시 구절을 읊듯 찰방거리며 소살거리며 흐른다. “아름다운 사랑 짊어졌으리”라고 한 김용택 시인의 시 구절처럼 섬진강길은 아름다운 인생을 등에 지고 오늘도 성큼성큼 걸어간다. 어쩌면 그 길은 시인의 길이면서 시의 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밤이 되면 섬진강길 위로 그리고 길옆 시비 위로 별이 내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별이 내리는 길은 또 있다. 남원에서 나선 길이 정령치에 다다르면, 길은 인간의 가장 높은 시선에 자리한다. 정령치에 오르면 지리산 능선이 이마 높이에서 빛난다. 마치 공중에 그어진 누군가의 눈썹처럼, 지리산 능선은 아름답다. 그래서 정령치휴게소에는 이원규 시인의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거든」을 새긴 시비가 세워져 있다.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라고 한 것처럼, 정령치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은 언제나 새롭다. 정령치에 오르는 길도 계절마다 첫 마음처럼 낯설다. 완주군 소양면과 동상면 경계에는 연석산이 있다. 연석산을 오르는 등산로에는 이곳 출신 배학기 시인의 시 「그리운 연석산」을 돌에 새겨 놓았다. “그리움 애써 숨기며/ 기다리던 나의 어머니”라고 한 것처럼, 연석산은 사람들에게 어머니 품처럼 넉넉하고 따뜻하다. 그래서 연석산 등산로에 서면 저절로 가슴이 부푼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으로,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그리움으로. 연석산이라는 이름은 이 산에 연석, 즉 벼룻돌이 많이 나서다. 그래서 등산로를 걷는 발길이 마치 커다란 벼루를 가는 먹의 움직임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당장 가까운 마을로 가자 길은 길목마다 낮게 엎드린 사람의 마을을 품는다. 마을에는 사람이 있고, 사람은 사람을 그리워한다. 그래서 길을 걷다가 사람이 그리워지면 발길은 저절로 마을에 닿는다. 마을에는 이야기가 있고, 이야기마다 사람살이의 비밀이 담겨 있다. 문학은 그런 비밀을 하나씩 세상을 향해 꺼내놓는다. 그러므로 문학은 사람의 마을에서 태어나고, 사람의 비밀을 품는다. 문학의 향기가 물씬 묻어나는 마을 가운데 하나가 절골마을이다.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 절골(寺洞)은 대한제국 말의 학자이며 순국지사인 조희제(1873∼1939)의 삶터였다. 그는 이곳에서 염재야록을 집필했다. 염재야록은 1895년부터 1919년까지 절의(節義)를 세운 의열선비와 의병들의 실적과 문헌을 수집해 편찬한 책이다. “나라가 망한 날에 이르러 절개와 의리를 지킨 행적이 가장 왕성하게 펼쳐진 지역으로는 호남을 으뜸으로 칭하며”라고 하여 호남 선비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마음을 바로 세우고 단정한 삶이 그리워진다면 절골마을을 추천한다. 남원에는 두 개의 흥부마을이 있다. 아영면 성리 상성마을은 제비다리를 고쳐준 흥부가 복을 받았다는 곳이고, 인월면 성산리 성산마을은 「흥부전」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마을이다. 성산마을에 살던 흥부가 놀부에게 쫓겨나 상성마을로 간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흥부와 놀부 이야기는 다들 알고 있다. 극작가 최기우는 “형님, 형수님, 우리 저 박 두 개를 마을 정자나무에 매달아 놓읍시다. 착하게 살믄 복을 받고, 흉허게 살믄 벌을 받는 것을 사람들이 모두 알게 합시다.”라고 희곡 「시르렁 실겅 당기여라 톱질이야」에 썼다. 그런 점에서 흥부마을은 착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세상의 이치가 완성된 곳이다. 완주군 이서면 앵곡마을은 고전소설 콩쥐팥쥐전의 배경 마을로 알려져 있다. 고전소설이 핵심 주제로 다루는 권선징악 이야기로 서양의 신데렐라 이야기와 구조가 유사하다. 계모와 팥쥐에게 구박을 받던 콩쥐는 원님의 생일잔치에 못 가고 힘들게 일만 한다. 여기까지가 동화 형식으로 알려진 내용이다. 뒷이야기는 참혹하고 잔인해서 이야기되지 않는다. 우여곡절 끝에 콩쥐는 원님과 혼인하지만, 이를 질투한 팥쥐가 콩쥐를 연못에 빠뜨려 죽인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마무리될까? 궁금하다면 앵곡마을에 가서 한 번 알아봐도 좋겠다. 완주군 동상면 밤티마을은 우리나라 8대 오지 가운데 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밤나무가 많아 율치로 불리며, 만경강이 발원하는 밤샘이 있는 곳이다. 동화작가 유수경은 밤티마을을 공간 배경으로 하늘 아래 첫 동네 밤티를 썼다. 인간과 자연이 경계 없이 서로 소통하는 이야기다. 주인공 채연이와 길고양이 새벽이는 비 오는 어느 아침, 밭일을 가신 부모님을 찾아 산밭에 갔다가 두더지를 만난다. 두더지 동굴에 굴러떨어진 채연이와 새벽이는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 되는 공간에서 모험을 시작한다. 과연 이들 앞에 얼마나 신나는 모험이 펼쳐져 있을지 궁금하지 않은가? 임실군 진뫼 마을은 시인의 마을이다. 섬진강이 돌아나가는 이곳은 자연 자체가 한 편의 시처럼 아름답다. 그래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시인이다. 이곳에 김용택 시인의 생가가 있고, 김용택 시인의 시가 있으며, 김용택 시인이 있다. 그뿐인가? 김도수 시인이 있고, 김도수 시인의 시가 있고, 김도수 시인의 집이 있다. 그야말로 마을 전체가 시이면서 시집인 곳이다. 그래서 진뫼 마을에서 한나절 뒹굴다가 나오면 시집 한 권을 통째로 다 읽은 기분이 든다. 봄꽃 피는 날에도, 가을 햇살 내리는 날에도, 한겨울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에도, 여름날 섬진강이 서늘하게 흘러가는 날에도, 진뫼 마을은 이 땅에 새겨진 가장 아름다운 시처럼 그곳에 그대로 있다. 그 풍경들을 이제 더 사랑하기로 하자. /문신(문학평론가, 우석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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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1.06 10:00

[전북의 문학 명소] 14. 우리 마음 닿는 곳마다 문학이 있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단 하나의 힘, 사랑 세상을 이루는 건 자연이고, 그 자연에 가치를 부여하는 건 인간이다. 그리고 인간이 부여한 자연의 가장 위대한 가치는 예술이다. 문학을 포함한 모든 예술은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게 하는 가장 강력한 힘이 된다. 그리고 인간이 자연을 마주할 때 느끼는 미묘한 감정을 사랑이라는 말로 부른다. 그러니까 사랑은 어떤 것에 부여하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가치이자, 인간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감정이다. 이것이 사랑에 빠진 사람이 예술적 감성으로 충만해지는 이유다. 그래서 사랑하고 있는 동안에는 자주 자기를 벗어나 바깥으로 나가게 된다. 그 첫 번째 여정을 초남이 성지로 삼아보면 어떨까? 완만한 능선이 우리의 눈높이에서 부드럽게 물결치고, 숱한 발걸음이 다져놓은 길을 따라 걸어가면 인간의 위대한 사랑이 나타난다. 그곳에서 인간의 사랑이 신의 부름 앞에 순교했다는 건 잘 알려져 있다. 소설가 서철원은 최후의 만찬에서 그 높고 숭고한 사랑을 이야기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그림자를 나란히 하면서 초남이 성지를 걷다 보면, 사랑이라는 감정이 다른 사람을 신처럼 받들어 모시는 것이란 걸 알게 된다. 초남이 성지에서 성스러운 사랑을 보았다면, 남원 광한루원에서는 주체할 수 없는 연정을 만나게 된다. 판소리 <춘향가>에서 춘향과 이몽룡의 첫 만남이 이루어진 그네에 오르면, 벅차게 솟구치는 사랑의 감정을 알 수 있다. 그 마음으로 사랑하는 사람과 다정하게 손을 잡고 광한루원을 걸어보라. 그러면 앞서 걷는 그림자까지도 서로 다정해질 것이다. 그러다가 늘어진 버드나무 그늘에서 서로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면, 거기 당신이 보일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에 담겨 있는 당신보다 더 아름다운 세계가 또 있을까? 그 투명한 모습으로 혼불문학관을 찾아가는 길에서 우리는 전 10권에 달하는 소설 혼불의 책갈피를 한 장 한 장 넘기는 기분과 만난다. 수백 년의 시간이 묵묵하게 다져진 길과 무수한 사람들의 눈길이 더듬었을 언덕과 산자락이 마치 누대를 이어온 종가의 모습이다. 그곳에서 살았던 연인들의 애끓는 사랑이 한 줄기 바람처럼 스쳐 간다면, 그 바람 끝자락에 서 있을 강모를 떠올려보아도 좋을 것이다. 혼불문학관에 오르면 신분도, 윤리도, 몽둥이도, 시대도, 사상도… 그 어느 것으로도 막을 수 없는 게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라는 걸 절실히 알게 된다. △ ‘나’라는 별이 밤하늘에 반짝이는 방식, 외로움 철학자 하이데거는 인간을 어느 날 세상에 툭 던져진 존재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인간은 본질에서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인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있어도 문득 외로움이 찾아오기도 한다. 그럴 때 혼자 훌쩍 길을 나서게 된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길은 외로운 걸음이 만든다. 길은 외로움처럼 세상 곳곳으로 이어져 있고, 그래서 끝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럴 때 한 편의 시가, 한 권의 소설이 외로운 길을 말 없이 함께 걸어주는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다. 시인 안도현은 외로운 날에 완주 화암사에 간 모양이다. 그는 시 「화암사, 내 사랑」에서 화암사를 두고 “잘 늙은 절 한 채”라고 표현하였다. 실제로 화암사는 그렇게 보인다. 그래서 그곳에서는 외로워할 이유가 사라진다. 늙는다는 건 외로움이 끝난다는 뜻이니까. 외로움쯤이야 세상의 먼지처럼 인생에서 만나는 사소한 일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그걸 아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고, 외로움의 궁극에 서 있는 자기를 발견해야 한다. 그러기에는 화암사가 제격이다. 세상 가장 깊은 자리에서 외로운 사람을 불러들이는 화암사. 그러니 화암사에서 발길을 돌려나오는 사람의 표정에서 잘 늙은 삶의 한 단면을 읽어낼 수 있다. 남원 실상사도 혼자 찾아가기 좋다. 아니, 혼자 찾아가야 하는 절이다. 그래야 도종환 시인이 말한 것처럼, 우리의 ‘진여실상’을 만날 수 있으니까. 고즈넉한 실상사 마당에 서 있으면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된 듯하다. 외로움이란 그렇듯 자기중심이 강하게 발현되는 현상이다. 그래서 외로움이 너무 깊어지지 않도록 실상사 입구에는 장승이 서로를 마주하고 서 있다. 우리 사는 세상은 혼자가 아니라는 걸 그렇게 알려준다. 그러므로 외로움을 혼자 견디지 말자. 누군가 우리를 먼발치에서 지켜보고 있으니까, 아주 다정하고 따스한 눈길로. 남원의 옛 서도역도 혼자 찾아가기 좋은 문학 명소다. 억새가 흐드러진 가을 오후라면, 그곳에 혼자 있어도 결코 혼자가 아닌 기분이 든다. 외로운 기분으로 찾아갔다가 더는 외롭지 않게 되는 곳이다. 남아 있는 철길이 두 갈래라서 그렇다. 한쪽 선로에 올라 두 팔을 펼치고 균형을 잡고 걸으면, 저쪽 선로에서도 누군가 나란히 두 팔을 펼치고 서 있을 것 같다. 그러다가 느닷없이 손끝과 손끝이 스치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것을 두고 인연이라고 해도 좋고, 운명이라고 해도 좋다. 외로움은 인연과 운명 앞에서 조금 작아질 것 같다. 순창 남계리 석장승보다 외로운 사람이 있을까? 장교철 시인은 시 「석장승 남계리」에서 석장승의 외로움을 “별이 떨어진 그 자리”라고 적었다. 그렇다. 우리가 외로움을 느끼는 건, 우리 마음에 언젠가 떨어져 내렸던 별이 있어서다. 그래서 그 별이 반짝거릴 때마다 우리는 문득 외로움을 느낀다. 그러나 석장승보다 더 외로운 사람은 없다. 그래서 가끔 우리 외로워질 때마다 남계리 석장승 옆에 서주어야 한다. 서로가 조금은 덜 외로울 수 있도록. △누군가 점점 다가오는 순간, 설렘 사랑과 외로움은 그 시작과 끝에서 언제나 설레는 감정과 연결된다. 설레는 순간 세상은 새롭게 발견되고, 설레는 순간 나는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다. 이 새로운 순간이 모든 예술과 문학의 근원이 된다고 오랫동안 우리는 말해왔다. 삶에 설렘이 없다면 우리의 심장은 얼마나 심심할까? 낯선 여행길에서 만난 낯선 사람 앞에서 마음껏 설레보자. 그 자리에 시집 한 권쯤 동행한다면 설렘이 더 크게 박동하지 않을까? 설레고 싶다면 임실 섬진강길을 걸어보라. 맑은 물살을 옆구리에 끼고 물의 속도보다 조금 느리게 걸으면 마음 어딘가에서도 소살거리며 흘러가는 게 있을 것이다. 그 길에서 사랑에 관한 시를 만난다면 더욱 기쁘지 않을까? 섬진강길에 서 있는 김용택 시인의 시비 앞에서 천천히 시를 읽으면, 나무도 풀도 구름도 햇살도 모두가 설레어 환해지는 걸 느끼게 된다. 그럴 때 옆에 나란히 선 사람을 마주 보아라. 세상이 온통 설레게 될 것이다. 장진영기념관 영화배우 장진영(1972∼2009)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임실에서 태어난 장진영은 전주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녔다. 1997년 KBS 드라마 《내 안의 천사》에 출연하며 배우로 데뷔했고,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으로 대한민국영화대상 여우주연상을 받았으나, 2008년 9월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가 이듬해 향년 37세로 세상을 떠났다. 장진영기념관은 고인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 원작 소설인 김하인의 장편소설 국화꽃 향기를 읽고 가보면 좋은 곳이다. 남원의 만복사지도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곳이다. 만복사지는 김시습이 지은 금오신화에 나오는 <만복사저포기>의 무대이다. <만복사저포기>는 죽은 여자와의 사랑을 절절하게 그려낸 고전소설이다. 주인공 양생은 만복사라는 절에서 부처님과 내기하여 젊은 여인과 인연을 맺은 뒤 재회를 약속했다. 그런데 그 여인이 3년 전에 죽은 여인이라니.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사이의 사랑이 강하고 애절하게 드러나 있는 작품을 읽고 가면 사랑이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알게 될 것이다. △어느 날 길을 잃었을 때 우리는 방황 살다 보면 눈앞에 갈림길이 나타날 때가 있다. 두 갈래라면 선택이 조금 쉽겠지만, 무수하게 얽혀 있는 길이 있다면 혼란을 겪게 된다. 그것이 삶이다. 가야 할 길 혹은 가고 싶은 길이 없을 때 우리는 방황하고, 방황하면서 인생의 방향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럴 때 힘이 되어 주는 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문학과 예술은 인간이 가장 힘든 순간에 찬란하게 빛나는 미래를 열어주는 힘이 있다. 임실 호국원은 국가를 위해 자기를 희생한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곳이다. 지금 방황하고 있는 당신들에게 이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임실 호국원에는 자기 인생을 묵묵히 살아낸 사람들이 다른 곳보다 많기 때문이다. 끝없이 세워져 있는 묘비를 손바닥으로 만져보고 묘비에 새겨진 이름을 나지막하게 읽어보라. 저마다의 인생이 살아간 흔적이 보일 것이고, 그 인생이 나아가고자 했던 길이 열리는 걸 느낄 것이다. 다른 사람의 삶을 통해 나 자신이 살아가야 할 길을 얻는 곳. 임실 호국원에서 돌아 나올 때쯤이면 우리 앞에 선명한 운명의 길이 펼쳐져 있을 것이다. 임실 호국원에서 나와 갈담을 지나 전주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섬진강물이 잠시 숨을 고르는 옥정호가 나온다. 옥정호는 섬진강 물길이 전열을 채비하는 곳이다. 그러나 물속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고, 길이 있다.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옛 흔적들을 잔잔한 수면이 감추어버렸다. 옥정호는 속내 복잡한 가운데 무표정하게 서 있는 우리 모습을 닮았다. 그래서 수면에 언뜻 그런 모습이 비치는지도 모른다. 근심이나 시름 같은 혼란한 마음을 옥정호 물에 풍덩 빠뜨려 버리면 어떨까? 후련하고 시원하지 않을까? 마음 복잡하고 삶의 갈피를 잡기 어려울 때 마지막으로 들러보고 싶은 곳은 이치전적지다. 완주군 운주면 대둔산 자락에서 충남 금산으로 나가는 길목인 이치는 정유재란 당시 조선 민관군과 왜병들 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김동진은 역사소설 임진무쌍 황진에서 “적의 보병들이 진격해올 길목마다 날카로운 마름쇠를 뿌려놓았다”라고 묘사한 적 있다.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이치전적지를 찾아가면, 방황하는 우리 삶의 길목마다 날카로운 마름쇠가 놓여 있을 듯하다. 그래서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우리 발길을 붙잡아줄 것만 같다. 그렇게 문학은 인간의 내면에서 빛난다. /문신(문학평론가, 우석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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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31 10:00

[전북의 문학 명소] 13. 강처럼 흐르는 인생, 산처럼 우뚝한 문학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강은 물길이 아니다. 강은 흐르지 않는다. 강은 굽이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강은 굽이쳐 흐르는 물길이어야 한다. 그것도 인간의 핏줄 속에서 굽이쳐 흐르는 숨길이어야 한다. 그래서 강은 뜨겁게 살아 있다. 섬진강은 전라도의 대동맥처럼 펄떡펄떡 살아서 섬진강을 지척에 두고 사는 사람들에게 흘러든다. 그 맑고 찰랑거리는 강물을 닮아 섬진강가 사람들은 살아간다. 그러므로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그 사람들의 마음을. 그 사람들의 심정을. 그 사람들의 영혼을. 임실 사선대를 돌아가는 섬진강은 임실문학비와 조각공원을 기억한다. 임실문학비는 임실문인협회 기관지『임실문학』 제30호 발간을 기념하고, 협회와 협회원들의 문운과 단결, 애향을 기원하면서 세웠다. 지역의 문학이 이렇게 기념될 수 있는 것으로도 임실의 문학은 충실하다. 사선대 조각공원에는 임실이 고향인 가수 최갑석(1938∼2004)을 기리는 노래비도 있다. 최갑석은 1950년대 말부터 1960년대 말까지 활동하며 <태평양 마도로스>, <한 많은 유랑 나그네>, <평안도 사나이>, <정든 목포항>, <내 고향 찾아가면> 등을 불렀다. 문학의 기원이 노래였으니, 섬진강도 밤낮으로 노랫가락을 흥얼거리며 흘러가는지도 모른다. 사선대를 지나간 섬진강은 굽이치다가 옥정호에서 잠시 숨을 고른다. 옥정호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섬진강댐 물문화관이 있다. 이곳에는 전북문학관에서 기증한 400여 권의 도서가 비치되어 있어 문학의 향기에 젖어 들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건 이 섬진강댐에서 흘러넘치는 섬진강이 한국문학의 중요한 자산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섬진강은 김용택 시인의 시 「섬진강」 연작의 영감이 되어 소리 없이 흘러간다. 진뫼에 이르면 “전라도 실핏줄 같은”(김용택, 「섬진강1」) 섬진강은 묵묵히 흘러가면서 많은 시적 영감을 안겨준다. 진뫼는 시인의 마을이자, 시인의 영혼이 흘러가는 섬진강 물줄기이다. 이곳에는 김용택 시인의 생가가 있고, 섬진강길을 따라 김용택 시인의 시비가 세워져 있다. 천천히 걸으면서 시비에 새겨진 「향기」, 「봄날」, 「사람들은 왜 모를까」, 「나무」, 「섬진강1」, 「섬진강3」 등을 읽다 보면 저절로 마음에 시가 찾아든다. 그런 날,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면 거기 푸른 하늘을 가르면서 한 줄기 강물이 흘러가는 모습도 보인다. 섬진강은 그렇게 이 땅의 골짜기와 하늘, 인간의 마음을 시심(詩心)처럼 유유히 흘러간다. 진뫼에는 김용택 시인만 있는 게 아니다. 진뫼에서 나고 자라 지금도 진뫼에서 밭을 일구는 김도수 시인은 시집 진뫼로 간다, 산문집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 등을 통해 진뫼의 문학적 속살을 보여준다. 이렇듯 문학의 땅 진뫼를 떠난 섬진강은 순창 경계에 이르면 한 번 크게 뒤채며 부서진다. 장군목 유원지에 이른 섬진강은 마지막으로 임실을 돌아보며 하얗게 물보라를 남긴다. 그리고는 유유히 순창으로 접어든다. 임실에서는 임실의 하늘빛을 닮고 임실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섬진강이 순창에서는 또 순창의 바람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것이다. △ ‘만경’창파에 시를 띄워라 임실 슬치에서 흘러내린 전주천과 모악산 자락을 타고 온 삼천이 합류하고, 완주 고산천과 소양천이 몸을 섞어 마침내 만경강 큰 물줄기를 이루는 곳이 삼례다. 그래서 삼례 사람들은 만경강을 일러 큰 하천이라는 뜻으로 한내라고 불렀다. 골짜기의 물줄기들이 삼례에서 비로소 강이 된 것이다. 이렇듯 삼례는 물줄기뿐만 아니라 원근의 사람들이 한바탕 크게 모여드는 땅이다. 갑오년 동학농민군이 한양으로 진격하기 위해 세를 규합했던 것도 마찬가지다. 물이 합쳐지고 사람이 보이는 삼례에 문학적 자산이 많은 것은 당연하다. 그 첫째 자리는 비비정이다. 비비정에서는 만경강 물줄기의 속살까지 볼 수 있다. 비비낙안이라는 말로 비비정의 풍경을 이야기해온 것을 봐도 비비정의 풍경은 알 수 있다. 하지만 서늘한 가을 오후, 비비정에 올라 시를 읽는 모습은 비비낙안에 견줄만하지 않을까? “서로의 가슴속에 저 달을 품어”보자고 했던 김은숙 시인의 시 「비비정에 달 뜨거든」처럼, 비비정은 우리 가슴에 문학이라는 따뜻한 마음을 품게 한다. 만경강이 시작되는 삼례에는 문학적으로 가볼 만한 곳이 많다. 옛 삼례역을 중심으로 삼례문화예술촌이 형성되어 있다. 이곳에는 ‘책 박물관’을 비롯하여 ‘그림책도서관’ 등이 자리하고 있는데, 일제강점기 미곡 수탈을 위해 지었던 창고를 개조한 공간에 자리한다. 당시의 수탈상을 그린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이나, 삼례 들녘과 호남평야에서 수탈한 미곡을 야적했던 군산항의 미두장을 다룬 채만식의 탁류 같은 소설을 통해 삼례문화예술촌의 옛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삼례문화예술촌은 그 시절의 이야기가 아직 발굴되지 않은 문학적 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삼례시장이나 삼례역도 많은 시인에게 문학적 영감을 불어넣었다. 안도현 시인이 삼례역의 기차를 시적 대상으로 삼아 “삼례역에서 기차가 운다, 뽕뽕, 하고 운다”라고 시 「기차」에서 이야기한 적 있다. 송하선 시인은 삼례시장의 풍경을 시로 옮기기도 했다. “삼례의 장날/ 그대 장터에 가거든 보아라.// 조선옷 입은 마음으로”라고 「삼례의 장날」에서 읊었을 때, ‘조선옷 입은 마음’이 어떤 건지 삼례시장에 가서 확인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만경강은 삼례의 모든 것을 끌어안고 척왜척화 척왜척화 밤낮으로 흘러간다. 한 번 흘러간 강물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이 마치 우리 인간의 역사와 같다. 물결이 흘러간 뒷자리에 새로운 물살이 밀고 오는 것도 마찬가지다. 뒷강물이 앞강물을 밀고, 앞강물이 뒷강물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이 자연의 이치를 만경강에서 확인하면서, 사람 사는 풍경이 만경강에서 한 치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낀다. 이 강물 위에 달이 뜨면 달빛 아래 만경강의 시가 환하게 반짝거릴 것만 같다. △산자락마다 시인의 마을이 있다 누군가 말한 적 있다. 한 나라의 산 개수와 그 나라 시인의 숫자가 같다고.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는 시인의 나라다. 마을마다 크고 작은 산이 무더기로 솟아있고, 산비탈마다 시인의 고향 아닌 자리가 없다. 완주, 임실, 남원, 순창에도 시인의 수만큼 산이 우뚝하다. 그리하여 산이 시인을 품고, 시인은 그 산을 노래한다. 이렇게 산은 문학의 고향이자 문학의 대상이다. 완주 모악산은 도심에서 가까워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의 발길이 잦다. 김해강 시인은 “힘 있게 뻗은 네 기슭에서 내 몸이 났”다고 시 「오오 나의 모악산아」에서 적었다. 바로 그 기슭에서 오랫동안 깃들어 살았던 박남준 시인은 모악산의 풍경을 글로 여러 차례 옮겼다. “모악산방, 모악산 그 산자락 속의 외딴집으로 돌아가는 길가에는 초여름의 숲은 무성히도 우거져서 벌써 좁은 산길을 덮고 키 작은 내 그림자를 가리워 가더군요.”라고 산문집 작고 가벼워질 때까지에서 이야기한다. 시인의 말대로, 모악산을 찾는 사람들은 ‘좁은 산길’을 걸어 자기만의 외딴집을 찾아가는 길인지 모른다. 모악산에서 외딴집을 찾았다면, 순창 회문산을 오르는 길은 역사의 ‘비트’를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현대사의 비극을 고스란히 품고도 끝내 침묵하는 회문산이다. 그러므로 회문산은 우리 현대사가 꽁꽁 숨어 있는 커다란 비트가 아닐까? 시인 권진희는 시 「회문산1」에서 이렇게 말한다. “산과 산이 밀물처럼 다가오는/ 회문산 정상에 서서 보라”고. 과연 그 정상에 서면 산과 산이 어깨를 겯고 힘차게 우뚝 솟는 것이 보인다. 그러나 때로 그 골짜기가 짙은 그늘에 잠기기도 한다. 그래서 이렇게 또 말해보고 싶다. 산자락이 슬그머니 감추고 있는 회문산 골짜기에 들어가 보라. 그곳에서 마지막으로 올려다보았을 우리 역사의 하늘과 그 하늘을 올려다보는 작고 동그란, 그렇지만 하늘보다 깊었던 한 인간의 눈을 보라고. 문학은 바로 그 눈에 비친 우리들의 자화상이 아닐까? 강천산은 착하고 부끄럼을 타는 산이다. 그래서 강천산을 노래한 시에서는 연정이 무럭무럭 피어난다. 김용택 시인이 “유월이 오면/ 강천산으로 때동나무 꽃 보러 갈라네/ 때동나무 하얀 꽃들이/ 작은 초롱불처럼 불을 밝히면/ 환한 때동나무 아래 나는 들라네”라고 시 「강천산에 갈라네」에서 노래한 것처럼, 강천산은 연심과 시심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찾는다. 설임수 시인은 강천사의 단풍을 두고 “두견이 가슴앓이/ 진홍빛 바다”라고 시 「강천사 단풍부」에서 적었다. 시인의 시처럼, 가을 강천산은 누군가의 가슴앓이로 온통 진홍빛이다. 이목윤 시인은 완주 대둔산을 두고 “저 아름다이 꽃들이 피워내고/ 봄 갈 여름없이 구름이 멈추어섬은/ 전라향병의 넋”이라고 했다. 그가 시 「대둔산」에서 노래한 것은 대둔산의 첩첩한 산자락과 기암괴석이 이 땅의 역사라는 사실을 일깨우기 위해서였다. 조미애 시인도 “깜깜한 어둠을 가르며/ 대둔산의 힘진 소리”를 시로 적었다. 대둔산은 이렇게 전라북도의 역사적 순간들을 온몸으로 기록하는 산이다. 임진왜란 당시 이치전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던 대둔산이 갑오년에는 동학농민혁명군 최후의 보루였음은 당연하다. 우리의 서사문학은 이런 순간들을 피의 역사로 형상화한다. 이렇듯 산자락마다 살아온 내력이 있고, 투쟁의 역사가 있다. 마찬가지로 산자락마다 들려줄 이야기가 있고, 애끓는 가슴앓이가 있다. 이것들이 우리의 시가 되고 소설이 되었다. 그러므로 산이 그냥 산이 아니라 시라는 것. 산이 그냥 산이 아니라 문학이라는 것. 따라서 눈을 들어 산을 올려다볼 때마다 우리는 시를 읽고 문학을 경험하게 된다. 마음에 산 하나 들어 앉히는 일이 문학에 빠져드는 일이 된다. /문신(문학평론가, 우석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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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30 10:00

[전북의 문학 명소] 12. 계절마다 한 권의 책이 되는 곳

△춘정이 활짝 피어나는 봄날 사람의 심정에 작은 불꽃을 피워 올리는 예술이라는 점에서 문학은 봄날의 햇살과 같다. 문학은 얼어붙은 인간 감정에 따뜻한 피가 돌게 하고, 새로운 박동으로 생명의 탄생을 예고한다. 그래서 예부터 많은 시인이 춘정(春情)을 노래해오지 않았던가! 완주, 임실, 남원, 순창의 문학 명소 중에서 봄날에 거닐어 보고 싶은 곳이 있다. 그곳에 갈 때면 옆구리에 시집이나 소설책 한 권 정도는 끼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지리산 바래봉은 봄의 전령사 철쭉꽃으로 유명하다. 군락을 이룬 철쭉꽃이 만개하는 5월이 되면, 바래봉은 온통 연분홍으로 물든다. 누군가는 철쭉꽃 앞에서 가슴 설레는 사랑의 향기를 맡기도 하지만, 우리 역사는 처절했던 피비린내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래서 지리산 바래봉은 많은 작가에게 문학적 영감을 주는 장소인지도 모른다. 우미자·안도현·고정희·김광원 등 많은 시인이 매년 봄 철쭉이 흐드러진 지리산 바래봉에서 붉은 언어의 시를 써냈다. 지리산 바래봉에서 철쭉꽃의 향연을 감상했다면, 이제는 남원 광한루원에 늘어진 능수버들의 싱그러운 연두의 봄날을 거닐어도 좋다. 광한루원은 판소리 <춘향가>의 배경이 되는 곳이다. 남원 부사의 아들 이몽룡이 봄밤의 정취를 감상하기 위해 광한루에 나왔다가 그네를 뛰는 춘향 모습에 넋을 잃었다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다. 이팔청춘의 첫사랑이 그렇게 광한루원의 봄날 저녁을 환하게 밝혔다. 복효근 시인의 시 「춘향의 노래」라든가 서정주 시인의 「추천사」 등에서 봄날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봄날의 정취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곳은 흐드러진 벚꽃 아래일 것이다. 임실군 강진을 지나 덕치를 흘러가는 섬진강을 따라 4월 벚꽃은 피어난다. 그리고 섬진강 그 맑은 강물 같은 시심으로 덕치초등학교 운동장 가에도 벚꽃이 핀다. 이 벚꽃 그늘에서 김용택 시인이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래서일까? 벚꽃 피는 날, 덕치초등학교의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인이 된다. 봄날 거닐어 보고 싶은 문학 명소에는 강천산과 모악산도 있다. 산은 계절을 가리지 않고 문학적 영감을 주지만, 강천산과 모악산은 특히 봄날의 정취가 좋다. 강천산이 봄날의 연두를 보여준다면, 모악산은 진달래꽃의 연분홍으로 설레게 한다. 겨우내 숨죽이고 있던 만물이 봄날을 맞아 그렇게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래서 봄날, 연두의 햇살을 받으며 강천산 등산로를 맨발로 걷다 보면 눈에 보이는 것과 귀에 잡히는 것들이 마음에서 자그마한 연못을 이룬다. 그 연못에 살랑 바람이 일면 그것이 바로 시가 아닐까? 모악산 등산로에서 저만치 비켜 서 있는 진달래꽃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동자에 맺힌 그 다사로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영혼을 서늘하게 해 줄 여름 여름은 인간과 자연이 맨몸으로 마주하는 계절이다. 그래서 진심이 서로 통한다. 이렇게 통하는 진심의 힘으로 문학은 탄생하고, 독자의 가슴에 서늘한 파문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무더위를 피해 찾아든 계곡에서 우리는 문학을 읽는지도 모른다. 게으른 영혼을 화들짝 일깨울 정도로 시리게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책갈피를 넘기다 보면 시간이 흘러가는 것도 잊어버릴 것 같다. 지리산 뱀사골 계곡과 달궁계곡은 여름날 찾아가 며칠쯤 머물고 싶은 곳이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앉아 있으면 정신은 맑아지고, 그 투명한 영혼으로 시 한 구절이 새겨질 것 같다. 소설의 한 대목을 읽다가 눈을 들면 숲 그늘은 푸르고, 그 아래로 하얗게 속살을 내보이며 굴러가는 물살이 보인다. 그 물살을 일으키는 크고 작은 바위에서 우직하게 자기 삶을 지켜내는 우리 자신이 보인다. 그게 보일 때면 여름이 성큼 물러나고 있지 않을까? 뱀사골 계곡 입구에 우람하게 서 있는 전적비 앞에서 한 번쯤 우리 역사를 생각해봐도 좋겠다. 역사는 인간의 비극을 어떻게 기록하는지, 또 우리는 그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는지 생각하다 보면 더운 여름날에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순간이 온다. 사람이 사람을 죽여야 했던 숱한 사연들을 그 숲은 지켜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숲을 본다. 그것이 역사다. 오늘의 우리가 과거의 우리를 바라보는 것. 지리산 뱀사골 계곡과 달궁계곡에서 우리는 온몸으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다. 과거로부터 오늘에 도착해 있는 역사적 인간인 우리를. 지리산 계곡물이 섬진강으로 흘러가면 임실과 순창의 어름에서 또 크게 물살을 뒤척인다. 기괴한 물속 바위로 유명한 장군목 유원지다. 귀 맑은 사람이라면 여름밤 이곳을 흘러가는 물살의 기척에서 요강바위에 얽힌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런 밤에는 또 높이 펼쳐진 하늘에서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다슬기 같은 별들을 보게 된다. 그래서 장군목 유원지에서 건져낸 다슬기에서는 별빛의 향기가 나는지도 모른다. 완주의 위봉폭포도 여름날 찾아가기 좋은 문학 명소다. 여름 한 철,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폭포수를 보고 있으면, 한낮의 열기를 지워낼 수 있다. 그뿐인가? 폭포의 수직 낙하를 보면서 우리는 마음에 얹혔던 근심이나 시름을 통렬하게 씻어내는 기분을 느낀다. 그리고 무모하리만큼 겁 없이 뛰어내리는 폭포수 앞에서 여름날 조금은 게을러졌던 삶의 자세를 고쳐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신이 허락해준 인간의 시간, 가을 가을에는 다른 계절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된다. 자연이 만들었던 봄과 여름의 맹렬했던 시간이 조금씩 소멸해가면서 비로소 인간의 시간이 도래하는 것이다. 그래서 가을에는 자주 우리 내면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단풍 흐드러진 산자락에서 더 그렇다. 눈은 자연이 만든 소멸의 시간을 바라보고 있지만, 마음에서는 한껏 풍부해진 자기감정에 충실해진다. 가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곳이 산사(山寺)다. 가을 햇살이 고즈넉하게 떨어지는 절 마당을 중심으로 사방에 단풍이 물들어 있다. 가을 산사에서 만나는 시간은 한없이 느리게 흘러간다. 그래서 자주 자기를 들여다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완주 송광사에서는 하루가 일 년처럼 흘러간다. 발소리를 죽이며 대웅전 앞에 서면 부처의 마음에 닿는 것 같다. 눈을 들면 사찰의 단청 빛과 산자락의 단풍을 구분할 수 없을 듯하다. 송광사를 지나 위봉사에 도착하면 그곳은 또다른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 아니, 그곳에는 시간이 없다. 무시간의 공간이다. 그래서 위봉사에서는 절도 없고 나도 없어진다. 그냥 텅 빈 무(無)의 세계에서 오로지 간절한 마음만 존재하는 것 같다. 그 마음 안에 무엇이 담겼는지는 그곳에 서 본 사람만이 알 것이다. 마음을 다잡고 경내를 걸으면 산그늘에 발자국이 새겨지고, 몸과 마음이 한없이 가벼워져 말소리마저도 그대로 스님의 미소가 되어버린다. 그래서 한나절 위봉사 경내에 머물다 보면 침묵이 한 편의 시처럼 영혼에 깊이 새겨지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완주의 사찰 가운데 가을에 가고 싶은 가장 아름다운 곳은 화암사이다. 시인 안도현이 쓴 것처럼, 화암사는 이 지상에서 가장 순결하고 아름다운 절이다. 특히 가을볕이 그 어느 곳보다 환하고 따스하게 내린다. 곱게 늙어가는 절 마당에 서 있으면 삶이 한결 가뿐해지고 단순해진다. 남들과 시비를 가리고, 손에 뭔가를 쥐고자 애썼던 날들이 그저 야속해진다. 그래서 가을 화암사를 다녀간 사람들은 영혼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져 있다. 화암사를 지나면 대둔산과 마주하게 된다. 단풍이 물든 대둔산의 가을은 서늘하다. 온몸의 피부가 잔뜩 긴장한 듯, 대둔산 앞에 서면 인간은 비로소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깨닫는다. 수천 년을 단단하게 서 있는 바위와 한 번도 그 자세를 고쳐본 적 없는 능선은 가을을 가을답게 해 준다. 그래서 대둔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저절로 가을을 걷는다. 아니, 신의 시간을 걷는다. △숨죽인 우리의 사랑 노래, 겨울 겨울을 걷는 사람에게는 이미 봄이 깃들어 있는 법이다. 그래서 겨울은 더욱 혹독하다. 새로운 계절을 잉태하고 있으므로, 겨울은 더욱 치열하게 자기를 수련한다. 그 수련의 깊이를 사랑이라고 말하면 과장일까? 자기를 갈고닦는 일이 다른 존재를 향해 마음을 여는 일이고, 다른 존재를 조건 없이 기꺼이 품어주는 일이라면, 겨울은 한 번도 사랑으로부터 멀어진 적 없는 시간이다. 겨울 실상사는 그런 점에서 사랑의 처소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다. 눈 내린 실상사 마당을 엇갈려 지나가는 발자국에서도 사랑은 피어난다. 도종환 시인이 「실상사-정도상에게」라는 시에서 “네가 만나야 할 것은 진여실상”이라고 말했을 때, ‘진여’의 모습에서 사랑이 보인다. 그럴 때 사랑은 세속의 모습도 아니고 탈속의 자세도 아니다. 사랑은 언제나 진심의 영역에서 피어나고, 참된 자기에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게 실상의 세계가 아닐까? 순창 회문산에서 어쩌면 ‘진여실상’과 마주할지도 모른다.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 장면이 회문산에 묻혀 있다. 이태의 남부군을 읽어보라. 그들은 이념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자기 목숨을 내건 사람들이다. 눈 덮인 회문산 자락에서 꽁꽁 얼어붙은 몸을 깨워준 것도 사랑이었고, 죽어가는 이들의 눈앞에 마지막으로 나타났던 모습도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회문산에 오른 사람들은 가슴 깊은 곳에 사랑을 품게 될 것이다. 임실 국사봉도 겨울에 다녀오기 좋은 명소다. 전망대에 오르면 눈 아래 옥정호가 지상의 하늘처럼 맑게 펼쳐져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국사봉 전망대는 새해 일출을 맞이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멀리 산자락 너머로 뜨겁고 붉은 햇살이 솟아오를 때, 허연 입김을 내뿜는 감탄의 소리가 울린다. 꼭 새해 첫날이 아니어도 국사봉 전망대에 오르는 눈길은 특별하다. 서걱서걱 눈 밟히는 소리와 함께 마음의 무거운 짐이 하나씩 벗겨져 나간다. 그러나 겨울 진객은 따로 있다. 완주 비비정에서 바라본 풍경은 그대로 새한도다. 고결한 정신과 순결한 마음이 견디어내는 혹한의 겨울 풍경처럼, 비비정에서 바라본 만경강은 으뜸이다. 과연, 비비낙안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넓게 펼쳐진 삼례 들녘으로 겨울 해가 저물어가는 풍경은 어떤 그림으로도 담아낼 수 없을 만큼 찬란하다. 살얼음 낀 강가에 갈대가 제 몸을 부러뜨리고, 바람이 갈대의 심장을 차갑게 훑고 지나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인간의 자리가 없이도 겨울은 저절로 깊어간다. 아쉬운 건, 그 겨울의 내면을 어떤 시인도 온전하게 글로 옮겨 담지 못한다는 것이다. /문신(문학평론가, 우석대 문창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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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24 10:00

[전북의 문학 명소] 11. 뜻과 의지로 이름을 새긴 사람들

인걸은 지령이다. 영험한 땅에서 걸출한 인물이 나고, 그 인물이 있어 그 땅은 더 큰 가치를 지닌다. 남원시·순창군·완주군·임실군에는 빛나는 행적으로 이름을 남긴 위인이 많다. △고려 말 남원에서 왜군을 물리친 황산대첩의 이성계(1335∼1408) △조선 초기 집현전 학사로 문화를 꽃피웠던 최덕지(1384∼1455) △임진왜란 때 이치전투를 이끌며 왜군의 전라도 침공을 막은 명장 황진(1550∼1593) △조선 영·정조 시대의 지리학자·실학자인 여암 신경준(1712~1781) △한국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1759∼1791)과 권상연(1751∼1791) △조선 후기 3대 명필로 꼽히는 이삼만(1770∼1847) △조선 성리학의 마지막 거장인 노사 기정진(1798∼1879) △동학 경전인『동경대전』을 쓴 수운 최제우(1824∼1864)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김주열(1944∼1960) 열사 등이다. △“천하는 만백성의 것” 혁명가, 정여립 정여립(1546∼1589)의 탯자리로 알려진 완주군 상관면 월암마을에 정여립공원이 들어선 것은 2020년이다. 정여립이 오른손을 높게 치켜들고 있는 기개에 찬 모습을 형상화한 철판 조형물이 있고, 그의 생애와 사상, 기축옥사 등에 관한 설명이 8개의 오석 안내판에 적혀있다. 최기우의 희곡 「정으래비」(평민사·2022)는 ‘천하는 백성의 것’이라고 외쳤던 전주 출신 사상가 정여립과 기축옥사를 소재로 했다. 반상의 귀천과 남녀의 차별이 없는 대동계를 조직하고 왕위의 세습을 부인했던 혁명적 사상가인 정여립과 당시 억울한 죽음이 남긴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현장을 전면에 내세웠다. 정여립의 삶을 다루지만, 이야기의 중심에는 민중이 있다. 차별 없이 고른 세상을 향한 정여립의 꿈을 잇는 이들이다. 홍석영의 장편소설 「소설 정여립」(범우·2008)은 기축옥사가 뜻하는 정치적 함의가 무엇인지, 그 영향은 어떻게 남았는지 보여주고자 사료와 문헌을 탐구한 뒤 소설의 형식을 빌려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서철원의 장편소설 「별의 노래」(짓다·2023)는 마이산이 있는 진안의 밤하늘에 그려진 별의 천문을 통해 정여립의 삶과 죽음에 관한 이상향과 판타지를 보여준다. 정여립의 죽음은 참혹하고 뜨악한 역사를 남겼지만, 푸른 댓잎 같던 그의 대동사상은 후세에 큰 울림을 남겼다. 백성으로부터의 개혁을 지향한 그의 사상은 허균의 ‘호민론’과 정약용의 ‘탕론’으로 이어졌으며, 동학사상도 그 줄기로 엮여 있다. △임실치즈를 만든 신부, 지정환 임실성당은 대한민국 치즈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벨기에 출신의 지정환(1931∼2019) 신부는 1964년 6월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척박한 땅을 일구며 가난에 시달리는 농민들을 가까이 지켜본 신부는 산양을 키우며 사제관에서 산양유를 이용해 치즈를 만들었다. “치즈!” 사실, 지 신부는 벌써 며칠 전부터 거의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면서 산양으로 만들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꼼꼼히 헤아려 본 터였다. 연유나 분유 같은 가공식품도 고려해 보았지만, 얼핏 생각해도 엄청난 시설비용을 도저히 감당해 낼 재주가 없었다. 그리하여 궁리 끝에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치즈였다. ∥고동희·박선영의『치즈로 만든 무지개』 중에서 1961년 1월 임실성당 주임대리로 6개월 동안 근무했던 지정환 신부는 부안성당을 거쳐 1964년 6월 임실성당 주임신부로 다시 부임했다. 척박한 땅, 가난한 주민들을 위해 그가 찾은 것은 산양유를 활용한 치즈 만들기. 그러나 치즈 제작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산양유를 약탕기로 졸이고, 비눗갑에 담아 숙성시키고, 유럽의 치즈공장들을 둘러보며 방법을 배워오는 등 숱한 도전과 실패 끝에 치즈 만들기에 성공했다. 지정환 신부의 삶과 의지는 고동희·박선영의『치즈로 만든 무지개: 지정환 신부의 아름다운 도전』(명인문화사·2007)과 박선영의『지정환 신부: 임실치즈와 무지개 가족의 신화』(명인문화사·2014) 두 권의 책에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1959년 12월 사제의 신분으로 한국에 온 벨기에 출신의 지정환 신부가 전주·부안·임실·완주·서울 등에서 만났던 사람들, 임실치즈의 태동을 함께한 사람들, 다발성신경경화증으로 장애를 갖게 되었지만, 오히려 평생 장애인들의 아버지로 살며 무지개장학재단을 이끈 이야기들은 큰 감동을 선사한다. 임실치즈테마파크에도 지정환 신부와 임실N치즈의 이야기를 담은 임실치즈역사문화관과 지정환신부역사관이 있다. △붓으로 지켜낸 구국의 신념, 조희제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 절골(寺洞)은 대한제국 말의 학자이며 순국지사인 조희제(1873∼1939)의 삶터이며, 1895년부터 1919년까지 절의를 세운 의열선비와 의병들의 실적과 문헌을 수집해 편찬한『염재야록』을 집필한 곳이다. 조선의 국운이 쇠퇴하던 시기, 항일의식이 투철한 집안에서 자란 조희제는『염재야록』 집필을 마음먹고 수십 년 동안 한말 의병장과 초야에 묻힌 애국지사의 행적, 독립투사의 항일사적, 3·1운동 애국투사의 공판 등을 찾아 재판 실황을 기록했고, 자료를 수집해 야사 형식으로 엮었다. 그러나 1938년 책을 쓴 일이 일제에 발각되면서 조희제를 비롯해 서문과 발문을 쓴 최병심(1874∼1957)·이병은(1877∼1960)과 교정을 본 김영한, 서역을 맡은 조현수 등 많은 인사가 임실경찰서에 연행돼 목숨이 끊어질 정도로 잔혹한 악형과 고문을 당했다. 다행히 조희제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염재야록』을 두 개로 편집해 책 표지에 ‘덕촌수록(悳村隨錄)’이라고 쓴 뒤, 한 질은 책상에 두고, 한 질은 궤짝에 넣어 마루 밑 땅에 묻었다. ‘덕촌’은 조희제가 살던 ‘덕치(德峙)’를 가리키는 말로 ‘덕치(덕촌)의 이야기를 기록한다’라는 뜻으로 이목을 피하려 한 것이다. 고문받던 조희제의 생명이 위독해지자 일경은 고문의 만행을 인멸하기 위해 병보석으로 석방, 임실병원에 입원시켰다. 이후 조희제는 일제가 단발 종용을 강요하자 “저들에게 모욕당하고 구차히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대의를 지켜 죽음을 맹세한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결 순국했다. 그가 남긴 소중한 기록들은 후세에 길이 전해져 역사의 교훈이 되었다. △춘향의 정절을 이은 최봉선 춘향사당은 남원을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 「춘향전」의 여성 인물인 성춘향의 일편단심을 되새기고, 그녀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세운 영정각으로 1931년 광한루원에 세웠다. 춘향사당은 이곳을 건립하고 오랫동안 제사 지내는 일에 앞장섰던 남원예기조합의 기생 최봉선(1900∼1974)의 꿋꿋한 삶과 의지가 담겨 있어 더 의미가 깊다. 1931년 단옷날 새벽, 단정하고 깨끗한 옷을 차려입은 기생 100여 명이 사당 앞에 줄지어 섰다. 남원 권번 기생들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모인 기생들이었다. 남원 출신으로서 경성뿐 아니라 전국에 이름을 날리고 있는 이화중선, 이중선 자매도 와 있었다. ∥김양오의 동화 「백 년 동안 핀 꽃」 부산 출신인 최봉선이 남원과 인연을 맺은 것은 1924년 봄. 열녀 춘향에 대한 흠모의 정을 많은 사람과 나누고 싶었던 그녀는 남원의 유지들과 사당을 짓기로 협의했다. 그러나 일제 관헌은 모든 협조를 거절했고, 몇몇 사람은 ‘천한 퇴기의 딸 춘향의 사당 건립은 점잖지 못한 일’이라고 반대했다. 그러나 최봉선은 뜻을 굽히지 않고 기금 2백 원을 내놓았으며, 동료들과 모금 운동에 나서 건축비 1천 2백 원을 모았다. 초상화는 ‘진주의 화가 강(姜) 모 씨’에게 맡겼으며, 1929년 춘향의 생일로 여긴 음력 4월 8일에 준공식을 올렸고, 1931년 6월 3일 춘향사당 낙성식과 제전을 열었다. 최봉선의 삶은 김양오의 동화『백 년 동안 핀 꽃』(빈빈책방·2021)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최초의 지역 축제 춘향제를 만든 최봉선’을 부제로 한 이 동화는 1931년 제1회부터 1967년 제37회까지 제주(祭主)를 맡아 춘향제향을 모셨고, 한국전쟁 때에는 춘향의 영정을 주천면으로 옮겨 전쟁의 화마에서 지켜낸 최봉선의 결의에 주목한다. 우리말과 우리글조차 마음대로 쓰지 못했던 일제강점기에 춘향제를 통해 우리의 소중한 문화를 되살리고 민족의 자긍심을 높인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설 속 인물인 춘향을 현실 세계로 불러오고, 이야기 속 춘향의 얼을 오늘에 되살려 후손들의 본보기로 삼은 것은 춘향을 향한 열녀 최봉선이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춘향사당과 춘향 영정은 춘향의 정절을 이은 최봉선과 같은 이들의 존재만으로도 감동을 준다. /최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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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23 10:00

[전북의 문학 명소] 10. 문학으로 읽는 아프고 당찬 역사

△혼은 쉽사리 소멸하지 않는다, 만인의총 만인의총은 정유재란 때 남원성을 지키기 위해 왜적과 항전하다 전사한 군·관·민을 합장한 무덤이다. 그곳 광장에 서 있는 노래탑 <오늘이 오늘이소서>는 아무리 정교한 정책으로 민족문화를 말살하려 해도 그 혼은 쉽사리 소멸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새겨 있다. 정유재란 때 남원성을 함락한 왜군은 조선의 도예기술을 얻기 위해 이삼평·박평의 등 2백여 명의 도공을 일본으로 끌고 갔다. 이들은 일본에서 도예촌을 형성했고, 그 후손들은 지금 일본 도자기산업을 이끄는 중심인물이 됐다. 이삼평은 아리따야끼의 도조로 일본 도자기의 조상으로 추앙받으며, 박평의는 사쓰마야끼를 만들어 일본 도자기의 양대 산맥을 이끌고 있다. 사쓰마야끼의 심수관 가문은 현재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노래 <오늘이 오늘이소서>가 이들의 삶에 깊이 다가선 것은 대한해협에서 큰 불덩이 하나가 날아와 마을 뒷산에 떨어지면서부터다. 사람들은 이 일을 모두 화목하게 살라는 단군의 계시로 해석했고, 그 자리에 단군 사당인 옥산궁을 짓고 해마다 음력 9월 14일에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이때 부르는 노래가 ‘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에 오늘이소서 저물지도 새지도 마시고 날이 샌다 해도 언제나 오늘과 같은 날이 되게 하소서’라는 내용의 <오늘이 오늘이소서>이다. 고려 말에서 조선 중기까지 불렸던 이 노래는 고달픈 현실에서 오늘만을 헤아려 기다려 왔으니 마음껏 놀아보자는 내용의 노동요다. 실제로 남원에서 채록돼『청구영언』(1728)에 실렸다. 조선 도공의 후손들은 1988년 광한루에서 귀향음악회를 열었고, 이때 이 노래가 채록된 남원에 노래를 돌려주는 전수식을 했다. 남원문화원에서는 이 노래의 역사적 의의를 잊지 않기 위해 1995년 노래탑을 세웠다. 탑 전면에 악보를 새겼고, 후면에는 가사를 담았다. 일본에서 여러 대에 걸쳐 한국의 성(姓)을 유지하며 뿌리를 지킨 그 정신세계와 찬란한 예술 세계는 춘향테마파크에 2011년 개관한 심수관전시관에서 엿볼 수 있으며, 후손들의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는 김양오의 동화『도자기에 핀 눈물꽃』(빈빈책방·2020)에도 담겨 있다. △하늘 같은 사람을 향해 열려 있는 길, 대둔산 기암괴석이 기치창검처럼 늘어선 대둔산은 이름의 유래도 갖가지다. 옛 이름은 ‘한듬산’. 계룡산의 지세와 겨루다 패해 한이 맺힌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고, 우리말로 ‘크다’는 뜻의 ‘한’과 ‘덩이’라는 뜻의 ‘듬’을 한자로 만들면서 대둔산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한 맺힌 산’이라는 이름처럼 이곳 역사는 순탄치 않았다. 임진왜란 때는 대둔산 일대에서 김제군수 정담(?∼1592)이 이끄는 의병대와 권율(1537∼1599) 장군의 군대가 왜군과 맞서 ‘이치대첩’으로 불리는 치열한 전투를 치렀다. 대둔산에서 뻗어 내린 배티재 정상에 이치대첩비가 있다. 조선 말 우금치 전투에서 패한 동학농민군도 이곳에서 일본군과 마지막 항전을 벌였다. “내가 향해 갈 곳이 한 군데 있긴 있소.” 은명기가 잠시 신일균의 얼굴을 보았다. 아직 그를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버릇처럼 그의 얼굴을 살핀 것이다. 신일균이 그런 기색을 눈치 챘는지 잠자코 고개를 숙였다. “신형, 그곳이 고산현의 대둔산이오. 저 장형이 살렸다는 최대웅도 거기에 있을 거외다. 내가 망설인 이유는 신형이 때아닌 고생을 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소.” “염려해주시니 고맙습니다만, 신일균은 이미 그를 보냈던 관군에서도 죽었고 내 마음속에서도 죽은 지 오랩니다. 대둔산에 가거든 어디를 찾아야 하오이까?” “안심사에 가면 아마 길이 열릴 것이오.” ∥이병천의 소설『마지막 조선검 은명기3』 대둔산 마루 삼선계단 부근 ‘대둔산 동학군 최후항전지’ 표지가 있어 이 역사를 후세에 알리고 있으며, 전투에서 ‘홀로 남은 어린 소년의 이야기’는 완주 출신 이병천의 장편소설 「마지막 조선검 은명기」에 담겨 있다. 소설가 송기숙의 대하소설『녹두장군』에도 대둔산이 나온다. 그들이 대둔산 기슭의 당마루란 동네에 이르렀을 때는 새벽닭이 두홰를 치고 있었다. 이 당마루는 진안과 무주에서 올라오는 길과 이쪽 고산에서 올라가는 길이 만나는 삼거리다. 여기에는 대둔산에 산채를 가지고 있는 임문한의 졸개 김오봉이가 주막을 내고 있었다. ∥송기숙의 소설『녹두장군1』 운무에 가렸다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대둔산의 기암들. 대둔산의 바위산들이 장사들의 근육처럼 보이는 이유는 이름 없이 스러져 간 민초들의 한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한 많은 역사를 간직한 회문산 회문산은 한 많은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동학농민혁명과 구한말 항일투쟁의 근거지였으며, 1948년 여순사건 이후에는 빨치산들이 도당본부를 이곳에 옮기고 마지막까지 투쟁했던 ‘저항의 산’이며, ‘피의 산’이며, ‘피난의 산’이다. 사방에서 밀려온 수백 명의 전투원들이 눈에 핏발을 세우고 중부능선을 시퍼렇게 덮으며 밀려오는 국군부대에게 총탄과 수류탄을 퍼붓고 있었다. 여기저기 흥건히 고인 빗물이 피와 흙으로 뒤범벅이 되어 부상자고 전투원이고 이미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바로 생지옥이었다. ∥이태의 소설 「남부군」 부분 회문산은 소설『남부군』(두레·1988)이 출간되면서 이곳이 빨치산의 마지막 결전지였음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1988년 출간돼 50만 부 이상 팔린 이 책의 저자는 한국전쟁 당시 합동통신 기자였던 이태(1922∼1997)이다. 그는 서울에서 인민군에게 체포돼 북한 조선통신 기자가 되었으며, 전주에서 통신업무를 보다가 연합군이 상륙한 1950년 9월 전북도당 간부들을 따라 순창 구림면 여분산(엽운산·774m)에 들어가 조선노동당 전북도당 유격사령부 대원이 되었다. 이후 회문산으로 옮겨 이현상의 남부군에 편입됐고, 1952년 3월 토벌대에 체포될 때까지 17개월 동안 빨치산으로 활동한다. 그래서 저자는 서슬선 칼날 위를 걷는 듯한 빨치산의 하루하루와 극단적인 정황 속에서 나누는 남녀의 애환 등을 너무도 생생하게 펼쳐 놓았다. 1951년 초봄, 투구바위. 1만여 명으로 구성된 토벌대의 대규모 작전이 펼쳐졌지만, 그 포위를 뚫고 식량을 구하러 떠나는 빨치산 유격대가 있었다. ‘뜨물국 같은 멀건 죽’으로 ‘비장한 향연’을 벌이지만, 화력에서 밀리는 빨치산들은 전열도 가다듬지 못하고 흩어져 지리산과 변산반도로 탈출한다. 숱한 전화(戰火) 탓에 회문산에서는 고목을 찾기 힘들고, 빨치산의 훈련장이었던 곳에 체력단련장이 들어서면서 옛 모습을 찾기도 어렵지만, 비목공원과 빨치산사령부 자리 등의 안내판이 당시의 역사를 짐작게 한다. 그래도 숲은 언제나 호젓하다. 회문산 자락을 끌어안은 채 흐르는 섬진강 풍경도 늘 푸근하고 정겹다. 강 따라 길도 흐른다. 강물이 구부러지면 모진 역사도 슬며시 굽이돌지만, 길은 계속 이어진다. / 최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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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17 10:00

[전북의 문학 명소] 9. 시와 소설에 담긴 사찰 풍경

△사천왕의 전형을 만나는 완주 송광사 867년 창건한 천년고찰인 송광사는 국내에서 드물게 평지에 지어진 사찰이다. 지붕 맞대고 울타리 잇대 사는 여느 집처럼 들어앉은 품새가 허물없이 속내 나누고 사는 마을의 한 이웃 같다. 일주문부터 금강문, 천왕문, 대웅전까지 일직선으로 서 있는 것도 송광사의 특징이다. 절 앞에 서면 일주문 안으로 금강문이, 그 문 안으로 천왕문이, 또 그 문안으로 대웅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최명희는 소설 「혼불」에서 승려 도환이 입을 빌려 ‘완주 송광사 사천왕을 사천왕의 전형으로 보았다.’라고 말한다. 현존하는 소조 사천왕으로는 가장 오래된 존상이다. “과문한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소승이 보기에는 완주 송광사 사천왕이, 흙으로 빚은 조선 사천왕 존상들 가운데 가장 빼어난 조형으로서, 높이 십삼 척의 위용도 웅장하고, 그 큰 신체 각 부위 균형이며 전체 조화가 놀랍도록 알맞게 어우러져 큰 안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얼굴의 표정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조각되어, 깊이 패인 이마의 주름살에 미간의 찌푸림, 우묵히 들어갔다 튀어나온 눈두덩, 그리고 눈자위와 눈밑의 굵은 주름들을 보고 있으면, 도무지 투박한 진흙을 주물러 만들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입니다. 그리고 그 극채 찬란한 색깔들.” ∥최명희의 장편소설 「혼불」 사천왕은 단 한 위도 같은 상이 없다. 동․남․서․북 각 방위 천왕의 신모(神貌)가 서로 다른 것은 물론이고, 같은 이름의 북방다문천왕이라고 해도 사찰마다 특성이 있어 비파의 생김새며 사현(四弦)을 누르고 튕기는 손가락의 모양과 위치, 얼굴 모색에 눈썹․눈․코․입술․이․수염의 형태가 다 달라서 빚는 손, 바치는 마음이 인간을 넘어 정토와 십계에 사무친다. 눈썹 하나만 보더라도 천편일률적으로 무조건 시커멓게 먹칠한 솔잎처럼 곤두선 것이 아니다. 선운사 북방은 완연히 웃음을 띤 주름의 노안에 어질고 부드러운 흰 눈썹 다보록이 눈을 덮어 나부끼는 데다가, 수염도 맑은 은실 다발을 빗어 내린 듯 투명하다. 송광사 북방은 가장 사천왕다운 장엄 용맹의 풍모로 눈썹 터럭 한 올 한 올 힘차게 박아 세운 것이 장비 수염과 함께 어울려 서슬 푸른 바람 소리를 낸다. 그러나 그 서슬을 누그리며 중생을 달래는 것은 코밑의 수염이었으니 터럭이 길어 여덟 팔(八)자로 드리워진 숱이 짙고 검었다. 임진왜란 때, 송광사는 승병 사령부였다. 하지만 석가모니에게 ‘살생의 성공’을 기원할 수는 없는 법. 하여 승병들은 사천왕에게 승리를 기도했고, 그 흔적이 남아 지금도 사천왕 앞에는 촛불과 향이 타오른다. △쓸쓸한 심사를 달래기에 좋은 실상사 남원 산내면 아늑한 들판 가운데 있는 실상사는 눈 내리는 겨울에 찾아 들어 쓸쓸한 심사를 달래기에 제격이다. 드넓은 논과 밭을 떠돌이처럼 헤매도 보고, 절 입구에 있는 돌장승들에 하소연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실상사는 시인과 소설가의 출입이 유난히 잦고, 시와 소설로도 자주 읽힌다. 도종환의 시 「실상사-정도상에게」, 신경림의 시 「실상사의 돌장승-지리산에서」, 신용목의 시 「실상사에서의 편지」, 정동철의 시 「실상사 철조여래좌불을 만나다」 등이다. 실상사를 배경으로 한 정도상의 소설 실상사는 「봄 실상사」, 「여름 실상사」, 「가을 실상사」, 「겨울 실상사」, 「내 마음의 실상사」 등 다섯 편으로 이루어진 연작소설집이다. 「봄 실상사」는 통일 운동을 하며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힘겨워하는 주인공이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 찾아간 실상사에서 운동권 시절 헤어졌던 첫사랑 운서와 마주치는 모습을 환상적으로 그렸다. 「여름 실상사」는 명품으로 상징되는 자본주의적 욕망을 추구하며 술집에서 아르바이트하다가 영혼과 육신이 피폐해진 여대생 국희가 실상사에서 상처를 치유 받는 과정을, 「가을 실상사」는 자본주의적 욕망의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정신병에 걸린 시골 청년 현우의 죽음을 시간의 해체와 정신분석적 기법 등을 동원해 그렸다. 「겨울 실상사」는 권력과 언론과 결탁해 성공을 거둔 타락한 벤처사업가 김성철의 분열된 자아를 드러내며, 「내 마음의 실상사」는 소설가이자 사회운동가인 나(화자)가 육체노동자인 친구를 통해 허명과 허위의식을 깨닫는 과정을 보여 준다. 통일 운동을 해온 작가의 체험담이 생생하게 들어있는 이 소설을 읽으면, 작가에게 실상사는 힘들고 지칠 때면 무작정 찾아가 쉬고 싶은 곳이다. 왜 왔냐며 묻지 않고, 잘못을 타박하지 않는 곳, 그곳은 고향일 수도, 엄마 품일 수도 있다. 어디 작가뿐이랴. 작가의 글을 접한 이들은 실상사에 가지 않았어도 이미 실상사는 고향이고, 엄마의 품인 것을…. △잘 늙은 절 한 채, 화암사 이유 없이 힘들거나 외로울 때가 있다. 완주군 불명 자락의 화암사는 그런 마음이 들 때 찾아가면 좋은 곳이다. 화암사는 현대 문명의 헛바람을 맞지 않고 오랜 세월 ‘곱게 늙어 온’ 절이기 때문이다. 화암사에는 보물 제662호인 우화루가 있다. 비가 꽃처럼 떨어지는 다락. 현판은 투박하고, 낡았다. 글씨는 흐릿하고, 벽은 까맣게 때가 묻었다. 그래서 더 애잔하니 곱다. 우화루 옆 작은 대문이 경내로 들어가는 문이다. 문지방은 움푹 파인 달문이다. 문턱에 둥글게 휘어진 나무를 대서 천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이룬 문을 들어서면 적묵당, 극락전, 우화루, 요사채가 고만고만한 크기로 서로 네 귀를 맞추듯 서 있다. 절 입구에 있을 법한 일주문도 사천왕상도 없이 경내로 들어서려면 작은 문 하나를 통과해야 한다. 잊을 수 없다. 세월에 닳은 문턱을 처음 넘어설 때, 나는 마치 어릴 적 외갓집 대문을 넘어 마당으로 발을 들여놓을 때와 똑같은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실제로 ㅁ자형 구조를 가진 경내로 들어가면 그곳은 절이 아니라 여염집의 편안한 안마당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때의 적막은 또 얼마나 큰 위안인가. ∥안도현의 수필 「잘 늙은 절, 화암사」 우화루는 절의 앞쪽에서 보면 우람한 다섯 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2층 누각이지만 경내에서 바라보면 단층구조다. 우화루 왼쪽 돌담을 끼고 돌아가면 정갈하게 지어진 해우소가 정겹고, 오른쪽에 사시사철 멈추지 않고 뿜어내는 약수가 맑다. 화려한 단청이 미치지 못할 격을 지니고 수수하게 나이 들어가는 사적들. 극락전은 이 땅에 유일하게 남은 백제 시대 건축의 유구다. 건축학자들은 극락전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하앙구조를 갖추고 있는 법당이라고 자랑한다. 극락전 안에선 유난히 정교한 아름다움을 지닌 닫집과 조선 시대 동종을 볼 수 있다. 이 동종은 예전에 사람이 종을 치지 않아도 밤이면 저절로 울려 스님들과 불공을 드리러 온 신도들을 깨웠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가 전해진다. 특히, 일제강점기 전쟁에 쓸 무기를 만들기 위해 조선의 쇠붙이를 강탈하던 일본 헌병들이 화암사로 몰려올 때, 동종은 스스로 울었고, 스님들은 동종을 땅에 묻어 두었다가 해방 후에 꺼내 오늘까지 무사히 보존하게 되었다. 화암사는 낡고 작고 허름하다. 세월에 부대껴 기둥은 까매졌고, 단청은 희미해졌다. 목어에는 두껍게 먼지가 내려앉았다. 그러나 너무 커서 위압적이지 않고, 화려해서 행인을 주눅 들게 하지도 않는다. 세월에 지치고 늙어가서 더 마음이 가는 절, 그게 화암사다. /최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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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16 10:00

[전북의 문학 명소] 8. 삼례·춘향·혼불, 오로지 문학의 향연

△문학에 진심인 삼례문학기행 딸기, 순대국밥, 닭튀김, 삼례문화예술촌, 삼례역참, 만경강 등 내세울 것이 많은 삼례의 바탕에 문학이 있다. 삼례의 역사·문화 콘텐츠는 다양한 문학 자원들이 돼 시와 소설, 희곡과 수필로 탄생하며 사람을 끄는 동력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동학농민혁명이다. 1892년 11월 3일 동학 교단이 주관한 집회가 삼례 역참(현재 삼례동부교회)에서 열렸다. 이날 동학교도들은 동학의 창시자인 최제우(1824∼1864)의 사면복권과 동학에 대한 공인(公認), 동학교도에 대한 침탈금지를 요구했다. 전주성 함락 후 부임한 전라감사가 머물며 정무를 관장한 곳도, 전봉준(1955∼1895) 장군이 1894년 9월 10일 대일항쟁을 준비하며 대도소를 설치한 곳도 삼례다. 역참이 있는 삼례는 도로가 사방으로 통하는 지리적 요충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례에는 삼례집회와 삼례봉기를 기념하기 위한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역사광장’이 있으며, 송기숙(1935∼2021)의 소설 「녹두장군」 제2권 <분노는 하늘을 찌르고>에서 ‘삼례대집회’와 제11권 <팔도로 번지는 불길>에서 ‘다시 삼례로’에 삼례에 모인 백성의 진솔한 삶과 분노와 도탄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삼례는 전라 좌우도의 길이 합쳐 한양으로 향하는 삼거리였다. 따지고 보면, 진산이나 금산을 거쳐 충청좌도로 가는 길도 여기서 나뉘니 삼거리가 아니고 사거리인 셈이었다. 그래서 삼례에는 전라도에서 가장 큰 역이 있었다. 장도 전주 다음으로 크게 섰다. (중략) 9월 14일. 두령들이 삼례로 모였다. 이번에는 광주 손화중도 왔다. 지난번에 모였던 두령들을 비롯해서 30여 고을 4,50명이 모였다. 몇 고을 두령들은 젊은이들을 데리고 왔다. 지금 와 있는 젊은이들과 대거리를 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송기숙의 장편소설 「녹두장군」 문학과 관련한 문화시설들도 생겼다. ‘삼례는 책이다’라는 문장을 앞세운 그림책미술관은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그림책을 내건 미술관으로 2021년 문을 열었다. 삼례책마을문화센터는 오래되고 낡은 양곡 창고를 개조해 잊혀 가는 고서적을 다시 숨 쉬게 했다. 북갤러리, 북하우스, 책마을센터, 책박물관으로 구성됐다. 삼례문화예술촌 자리도 동화로 탄생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일제가 수탈을 위해 창고를 지으면서 맹꽁이와 금개구리가 사라진 곳. 유수경은 이 이야기를 그림책 「한내천에 돌아온 맹꽁이와 금개구리」에 담았고, 완주연극협회는 가족뮤지컬 ‘삼례, 금와의 꿈!’으로 각색해 역사의 현장인 삼례문화예술촌 공연장에서 선보였다. 완주향토예술문화회관에서는 완주군을 소재로 한 다수의 창작극이 무대에 오른다. 삼례는 비비정·삼례시장·삼례역·우석대학교를 비롯해 크고 작은 공간과 작고 사소한 것까지 문학이 되고 있다. 이곳에서 대학을 다니며 삼례와 인연을 맺은 김헌수·문병학·송하선·신병구·안도현·유강희·이병초·장현우·정양·진창윤 등이 삼례를 소재로 한 작품을 쓰며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민족의 연인을 만나는 춘향문학기행 남원에는 춘향의 사연이 얽혀 있는 곳이 많다. 전주에서 완주와 임실을 거쳐 남원으로 들어오는 17번 국도 이름부터 ‘춘향로’다. 그 길에서 먼저 행인을 반기는 건 한양으로 떠나는 몽룡과 춘향이 애통절통 이별했다는 오리정 이별고개. 감옥에 갇힌 춘향이 ‘쑥대머리’에서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 낭군 보고지고 오리정 정별 후로 일장서를 내가 못 봤으니’ 하며 눈물바람한 곳이다. 한양으로 떠나는 몽룡을 바라보며 눈물깨나 흘렸다는 ‘눈물방죽’이 옆에 있고, 몽룡을 향해 뛰어가다가 버선이 벗겨졌다는 ‘버선밭’이 가까이 있다. 「춘향전」의 근원설화 중 하나인 박석티설화에서 못생겼다는 이유로 이도령에게 버림받은 춘향을 불쌍하게 여긴 남원 사람들이 이도령이 떠난 고개에 그녀를 장사 지냈다는 ‘박석티’도 그 옆이다. 남원에서 전주로 향하는 이 고개를 사람들은 ‘춘향고개’, ‘오리정 이별 고개’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남원 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면 광치동과 사매면의 경계인 곳에 「춘향전」에서 ‘박석고개’로 나오는 ‘이도령고개’가 있다. ‘이도령고개’를 지나는 터널 이름은 ‘춘향터널’이다. 춘향의 이야기가 더 현실감 있게 느껴지는 것은 두 사람의 사랑이 싹트기 시작한 광한루가 남원 한복판에 있기 때문이다. 광한루원은 황희(1363∼1452)가 선대의 서재를 ‘광통루’로 새로 짓고, 정인지(1396∼1478)가 ‘광한루’라 이름 짓고, 견우와 직녀가 칠월칠석날 은하수 오작교를 건너 만난다는 등 다양한 사연이 있는 정원인데, 춘향전이 이곳을 배경으로 삼고 난 후, 춘향과 관련된 여러 유적이 들어섰다. 요천 건너 춘향테마공원에는 철저한 고증을 거쳐 세워진 춘향마을이 있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뎐>과 드라마 <쾌걸춘향>을 촬영한 곳이다. 사부작사부작 걷다 보면, 춘향을 소재로 한 여러 시편이 새겨진 시비들도 볼 수 있다. 지리산 정령치로 향하는 길목인 구룡계곡(육모정) 입구에는 ‘성옥녀지묘’라고 쓰여 있는 춘향묘가 있다. 매년 봄에 펼쳐지는 춘향제는 연륜이 깊은 세계적인 사랑 축제다. 사랑과 절개의 상징인 춘향을 기리기 위한 이 전통문화축제는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우리나라의 가장 오래된 축제다. 남원 땅은 어디든 춘향의 무대다. 전반부는 봄날 햇살같이 눈 부시고, 후반부는 가을 강물처럼 차고 명징한 우리 시대의 걸작 춘향전. 봄이면 지리산 운봉에 화사한 철쭉이 피어나고 노고단의 부드러운 녹음과 운해가 펼쳐지는 곳. 여행객의 마음에는 벌써 춘향이 웃음 같은 봄바람이 살랑거린다. △혼불문학기행 남원 사매면을 주요 배경으로 한 최명희(1945~1998)의 「혼불」은 1930~40년대 몰락하는 종가를 지키는 종부 3대와 이씨 문중의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거멍굴 사람들의 삶을 그린 대하소설이다. 한국인의 생활사와 풍속사, 의례와 속신의 백과사전일 뿐 아니라, 우리 문화 전승의 전범으로 불린다. 설화와 민요, 무가, 속담 등이 널리 인용돼 있고, 무당굿과 점복, 풍수, 동제, 삼신, 조상단지, 속신 등 민속신앙의 유래와 이치와 의미가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풍물과 판소리, 노래, 놀이도 두루 등장한다. 관혼상제를 중심으로 한 일생의례와 정월 대보름과 단오 등의 세시풍속, 취락과 모듬살이의 모습, 생활관습, 종가와 종부 등의 친족조직 등의 사회상 역시 실감 나게 그려져 있으며, 각종 살림살이와 민구, 의식주 생활, 두레와 같은 농사 관행 등에 관한 정보도 만만치 않다. 심지어 염료 제조법, 옷감의 때와 얼룩을 빼는 갖가지 세탁법 등 한국인 생활의 모든 면모를 지극 상세하게 구성해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 바탕이 남원을 비롯한 전라도다. 먼동이 틀 때/ 눈부시게 기지개를 켜던/ 당신의 모습 보여 주옵소서/ 임이시여 사랑이시여/ 노적봉을 바라보던/ 당신의 다사로운 눈빛으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 혼불의 이야기를/ 후손으로 이어갈/ 아름다운 남원 땅/ 여기 발길/ 머무는 이들에게/ 길이길이/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정군수 시인의 시 「그임의 하늘 아래서」 혼불문학기행은 「혼불」을 디오라마 형식으로 소개한 혼불문학관과 청암부인이 마을 사람들과 만들었다는 청호저수지, 효원이 신행을 오고 강모가 전주와 만주로 떠나던 구 서도역 영상촬영장에 그치지 않는다. 「혼불」을 펼치면 걸음을 재촉하는 꽤 많은 이야기가 있다. 놀부와 흥부 형제 이야기(흥부마을), 왜장 아지발도를 물리친 이성계 장군 이야기(황산대첩비), 만복사지에서 탑을 돌던 양생의 이야기(만복사지), ‘사천왕의 전형’이라고 평한 완주의 송광사, 옛 양반가 고택을 세밀하게 묘사한 임실 둔덕마을의 이웅재고가 등도 꼭 살펴야 한다. 특히,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 춘성정 종가’인 이웅재고가는 작가가 작품을 쓰면서 노봉마을의 종갓집뿐 아니라 이웅재고가의 안채·사랑채·행랑채·대문채·사당·솟을대문 등 집 구조와 돌담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살펴 작품에 묘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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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10 10:00

[전북의 문학 명소] 7. 문학에 담긴 소리꾼의 삶

삶의 다양한 밑그림들이 판소리의 바탕이 된다. 수궁가·심청가·적벽가·춘향가·흥부가 등 판소리 다섯 바탕은 어느 특정한 예술가가 어느 날 갑자기 창작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판을 거듭하며 여럿이 어우러져 이뤄냈다. 인생의 희로애락이 쌓여 풀어지고 익고 삭아야 혼이 담긴 사설을 담을 수 있고, 눈이 부시게 서러운 자기 수련을 제대로 겪어야 좋은 소리를 얻을 수 있다. 문학과 판소리는 하나다. 남원시·순창군·완주군·임실군에는 판소리와 관련된 곳이 많다. 광한루원, 남원고전소설문학관, 변강쇠백장공원, 오리정·버섯밭, 춘향묘, 춘향테마파크, 흥부마을(아영면·발복지), 흥부마을(인월면·태생지)은 판소리 다섯 바탕의 배경지이고, 구룡계곡(국창권삼득유적비), 송흥록·박초월 생가, 용진읍 원구억마을(권삼득 생가·묘역·소리굴)은 명창과 관련이 깊다. 국립민속국악원, 안숙선명창의여정, 춘향문화예술회관, 순창국악원, 완주향토예술문화회관, 필봉문화촌은 판소리가 다양한 매체로 변화하며 시민을 만나는 현장이다. △판소리 동편제의 탯자리 운봉읍 비전마을 남원의 풍류는 판소리 동편제의 탯자리라는 자부심에서 시작된다. 남원은 국악의 본거지라 할 만큼 수많은 명인과 명창이 나왔다. 그 시작은 판소리사에 가장 뚜렷한 발자국을 남기며 철종 10년(1859) 정삼품 통정대부의 벼슬을 제수받은 송흥록과 송광록, 송우룡, 송만갑(1865∼1939) 가문이다. 지리산 아래 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은 동편제 판소리의 창시자인 송흥록이 태어난 곳이며, 명창 박초월(1917∼1983)이 성장한 소리의 고향이다. 송흥록의 아우로 한때 형의 고수로 지내다가 소리를 연마해 형에 버금가는 명창이란 소리를 들은 송광록도 이 마을에서 태어났다. 판소리사에서 가장 많은 제자를 길러낸 송만갑은 구례 출신이지만, 송광록의 손자이니 이 마을과 무관하지 않다. 박초월 명창은 13살에 성악의 묘를 체득해 명창이 된 전설적인 인물이다. 남원, 그중 운봉은 말 그대로 ‘국악의 성지’다. 동편제 명창들의 여러 이야기는 윤영근의 장편소설 「동편제」(삼신각·1993)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4대를 이어온 가업인 한의사로 일하면서도 소설가의 삶 또한 소홀함 없이 꾸려온 윤영근은 수필 「작가에게 고향은 무엇일까」(『월간문학』 2021년 11월호)에 ‘중학교 시절 어렴풋이 장차 글을 쓰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꿈을 간직한 이후 70년 세월을 늘 글감을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라고 고백하며 소리꾼들과의 인연을 밝혔다. 어린 시절 그의 집 사랑채는 소리꾼들의 사랑방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임방울·송만갑·이화중선 같은 소리꾼이 찾아와 며칠씩 머물다 갔다. 소리꾼이 오면 마당에서는 자연스레 소리판이 벌어졌다. 그때 들었던 명창들의 소리는 그에게 <쑥대머리> 한 대목을 흥얼거릴 수 있게 했고, 소설 「동편제」와 「각설이의 노래」, 「가왕 송흥록」, 「이화중선」 등을 쓸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 목청을 틔우려고 피를 토하며 독공을 했던 얘기며, 창극단 공연을 다니다가 불온한 대목을 불렀다 하여 경찰서에 끌려가 일본 순사에게 모진 고문을 당한 얘기들은 그대로 내 소설의 소재가 되었다. (중략) 동편제의 가락을 '지리산 천왕봉에서 집채만 한 바위가 굴러 내려오는 소리'로 비유하고 있다. 어쩌면 남원이 동편제의 본향이 된 것도 지리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지리산의 우람한 산세가, 골짜기마다 숨어 있는 크고 작은 폭포가 수많은 명창들을 길러 냈는지도 모르겠다. 지리산의 넉넉한 품 안에서 절차탁마하여 명장으로 우뚝 선 소리꾼들은 또 내 소설 속의 주인공이 되었으니, 지리산은 내게 얼마나 고마운 산인가. 남원의 동편제, 동편제를 부른 남원 출신의 소리꾼들, 그리고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명창을 길러낸 지리산은 내 소설 속의 또 다른 주인공이 아닐 수 없다. ∥윤영근의 수필 「작가에게 고향은 무엇일까」 작가는 고향의 산, 들, 강,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남겨야 하며, 그것이 고향에 보은하는 길이라고 말하는 작가 윤영근. 그의 소설들을 읽으면 <춘향가>나 <흥보가> 한 대목은 흥얼거릴 줄 알고, 젓가락 장단일망정 고수 흉내를 낼 줄 알며, 송흥록이 <귀곡성>을 부르면 귀신이 화답했다는 일화 하나쯤은 꺼내놓을 줄 알게 된다. △숱한 명창을 배출한 판소리의 고장 순창 순창은 김세종·박유전·장재백·장판개 명창을 배출한 판소리의 고장이다. 복흥면 서마리 마재마을 출신인 박유전(1834~1904)은 ‘서편제의 아버지’로 불린다. 대원군이 그의 소리에 ‘제일강산’(천하에서 제일)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무과 선달의 명예직 벼슬을 내리기도 했다. 동계면 가작리 쑥대미 출신이라고도 하고, 팔덕면에서 나서 인계면에서 살다가 죽었다고도 전하는 김세종(1825~1898)은 신재효의 집에서 판소리 선생을 지내면서 장재백·김찬업·이동백·이선유 등 많은 명창을 배출했다. 최초의 여성 명창 진채선을 가르친 것도 김세종일 가능성이 크다. 그의 수제자로 적성면 운림리 매미터 출신인 장재백(1849~1906)은 순창과 남원 일대의 동편제 법통을 전승했으며, 일제강점기 최고의 여성명창인 이화중선·이중선·박록주 등이 적성면에서 그에게 소리를 배웠다. 금과면 연화리 삿갓데마을 출신인 장판개(1885~1937)는 송만갑의 제자 중 첫손에 꼽힌다. 1904년 고종황제에게 참봉 벼슬을 하사받기도 했다. 이들 명창이 뿌린 소리의 맥은 순창국악원에서 잇고 있다. 국악원은 판소리·민요·난타·창극·무용·가사‧가곡·농악 등 국악의 전 분야를 아우르는 강의로 국악 동호인을 넓혀가고 있다. 순창 출신 판소리연구가 최동현이 쓴 『순창의 판소리 명창』(민속원·2023)은 김세종, 박복남, 박유전, 배설향, 성점옥, 이화중선, 장득주, 장득진, 장영찬, 장재백, 장판개, 주덕기, 한애순 등 스무 명에 가까운 순창 지역 판소리 명창을 소개하면서 우리 판소리사에서 순창의 역할을 가늠하게 했다. 그가 2011년에 낸 『소리꾼-득음에 바치는 일생』(문학동네)은 소리꾼이 득음하기까지의 혹독한 과정을 김세종·박유전·장재백·장판개 명창의 삶을 빗대 들려준다. △조선 최초의 ‘비가비 명창’ 권삼득 완주군 용진면 구억리는 최초의 ‘비가비 명창’인 권삼득(1771∼1841)이 나고 자란 곳이다. 동네 굿판에서 판소리에 매료된 그는 글공부를 팽개치고 소리 공부에만 매달렸다. 그 이유로 죽을 고비를 맞지만, 멍석에 휘말린 그는 “소리 한마디만 하고 죽게 해 달라!”라고 청했다. 아 말이 판소리지, 그게 광대아닝가아, 광대. 그 집안으 아부지 형님들이 양반 가문에 일대 치욕이라 해서, 판소리 공부를 아조 포기허게 헐라고 왼갖 방법을 다 써봐도 끝내 안 듣거등. 지금이라고 머 달러진 것도 없지마는, 그때는 더 했을테지맹. 집안에 광대 나먼 온 집구석 쑥대밭 되는 것으로 안 알었능가잉? ∥최명희의 장편소설 「제망매가」 마지막 가는 길에 하나 소청이 있노라 허드랑게. 그게 뭔고 허니 가조 일곡을 부르고 죽겄노라 허는 거 아니겄어? 기왕지사 직이기로 작은 혔으니 죽는 사람 소원 하나 못 풀어주랴 허락을 허고 모두 빙 둘러서 듣는디 거적 밑에서 새나오는 가조 일곡이 그만 사람으 오만간장을 다 녹이지 않았더라고? 울음바다가 됐당게로. 그래 하도 가긍허여 문중이 다시 의논을 혔지야. 족보에서 활적하고 내쫓기로 혔다이.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 중에서 거적에 덮여 부르는 <춘향가> 중 십장가. 슬프고 애달픈 그의 소리에 감동한 문중 사람들은 그를 죽이는 대신 족보에서 제명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 길로 권삼득은 완주의 위봉폭포와 남원의 구룡폭포 등 세상을 떠돌며 설움을 떨치고 소리 공부를 했다. 소리 때문에 가문에서 쫓겨난 그는 쏟아지는 물줄기를 보고 들고 맞으며 세상사 설움을 떨쳤다. 폭포의 굉음에 맞서 목에 시퍼런 핏줄을 세우고 온몸의 기운을 상청으로 뽑아냈다. 신재효(1812∼1884)가 <광대가>에서 높은음을 길게 질러 내는 권삼득의 소리를 ‘천층절벽 불끈 소사 만장폭포 월렁궐렁 문기팔대 한퇴지’라 하며,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에 비유한 것은 이 때문이다. 권삼득은 노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고단한 소리꾼의 삶을 끝냈다. 용진면 구억리에 안동권씨 집성촌과 사당이 있고, 용진면사무소에서 구억리 방향으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의 나지막한 산에 그의 무덤이 있는데, 무덤 옆에 ‘소리구멍’이라고 불리는 조그마한 구멍이 뚫려 있다. 더질더질. /최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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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09 10:00

[전북의 문학 명소] 6.문학과 미술의 다정한 동행

남원시·순창군·완주군·임실군에는 문학과 미술이 자연스럽게 어울린 곳이 여럿이다.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의 ‘김병종’은 화가이면서 극작가이고, 순창군 박덕은미술관의 ‘박덕은’은 화가이면서 시인이다. 순창 구미마을에 터 내린 송만규 화백은 섬진강을 화폭과 수필집에 담았고, 사진작가 이흥재는 순창과 임실의 오일장에서 만난 사람과 풍경을 사진수필집에 담았다. 광한루원 춘향사당은 춘향의 영정을 보관한 곳이며, 완주 그림책미술관과 삼례문화예술촌은 문학과 미술이 공존한다. △그림에 자연스레 스민 깊은 사유,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 김병종은 한국화의 현대화와 세계화를 이끄는 대한민국 대표 화가지만, 1980년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신춘문예에서 각각 미술평론과 희곡 부문에 당선돼 등단했으며, 30여 권이 넘는 평론집과 산문집을 출간한 문학인이다. 특히, 예술기행 산문의 백미로 꼽히는『화첩기행』(문학동네·2014) 연작(총 5권)은 시공간을 넘어 문화예술의 어제와 오늘을 만날 수 있다. 전국 각지의 인문정신과 예술혼이 씨줄과 날줄로 아름답게 수놓아 있으며, 모로코·튀니지·알제리·이집트 등 북아프리카의 독특한 색채와 예술성에 대한 섬세한 사유도 만날 수 있다. 전북과 관련된 이야기는 1권 ‘남도 산천에 울려 퍼지는 예의 노래’에 있다. △이매창과 부안―이화우 흩날릴 제 ‘매창뜸’에 서서 △이삼만과 전주―이 먹 갈아 바람과 물처럼 쓸 수만 있다면 △강도근과 남원―동편제왕이 쉰 소리로 전하는 사랑노래 △조금앵과 남원―달이 뜬다, 북을 울려라 △최명희와 남원―육신을 허물고 혼불로 타오른 푸른 넋 최명희 등이다. 나는 지금 소설의 무대가 된 남원의 혼불마을을 찾아갑니다. 푸른 들길로 철로가 이어진 작은 서도역을 지나자 풍악산 날줄기에 매어 달린 것 같은 노봉마을이 보입니다. 오십 년 전만 해도 밤이면 산을 건너가는 늑대 울음이 예사로이 들리곤 했다는 곳입니다. 소설 속에서처럼 슬픈 근친 간의 사랑이 일어났을 법도 하게 50여 호의 마을은 겹겹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김병종의 인문기행서『화첩기행』 작가는 개정판 서문에 ‘돌아보니 내 40대와 50대를 이 책과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었다. 문학이라는 가지 못한 또하나의 길에 대한 그리움과 회오 같은 것이 일종의 해원처럼 제3의 형태로 발화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라며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놓고 밤이 이슥하도록 고치고 또 고치던 시간은 나를 다시 문학청년 시절로 되돌려 놓았고 그 황홀한 기억이야말로 이 일을 계속하게 한 동력이 아니었을까 싶다.’라고 써 놓았다. 『화첩기행』 연작을 읽고 미술관에서 김병종의 미술작품을 만나면 그림마다 자연스레 스민 그의 깊은 사유가 담긴 문장이 함께 떠오르며 가슴이 찬다. △섬진강 들꽃에게 말을 거는 곳, 구미마을 섬진강 물길을 수없이 걸으며 자연의 아름다움과 물이 건네는 곡절을 한지에 수묵으로 담고 있는 송만규 화백. 1980년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인간미를 좇던 그가 섬진강을 찾은 것은 1992년이다. 작가는 “정월 대보름날 시인 김용택 형네 집에 들러 어머니가 해 주신 밤밥을 먹고 천담, 구담, 장구목, 구미를 거쳐 섬진강 상류를 걸었다.”라면서 “아마도 그때 이 강이 내 가슴에 들어온 듯하다.”라고 말했다. 2002년부터는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순창 무량산 자락 구미마을에 둥지를 틀고 강과 그 어귀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17번 국도를 따라가 본다. 거기서 만나는 섬진강은 늘 조잘조잘 낮게 흐른다. 강물이 흐르고 흘러 이르는 그 길에 한없이 포근한 어머니 같은 산, 지리산이 있다. 지리산 품 안의 산길 야트막한 언덕에는 서너 포기 붓꽃이 피어있다. 보랏빛 비녀를 꽂은 듯 고풍스런 자태다. ∥송만규의『섬진강, 들꽃에게 말을 걸다』 송만규의 그림은 웅장하다. 특히, 21m 길이의 <새벽 강>과 24m 길이의 <언 강>은 수묵의 절정을 보여준다. 골짜기와 골짜기를 굽이굽이 낮게 흐르며 뭇 생명을 살리고, 사람을 깃들게 한다. 스스로 풍광과 자연을 만드는 강물의 행행지도(行行之道)를 겸애 정신이라 사유하며 자신도 강물이 된다. 풀 한 포기, 돌멩이 한 개까지 담고 싶은 마음에 강가를 살피다 발견한 것이 굽이쳐 흐르는 강물 주위에 소담히 피어난 들꽃이다. 이름도 알 수 없는 새끼손톱만 한 꽃들. 작고 여린 생김새의 꽃들이 온갖 것에 밟히고 거센 바람에 휘둘려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싹을 틔우는 모습에서 고귀한 생명력을 느꼈다. 척박한 시멘트 틈에서도 피어나는 그 생명이 민중의 정신과도 닮았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게 이들을 화폭에 옮겼다. 꽃의 생김새, 학명, 꽃말 등에 영감을 얻어 생각나는 단어와 문장은 글로 옮겼다. 좁쌀만 한 꽃들이 닥지닥지 매달린 모양의 들꽃, 꽃다지를 보면서 어디에서도 함께 몸 비비며 사는 우리네 삶을 떠올렸다. 거친 들판에서도 꼿꼿하게 꽃을 피우는 노란 민들레는 독재에 항거하고 자기 몸을 희생해 이 땅에 민주주의 씨를 뿌린 열사들과 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쌓인 그림과 글 101편은『섬진강, 들꽃에게 말을 걸다』(비앤씨월드·2016)에 담겼다. 2022년에는 섬진강 전체를 높은 곳에서 보며 잡아낸 여덟 장면의 사계를 서른두 장의 대형 화폭에 담은 그림과 강의 덕성과 품성을 느끼며 적은 작가의 사유를『강의 사상』(거름·2022)에 담았다. 부제는 ‘다시 붓질, 겸애의 순간들_ 섬진팔경’이다. 두 권의 책 모두 여리면서도 강하고, 웅장하면서도 소박한 섬진강의 심성을 보여준다. 섬진강과 더불어 사는 마을들의 속내를 닮았다. /최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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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03 10:00

[전북의 문학 명소] 5.옛이야기에 스민 선인의 마음

모든 곳에 이야기가 있다. 그중 으뜸은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의 삶과 소망이 깃들어서 전해 내려온 전래동화다. 대부분 권선징악 구조로 이뤄져 있으며, 주인공이 시련과 고통을 이겨내며 자신의 꿈을 성취하는 내용이다. 이야기에 담긴 삶의 철학과 가치는 우리 겨레를 비롯한 세계인이 보편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들이 전승된다. 각박해질수록 전래동화를 더 귀하게 여겨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전래동화 속 마을도 늘 우리 곁에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임실 ‘오수의 개’ ‘오수의 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개다. 산불로부터 술에 취해 잠든 주인을 구하기 위해 냇물에 몸을 적셔 주위 들풀에 비벼 불길을 막고 자신은 지쳐서 죽었다는 이야기의 주인공. 이 이야기는 전라도 안찰사 출신인 최자(1188∼1260)의『보한집』(1254)에 처음 실렸고, 1911년 간행된 보통학교의 교과서『조선어독본』과 1973년 간행된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의견으로 소개되면서 전 국민이 다 아는 이야기가 되었다. 지금도 이준연·정하섭 등 여러 작가가 동화로 각색해 독자를 만나고 있다. 오수의견비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오수 주민들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짐작된다. 본래 설화의 무대인 오수면 상리마을 앞 오수천 가까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하천 정비 공사를 하면서 사라졌다가 1939년 마을 유지들이 현상금 20원을 걸고 찾아냈고, 현 위치인 오수시장 옆 원동산공원으로 옮겨졌다. 오수의견비각 현판 글씨는 무주군 출신으로 국무총리를 지낸 황인성(1926∼2010)이 썼다. 의견비 바로 곁에는 귀가 늘어지고 적당히 긴 털을 가진 의견상이 서 있으며, 공원 한쪽에는 9기의 선정비들이 있다. 1971년 12월 2일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1호로 지정되었다. 개 오(獒), 나무 수(樹)를 쓰는 오수면의 지명 역시 그 개의 무덤에 꽂은 지팡이가 큰 나무로 자랐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됐다. △완주 앵곡마을에서 읽어야 제맛인 콩쥐팥쥐 한민족에게 가장 친근한 전래동화 「콩쥐팥쥐」는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로 시작되는 꿈결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조선 이조 중엽 시절에 전라도 전주 서문 밖 30리쯤 되는 곳에 한 퇴리가 있으니, 성명은 최만춘이라 하였다. (중략) 열 달이 차자 갑자기 그윽한 향기가 방안에 감돌며 문득 한 옥녀를 낳았으니, 딸아이의 이름을 콩쥐라 지어 애지중지 길렀다. ∥최고본(最古本) 대창서원판『대서두서전(콩쥐팥쥐전)』(1919년) 콩쥐팥쥐 이야기는 전국에 걸쳐 분포하며, 서양의 「신데렐라」 이야기도 유형이 유사하지만, 이야기의 시작 부분에 ‘전주 서문 밖 30리쯤 되는 곳’이라는 구체적인 지역적 배경이 언급돼 완주군 이서면 앵곡마을과 그 일대가 ‘콩쥐팥쥐의 고향’이 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었다. 그래서 이서면의 도서관 이름은 ‘콩쥐팥쥐도서관’이며, 전주시에서 이서면을 거쳐 김제시로 이어진 도로는 ‘콩쥐팥쥐로’가 되었다. 완주향토예술문화회관에서는 ‘콩쥐팥쥐’를 소재로 한 다양한 장르의 공연을 무대에 올린다. 모두 ‘전주성 서문 밖 30리’라는 첫 문장이 낳은 결과물이다. △놀부와 흥부가 화해하고 행복을 찾은 남원 흥부마을 남원은 고전소설문학관이 있을 만큼 옛이야기가 차고 넘치지만, 놀부·흥부 형제 이야기가 첫손에 꼽힌다. ‘흥부’를 앞세운 흥부마을도 두 곳이다. 아영면 성리 상성마을은 놀부에게 쫓겨난 흥부가 정착하고 제비 다리를 고쳐준 뒤 부자가 된 마을이라 ‘발복지’라 불리며 많이 알려졌다. 흥부가 배가 고파 쓰러졌다는 허깃재와 흥부가 허기로 쓰러졌을 때 흰죽을 먹여 살린 은인에게 논을 사주었다는 흰죽배미, 놀부가 흥부의 집을 찾아왔다가 화초장을 지고 건넜다는 개울 노디막거리, 흥부와 놀부가 살았다는 장자골 등이 지척이다. 마을 사람들은 「흥부전」이 조선 영·정조 때, 이 마을에서 많은 덕을 베풀며 살았던 박춘보 이야기를 근거로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마을 뒷산에는 그의 무덤이 있고, 주민들이 해마다 추모제를 올리는 망제단이 마을을 굽어보고 있다. 인월면 성산마을은 놀부와 흥부가 태어난 곳이다. 성산마을에는 이웃과 소작인을 괴롭혀 놀부의 모델이 된 박첨지가 살던 곳으로 박첨지네 텃밭과 서당 터가 있으며, 마을 앞 냇가에는 제비를 형상화한 연상교가 있다. 연비봉, 화초장 바위, 흥부네 텃밭 등 「흥부전」에 나오는 지명도 전해진다. 그러나 성산마을의 의미는 오히려 더 특별하다. 「흥부전」의 시작과 끝에 등장하는 성산마을은 고약한 성격의 놀부가 박을 타다가 쫄딱 망한 마을이 아니라, 개과천선해 동생과 주변 사람들을 살뜰히 여기며 사는 따뜻한 마을이기 때문이다. 최기우의 희곡 「시르렁 실겅 당기여라 톱질이야」에 가족의 화해와 화합을 부르는 남원의 소리와 그 의미가 쓰여 있다. △이야기에 담긴 뜻을 잇는 마음 남원 구룡계곡은 양반 출신 명창 권삼득(1771∼1841)이 득음한 곳으로 알려졌다. 권삼득은 제2곡인 북바위에 앉아 소리 한바탕을 한 뒤 옥룡추 계곡에 콩을 한 알씩 던졌는데, 한 가마가 다 없어졌을 때 비로소 득음했다는 일화다. 은적암터는 수운 최제우(1824∼1864)가 동학 경전인『동경대전』과 포교가사집인『용담유사』를 집필한 은적암이 있던 곳이다. 몽심재 고택은 1700년에 박연당이 지은 양반가 건물로, 김양오의 동화 「꿈과 마음이 담긴 집 몽심재」에 넓은 품으로 모든 사람을 반겨 맞은 몽심재의 모습이 세심하게 그려 있다. 변강쇠백장공원은 옹녀와의 사랑을 위해 장승을 뽑아 땔감으로 쓴 변강쇠가 벌을 받아 장승처럼 굳어서 죽었다는 「변강쇠전」을 소재로 만든 쌈지공원이다. ‘조선 팔도를 누비다 강쇠가 옹녀를 만나 이곳에 이르러 음양바위에서 운우지정을 나누며 장승들을 뽑아 땔감으로 쓰니 대방장승이 대노하여 팔도 장승을 이곳에 모이게 하여 강쇠에게 벌을 내린 곳으로 전해져 백장골로 불리어 온다네.’라는 공원의 안내 글이 무섭다기보다는 정겹다. 공원 옆을 흐르는 백장암 계곡에는 변강쇠와 옹녀가 놀았다고 전해지는 백장바위, 남녀의 성기 모양을 한 음양바위, 바위를 긁어 국을 끓여 먹으면 부부 금실이 좋아진다는 근연바위 등이 곳곳에 있다. 임실 운암강에는 낚시로 산삼을 낚아 어머니의 병을 고쳤다는 운암 이흥발(1600~1673)의 조삼대(釣蔘臺) 설화가 있다. 순창 삼인대는 1515년 김정(순창군수)·박상(담양부사)·유옥(무안현감)이 중종반정으로 억울하게 폐위된 단경왕후 복위를 위해 목숨을 걸고 상소문을 썼던 곳이다. 그 올곧은 정신을 잇는 마음은 계속 이어져 여러 문학인이 삼인대 정신을 문학 작품에 담았고, 순창삼인선양문화회는 2003년 순창의 300개 마을에서 2개씩 돌을 모아 절의탑(節義塔)을 세워 선인의 충절을 기렸다. /최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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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2.02 10:00

[전북의 문학 명소] 4. 돌에 새긴 마음, 문학비를 찾아서

△남원시의 문학비 시비·노래비·기념석 등 다양한 문학비가 공원과 문화시설, 마을 어귀 등 우리 가까이에 있다. 남원시·순창군·완주군·임실군 중 문학비가 가장 많은 곳은 남원시다. 교룡산국민관광지, 춘향테마파크, 호암시비공원에 시비들이 숲을 이뤘고, 구룡계곡, 만인의총, 변강쇠백장공원, 오리정, 유천마을, 정령치휴게소, 혼불문학관 등에도 각 공간의 특성에 맞춰 시비와 표지석 등을 세웠다. 교룡산국민관광지는 산책로 곳곳에 남원을 상징하는 작품이 돌에 새겨 있다. 고전소설 「춘향전」의 성춘향이 옥에서 들려준 「옥중시」와 이몽룡이 변사또 생일잔치에서 읊은 「어사시」, 임진왜란·정묘호란 때의 의병장 방원진(1577∼1650)의 시조 「애련곡」, 유천마을이 고향인 김삼의당(1769∼1823)의 시 「화만지」, 수지면 출신인 박항식(1917∼1989)의 시 「도라지 꽃」, 복효근의 시 「다시 밝혀 드는 동학의 횃불」 등이다. 교룡산(520m)의 허리를 타고 한 바퀴 돌아오는 둘레길에서 남원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으며, 유서 깊은 교룡산성·선국사·은적암터도 살필 수 있다. 임권택의 영화 <춘향뎐>(2000)과 TV 드라마 <쾌걸춘향>(2005)이 촬영된 춘향테마파크에는 고증을 거쳐 세워진 춘향마을이 있다. 이곳에는 「춘향전」과 남원을 소재로 한 시비들과 <남원의 애수> 노래비가 있다. 강은교의 시 「춘향이의 꿈노래」, 곽진구의 시 「오작교」, 길용숙의 시 「그리운 이몽룡」, 김동리의 시 「남원에서」, 김소월의 시 「춘향과 이도령」, 김영랑의 시 「춘향」, 박재삼의 시 「자연-춘향이 마음 초(抄)」, 복효근의 시 「춘향의 노래」, 성춘향의 시 「옥중시」, 양성지의 시 「광한루 예찬 시」, 진복희의 시 「춘향연가」 등이다. 사부작사부작 걷다 보면 사랑가 한 대목 절로 흐른다. 호암시비공원은 덕과면 만동마을 들머리에 남원과 연관 있는 조선 시대 선비 18인의 시를 돌에 새겨 만든 쌈지공원이다. 1789년(정조 13년) 창건된 호암서원이 가까이 있다. 향교동 유천마을에는 조선 시대 유일한 부부 시인인 담락당 하립(1769∼1830)과 김삼의당의 시비가 있다. 하립은 문집『담락당집』을 남겼고, 가난한 살림을 꾸리는 여염집 여인인 김삼의당은 글공부를 위해 먼 곳에 있는 남편에 대한 애정과 기대, 아이들의 육아와 시집살이, 일상 속 크고 작은 일들과 자연의 멋을 소재로 260여 편의 한시와 산문을 남겼다.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날 태어났다고 알려진 부부의 사연은 표성흠의 장편소설『교룡』에서 더 애틋하다. △순창군의 문학비 편백으로 가득한 국립회문산자연휴양림 ‘해원의 숲’은 김소월·김용택 시인의 시가 있는 산책로다. 김소월의 시 「산유화」가 새겨진 시비가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고, 산책로를 따라 나무 팻말에 담긴 「어느 날」, 「단 한 번의 사랑」, 「산벚꽃」 등 김용택 시인의 시가 마음의 휴식을 선사하며 걸음을 가볍게 한다. 귀래정 체육공원에는 순창읍 가잠마을 출신으로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라던 권일송(1933∼1995)의 시 「반딧불」이 새겨진 시비가 ‘한 방울의 술’처럼 서 있다. ‘찢기운 조국’에서 ‘미쳐 돌아가는 용녀의 춤을 멎게 할 천동의 한바탕’을 기다리던 그는 많은 밤, ‘비에 젖는 공화국 헌법 제1조’를 꺼내 들고 ‘절망의 술잔’을 기울였다. 온갖 비리가 난무하는 황량한 세상. 시인에게 술은 내일이 보이지 않는 시대에서 어둠을 견디는 마지막 묘약이었을 것이다. 복흥면 동산마을에 조선 성리학의 마지막 거장인 노사(蘆沙) 기정진(1798∼1879)의 유허비와 시비가 있다. 높이 1.8m의 유허비엔 그의 일대기와 사상을, 시비엔 그가 8살 때 지었다는 한시 「내장산」을 새겼다. △완주군의 문학비 문화예술공간 여산재는 돌에 새겨 펼친 시의 숲이다. 2003년부터 김남곤·정군수·조미애·황금찬·허소라의 시와 강현욱·김우종·김형석·박승·안숙선·정세균·지정환·최불암·함종한 등 유명인의 어록을 돌에 새겨 시비림(詩碑林)을 공들여 만들고 있다. “만발하는 꽃에 향기가 없다면 진실과 가치가 무너지듯이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분과 예술의 한 장르를 일궈 내겠다.”라는 것이 여산재를 설립한 국중하 수필가의 의지다. 동학농민혁명의 역사에서 큰 위치를 차지하는 삼례에는 삼례집회와 삼례봉기를 기념하기 위한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역사광장’과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기념비’(삼례읍 삼례태평길 36-2)가 서 있다. 역사광장은 2003년 10월 10일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 완주지부가 주도해 조성했으며, 동학농민혁명봉기 기념비, 추념의 장, 대동의 장, 동학농민군 출진상 등을 갖춰 동학농민혁명 속 삼례의 역사를 공고히 했다. 송기숙(1935∼2021)의 소설 「녹두장군」에 삼례에 모인 민초의 삶이 생생하게 묘사됐다. △임실군의 문학비 임실에도 문학비가 많다. 임실문인협회에서 2008년 사선대 진입로 작은 동산에 세운 임실문학비는 임실 문학인들의 기세를 높이는 문학비다. 『임실문학』 제30호 발간을 기념하고, 협회와 회원들의 문운과 단결, 애향을 기원하며 최풍성의 시 「글 동산에 모여」와 임실문협 회원 104명의 이름을 새겼다. 문학비를 세우던 2008년에 48명의 이름을 새겼지만, 이후 회원이 늘면서 문학비 옆에 비석을 만들어 56명의 이름을 더 넣었고, 앞으로 활동할 회원들의 이름이 들어갈 여분까지 남겨놓았다. 사선대 조각공원에는 임실이 고향인 가수 최갑석(1938∼2004)의 노래 <38선의 봄>과 <고향에 찾아와도>의 노랫말을 새긴 노래비가 있다. 섬진강댐 수몰민의 서러움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요산공원 ‘망향의 탑’에는 김춘자의 시 「사라진 흔적 가슴에 새기며」가 새겨 있다. 임실 문학비의 성지는 진뫼마을에서 시작된다. 마을 앞 고추밭 가장자리에 ‘월곡양반 월곡댁/ 손발톱 속에 낀 흙/ 마당에 뿌려져/ 일곱 자식 밟고 살았네’라고 새겨진 작은 비석이 있다. 진뫼가 고향인 수필가 김도수가 2006년 부모님이 땀 흘리며 일구던 밭에 세운 것으로, 사람들은 이 비석을 ‘사랑비’라 부른다. 자식들은 비단길 걷게 하겠노라고 힘든 가시밭길 걸어오신 부모님의 깊은 뜻을 어찌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만, 여기 살아생전에 미처 다 드리지 못한 사랑을 조그마한 비에 새겨 기리려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가난했지만 일곱 자식들은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김도수의 수필 「월곡양반과 월곡댁에게 사랑비를 바칩니다」 중에서 수필집『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전라도닷컴·2015)에 실린 그의 글에서 식구들을 먹이고 키워준 논밭 다랑이 흙냄새가 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진뫼마을에서 천담마을에 이르는 섬진강길에는 「농부와 시인」, 「향기」, 「봄날」, 「사람들은 왜 모를까」, 「나무」, 「섬진강1」, 「섬진강3」 등 김용택의 시를 새긴 시비가 여럿 있다. 섬진강길을 따라 유유자적 걸으며 맑은 물살이 흘러가는 소리를 들으면 시와 삶과 풍경이 하나가 된다. 시비에 적힌 시를 소리 내 읽는 것만으로도 누구나 시인이 된다. /최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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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26 10:00

[전북의 문학 명소] 3. 문학을 만나는 문화시설

△문학을 앞세운 공간들 남원시·순창군·완주군·임실군의 다양한 문화시설 중 문학인과 문학 작품을 떠올릴 수 있는 곳은 16곳 정도다. 그중 남원시의 남원고전소설문학관과 혼불문학관, 순창군의 설공찬전테마관, 완주군의 그림책미술관과 삼례책마을문화센터, 임실군의 섬진강댐물문화관은 문학과 책을 앞세운 공간이다. 전라도 남원부에 살고 있던 한 노총각 양생이라는 사람이 일찍 부모를 잃고 결혼도 못 한 채 만복사 동쪽 골방에서 홀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김시습의 「만복사저포기」 전라도 남원에 최척이라는 젊은이가 일찍 어머니를 잃고, 홀로된 아비와 살았다. ∥간호윤 역, 「최척전」 (선현유음) 남원고전소설문학관에는 한국 문학사의 보고인 남원의 숱한 자랑거리가 있다. 「만복사저포기」, 「변강쇠전」, 「최척전」, 「춘향전」, 「홍도전」, 「흥부전」 등 남원을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에 담긴 구구절절한 사연을 소개한다. 「만복사저포기」 속 노총각 양생은 바라던 여인을 만나 대대손손 잘 살았는지, 죽을 고비를 수도 없이 넘긴 「최척전」의 옥영에게 장육존불이 “삼가 죽지 않으면 반드시 즐거운 일이 있으리라.”라고 했던 말의 의미는 무엇인지 고전소설문학관 문을 열면 알 수 있다. 남원고전소설문학관, 설공찬전테마관, 섬진강댐물문화관, 그림책미술관. (왼쪽부터 시계방향) 혼불문학관은 최명희(1945~1998)의 소설 「혼불」의 배경지인 사매면 노봉마을에 있다. 전시장에는 작가의 집필실을 재현해 놓았으며, 강모와 효원의 혼례식, 강모와 강실의 소꿉놀이, 액막이 연날리기, 효원의 흡월, 청암부인 장례식, 춘복이의 달맞이 등 소설의 주요 대목을 디오라마로 소개한다. 서도역, 청호저수지, 종갓집, 호성암 등 소설 속 공간도 지척이다. 설공찬전테마관은 순창군을 공간적인 배경으로 한 채수(1449∼1515)의 「설공찬전」을 담고 있다. 이 작품은 순창에 살던 설충란의 아들인 공찬이 죽은 뒤 혼이 돌아와 남의 몸을 빌려 이승에 머물면서 자신의 원한과 저승의 일을 들려주는 전기 소설로, 실존 인물과 허구 인물이 적절히 섞여 있어 이야기 속으로 쉽게 빠져들게 했다. 게다가 여성도 글을 알면 관직을 맡을 수 있고, 임금도 주전충(당을 무너뜨리고 후량을 창건한 중국의 장군) 같은 사람이면 지옥에 간다고 말하는 순창 설씨들의 기백도 느낄 수 있다. 테마관은 순창 설씨가 집성촌을 이룬 금과면에 2021년 문을 열었으며, 전시장에서는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묘와 생가터, 관련 유적도 알 수 있다. 「설공찬전」은 「홍길동전」(1612)보다 100년 앞선 최초의 한글 소설(혹은 한글 표기 소설)로 꼽힌다. 완주군 삼례읍에 있는 그림책미술관은 우리나라에 처음 생긴 그림책특화미술관이다. 2층 건물인 미술관은 ‘빅토리아 시대 그림책 3대 거장전’ 관람을 비롯해 다양한 체험 활동까지 할 수 있다. 전시장 곳곳 동화 속 주인공을 본뜬 인형들은 단조로울 수 있는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으며 관람객을 동심의 세계로 이끈다. 삼례책마을문화센터는 10만 권 이상의 헌책을 보유한 헌책 애호가들의 성지다. 오래되고 낡은 양곡 창고를 개조해 잊혀 가는 고서적을 다시 숨 쉬게 했다. 헌책이 빽빽하게 꽂힌 책장 사이를 걸으면 마른 낙엽이 깔린 숲길에 와 있는 상상에 젖는다. K-water 섬진강댐관리단에서 운영하는 섬진강댐 물문화관은 섬진강의 역사와 옥정호의 아름다운 비경을 알리기 위해 2015년 임실군 운암면에 세워졌다. 1층에서는 옥정호 이야기와 섬진강문화지도로 강의 풍경을 말하고, 2층 전시장은 김용택의 시 「섬진강」, 박경리(1926∼2008)의 소설 「토지」, 최명희의 소설 「혼불」 등 섬진강 물길에 담긴 굵직한 문학 작품을 소개하며 강에 얽힌 역사·문화·사람을 들려준다. 일제강점기에 추진된 구 운암댐과 섬진강댐 건설 과정에 대한 숨은 이야기도 만날 수 있다. △문학 작품을 오감으로 만나는 공간들 남원시의 국립민속국악원과 춘향문화예술회관, 완주군의 완주향토예술문화회관, 임실군의 필봉문화촌은 공연과 전시를 앞세운 공간으로, 연극·창극·국악뮤지컬 등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한 다양한 창작 무대를 만날 수 있다. 국립민속국악원은 전통음악문화를 호흡하고 느끼며 새로운 음악문화를 창조하기 위해 마련된 국립민속예술기관이다. 1997년 문을 연 공연장 예원당(560석)과 예음헌(100석)은 소리의 맥을 잇는 다양한 공연을 올리며 과거와 미래가 민속 음악을 통해 만나고 한데 어우러지는 자리가 되고 있다. 또한, 민속악 자료를 발굴하고 학문 정립을 위한 연구 활동에 힘써『대한민국 창극사』,『이야기로 듣는 남원국악사』,『전라도의 가락』,『전북의 허튼가락 산조』,『지리산 자락의 민요』,『호남춤의 맥 脈』 등 많은 학술자료를 내고 있다. 자료들은 국립민속국악원 누리집에서 내려받을 수 있다. 춘향문화예술회관은 남원 문화예술 활동의 중심이다. 공연장에서는 남원시립국악단의 창극 <만복사저포기>·<정유년 남원성싸움>·<여류명창 이화중선>·<춘향 아씨>, 가무악극 <남원뎐>, 창무극 <남원골이야기>, 국악뮤지컬 <시집가는 날>·<춘향 네 개의 꿈>, 퓨전창극 <소리꾼 청향>, 가족국악뮤지컬 <달래 먹고 달달, 찔래 먹고 찔찔> 등 남원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한 다양한 창작극을 무대에 올리며 도시의 역사를 켜켜이 쌓아 가고 있다. 춘향문화예술회관, 국립민속국악원, 필봉문화촌, 완주향토예술문화회관. (왼쪽부터 시계방향) 완주군 삼례읍에 있는 완주향토예술문화회관도 완주를 소재로 한 다양한 창작극을 무대에 올리고 있다. 경천면 화암사의 창건설화를 바탕으로 한 연극 <비밀의 꽃 ‘화암우화전’>, 용진면 출신 명창 권삼득의 이야기를 다룬 창극 <내 소리 받아 가거라>, 삼례면의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리극 <삼례, 다시 봄!>, 용진읍 봉서사에 부도가 있는 진묵대사를 소재로 한 연극 <천년을 뜨고 지면-진묵, 노닐다 간 자리> 등이다. 특히, 이서면 앵곡마을을 배경으로 한 고전 「콩쥐팥쥐」는 민속인형극 <콩쥐 팥쥐 꼭두각시 놀음>과 창작뮤지컬 <新 콩쥐팥쥐뎐>, 연극 <콩쥐팥쥐뎐> 등 다채로운 무대극으로 관객의 마음을 콩닥콩닥 뛰게 했다. 필봉문화촌은 사시사철 임실필봉농악(국가무형문화재 제11-5호)이 울린다. 300년 정도의 역사를 지닌 필봉농악은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에서 전승된 호남 좌도 농악의 대표적인 풍물굿으로, 붓끝처럼 생긴 마을 뒷산 필봉산에서 이름을 따왔다. 조선의 꽹과리 소리는/ 조선인의 혼 깨우는 소리/ 그 소리 울려 가는 곳에서/ 왜귀신 양귀신 혼쭐나고/ 은하계의 별들마저 신명춤 어우러진다 // 남원땅 임실군 강진면 필봉리/ 하늘의 뜻이 있어/ 도깨비 거느리고 내린 신선/ 한 명인의 탯줄 끊으시니/ 그 울음 만고의 소리로 화하고/ 깽매 깽매 그 꽹과리 소리/ 지리산도 더덩실 어깨춤 흥겨웠어라 ∥문병란의 시 「꽹과리 소리 한평생」(부제 ‘故 양순용 선생 영전에 드립니다’) 윤미숙의 장편동화『소리공책의 비밀』(2009)은 임실필봉농악을 소재로 했다. 작가는 혼 없는 소리는 울림도 없으며, 울리지 않는 소리로는 돌멩이 하나 감동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들려준다. 필봉문화촌에서는 2012년부터 매년 ‘한옥자원 활용 야간상설공연’을 올리면서 임실필봉농악과 인물들을 소재로 새로운 문학 작품들을 생산하고 있다. 세계인류무형문화유산이자 선조들의 삶의 희로애락이 있는 농악을 긴 세월 꿋꿋하게 이어오는 중벵이골 사람들의 좌충우돌 이야기들을 그린 ‘춤추는 상쇠’, ‘히히낭락’, ‘필봉연가’, ‘필봉아리랑’ 등 ‘웰컴투중벵이골’ 시리즈다. 모내기·김매기·물레질·혼례식·상여 등과 같은 전통적인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연희를 특징으로 해 ‘K-판 뮤지컬’로 불린다. /최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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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25 10:00

[전북의 문학 명소] 2. 남원·순창·완주·임실의 문학세계

남원시·순창군·완주군·임실군 모두 뛰어난 문학 작가와 작품을 냈다. 도시를 상징하는 단어에도 ‘남원 = 춘향’, ‘완주 = 콩쥐팥쥐’, ‘임실 = 김용택’ 등 문학 자원이 높은 자리에 있다. 연관검색어에 문학 자원이 노출되지 않는 순창군도 문학 자원의 양과 질은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순창은 조선 시대 최초의 금서(禁書)인 소설 「설공찬전」의 배경지이며, 빨치산의 삶을 사실적으로 담은 이태의 소설 「남부군」과 농민 운동사의 소설적 전형을 보여준 윤정모의 소설 「들」도 순창을 바탕으로 했다. 시 창작과 이해에 관한 이론서『시칙』과『산경표』 등 다양한 저서를 편찬한 조선 영·정조 시대의 지리학자·실학자인 여암 신경준(1712~1781)과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라고 말하던 권일송(1933∼1995) 시인도 이곳 출신이다. 특히, 여성의 지위를 인정하며 꽉 막힌 유교 사회의 부조리에 비판의식을 드러낸 「설공찬전」의 존재는 무척 귀하다. 게다가 순창은 이름난 학자와 풍류객의 흔적도 많다. 예술과 풍류는 본래 세상을 비켜 보는 비판과 저항 의식에서 나온다. 이는 중앙권력에서 먼 전라도를 지키며 혹은 벼슬을 마다하고 이 땅을 찾은 강직하고 고결한 이들의 마음과 다르지 않다. 문학은 그런 것이며, 순창의 매운맛도 같은 선에 있다. △문학 명소가 찾아진 곳은 115곳 최명희문학관과 혼불기념사업회, 얘기보따리가 전라북도 14개 시·군에 앞서 남원시·완주군·임실군·순창군의 문학 명소를 찾아 나섰다. 문학 명소는 문학적으로 의미 있는 공간이나 장소를 말한다. 작가의 삶과 문학 작품에서 유의미한 곳으로 널릴 알릴만한 곳을 가리키며 △작가가 태어난 곳 △작가가 거주한 곳 △작가가 작품을 쓴 곳 △작품의 주요 배경지 △작품에서 의미 있게 거론된 공간 △시비·소설비·문학비와 같은 문학적 상징물이 있는 공간 △문학관·기념관과 같이 작가와 작품을 기념한 공간 △문학인이나 문학작품이 떠오르는 공간 등이 해당한다. 4개 시·군에서 115곳의 문학 명소가 추려졌다. 남원시가 36곳으로 가장 많았고, 순창군이 17곳, 완주군이 31곳, 임실군이 31곳이었다. 빗물 고여 팔랑이는 흙바닥 길에 숨통을 터놓고 바퀴자국 훑고 간 자리에 안부를 걸쳐 놓는다 이때 삼례터미널은 빈집 같다 버스들은 벚꽃 잎들을 헤아리며 종점 없는 마을로 떠날 것 같다// 내 안에 새겨진 주름 패인 얼굴을 현상해 놓고 흑백사진 같은 터미널 지나 후정리 길목에서 손 흔들던 그의 모습을 던져주고 간다 ∥김헌수의 시 「삼례터미널」 부분 문학 명소가 모여 있는 곳은 완주군 삼례읍 일대가 9곳으로 가장 많았다. △그림책미술관 △동학농민혁명삼례봉기역사광장 △비비정 △삼례문화예술촌 △삼례시장 △삼례역 △삼례책마을문화센터 △완주향토예술문화회관 △우석대학교 교정 등이다. 일찍이 교통의 요지로, 동학농민혁명의 역사가 살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곳에 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와 국어국문학과가 있었던 것도 큰 이점이다. 삼례의 역사와 문화, 삼례의 공간과 음식 등을 소재로 시를 쓴 시인 중에 우석대학교와 인연이 깊은 이가 많은 것이 이를 말해준다. 김헌수·송하선·안도현·유강희·정양·진창윤 시인 등이다. 실향민의 아픔과 아름다운 옥정호가 공존하는 임실군 운암면은 8곳, ‘김용택시인의작은학교’와 진뫼마을이 있는 임실군 덕치면이 7곳, 순창의 역사·문화 콘텐츠가 모여 있는 순창군 순창읍이 6곳, 소설 「혼불」의 배경지인 남원시 사매면이 5곳, 지리산 일대인 남원시 산내면이 5곳, 다양한 문화시설이 모여 있는 남원시 어현동이 4곳이었다. 남원시 산곡동, 남원시 인월면, 순창군 동계면, 완주군 구이면, 완주군 동상면, 완주군 소양면, 완주군 용진읍, 완주군 운주면, 임실군 강진면 등은 각각 3곳의 문학 명소가 모여 있었다. △문학 명소는 꾸준하게 늘어 그러나 문학 명소로 꼽은 115곳은 각 시·군 문학 명소 찾기의 시작을 의미하는 숫자일 뿐이다. 지역의 곳곳을 소재로 한 문학 작품은 꾸준하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한국문인협회 남원지부는 가을 시화전 주제로 ‘광한루원’을 제시했다. ‘남원의 문화를 알리고 계승 발전하는 것은 문인들의 몫’이며, ‘다양한 문화 재산을 보존하고 타 지인들에게 알리는 것’이 취지였다. 이에 남원 지역 문학인들이 광한루원을 소재로 한 시를 선보이며 크게 호응했다. 김두성의 「광한루원」, 곽진구의 「광한루 완월정에서」, 권용태의 「몽룡과 교룡」, 소은옥의 「완월정의 월하」, 오점록의 「광한루 뿌리를 찾아서」, 이문숙의 「광한루, 오작교」, 조내화의 「사랑으로」, 조희미의 「광한루원 나래」, 최규현의 「광한루의 겨울」, 최기식의 「광한루 오작교에 비가 내리면」, 최춘이의 「광한루원」, 하재룡의 「광한루 봄」, 하지연의 「광한루 단오」, 황용수의 「광한루원을 거닐어 보자」 등이다. 짧은 시간에 ‘광한루원’을 소재로 한 20여 편의 시가 탄생한 것이다. 순창문인협회, 완주문인협회, 임실문인협회 등 각 지역에 기반을 둔 문학인 단체에서 발간하는 기관지를 살피면 지역 명소를 소재로 한 작품은 별처럼 쏟아진다. 4개 시·군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고전소설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고전소설의 성지’라 불리는 남원을 비롯해 각 지역을 배경으로 한 고전소설과 옛이야기가 많기 때문이다. 남원의 「흥부전」, 「춘향전」, 「변강쇠전」, 「최척전」, 「홍도전」, 「만복사저포기」, 순창의 「설공찬전」, 임실의 「오수의 개」 등이다. 완주군이 배경지로 알려진 「콩쥐팥쥐」와 「선녀와 나무꾼」은 작품 내용 중 완주군을 배경지로 직접 거론한 작품이 많지 않아 아쉽다. 또한, △지리산 바래봉 △강천산 △대둔산 △모악산 △비비정 △위봉폭포 △섬진강 △옥정호 △회문산 등과 같은 자연환경과 △실상사 △송광사 △위봉사 △초남이성지 △임실성당 △화암사 등과 같은 종교시설, △김주열열사 추모공원 △만복사지 △송흥록·박초월 생가 △지리산지구전적기념관 △황산대첩비 △순창남계리석장승 △용진읍 원구억마을 △이치전적지 △정여립공원 등과 같이 옛사람이 남긴 흔적이나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던 유적지인 경우 시·소설·수필·희곡·시나리오 등 문학 작품이 되는 경우가 많아 작품의 숫자는 더 많이 늘 것이다. △고향을 소재로 한 시인·작가의 창작품 많아 남원시·순창군·완주군·임실군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많은 작품을 창작했거나 작품에 여러 배경지를 담은 문학인은 곽진구·김용택·복효근·안도현·장교철·최승범(1931∼2023) 시인과 김도수 수필가, 김양오·유수경 동화작가, 윤영근·이병천·최명희(1947∼1998) 소설가, 노경식·최기우·최정주 극작가, 최동현 판소리연구가 등이다. “신형, 그곳이 고산현의 대둔산이오. 저 장형이 살렸다는 최대웅도 거기에 있을 거외다. 내가 망설인 이유는 신형이 때아닌 고생을 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소.” “염려해주시니 고맙습니다만, 신일균은 이미 그를 보냈던 관군에서도 죽었고 내 마음속에서도 죽은 지 오랩니다. 대둔산에 가거든 어디를 찾아야 하오이까?” “안심사에 가면 아마 길이 열릴 것이오.” ∥이병천의 소설『마지막 조선검 은명기3』 ‘섬진강 시인’으로 불리는 김용택 시인은 고향인 임실을 비롯해 강천산·덕치초등학교·진뫼마을·섬진강길 등 순창군과 임실군 여러 곳에 자신의 흔적을 인상 깊이 심어 놓았다. 임실의 섬진강댐 물문화관도 시인의 시 「섬진강」을 시작으로 박경리 소설가의 「토지」와 최명희 소설가의 「혼불」을 소개한다. 이병천 소설가는 고향인 완주군 용진면 시천(詩川)마을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 「저기 저 까마귀떼」를 썼으며, 대둔산에서 끝까지 항전한 동학농민군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마지막 조선검 은명기」를 발표했다. 또한, 남원·순창 등을 배경으로 여러 편의 단편소설을 썼다. 순창 출신으로 오랜 시간 고향에서 교직 생활을 한 장교철 시인은 지금까지 옥천향토문화사회연구소장으로 활동하면서 순창 지역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한 많은 작품을 남기고 있다. 순창 출신 판소리연구가인 최동현 시인은 『순창의 판소리 명창』에 순창 출신 명창의 삶과 소리 세계를, 『안숙선의 판소리』에 남원 출신 안숙선 명창의 삶과 소리 세계를 담았다. 임실 진뫼마을이 고향인 김도수 수필가는 오랜 시간 타지에서 생활하면서도 늘 고향을 그리워하며 땅과 강, 부모님과 마을 사람들에 얽힌 추억을 수필집 『섬진강 푸른 물에 징검다리』와 『섬진강 진뫼밭에 사랑비』, 시집 『진뫼로 간다』에 새겨 놓았다. 고향은 아니지만, 전북의 역사·문화 콘텐츠를 폭넓게 담고 있는 작가도 많다. 유수경·최기우·최명희가 한 예다. 유수경 작가는 익산이 고향이지만, 완주군의 역사와 문화를 두 편의 동화에 그렸다. 만경강 발원지인 밤샘과 밤티마을을 배경으로 한 판타지 「하늘 아래 첫 동네 밤티」와 1920년대 일제가 수탈을 위해 양곡창고(현재 삼례문화예술촌)를 지으면서 사라진 맹꽁이와 금개구리 이야기를 그린 「한내천에 돌아온 맹꽁이와 금개구리」이다. 극작가 최기우는 남원을 배경으로 창극 「춘향, 네 개의 꿈」, 국악뮤지컬 「시르렁 실겅 당기여라 톱질이야」 등 여러 편을 무대에 올렸으며, 완주군과 전주시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희곡 「달릉개」, 「들꽃상여」, 「은행나무꽃」, 「정으래비」 등을 선보였다. 최명희의 대하소설 「혼불」은 아버지의 고향인 남원 사매면을 주요 배경지로 했다. 작품 속에서 임실의 이웅재고가, 완주 송광사 사천왕 등 전북을 폭넓게 다룬다. 전남의 섬에서 태어났지만, 임실 신전마을을 제2의 고향으로 삼은 장현우 시인은 임실에서 농사를 배우고 이웃과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삶과 성찰을 시집 『귀농일기』와 『바다는 소리 죽여 우는 법이 없다』에 고스란히 담았다. 충남 당진 출신으로 남원에 사는 김양오 작가는 도공·춘향사당·몽심재·이화중선 등 남원의 역사·문화 콘텐츠를 매년 동화로 써서 세상에 알리고 있다. 경북 예천 출신으로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 40여 년 동안 전북에서 거주한 안도현 시인은 춘향터널·삼례역·화암사 등을 비롯해 전라북도 14개 시·군의 풍경과 감성을 빠짐없이 시에 담으며 전북 문단사에 뚜렷하게 이름을 새겼다. 시인과 작가들이 생생하게 살려낸 문학의 근원들은 시대를 넘어 작가와 작품을 기억하게 한다. 이들이 풀어낸 문학의 향기는 이 땅을 다시 흐드러지게 피어나게 할 찬란한 힘이다. /최기우(극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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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19 10:00

[전북의 문학 명소] 1. 문학을 통한 전북의 재발견

문학은 작품으로 만나지만, 작가와 공간으로도 접할 수 있다. 작가의 여운이 여전한 곳과 작품에 담긴 장소는 문학과 독자를 더욱 가깝고 다정하게 만나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전라북도는 예부터 지금까지 다른 시·도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빼어난 문학 작가와 작품을 냈다. 하지만, 문학 명소를 관광 자원화한 곳은 많지 않다. 다른 도시에서 어렵지 않게 추진하는 △시의 거리 △소설의 거리 △문학의 길(문학 벨트) △작가 ○○○의 길 등의 사업도 찾기 힘들다. 최명희문학관과 혼불기념사업회, 얘기보따리가 소설·수필·시·아동문학·평론·희곡에 담긴 전라북도 14개 시·군의 문학 콘텐츠와 문학 명소를 찾아 나섰다. 문학 자원을 전라북도의 자랑으로, 도민의 자부심으로 만들고, 문학과 관광의 연결 고리를 잇기 위해서다. 시작은 남원시·순창군·완주군·임실군. 4개 시·군의 문학 명소를 각 주제로 묶어 매주 2회 소개한다. △지역의 힘을 쌓는 작가들 문학 작품에 담긴 문화유산들은 하나의 매개가 되어 감동을 줬고, 독자들의 발길을 책 밖으로 이끌었다. 장소가 가진 생명력. 김제 귀신사를 배경으로 한 양귀자의 소설 「숨은 꽃」과 완주 화암사를 소재로 한 안도현의 시 「화암사, 내 사랑」이 대표적인 예다. 한적하다 못해 외롭고 적막했던 귀신사와 화암사는 소설과 시에 나오면서 깊은 역사와 천연한 아름다움이 다시 드러났고, 세월에 부대껴 까매진 기둥은 사람들의 손때로 반질반질해졌다. 전라북도는 지극한 애정으로 지역 문화에 윤기를 더하고 있는 문학인이 많다. 곽진구·윤영근(남원), 김영·김유석(김제), 박형진·배귀선·이용범(부안), 장교철(순창), 이병수·이복명·전선자(무주), 조기호(전주), 허호석(진안) 등과 같이 자신의 탯줄이 묻힌 고향의 역사·문화 자원들을 시와 수필과 소설에 맛깔나게 담고 있는 시인과 작가들. 이연희는 산문집 『이연희의 무주기행』(인간과문학사·2021)에 적상산 안국사와 덕유산 무주구천동, 벼룻길과 금강변마실길 등의 역사와 생태, 따뜻한 이야기를 푸른 능선처럼 펼쳐놓았고, 박일만은 시집 『살어리랏다』(달아실·2021)에 장수 육십령 연작시 60여 편을 실었다. 우리가 특별한 눈길을 준 적 없는 곳에서 조용히 살다간 문학인과 그들의 작품을 찾아내 세상에 알리는 일은 그만큼 소중하다. 예향 아닌 곳이, 걸출한 작가 한 명쯤 내놓지 않은 고장이 얼마나 되겠는가마는 작가들이 지역의 자랑으로, 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항상 자부심으로 남는 것은 보이지 않는 지역의 힘이다. △전북 곳곳에 흔전만전한 작가들의 흔적 태조어진과 어진화사를 소재로 한 서철원의 장편소설 『왕의 초상』(다산책방·2015), 완판본과 각수를 소재로 한 장은영의 동화 『책 깎는 소년』(파란자전거·2018), 전주한지가 담긴 박월선의 동화 『닥나무 숲의 비밀』(청개구리·2011), 1987년 전주의 민주화운동을 그린 최형의 시집 『다시 푸른 겨울』(시와사회·2000), 정여립을 앞세운 홍석영의 장편소설 『소설 정여립』(범우·2008), 전주비빔밥을 소재로 한 김자연의 『개똥 할멈과 고루고루 밥』(살림어린이·2015)도 전북의 콘텐츠가 생생한 작품이다. 신영복의 수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햇빛출판사·1996)의 모악산과 이병초의 시집 『밤비』(모아드림·2003)의 황방산, 이병천의 소설 『모래내 모래톱』(문학동네·1993)에 담긴 전주 사투리, 진동규의 시집 『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문학과지성사·1999)에 실린 남고사 종소리, 양귀자의 단편소설 「한계령」에 그려진 옛 전주역(현 전주시청)과 철길, 박성우의 시집 『가뜬한 잠』(창비·2007)의 전주한옥마을 풍경 역시 마찬가지다. 문학은 곧고 넓은 소통의 길이다. 전라북도 곳곳에 자리 잡은 시인과 작가들의 흔적은 그곳을 접한 사람들의 가슴을 채운다. 익산의 미륵사지를 거닐면 정양의 「결코 무너질 수 없는」과 정군수의 「미륵사지에서」를 시작으로 문신·문효치·박미숙·이동희·이승훈·이시연·임미성·채규판 등의 시가 떠오르고, 고창 선운사 일대는 송희의 「삼월 눈꽃」을 비롯해 김정웅·박남준·서영숙·서정춘·손택수·송기숙·유하·유휘상·장석남·정철훈 등의 시가 간질간질하다. 부안 내소사에 서면 김혜선·박형진·복효근·오인덕·우미자·장화자 등이, 진안 마이산에는 강신일·김정배·송희철·이소애·이운룡·오창렬·전병주·허소라 등이, 김제 망해사에는 김정경·박두규·이병욱·조미애 등이 생각난다. 바다로 다가앉고 싶어 하는 낙서전(樂西殿)과/ 절 마당까지 차오르는 파도/ 늙은 벚나무 몇 채가 단단히 동여매고 있다// 새들이 제 깃털 뽑아 둥지를 덥히는 이 저녁/ 동안거에 든 망해사를 흔들어 깨운다/ 그대 뒷모습에도 꽃 피우겠다/ 내 벼랑에도 봄을 머금겠다// 주저앉은 몸이 녹아내리자 나는/ 발자국 지우며 망해사를 빠져나온다 ∥김정경의 「녹으면서 사라지는 – 망해사」 부분 문학 작품 속 공간은 독자에게 더 현실적인 문화적 사유를 경험케 한다. 특히, 작품에 문화재가 담겨 있다면 그 활용과 확산은 더 커진다. 우리의 세시풍속과 관혼상제, 음식, 노래 등 민속학·인류학적 기록들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 생생하게 복원한 최명희의 소설 「혼불」이 대표적인 예다. 소설에는 남원시 사매면과 전주시 교동·다가동 일대의 문화자원이 풍성하다. 송기숙의 소설 「녹두장군」과 박태원의 소설 「갑오농민전쟁」에는 고창 선운사의 동불암지 마애여래좌상이 그려있다. 홍석영의 소설 「양곡 소세양의 빛과 사랑」을 펼치면 익산의 소세양신도비가 아련하고, 서권의 소설 「시골무사 이성계」를 읽으면 남원의 황산대첩비지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김남곤의 시 「안국사에서」와 박두규의 시 「망해사에서」, 정도상의 소설 「실상사」에는 각각 무주 안국사의 극락전과 김제 망해사의 악서전, 남원 실상사의 풍경이 스며있다. 이병천의 소설 「사냥」에는 진안 매사냥이 있고, 윤미숙의 동화 「소리 공책의 비밀」은 임실필봉농악을 소재로 했다. 임영춘의 소설 「갯들」에는 군산·김제·익산의 근대문화유산들이 숱하다. 이런 작품들은 기존 낭송·낭독 프로그램에 문화재를 주제로 설정해 낭송·낭독 축제를 열 수 있고, 문화해설사의 설명 자료에 문학에 담긴 문화재의 모습을 더해 관광객과 함께 읽으며 친밀한 느낌을 나눌 수도 있다. 지자체와 협조를 통해 문화재 현장에 관련 문학 콘텐츠를 배치하거나 별도의 알림판을 설치해 많은 사람과 공유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문학으로 전라북도 재발견하기 스토리텔링이 대세가 된 지 오래다. 유·무형의 문화유산에 얽힌 이야기를 발굴해 관광객에게 전하는 관광자원 스토리텔링 마케팅의 필요성도 갈수록 높아진다. 그러나 꽤 근사한 스토리텔링 글은 이미 가까운 곳에 있다. 전라북도의 수많은 콘텐츠는 시·소설·수필·동시·동화·희곡 등 문학 작품으로 쓰여 있기 때문이다. 문학 작품을 이용한 전라북도 스토리텔링은 글쓰기의 자연스러운 확산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 확산은 지역에 새로운 생명을 얹히는 창조적 생산의 과정이며, 전라북도의 재발견이다. /최기우(극작가) ※이 글은 혼불기념사업회·최명희문학관·얘기보따리의 ‘전라북도 문학 명소를 찾아서Ⅰ: 남원시·완주군·임실군·순창군’ 사업의 일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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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11.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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