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개봉한, 영화 `한산:용의 출현`이 큰 흥행을 했다.
임진왜란 당시 바다에는 왜군을 막아낸 이순신 장군이, 육지에는 전주성을 지킨 황박 장군이 있음을 비중있게 다루면서 완주군의 웅치 전적지가 큰 주목을 받았다.
임진왜란이 발발한 1592년 7월, 왜군 수천 명이 전주 점령을 위해 진안에서 전주로 넘어가는 고개인 웅치(완주군 소양면 신촌리)에 집결해 진격했다. 당시 의병장 황박 장군과 정담 김제군수가 합류해 끝까지 분전했지만 정담 군수를 비롯한 다수가 전사했다. 황박 장군은 이후 안덕원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이치(대둔산 배티재) 전투에서 권율장군 휘하의 선봉장 황진을 구출하는 과정에서 29세의 나이로 전사한다.
영화가 개봉한 그해 12월, 완주의 웅치전적지는 국민적 관심 아래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됐다.
완주군에는 나라를 지킨 영웅이 여럿 존재한다. 웅치‧이치 전투의 황박 장군, 일제의 무기고를 습격한 김춘배 의사, 비봉면을 중심으로 항일운동을 전개한 고흥 유씨 가문 유중화, 유태석, 유영석, 유명석, 유준석, 유현석, 유연청, 유연풍, 유연봉 의사가 있다. 필자는 자랑스럽게도 한 집안에서 독립운동가 아홉 명을 배출한 ‘일문구의사(一門九義士)’ 후손이다.
이외에도 일문구의사의 종군도총제로 대마도를 정벌한 유습(柳濕, 1367~1439) 장군과 황박장군의 시조로 영의정에 추증된 황거중의 묘소도 비봉면 내월리에 있다.
또한 완주군은 동학농민혁명의 2차 봉기와 최후 항전지로 알려져 있다. 삼례읍은 전봉준 장군이 동학군의 근거지로 삼은 곳이다. 2차 봉기 당시 수많은 농민군이 삼례에 재집결했다. 현재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역사광장과 기념탑이 세워져 이들을 기리고 있다.
대둔산 전적지는 농민군 최후 항전지라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농민군이 대둔산의 험한 산세를 활용해 일본군에 끝까지 항전했던 곳으로, 지금도 돌담 등 당시의 유적이 남아있다.
경천면 용복리에는 완주독립운동 추모공원이 있다. 이곳은 완주 출신의 순국선열 및 애국지사 28인의 애국애족정신과 위업을 기리고, 군민의 민족정기 선양을 위해 조성됐다.
공원 내에는 독립운동 기념탑과 6·25 참전 기념탑, 베트남 참전 기념탑 등이 건립돼 나라사랑과 민족정기를 드높이는데 기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에서 홍범도 장군 흉상건립 후보지로 의병 봉기를 기리는 비봉의병광장을 찾기도 했다.
이처럼 호국보훈의 역사가 산재해 있는 완주군은 6월이 더욱 특별하다. 타 지자체도 그러하겠지만 완주군은 매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호국보훈의 달 행사를 개최하며, 나라를 위해 몸 바친 영웅을 기억하고 있다. 7월 8일(음력)에는 소양면 웅치전적지에서 웅치전투 추모행사가, 순국 선열의 날인 11월 17일엔 일문구의사 추모행사가 비봉의병광장 일원에서 개최되고 있다.
우리는 역사를 기억하고, 그에 맞는 평가를, 또 예우를 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사랑의 마음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지 후손에 알릴 수 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 저마다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애국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유희태 완주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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