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 단발에 얼굴이 갸름한 소은이가 물었다.
“선생님, 시가 뭐예요?”
소재 하나 달랑 주고 동시를 써보자 했을 때 날아온 질문이었다. 시의 정의를 묻는 건지, 선생님이 생각하는 시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는 건지 알 수 없었던 나는 수업이 끝날 때까지 소은에게 이렇다 할 답을 주지 못했다. 손에 든 지도서를 들고 입술만 깨물다 수업을 끝낸 기억에 나는 지금도 시가 어렵다.
군산구암초등학교 아이들은 시가 뭔지 알까? <나는 경암동 철길마을에 살아요>를 설레는 마음으로 펼쳐본다.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으면 시를 읽는 바른 태도가 아닐 것 같아 양 엄지손가락을 맞대고 책장을 펼쳤다. 그렇게 나온 시가 <내 귀>다.
‘내 귀는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엄마가 빨래 널자 하면/안 듣고/밥 먹으라 하면/바로 일어나 먹는다./내 귀는 참 신기하다/’<내 귀 전문>
아이는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선택적 귀를 가졌다. 시를 쓰지 않았다면 몰랐을 자신이다. 이 아이뿐만 아니라 많은 아이가 시 쓰기를 통해 진짜 자기를 찾은 듯하다.
‘저는 고백합니다./사실 겉으론 학교에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속으론 학교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겉으론 학원에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지만/속으론 학원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고백 일부>
녹록치 않은 현실로 아이들은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내적 갈등을 겪는다. 불행히도 시작부터 지는 싸움이라는 걸, 어른이 정한 대로 돌아가는 것이 세상이라는 것을 안 아이의 고백은 독백이 되어 버린다.
‘나는 나예요/누가 못생겼다/나쁘다/못 한다 해도/나는 나예요’<나 전문>
아이는 못난 ‘나’를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것은 타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과 같다. 다섯 줄의 시가 현자의 말보다 값지다.
‘맨날 아빠가/ 땀에 젖어서 온다//모기가 땀 냄새를 맡고/같이 온다/아빠가 모기를/배달하는 것처럼’ <아빠는 모기 배달 기사 전문>
만날 땀에 젖어 들어오는 아빠를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아이. 그런 아이에게 모기는 무찔러야 할 악당이다. 노동의 가치가 폄하되는 시대, 땀의 농도가 진한 직업일수록 기피 대상 1호인 시대이지만 아이에게는 그런 아빠가 우상이고 자랑이다. 다만 이 아이가 커서 살아갈 세상은 흘린 땀만큼의 대가를 인정해 주길 바라본다.
세상은 정글이다. 어린이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두렵고 놀람의 연속이다. 그러나 미리 겁먹지 않는다. 구암시인학교 아이들이 쓴 시가 그걸 말해준다.
청정지역에서 막 길러낸 유기농 동시를 읽으니, 시가 뭔지 조금 알 것 같다. 덧씌워지지 않은 명징한 세계를 경험하게 해 준 어린 시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더불어 많은 사람이 파릇파릇 생기 돋는 시어들로 잘 차려진 밥상을 받길 바란다. 단짠단짠, 시큼털털, 매콤달콤, 쌉싸래한 시의 맛을 느끼며.
김근혜 작가는
2012년 전북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동화 『다짜고짜 맹탐정』과 『봉주르 요리 교실 실종 사건』, 『유령이 된 소년』, 『나는 나야!』, 『제롬랜드의 비밀』 등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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