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어렸을 때 제주도에 가족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곳곳을 찾아다니며 육지와는 다른 풍경과 먹거리를 접했던 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중에서 아이들이 가장 환호성을 지르며 제주도를 떠나 집으로 돌아와서도 이야기한 건, 단연 돌고래쇼였다. 조련사의 신호에 따라 공중에 떠 있는 링으로 수십 번씩 넘나들고, 조련사와 입을 맞추기도 하고, 공중제비를 열심히 도는 모습에 관중들이 열광하며 박수를 보냈다.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도 돌고래쇼에 넋을 잃고 공연이 끝나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돌고래쇼를 보고 나오자 수조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떠다니는 또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돌고래쇼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상황에서 더 신비한 세계를 접한 것처럼 수조 앞 유리에 매달려 오랫동안 서 있었다. 수조 안에는 잠수복을 입은 조련사가 열대어들 사이를 유영하며 관객들을 향해 손을 흔들고, 사진 찍는 사람들에게 브이자를 보였다. 또 다른 수조에는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좁은 수조 내부가 불만이듯 몸부림치는 상어도 있었다. 그때는 아이들과 함께 물속의 생물들을 신기해하며 바닷속에서 하나가 된 듯 감탄만 했었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돌아보면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지만 문제라는 의식을 갖지 못했다.
최근 위와 같은 생태계를 거스르는 일들에 대해 서슴없이 지적하는 책이 나왔다. 바로 《벨루가의 바다》이다. 벨루가는 태생적으로 쉽게 눈에 띄는 운명을 지녔다. 다른 고래와는 달리 온몸이 하얀색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얀 색깔 때문에 인간에게는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벨루가는 생명이라는 존재를 넘어서서 상업적 도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결국 인간은 벨루가를 무차별적으로 잡아서 수조에 가둬 두기도 하고, 은밀하게 거래되기도 하고, 고래 쇼를 하기 위한 훈련의 도구가 되었다.
인간은 같은 동종이 아닌 생명에 대해 타자화시키지 못하는 약점이 있다. 그들의 생명에 대해 커다란 의미를 두지 않는다. 물론 모두 그런 건 아니다. 일찍이 모든 생명에 대해 감각적으로 느끼고 타자성을 주체화시킨 이들도 있다. 그래서 그나마 지금의 모습을 지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벨루가의 바다》의 작가처럼 상처받은 생명체들의 감각을 그대로 받아들여 세상을 향해 외치기도 한다. 모든 생명체를 주체화하자고.
《벨루가의 바다》에서 주인공 벨루가 ‘루하’는 인간의 손에 잡혀 온다. 영문도 모른 채 고래의 감옥인 수조 속에 갇혀 친구들의 죽음을 보기도 하고, 고래 쇼를 위해 훈련하기도 한다. 하지만 본래 고래가 머물러야 하는 바다를 그리워하고, 결국 바다로의 탈출을 시도한다. 과연 벨루가 ‘루하’는 인간을 벗어나 먼바다를 향한 그리움과 좌절과 아픔을 넘어서 인간의 욕망을 건너갈 수 있을지는 독자들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가도 그것을 원했을 것이다. 작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는 게 아니라 책을 읽으며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스스로 사유해야 한다고.
생명에 대해 감각적으로 인식하는 순간이 아쉬운 시절이다.
이경옥 아동문학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두번 째 짝>으로 등단했다. 이후 2019년 우수출판제작지원사업과 지난해 한국예술위원회 ‘문학나눔’에 선정됐으며, 2024년 안데르센상 창작동화부문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의 저서로는 <달려라, 달구!>, <집고양이 꼭지의 우연한 외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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