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크는 지역을 만들자
문화정책을 하며 누군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난 단연코 사람이라고 말한다. 다른 정책과 달리 문화정책은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단적인 예로 골목에 빈 벽이 있다고 하면 거기에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으나 실제 그림을 그리는 건 예술가고, 그가 누구냐에 따라 결과는 완전히 달라진다. 때문에 문화정책에 있어 핵심은 사람이다. 현장에서 일을 기획하고, 사람을 끌어모으며 정책을 집행하는 사람, 이들이야말로 문화정책에서 가장 핵심적인 자원이라 할 수 있다. 한때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예술 지원사업을 중심으로 정책을 추진한 결과 지역을 변화시키거나 문화적으로 재구성하는 인력은 제한되어 있었고, 문화매개자라는 이름으로 산발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다 2006년부터 시작된 ‘Art in City’(2006~2007)에서부터 ‘문화를 통한 전통시장활성화 시범사업’(문전성시, 2008~2012), ‘마을미술프로젝트’(2009~현재) 등 여러 지역 사업이 추진되며 역량을 쌓기 시작했고, 2014년부터 시작된 문화도시 사업을 타고 활동력을 높이기 시작했다. 지금은 그들은 스스로 돈을 모아 올해의 우수한 기획자를 시상하는 ‘내일의 기획자’라는 상을 운영하고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지역 또한 마찬가지다. 2000년대 창조도시 열풍이 불던 시절에는 ‘창조적인 사람’, 즉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예술가나 금융가, 법률인, 건축가 등 이른바 상류층이 살만한 지역 만들기가 중요했지만, 지금은 지역을 혁신하고 재생할 전문가가 필요하다. 로컬 크리에이터라 부르는 창조적 행위자, 지역 혁신가가 필요한 것이다. 창조적인 계급이 아닌, 창조적인 역량을 가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람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창조적 역량을 가진 지역기획자, 문화기획자를 키우려면 지역은 실험하고 도전할 기회를 줘야 한다. 교육을 통한 학습도 중요하지만, 그래도 효과가 있는 것은 직접 해보는 것이다. 지역을 바꾸고 문화를 바꾸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러 사업을 해 봐야만 감(感)이 오는 일이다. 그렇기에 다양한 문화사업과 지역혁신 사업은 그들이 성장하는 판이 된다. 앞서 얘기한 사업들도 실제 나타난 성과를 보면 사업성과보다 사람 성장이 더 컸던 사업이다. 당시 일했던 사람들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전국을 돌며 다양한 사업을 하고 있고, 각 지역에서 후배를 육성하고 있다. 지역이 문화기획자를 키우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그들이 해볼 수 있는 사업을 발굴하고 도전토록 하는 것이다. 경험보다 중요한 자산은 없다. 다른 한편 기획자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조성도 중요하다. 무엇보다 인증감을 부여하고 자존감을 불어넣어야 하며, 기획자로 생활하며 활동할 수 있는 여건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사람은 함부로 크지 않는다. 적절한 환경과 지원이 있어야만 클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큰 사람이 도시를 먹여 살린다. 2000년대 창조도시로 명성을 떨쳤던 영국의 게이츠헤드(Gatehead)가 연극전공자인 피터 스타크(Peter Stark)의 작품이었다는 점을 기억하자. 더불어 지금도 여러 부상하는 지역에도 다양한 기획자가 활동하고 있음을 기억하자. 전북에도 그런 기획자가 많을 것이다. 이들을 위해 전북은 과연 무엇을 하고 있을까? 그들이 성장하는 판을 깔고 있을까? 소멸의 위기에 빠진 전북의 미래를 위해 여러 생각을 해본다. /라도삼(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문화정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