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유산이 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 ①연재를 시작하며
“동학농민혁명은 부패한 지도층과 외세의 조선 침략에 대항하여 정의롭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민중이 봉기한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동학농민군은 집강소라는 민-관 협력 거버넌스 체제를 설립하는데 성공했고, 이를 통해 부패한 관리를 처벌하고 부당한 관행을 바로잡을 수 있었다. 이러한 형태의 거버넌스는 당시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민주주의의 새로운 실험이었다. -중략-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은 민중이 역사의 주체가 되어 보편적 가치를 달성하고자 전진시켜나가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주는 기억의 저장소이다.”(세계기록유산 등재신청서 내용 중) 2023년 5월 10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제216차 유네스코 집행이사회는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을 유네스코(UNESCO)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조선 백성들이 주체가 되어 자유, 평등, 인권의 보편적 가치를 지향했던 세계사적 중요성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등재된 기록물은 총 185건이다. 동학농민군이 생산한 일기와 회고록, 유생들이 생산한 각종 문집, 그리고 조선 관리와 진압군이 생산한 각종 보고서 등이 포함되어 있다. 동학농민군이 직접 생산한 기록물은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한 농민군이 직접 작성한 편지를 비롯하여 그 최고지도자 전봉준이 작성한 글, 동학 교단의 최고지도자 최시형에 의한 각종 임명장, 그리고 이 사건이 끝난 뒤 동학농민군 자신이 직접 보거나 경험한 내용을 정리한 회고록 등이 있다. 동학농민혁명에 관한 민간기록물은 기록물 생산 주체에 따라 ‘동학농민군을 진압한 사람들의 기록물’, ‘동학농민혁명 견문 기록물’로 구분된다. 1894년 당시 일부에서는 민보군(민병대)을 조직하여 직접 동학농민군 진압에 참여하였는데 그 과정을 일기로 작성한 것도 있고 동학농민혁명이 끝난 뒤 직·간접적인 경험을 정리하여 발간한 문집 등이 포함되어 있다. 진압에 참여한 이유와 진압과정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동학농민운동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경험하거나 보고 들은 내용 등을 정리해 놓은 기록물도 있다. 대부분 일기체 형식으로 작성되었으며 후일 개인 문집으로 발간되었다. 조선 정부는 정부군과 지방 행정조직을 동원하여 동학농민군을 무력으로 진압하였다. 이 과정에서 생산된 기록물에는 정부의 논의과정, 진압군이 직접 작성한 공문서와 보고서, 진압에 참여한 사람들의 명단,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동학농민군의 판결문 등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동학농민군 최고 지도자인 전봉준의 재판기록은 동학농민군의 지향과 인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이다. 이들 기록물들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을 비롯하여 고려대 도서관, 국가기록원, 국립중앙도서관, 국사편찬위원회, 서울대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연세대 학술문화처, 천도교 중앙총부,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독립기념관, 고궁박물관, 천도교 중앙총부 등 여러 기관에서 소장 관리하고 있다. 전북일보는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맞아 2023년 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동학농민혁명기록물의 가치와 의미를 들여다본다.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이사장 신순철)과 공동으로 기획한 이 연재물은 등재된 185건 기록물 중 50건을 선정하여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소개할 예정이다. 대상 기록물은 동학농민군 기록물 10건, 민간진압 기록물 9건, 민간견문 기록물 6건, 조선정부 기록물 25건이다. 현재 국가 지정 문화재로 등록된 관련 기록물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소장 <유광화 편지>와 <한달문 편지>, 고궁박물관 소장 <갑오군정실기> 등 3건이 있다. 동학농민군 자신이 작성한 <한달문 편지>는 동학농민혁명에 참여하여 체포된 한달문이 나주 감옥에서 고향 집의 어머니에게 구명을 요청하면서 보낸 편지다. <유광화 편지>는 동학농민군 유광화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로, 그는 “나라가 환란에 처하면 백성도 근심해야 한다”라고 주장하였다. 두 사람은 모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갑오군정실기>는 동학농민군 핵심 진압부대인 양호도순무영의 설치부터 폐지까지 각급 기관과 주고받은 공문과 보고서를 모아 놓은 기록이다. 최근에도 가치가 충분한 여타 기관이 소장한 새로운 자료들도 적지 않게 발굴되었다. 이 기획에는 신영우 충북대 명예교수를 비롯해 배항섭(성균관대) 김양식(청주대) 조재곤(서강대) 왕현종(연세대 교수) 유바다(고려대) 교수와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이병규 연구조사부장과 전동근 선임 연구원이 필진으로 참여한다. 이 연재를 기회로 개인 소장 자료를 비롯, 앞으로 전면적인 자료의 심층 조사와 발굴정리 작업이 보다 활발히 추진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조재곤 서강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