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비단길 시장] 손때 묻은 창작품 사고 파는 소소한 매력…따뜻한 소통은 '덤'
1997년 IMF를 겪은 세대라면 누구나 아나바다장터를 기억할 것이다. 어려운 경제상황에서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는 취지로 국가적 차원에서 시작된 장터이다.현재 한국의 장터 문화는 사회가 변화하면서 실질적 목적에 의해 열렸던 아나바다장터와 서구의 벼룩시장 형태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며 다양하게 발전변화하고 있다. 단순히 본인에게 필요하지 않는 물건을 재판매하는 벼룩시장 개념에서 확장되어 창작자들과 시민들이 만나 소통하고 교류하는 새로운 문화가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플리마켓(flea market)과 프리마켓(free market)이 혼용되어 사용되고 있는 것 또한 이런 문화가 만들어진 것에 기인한다.프리마켓은 창작품과 창작행위가 펼쳐지는 예술시장을 말하고, 플리마켓은 주로 사용하던 중고물품을 사고팔거나 교환하는 장터를 말하는데 우리나라에서 프리마켓과 플리마켓이 혼합된 형태를 보이기 때문이다.△ 소비의 주체가 아닌, 생산의 주체로의 욕구마트에 가거나, 인터넷을 검색하면 원하는 물건들이 어마어마하게 쏟아지는 환경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스스로 무언가를 만드는 생산의 경험과 손의 쓸모는 없어지고 소비의 주체로만 자리 잡게 되었다. 자본만 있으면 뭐든지 살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지만 문득, 소비의 주체로만 살아가는 것에 대해 허무함이 느껴질 때가 있다. 완제품을 구매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반조립 제품을 구매하거나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 사용하는 것에 흥미를 갖는 이유. 더불어 한국에서 진행되는 마켓에서 창작행위가 중요하게 자리 잡은 이유 또한 이 때문이라 추측해 본다.△ 2015년 지역 상인들의 마음이 모여 시작전북에도 프리마켓이 다양한 곳에서 열리고 있다. 열리는 지역마다, 이용하는 세대마다 다른 모습을 보이며 새로운 문화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전주에서는 차이나거리, 웨딩거리, 비단길이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거리에 위치한 전주화교소학교에서 비단길시장이 꾸준히 열리고 있다.2015년 차이나거리에 입점한 가게들이 거리를 활성화 시켜 보자며 프리마켓을 기획한 것이 비단길시장의 시초다. 지금은 보따리단, 아워라이프, 수수다방 등 세 곳이 운영주체로 진행 하고 있지만, 처음 시작할 때에는 차이나거리에 입점한 다양한 가게들이 운영주체로 함께 시작 했다. 당시에는 화교소학교가 아닌, 가게 앞 길가 가장자리에 천막을 치고 진행했다. 시도는 좋았지만, 통행하는 차가 많아 시민들이 제대로 구경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리는 경우가 많았고, 유동인구는 많았지만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바라봐주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실외에서 하는 행사다보니 날씨에 의해 열지 못하거나 철수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다양한 어려움이 존재 하던 중 우연치 않게 비단길에서 중화요리를 운영하는 진미반점 사장님이 전주화교소학교 장소를 제공해 주면서 비단길 시장은 현재의 모습을 갖춰가기 시작했다.△ 창작품으로 시민들과 소통하는 공간비단길 시장이 열리는 매달 둘째주 토요일의 전주화교소학교는 관심 있게 보지 않으면 스쳐지나가기 좋은 곳이나, 관심 있게 바라보면 마법의 통로를 따라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는 곳이다. 초록한 나무내음이 가득한 공간에서 사람들은 한껏 여유로워 보인다. 다른 장터와 비교해 오가는 유동인구가 적어서 그런지 복작임도 덜하다. 아무생각 없이 앉아있기 딱 좋은 장소다. 운영진과 셀러 모두 손님이 없어 초초할 법도 한데 홍보에 큰 열을 내지 않는다. 누가 운영진인지, 셀러인지, 손님인지 모르게 모양 없이 사람들이 한데 섞여 존재한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이야기를 나눈다. 사람들의 바쁜 발걸음으로 가득 찬 여느 마켓들과는 다른 분위기다.비단길시장에 오면 일반 가게에서 볼 수 없는 핸드메이드 제품들을 볼 수 있어서 좋아요. 더욱이 전주에는 꾸준히 운영되는 프리마켓이 없는데, 비단길 시장은 오랜 시간 꾸준히 지속되고 있고요. 그래서인지 오랜만에 사람들 만나 이야기 나누는 재미도 쏠쏠해요손님으로 비단길을 찾은 유설씨는 비단길 시장이 열릴 때마다 매번 방문하는 편이라고 한다. 시중에 판매하지 않는 다양한 핸드메이드 물건을 볼 수 있고, 꾸준하게 이어온 시간만큼 사람들과의 관계도 깊어져 졌기 때문이다. 셀러로 참여하는 사람들 또한 꾸준히 참여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단골도 늘고, 안 나오면 걱정해주는 손님들까지 생겼을 정도라고.저는 집에서 가만히 있지를 못해요. 이것저것 배우기를 좋아하는데, 외국에 나가서(남미) 배워온 매듭 법으로 실 팔찌를 만들어 팔아요. 요즘은 스스로 생산 활동을 하는 경우가 드물잖아요. 직접 내가 만들어 팔고 그 자리에서 돈을 벌수 있다는 것이 새로웠어요. 꾸준히 나와서 그런지, 아는 사람들이 많아 편하기도 하고요. 이곳은 다른 마켓들에 비해 공간이 아담하고 소소해서 더 찾게 되는 것 같아요.셀러와 손님 모두 시중에 판매하는 물건이 아닌, 작은 손때와 과정이 묻은 창작품이 좋아 비단길 시장을 찾는다. 그래서인지, 유동인구는 적어도 셀러들이 판매하는 제품에 대해 이해하고 관심을 가지며 구매하려는 욕구는 강하다. 운영진과 셀러 모두 화교소학교의 소담하고 평온한 공간이 주는 에너지를 좋아한다. 오랜 세월 함께 하며 셀러와 운영진 그리고 손님들이 닮아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좋아서 시작, 이젠 함께 좋아서 운영남이 좋아 하는 것에 맞추거나, 수익을 바랐으면 못했을 것 같아요. 3년을 지속할 수 있는 힘은 어쩌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그 목적 없음에 기인하지 않았을까 싶어요(웃음)3년이라는 세월동안 큰 재정 지원 없이 어떤 일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어떤 목적이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비단길시장을 운영하는 네 단체가 입을 모아 한 말은, 그저 우리가 좋아서, 즐겁기 때문에 지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고 우스갯소리로 이야기 했지만, 그 한마디가 그들의 말처럼 3년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비단길시장의 여유롭게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힘이라 생각한다.여유 넘치고, 여백이 많은 사람들이었지만 비단길시장에 대한 가치와 방향, 혹은 운영에 대한 이야기 이어갈 때는 사뭇 진지한 눈빛으로 돌변했다. 매 회차 피드백 회의를 하며 비단길 시장의 정체성을 찾아나가기 위해 애를 쓰고 있으며, 올해 온두레 공동체 사업을 통해 받은 재원으로 지난해보다 비단길시장 홍보에 조금 더 신경을 쓸 수 있었다며 소소한 마중물에도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잠깐하다 없어지는 프리마켓들이 우후죽순 늘어나고 있다. 프리마켓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회적 가치에 반하여, 기성품만을 판매하거나 더 수익을 내려고 열을 올리는 프리마켓들도 존재한다. 그에 비해 비단길 시장은 프리마켓이 가지는 사회적 가치의 실현과 함께 스스로의 재미를 찾아가기 위한 시간을 잘 쌓아가고 있었다. 시간은 그냥 흘러가는 것이 아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쌓이고, 비단길 시장이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들을 찾아 간다. 처음엔 운영단체가 좋아 시작했지만, 점차 셀러와 손님이 함께 좋아 운영하는 마켓이 되어 가고 있다. 비단길 시장이 지금처럼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마음으로 꾸준함을 잃지 않고, 전주의 대표 프리마켓으로 자리매김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비단길 시장은 전주 화교소학교에서 4월~11월까지(7~8월 야외마켓 특성상 휴장) 매달 둘째주 토요일마다 오후 1시~5시까지 열린다. 10월에는 14일에 열릴 예정이니, 이 가을, 살랑거리는 바람에 간질거리는 마음을 안고 전주 화교소학교로 발걸음을 향해 보는 것도 좋겠다.문성희 문화파출소 덕진 문화보안관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