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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예명가 남원의 심수관, 424년 만의 귀향

일본 3대 도자기 중 하나로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사쓰마 도자기’의 원류는 1598년 정유재란 당시 남원에서 일본 가고시마현으로 끌려간 도공 심당길이다. 그의 자손은 현재 15대 심수관에 이르기까지 사쓰마 도기를 주도해왔다. 그 15대 심수관인 심일휘(63·일본명 오사코 가즈데루[大迫一輝])씨가 김포에 있는 선조묘소를 찾았다. 424년 만의 귀향이었다. 후손들은 전대의 이름을 그대로 따르는 습명(襲名) 관습에 따라 본명 대신 심수관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지난 9일 ‘15대 심수관 본향김포 귀향 고유제’에서 심일휘 씨는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과 대곶면에 있는 선조들의 묘소를 찾아 참배하고 술을 올렸다. 김포에는 심 씨 아버지 심우인, 할아버지 심수, 증조할아버지 심달원의 묘가 있다. 심 씨는 참배 이후 심우인 묘 인근에 있는 재실 '청심재'에서 그간 찾아오지 못했던 사정을 알리는 고유제를 올렸다. 그는 "심수관가는 424년간 심씨 가문에 부끄러운 일을 한 적 없다. 막상 이곳에 와보니 감회가 새롭다"며 눈물을 훔쳤다. 청송 심씨 일가는 이날 심씨에게 '1만개의 가지가 있어도 뿌리는 하나'라는 뜻인 '만지일근'(萬枝一根)을 적은 목판을 선물했다. 심대평 청송심씨대종회 회장은 지난 5월 8일 윤석열 대통렬 취임식에 초청받아 방한한 15대 심수관 씨를 만나 심당길 이전의 선조들의 존재를 알렸고, 이에 제15대 심수관씨가 이날 처음으로 김포 선조의 묘역을 참배하게 됐다. 심수관가의 초대 선조 심당길(본명 심찬)은 1598년 정유재란 때 남원에서 의병 활동을 하다가 도공들과 함께 일본으로 끌려갔다. 그는 일본 서부 가고시마현 미야마(美山)에 정착했으며 함께 움직인 도공들은 척박한 땅에서 오두막을 짓고 황무지에서 밭을 갈구며, 생활용 도자기를 구우며 살았다. 그리고 유명 도자기인 '사쓰마야키(薩摩燒)'를 탄생시켰다. 투각과 부각 등의 기술을 개발했고, 197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일본 대표로 높이 180㎝의 대화병 한 쌍 등 여러 작품을 출품해 극찬을 받았다. 1893년 미국 시카고 만국박람회, 190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각각 동상, 1903년 하노이 동양제국 박람회에서 금상을 받았다. 제14대 심수관(오사코 게이키치[大迫惠吉])은 한일 문화교류에 힘을 쏟아 1989년 한국 정부로부터 명예총영사라는 직함을 얻었고, 1999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심수관가는 2008년부터 남원 명예시민이 되고 심수관도예전시관 건립, 춘향제 방문 등 남원과는 꾸준한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1999년 제15대 심수관이 된 심일휘씨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심수관가를 이끌며 한일 문화교류에 기여하고 있다. 심수관씨는 “심당길 할아버지가 일본군의 포로로 잡혀왔지만, 초대 할아버지가 ‘한국인임을 잊지 말라’는 의지를 받들어 지금까지 ‘심씨’라는 이름으로 도자기를 만들고 있다”며 “우리 조상들은 대대로 ‘너는 절대로 외로움을 느끼지 마라, 네 뒤에는 대한민국이 버티고 있다’는 말씀을 하시곤 했다”고 말했다. 심수관씨는 이어 “심수관 가는 424년 동안 단 한번도 심씨 가문의 명예에 누를 끼친 일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며 “심수관 가는 한국과 일본의 친선에 가교가 되는 예술가가 되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 문화일반
  • 백세종
  • 2022.07.10 18:06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소리 없는 프로파간다

오래전 필자는 우연히 친구가 번역한 “소리 없는 프로파간다”<저자: 이냐시오 라모네. 前 파리 7대학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前 월간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편집주간>를 선물 받고 읽은 적이 있다. 내용은 미국이 생산해 온 영화나 드라마, 광고 등 영상 이미지 속에 녹아 있는 ‘미국 이데올로기’를 들여다보고 문화잠식을 통한 미국의 세계화를 비판한 책이다. 문화잠식이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문물과 사고가 문화와 이데올로기의 영역을 범람하고 주체의 영역을 넘어 본질에 대한 방식과 본질이 바꾸어간다는 것으로 돌이킬 수 없는 크나큰 과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로파간다식 문화의 변辯은 때론 희망적이지만 의문이 될 수도 있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고 시간은 빠르게 지났고 환경도 많이 변했다. 문화 환경도 시대에 변화하다 보니 부르는 소리 즉 노래의 개념도 변해갔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지나 우리는 빠른 서양 문화를 받아들였고 익숙해져만 갔다. 음악의 실 예로 이제 우리가 아는 가곡은 이미 세계적인 성악가 파바로티가 부른 슈베르트의 '보리수'와 같은 서양 가곡으로 인지되고 있으며, '그리운 금강산'과 같은 새로운 서양식 창작가곡을 만들어 한국의 가곡이라 부르고 있다. 물론 서양음악 형식의 가곡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 선조들이 태평성대를 꿈꾸며 부르던 가곡 '태평가'는 서양음악의 가곡 형식이 들어오면서 점점 잊혀만 갔고, 이제 우리 선조들이 부르던 <가곡>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문화잠식을 통해 다른 의미의 서양음악 명사로 되어버린 것이다.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과거 우리는 국악을 옛 고전으로만 생각하고 느리고 어려운 음악으로 치부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국악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존재감에 비해 지극히 약한 대중성을 갖고 있었으며 그러한 대중성을 입히려 서양음악과 많은 융합의 시도를 하고 있다. 다양한 가치부여에 많은 심혈을 기울인 축제에는 전주세계소리축제, 화엄음악제 등 한국 전통의 소리를 기반으로 한 축제가 있다. 각고의 노력은 한민족의 관념과 공간 속에 새로운 파격으로 나타나고 있으며 현재도 진행형이다. 우리는 이러한 새로운 다양성에 대한 제작 과정을 보편성이라는 말과 함께 동시대성이라는 관계로 접목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그러나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해서 각 나라와 문화, 역사를 불문하고 더불어 성급히 공유하고 접목한다면 그것은 시대를 앞서가는 듯 보이지만 조급한 방향의 합리화가 될까 의심스럽다. 그렇다고 해서 옛것을 계승하고 대중화에 있어 낡은 껍데기만을 이어받고 허울 좋게 포장하자는 것도 아니다. 그 속에 있는 깊은 정신과 방식을 이해하며 올바른 계승과 창작 그리고 올곧은 전통 수용이 병행되어야 하고 자아의 존재감을 안고 동시대성을 묘사할 줄 아는 음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2020년 9월 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발간한 『예술경영』 453호 전주세계소리축제 박재천 위원장 변辯인 “전통예술이 짓는 현대의 소리” 글에는 프로파간다 피력의 글과 심정이 표현되어 있다. 글에는 변화와 도전을 위한 프로파간다를 만들고 선동가적인 파격과 인내를 견지한 기획자로, 정무적 감각을 갖춘 행정가로서의 다짐과 의지가 담겨 있었다. 향후 9월에 찾아올 21회 전주세계소리축제. 서두에도 피력했듯이 변화와 도전의 프로파간다가 “소리 없는 프로파간다”의 본질을 바꾸는 문화잠식처럼 오해되지 않게 한국 전통소리의 정체성, 현장성, 지역성, 동시대성을 견고히 지키며 추진해야 할 것이며 함께 견지하여 전통예술의 꽃인 소리를 아름답게 가꾸어 가야 하겠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2.07.07 16:12

"우리 가게 예술 수장고"...예술인, 소상공인 상생 프로젝트 '출발'

지역 미술계에서 ‘미술품 수장고’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수장고는 귀중한 것을 고이 간직하는 창고를 의미한다. 반복되는 작업만큼 계속해서 쌓이는 작품을 보관할 수 있는 ‘미술품 수장고’가 필요했던 것이다. 이에 2021년 서노송예술터와 전주시는 ‘우리 가게 예술 수장고’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서노송예술터(센터장 김성혁)와 전주시는 9월 30일까지 노송동 일대 점포 7곳에서 예술인, 소상공인 상생 프로젝트 ‘우리 가게 예술 수장고’를 진행한다. 선정된 지역 예술인은 김지우, 김승주, 김원, 문민, 박진영, 이루리, 이홍규, 윤미류, 윤철규, 최지영 등 10인이다. 상점은 △느루식당(현무1길 35) △믹스커피(노송여울2길 30) △커피니(기린대로 196) △카페 코모도(현무3길 98) △어느봄날(노송광장로 44) △베스트빈(노송여울1길 5) △왓커피(노송여울2길 18) 등 7곳이다. 지역 예술인은 공모를 통해 선정하고, 공모된 작가의 포트폴리오를 받아 서노송예술터와 전주시가 직접 발로 뛰어 작품과 어울리는 상점을 선정해 지역 예술인과 소상공인을 연결하는 방식이다. 지역 예술인에게는 작품 대여료를, 소상공인에는 공간 임차비를 지원한다. 프로젝트의 취지는 수장고 기능, 작품 전시 및 판매, 소상공인 및 구도심 활성화. 김성혁 센터장은 “처음에는 미술품 수장고의 기능만 담고자 했다. 수장고 기능과 동시에 전시도 같이 하면 어떨까 했다”며 “소상공인이나 구도심 활성화가 멈춰 있는 부분도 겨냥해 소상공인도 함께 일어나자는 차원으로 계획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2022년 프로젝트는 추진 4일째(7일 기준)로, 판매된 작품은 없으며 손님과 소상공인 모두 좋은 반응을 보인 것으로 나타났다. 7일 찾은 믹스커피, 왓 커피 대표 모두 프로젝트를 칭찬했다. 믹스커피 측은 “작품이 걸리니까 카페 자체가 예뻐지고 화사해졌다. 지역 예술인, 소상공인 모두에게 도움 되는 프로젝트”라는 반응을 보였으며, 왓 커피 측은 “손님들 사이에서 소소한 대화 거리가 생긴 듯하다. 1년에 2번 정도, 주기별로 진행하면 좋겠다. 저와 손님 모두 기분 좋은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7.07 16:10

국립익산박물관, 가메다 슈이치 교수 장서 수증

국립익산박물관(관장 최흥선)이 지난 5월 일본 오카야마이과대학 가메다 슈이치 교수의 장서 8700여 권을 기증받았다. 가메다 슈이치 교수는 일본의 역사고고학 권위자로, 고대 일본 백제계 문화 연구의 선구자다. 그는 충남대학교 재학 시절 한국인 연구자들과 돈독한 관계를 맺었다. 당시 관계를 맺은 것은 서오선 전 국립부여박물관장, 김종만 전 국립중앙박물관 교육과장 등이다. 이 인연을 통해 가메다 슈이치 교수는 퇴임 후 평생 모아 온 장서를 한국의 국립박물관에 기증하기로 결심했다. 그중 백제의 대표 불교 사찰인 익산 미륵사지에 새롭게 들어선 국립익산박물관에 기증을 결정했다. 가메다 슈이치 교수는 지난 3월 정년을 맞이하고, 장서 정리 마무리에 나섰다. 마무리가 되고 지난 5월 1차로 8700여 권을 익산에 전달했다. 향후 수년 안에 소장한 모든 장서를 국립익산박물관에 기증할 예정이다. 1차 기증 장서는 일본 고고학 및 고대사, 불교사 관련 서적, 일본 각 현의 지방사, 발굴 보고서 등 6000권 이상의 단행본과 나라육대사대관, 야마토사대관 등 일본 불교미술사 관련 다수의 전집류다. 또 중국의 문물과 일본의 고고학 잡지 등 동아시아 고고학 및 불교문화 관련 연속 간행물도 포함돼 있다. 이밖에도 조선학보, 한국문화와 같이 일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 연구의 현황을 알 수 있는 자료도 다수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익산박물관은 나머지 기증 장서 운반이 마무리되는 대로 현재 건립 추진 중인 국립익산박물관 아카이브관에 가메다 슈이치 교수의 장서를 공개하고 관리할 계획이다. 국립익산박물관 관계자는 “향후 익산 미륵사를 중심으로 한 백제 불교문화와 일본 고대문화 연구의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전했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7.05 16:57

[이승우 화백의 미술 이야기] 아듀 루시 - 줄스 파스킨 1

헤밍웨이, 피츠 제랄드, 에즈라 파운드, 제임스 조이스, 또는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유트릴로, 샤갈, 브랑쿠시, 기슬링, 수틴, 파스킨, 브락크, 트리스탄 짜라, 만 레이, 후지타, 데스노스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뿌듯할 만큼 유명한 사람들, 혹은 유명해질 사람들이 파리의 몽파르나스에 옹기종기, 그렇지만 격렬하게 모여 살았다. 세기 말과도 같은 상황에서, 오히려 그런 분위기를 즐기며 1950년대의 명동처럼 그렇게 살았다. 보헤미안 혹은 에뜨랑제 예술가들, 그들이 살아가는 단면을 당시의 키키라는 여인의 회상을 통해 보면 도무지 뒤죽박죽이다. 키키라는 여인이 유트릴로 앞에서 포즈를 잡고 모델을 선 뒤 어떻게 그렸을까 궁금해서 그림을 보았다. 그랬더니 시골집 한 채가 그려져 있었다거나 거리에서 텀블링을 하며 자신을 홍보하기에 바빴던 후지타라는 일본인 화가가 3000명의 모델을 그렸다는 믿기지 않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야기로부터 키키가 모델을 서러 와서는 이젤을 빼앗아 후지타의 초상화를 그리고 나서는 오히려 후지타에게 모델료를 받아 갔다는 등, 심지어는 위에 열거했던 거의 모든 남자들과 잠자리를 같이 하고 20명의 남자와 데이트를 약속했다는 식으로 전혀 정상적인 사고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아주 쉽게, 극히 정상적인 것처럼 이루어지던 그때,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던 사람들, 그 에콜 드 파리에 뒤늦게 어느 날 홀연히 파스킨이 나타났다. 파스킨은 넉넉하게 돈을 벌었음에도 오랜 방랑의 언저리에서 숙명처럼 받아들였을 고독과 허망, 그리고 비애의 그림자를 끌고 이 저주받을 회오리의 한가운데로 끌어당겨진 것이다. 서부 영화의 감성 어린 주인공처럼 검은 눈에 검은 옷, 검은 양말, 검은 모자에 검은 구두까지를 모두 검은색으로 감싼 그는 스페인계 유대인의 바이올리니스트 아버지와 이탈리아 사람인 어머니 사이에서 불가리아에서 태어나 루마니아에서 교육을 받고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다국적인 방랑자로서 모든 나라말을 묘한 악센트로 다 말할 수 있는 사내였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2.07.04 17:05

전북 공연 상반기 티켓 판매수 전년 대비 172% 증가

올해 전북 공연시장 상반기(1∼6월) 티켓 판매수가 전년 상반기 대비 172% 증가했다. 오히려 코로나19 확산 이전인 2019년 상반기(3만 1735건)보다도 6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연예술통합전산망(KOPIS) 지역별 통계에 따르면 전년 상반기 티켓 판매수인 1만 9595건과 비교해 172%, 약 3배가량 증가한 5만 3362건이 판매됐다. 티켓 판매수가 급증한 것은 코로나19 사회적 거리 두기 해제, 코로나19 확진자 감소세, 관람객의 관람 심리 등 여러 가지 요인이 맞물려 증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티켓 판매수와 함께 증가한 것은 티켓 판매 수입이다. 티켓 판매수보다도 티켓 판매 수입이 눈에 띄게 늘었다. 전년 상반기 티켓 판매 수입은 총 6억 4599만 8000원, 올해 상반기 티켓 판매 수입은 총 23억 3375만 2000원으로 무려 261%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북 문화예술계도 활기를 띠고 있다. 실제 전주문화재단 마당창극 10주년 공연인 ‘칠우전’ 첫 공연 만석, 전북도립국악원 대표 상설공연 상반기 목요국악예술무대 객석 점유율 95%(7회 중 4회 매진), 제38회 전북연극제 매진 등으로 보아 문화예술계에 봄이 찾아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류경호 전주대 공연방송연기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억눌려 있던 관람 심리가 풀린 것으로 보인다. 관람객 외에 공연단체 역시 코로나19, 지방선거 등을 이유로 묶여 있던 공연을 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티켓 판매수가 급증한 것”이라며 “실제 공연장, 극장 섭외하는 것도 치열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여러 가지 요인이 서로 맞물리다 보니 증가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7.03 16:51

[미니 인터뷰] 이순재 "영화 발전은 지역 내 마인드에 달려 있어"

원로배우 이순재(88)는 지난 1일 국립전주박물관(관장 홍진근),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전북도지회(회장 나아리)가 주최하는 2022 영화 아카데미에 강연자로 나섰다. 본보는 지난 1일 이순재를 전주의 한 음식점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순재는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전북도지회 상임고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전북과의 인연이 있는지 물었다. 그는 “이북 사람이기 때문에 전북, 특히 전주와는 연관이 없다”며 “전주에 대한 좋은 인식은 있다. 전주는 양반의 도시, 품격 있는 도시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이 지역민에도 은연중에 배어 있다”고 대답했다. 문득 배우 이순재가 아닌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전북도지회 상임고문으로 바라보는 전북 영화가 궁금했다. 이에 이순재는 “전북 영화는 역사를 가지고, 국제영화제 개최지로서의 품격도 가지고 있다”며 “전주국제영화제가 지역에 좋은 영향, 역할을 하고 있고 전북 출신 영화인도 많으니 앞으로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북 영화의 발전을 위해서는 “가만히 앉아서 해 주기만을 바라면 안 된다. 나름대로 지역민이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관리해야 한다. 도지사, 시장, 군수 등도 영화에 관심을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고, 전주만의 무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영화 발전은 지역에서 마인드를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영화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고민하면 된다. 미래를 위한 기획안을 가지고 추진하면 안 될 것 없지 않나”라고 덧붙였다. 이순재는 “지역 인재 발굴도 필요하다. 예로는 전주 지역에 정통 극장을 만드는 것이다. 모든 발상을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핵심이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 전북도지회도 있고 다 있으니까 지역 자체에서 영화 제작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한편 이순재는 최근 2022 영화 아카데미 강연,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전북연합회 초청 문화특강 등으로 전북도민과 영화 발전을 위해 전주를 찾고 있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7.03 16:44

[김용호 정읍시립국악단 단장 전통문화바라보기] 방탄소년단(BTS)의 노력과 용기

지난 16일 그룹 방탄소년단은 각 언론매체를 통해 '프루프' 음반의 기점으로 팀으로서 음악 활동을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당분간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솔로로 음악 활동을 이어가면서 개인의 성장에 보다 집중한 뒤 돌아온다는 계획도 알렸다. 내놓은 곡마다 최정상을 만들고 1억 명이 넘는 ‘아미 A.R.M.Y’라는 팬클럽을 소유하고 있는 그들은 “가수로 데뷔해서 사회적으로, 세계적으로 무거운 책임감을 갖게 됐다. 어떻게 생각하면 우리는 그것에 걸맞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똑똑한 사람도 아니다.”라고 이야기하며 그동안의 활동 심정을 토로했다. 2013년에 데뷔한 그들은 10년이 안 되는 시간 속에 많은 관심과 이슈를 만들어 냈다. 과연 방탄소년단은 타고난 진정 천재이자 특별한 문화의 산물이었을까? 우리가 잘 아는 모차르트를 이야기 해보자. 클래식의 천재로서 가장 많은 음악 애호가들을 클래식으로 입문하게 만든 모차르트는 처음부터 누구도 생각할 수 없는 독창적인 작품을 작곡한 천재는 아니었다. 어릴 적 그에게는 뛰어난 교육자이자 매니저인 아버지가 있었고 신동에게 호의적이었던 귀족 사회가 있었다. 그리고 모차르트는 음악 공부와 연습에 매진한 노력파였다. 성인이 돼 그가 작곡한 작품들은 그가 어린 시절부터 기울여 온 엄청난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모차르트는 자신이 쓴 편지들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손가락이 휘어질 정도로 밤낮으로 연습에 몰두했다. 모차르트의 작품들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최소 10년간의 연습 기간을 거치면서 조금씩 작곡 실력을 향상하고 작품의 질을 높여갔다. 모차르트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상상하는 천재는 없다. 엄청난 재능을 갖고 태어나 배우지 않고도 알고 사회적 환경과 관계없이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세상을 바꾸는 그런 천재는 없다. IQ도 천재를 식별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 천재라고 불린 사람들은 모두 환경의 도움을 받으면서 많은 노력을 한 사람들이다. 방탄소년단을 만든 방시혁도 한 곡을 위해 지난날 수백, 수천, 수만 번의 음악을 고치고 만들었을 것이며 방탄소년단 구성원 하나하나 무대 위로 올리기 위해 노래와 안무의 연습을 수천, 수만 번 거쳤을 것이라 의심치 않는다. 몇 년 전 유럽의 일간지 르몽드는 <유럽을 덮친 한류>라는 기사에서 “일본과 중국에 끼인 것으로만 알려졌던 나라, 자동차와 전자제품 수출로만 알려졌던 나라가 이제 자국의 문화를 통해 자신을 알리고 있다”라고 K-pop 진출을 알린 적이 있었다. 이후 우리 한국은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 태권도, 한복, 한식, 국악 등 다양한 방면으로 세계 중심을 파고들었고 그러한 노력과 인내는 다시금 오늘의 방탄소년단을 만들었다. 이러한 시행착오, 체험 그리고 자기 일에 대한 애정과 노력, 인내가 있었기에 그들은 지금 세계 문화의 중심에 있는 것이다. K-pop 또한 그렇지만 이제 문화적 동기부여를 ‘made in’<제조국>보다는 ‘made by<제조자>로 더 생각할 때가 됐다. 수많은 문화와 기호가 넘쳐나는 시대에 이러한 제조자의 역할은 더욱 커져만 갈 것이며 천재적 진화 과정은 그렇게 후배들에게 전해지며 다양한 문화의 국가경쟁력으로 표출될 것이다. 방탄소년단의 노력과 용기는 그러한 과정 위에 있으며 세계 문화 중심에 다시 우뚝 서게 될 것이다.

  • 문화일반
  • 기고
  • 2022.06.30 16:43

'장문희 제자' 조혜진, 명창 박록주 전국국악대전서 대통령상 수상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2호 판소리 심청가 보유자 장문희 명창의 제자 조혜진(38)이 6월 11, 12일에 열린 제22회 명창 박록주 전국국악대전에서 대통령상(명창부 대상)을 수상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수상한 소식은 6월 12일에 전해졌지만, 장문희 명창의 제자인 것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온전히 장문희 명창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 중 대통령상을 수상한 것은 처음이다. 조혜진은 15년 동안 거주지인 광주에서 연습지인 전주를 오가며 연습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문희 명창은 제자 조혜진을 “소리를 사랑하는 친구”라고 소개했다. 이어 “제자는 38세다. 개인적으로 힘들고 어려운 시절이 있었을 나이인데, 그럴 때마다 소리로 한을 풀었다. 힘들어서 소리를 포기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조)혜진이는 오히려 힘든 것을 계기로 삼고 더 열심히 소리를 배운 친구”라고 말했다. 조혜진은 “아직도 공부할 것이 너무 많아 받아도 되나 싶다. 얼떨떨하다. 평소 선생님께 기쁨을 드리지 못했다. 언젠가는 큰 선물을 드리고 싶었는데, 기회가 온 것 같아 기쁘다”며 “앞으로도 진실된 소리를 하고 싶다. 앞으로 할 게 너무 많다. 선생님의 가르침에 부끄럽지 않은 제자가 되고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조혜진은 전남대 국악과를 졸업했다. 나주시립국악단원을 역임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11회 무안전국승달국악대제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 제16회 여수진남전국국악경연대회 판소리 명창부 국회의장상 등을 받았다.

  • 문화일반
  • 박현우
  • 2022.06.30 16:41

[전북일보 신춘문예 작가들이 추천하는 이 책] 김영주 작가 - 우오즈미 나오코 '하모니 브러더스'

검색하다 눈에 띄는 책 표지가 있어 클릭해보았다. 소파에 앉아 있는 두 사람, 무언가 부자연스라운 모습이었다. 독특한 끌림에 아무런 정보 없이 무작정 주문했다. 그렇게 『하모니 브러더스』를 무작정 만났다. 7년 전 사라졌던 형, 유이치가 불쑥 나타나면서 가족이 저마다 모습을 서서히 드러낸다. 마치 프로타주처럼 엄마와 아빠, 형과 특히 히비키가 도드라진다. 중학생인 히비키는 중고등학교 통합과정인 중학교에 입학한 우등생이었다. 집을 나간 형으로 인해 부모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공부는 점점 어려워져 성적은 곤두박질치지만, 불안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었다. 숨 막히는 현실을 같은 반 후토시에게 은밀한 분풀이를 시작한다. 가끔 엄마가 가꾸는 화분을 밖으로 떨어뜨려 부숴 놓는다. 유이치 형이 돌아왔다. 크림색 원피스에 허리까지 기른 갈색 머리, 오렌지색 입술과 손톱을 하고 어느 날 불쑥 나타났다. 마치 사나흘 집 나가 동생이 잠든 사이 귀가한 것처럼 형은 태연했다. 형이 돌아온 후, 엄마와 아빠는 될 수 있는 한, 서로 마주치는 일을 피한다. 엄마는 형이 목욕하고 나온 욕조를 닦고, 자기 말만 불도저처럼 한다. 엄마의 기에 눌려 자기주장이 없던 아빠가 형에게 머무는 3주 동안 말 걸지 말라고 한다. 가슴 속에 따끔따끔한 것이 어느 때보다 더 많이 굴러다니는 사춘기를 지내는 히비키는 자꾸 형이 내는 소리가 거슬린다. 모두 불편한데, 유일하게 형만 여유로운 자유를 만끽하는 것만 같다. ‘이게 바로 저예요. 아버지! 숨 막혀서 나갔지만, 가족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돌아온 거예요. 아버지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 바로 진짜 나!’ 당당한 자기를 보이는 형과 히비키는 달랐다. 뜻대로 안 되는 공부, 남모르게 하는 화풀이 대상인 후토시, 화분. 결국 끝은 분명히 있어서 후토시가 히비키의 속마음을 알아차린다. 약속한 3주가 지나고 떠나기 전 형이 작곡한 음악은 화해로 바꿔 놨다. 집에 돌아와 가족의 소리를 주워 담은 소리로 용기를 내는 히비키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후토시에게 손을 내민다. 동네에 있는 ‘양말 공장과 스타킹공장’을 ‘남자공장과 여자공장’이라고 말하는 편견처럼 우리는 가끔 보고 싶은 대로 보려고 한다. 일방적인 시각을 모두 나처럼 볼 것이라 착각한다. 가족이니까 오히려 말 못하고, 반대로 가족이니까 걸림 없이 아무 말이나 한다. 어쩌면 겉으로는 완벽해 보이지만 사실 가족은 보이지 않는 틈새가 많을 때가 있다. 너무 더웠던 여름 한낮, 나는 아들과 너무나 다르고 같았던 얘기로 소리를 높였던 적이 있었다. 이제껏 반항 없던 아들이 슬리퍼를 신은 채 서울로 가출했다. 나는 아들의 큰소리가 화났던 것이 아니었다. 글 속에 ‘양말공장’을 남자공장이라고 하는 것처럼 일방적인 내 말만 한 것을 깨닫지 못한 대화였다. 우기니 내 말을 이해 못하는 건 당연했다. 오히려 지금에서야 아들과 잘 소통하고 있다. 형 유히치는 성정체성을 찾는 과정이다. 가족의 이해보다 자기존중이 우선이다. 자기의 진짜 모습을 보이기 위해 화장을 하고, 치마를 입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환멸을 느낀다. 만약 내 아이가 성정체성으로 혼란을 겪는다면 흔쾌히 기뻐할 부모는 없을 것이다. 여기 나오는 부모처럼…. 아들이 밖에서 소변을 보지 않으려고 하루 종일 참는다는 말에, 자식 잃어버릴까 봐 수술에 동행한 부모를 뉴스에서 보았다. 내가 이해할 일보다 자식을 먼저 보는 마음이 얼마나 먼 얘긴지 알기에 마음이 뜨거워졌다. 우오즈미 나오코의 문장은 간결하다. 얇은 부피의 책 안에 가감 없이 표현하지만 섬세하고 단출하다. 주변인물인 후토시가 살아서 움직이는 묘사는 끝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했다. 그녀의 글에는 상처보다는 성장의 메시지가 있어서 희망적이다. 『불균형』,『원예반 소년들』,『하고 싶은 말 있어요.』,『에이 바보』 비록 찢어진 상처지만 봉합해 아물게 해주는 많은 이야기를 권해본다. 김영주 작가는 201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마키코 언니’로 등단했다. 2018년 동양일보 동화부문에서 ‘가족사진’으로 신인문학상 수상했다. 동화 ‘레오와 레오 신부’와 청소년 소설 ‘가족이 되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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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29 16:38

[서유진 기자의 예술 관람기] 유영국

“산에는 뭐든지 있다. 봉우리의 삼각형, 능선의 곡선, 원근의 단면, 다채로운 색…” 국제갤러리는 지난 9일부터 8월 21일까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유영국 20주기 기념전 <Color of Yoo Youngkuk>을 개최한다. 유영국 작고 20주년 기념으로 회화작품 68점과 드로잉 21점, 사진 작품 및 작가의 활동 기록을 담은 아카이브 등 주요 작품 세계를 총망라한다. 유영국은 근현대사의 격동기 1916년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서 일본 도쿄 문화학원에 입학한다. 그곳에서 일본의 추상미술의 대가들과 교류하며, 20세기 전반의 전위적인 미술이었던 초현실주의와 추상미술에 깊이 매료된다. 새로운 예술적 기법뿐만 아니라 표현적 다변화를 고심하던 유영국은 ‘오리엔탈 사진학교’에서 수학하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사진을 통한 새로운 조형 질서를 탐구하며, 점, 선, 면, 형, 색 등 기본 조형 요소를 중심으로, 자연 추상이라는 그 만의 추상 세계를 구축하게 된다. 유영국은 1943년 고향 울진에 돌아와 틈틈이 작품활동을 하다가, 1964년부터는 전업 미술작가가 된다. 울진은, 서쪽에는 태백산맥의 험준한 산악이 많고 동해를 향하여 급경사를 이루고, 해안에는 약간의 좁고 긴 해안평야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낸다. 울진은 예술가에게 천혜의 장소이다. 그는 이런 울진의 산을 모티브로, 대담한 구상과 화체(畵體)를 통해 대형 추상회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색채를 서서히 쌓아 올리고 두텁게 만드는 등 계산된 구도와 색채를 선택, 비정형(非定型) 추상에서 기하학적 형태로의 변화가 두드러진다.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을 기반으로 초록, 보라, 검정을 쓰며, 긴장감과 보색의 조화, 색채의 깊이, 공감각을 동시에 부여하는 등 추상회화 미학의 절정에 다다른다. 지난 2018년에도 ‘유영국 색채추상’전 작품 24점에 대해 필자는 기사를 쓴 적이 있는데, 이번 전시는 90여 점에 달하는 유영국의 뛰어난 걸작들을 감상할 수 있어서,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그의 작품은 강렬하고 원초적이며 동시에 서사적이고 균형미가 뛰어나게 모던하며 거침없다. 수십 년 앞서간 유영국의 작품은 아무리 보아도 지루함이 없다. 감동적이고 강렬한 작품을 보고 나면 잔상이 뇌리에 남아 있는데, 다른 어느 작가 작품보다 잔상이 강렬하다. 유영국의 원색의 산은, 이 답답하고 지루한 팬데믹 시대에 아이러니하게도 깊고 푸른 바다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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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28 17:20

[이승우 화백의 미술 이야기] 나는 엉덩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2

예술의 도시 파리를 동경하여 세계 각지에서 모인 일군의 화가들을 우리는 ‘에콜 드 파리’라 부른다. 대표적으로 파블로 피카소, 마르크 샤갈,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등이 있다. 우리나라 작가로는 김창열, 남관, 이응노, 권옥연, 이성자, 손동진 등이 있다. 몽마르트르 거리에서 다시 이주해 간 몽파르나스 거리에서 그들은 그림을 그리고, 웩웩거리며 발악을 하고, 눈에 불을 켜고 예술론을 이야기하며 굶고 취하고 혹은 값싼 정어리 통조림을 나눠 먹어가며 추위에 떨었을 것이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같은 경우에는 조각을 하기 위해 남의 공사장에서 주춧돌을 훔치고 하다 만 돌을 다시 가져다 놓고 하던 시절이었다. 이중에서 가장 기품이 있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는 어느 날 귀족 부인에게서 혼자만 초청할 수 없으니 모두를 초청한 가운데 현관부터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그림만을 걸어 놓고 그에게 간접 구애를 했다. 이후 그 부인과 잘 지내던 어느 날 그 귀족 부인이 낙태 수술을 위해 독일을 다녀온 것을 알게 되고 그 부인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네가 감히 천재의 씨를 지워?”라고 할 만큼 자존심이 강했고 그중 제일 주정뱅이였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그가 죽기 며칠 전 동료 화가인 모리스 위트릴로의 어머니며 역시 화가인 수잔 발라동을 찾아가 그녀의 품에 안겨 울면서 유대인이 부르는 죽음에 대한 기도의 노래를 부르던 것이 그의 마지막 노래가 되었다. 인간의 그 슬픈 정념만을 관조한 방랑자이면서 기품 있는 교양을 간직한 그가 르느와르 화실에 갔을 때의 일이다. 자신의 관능적인 그림 앞에 선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나는 이 엉덩이가 탐스러워 몇 번이나 어루만지며 이 그림을 그렸지”라는 자랑에 단 한 마디로 쐐기를 박아 버리고 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선생님, 나는 엉덩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후세의 사람들에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전기 영화에서 잔 에뷔테른으로 하여금 눈물을 가득 머금고 “사랑이 뭔지 아나요? 진정한 사랑! 그런 사랑을 해보셨나요? 영원히 비난받아야 할 사랑을요. 난 해 봤죠”라는 독백을 하게 한 영감을 준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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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06.27 16:34

김관영 "문화예술 정책 목표는 일자리 확대, 문화산업 주도"

김관영 전북도지사 당선인은 전국 최연소, 최다 득표라는 기록을 세우고 민선 8기 전북도정을 이끌게 됐다. 전북도지사 출마 당시 도내 문화예술인들의 사이에서는 문화예술 정책이 부족하고, 관심이 부족한 것 같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전북일보는 문화예술 정책, 문화예술인 지원 등에 대해 얘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를 진행했다. △당선인이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고, 추진하고자 하는 문화예술 정책이 있으신지? “선거 과정에서 발표한 공약 내용만을 보면 상대적으로 경제 관련 공약이 강조된 것은 사실입니다. 이는 도민의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는 도민들의 요청에 확답을 드리기 위해 경제에 대한 표현이 더 많았던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나 도정을 운용해 나갈 때는 경제 분야는 물론 문화예술, 농정, 재난안전, 복지 등 모든 분야를 다 골고루 살피고 지원해야 하고 또 그렇게 도정을 챙겨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문화예술 분야에서도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인력양성-창작, 제작-유통-문화향유 등 전 과정이 일자리와 연계되도록 할 계획입니다. 또한 문화 분야 공약으로 제시했던 K-문화지원센터 건립, 예술가들과 함께하는 문화적 도시재생 추진뿐만 아니라 예술인 역량강화 및 예술인 복지증진, 지역문화예술단체 지원 확대, 문화예술 일자리 확대 등에 대해 현재 인수위에서 검토하고 있고 예술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외됨이 없도록 꼼꼼히 챙기도록 하겠습니다.” △전북 문화예술의 현 주소, ‘예향 전북’ 되찾을 대안이 있으신지? “코로나19로 인해 전 도민 모두 다 어려웠지만 특히 공연예술, 예술교육 분야 등이 더 큰 피해를 입었고, 코로나 팬데믹 상황이 아니더라도 예술 전공 및 무형문화재 전승 기피와 대학의 예술대 정원 감축 등이 겹쳐 문화예술의 생태계가 무너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취임 후 최우선 과제는 문화예술 생태계 회복과 예술인 복지 강화에 중점을 두고 추진하겠습니다. 문화예술 분야도 인력양성, 예술 창작활동, 문화향유 등 어느 한 분야 중요하지 않은 분야가 없으나, 모든 분야에서 일자리 창출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은 변함없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질문내용만으로 한정한다면 ‘예향 전북’이라는 과거 이미지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이제는 과거에 머물러 있으면 뒤처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제 새롭게 바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지역 고유의 전통문화의 산업적 활용도가 높은 소재, 즉 한지, 한복, 한식, 한옥마을 등의 콘텐츠를 활용하여 첨단기술과의 융합을 통한 산업화는 물론 세계적인 브랜드로 발전시켜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문화예술인들과의 소통은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그동안 정치를 해오면서 항상 강조하는 것이 격의 없는 소통과 통합을 강조해 왔습니다. 앞으로도 언제나 도지사실은 열려있고 다양한 방법으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도지사는 모든 독자적으로 처리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가급적이면 많은 예술인들을 만나고 현장에서 직접 소통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다만, 정책결정에 관한 사항 소외된 예술인에 대한 의견 등에 대해서는 도의 관련 부서와 문화관광재단의 예술인복지증진센터를 중심으로 하되 예총, 민예총, 문화원, 생활문화예술동호회 및 각종 예술단체들의 의견을 꼼꼼히 챙겨 정책에 반영해 나갈 계획입니다.” △코로나19 관련해서 문화예술인들을 위한 일자리 마련, 지원 등 관련 정책은 있는지? “많은 사람이 공감하는 사항입니다. 그동안 정부나 전라북도에서 문화예술인 재난지원금 등 통해서 일부 피해를 지원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충분하지도 않고 또 다른 재난상황이 발생한다면 또 같은 상황이 되풀이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예술인의 근본적인 복지증진 시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선 도내 예술인들의 정확한 실태조사를 통하여 예술인들이 창작에만 전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드리는데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이를 위해 문화관광재단에 설치된 예술인복지증진센터의 기능을 강화하고 예술인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도록 하겠으며, 아울러 안정적인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도내 협동조합과 사회적 기업의 문화예술 일자리 확대에도 힘쓰겠습니다.” △‘예향 전북’의 이미지 되찾기 위해,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는 도내 문화예술인들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민선 8기 문화예술 정책의 목표는 일자리 확대와 문화산업 주도가 주요 키워드입니다. 이제 문화예술도 디지털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VR, AR, 홀로그램 등과 융합을 통한 재창조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K-문화지원센터 건립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본 센터는 우리 지역을 기반으로 한 K-pop, 게임, 드라마, 영화, 웹툰 등을 육성하고 미디어와 콘텐츠 산업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것으로 문화콘텐츠 인프라 집적화와 청년 전문인력 양성 및 창·제작자의 교류 공간 제공, 콘텐츠 체험 공간을 마련하도록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도청 내 관련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며 전담기관을 설립하여 인력양성, 원천기술 개발, 콘텐츠 개발, 산업화 등을 추진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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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현우
  • 2022.06.26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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