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팔도명물] 전남 나주배
배꽃이 휘날리는 4월 나주시 금천면에는 하얀색의 향연을 보기 위한 사진사들로 넘쳐난다.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배꽃이 하얗게 핀 달밤에)’로 시작하는 고려시대 후기 이조년의 평시조에서 보듯 남도의 봄, 최고의 정취는 나주에서 느낄 수 있다. 배꽃이 필 무렵 나주에서는 한 해 배 농사 풍년을 기원하는 ‘배신제’ 봉행 행사가 열린다. 제례는 전통 향교 제향 방식으로, 시민들까지 참여해 풍성한 결실을 한 마음으로 기원한다. 나주하면 떠오르는 특산품, 단연 ‘나주 배’다. 나주배는 영산강 유역의 양질의 토양, 과수에 매우 적합한 기상여건 그리고, 오랜 역사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수준 높은 재배 기술로 육질이 연하며 부드러우면서도 과즙이 많고 당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색깔이 곱고 아삭아삭한 특유의 식감으로 미국, 캐나다 등 미주 지역과 동남아, 중동, 유럽 지역 등 전 세계적인 과일로 인정받고 있으며, 동맥경화 등 성인병 예방과 천식 등 호흡기 질환 예방에 매우 효과가 좋다. ‘배하면 나주, 나주하면 배’ 나주배는 제주귤과 함께 인지도가 가장 높은 산지와 과일의 조합이다. 2022년 현재 나주 배농가수는 1947농가로, 올해 생산량은 4만8843t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전국 생산량의 20% 정도에 불과하지만, 나주배의 맛과 유명세가 전국민의 마음 속 깊이 각인돼 있다는 의미다. 나주배는 나주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 경제 전반을 관통하는 상징적 존재다. ‘나주는 모르지만 ‘나주 배’는 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나주배 유래에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1454년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 ’나주목의 토공물(土貢物) 목록에 ‘나주배’가 포함돼 있다. 호남읍지(1871년 발간)에서는 나주배를 임금에게 바친 진상품으로 소개한다. 근대적 배 재배는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일본인들이 금천면에서 만삼길 품종 100그루를 식재한 것을 계기로 신고, 금촌추 등 타 품종이 들어왔다. 이후 송월동에 거주했던 이동규씨가 1913년 상업 목적의 첫 과수원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건강 과일로 으뜸’ 나주배 부가가치 향상 노력 나주배는 건강 웰빙 식품으로도 인기가 높다. 고전 의서에서는 나무뿌리부터 열매껍질까지 버릴 것 없는 알짜배기 과일로 소개한다. 중국 의서 본초강목은 “폐를 보하고 신장을 도우며 담을 제거하고 열을 내리며 종기의 독과 술독을 푼다”고 했다. 특히 기관지 건강에 특효다. 허준은 동의보감에 “기침, 감기, 천식 등 환절기 질환에는 즙을 내어 복용하면 열이 있는 기침, 천식을 다스리고 열로 인한 목과 코의 통증해소에 좋다”고 배의 효능을 저술했다. 배로 만든 음료가 숙취 해소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입소문이 각종 언론매체, SNS를 통해 전해지며 호주에서는 배 주스가 숙취음료로 인기가 높다. 지난 2010년 당시 지식경제부(현 중소벤처기업부)는 나주시 금천면 일원 2만8753㎡를 ‘나주 배산업 특구’로 지정한 바 있다. 배 최대 주산지이자 재배 최적지로 지역을 선도하는 성장 동력 육성과 배 산업 고도화를 위한 각종 규제특례를 통해 농가소득과 지역경제 활성화를 견인하는 중장기 배 산업 활성화 방안을 추진해왔다. 나주시는 민선 8기 출범 후 배 산업 활성화를 위해 ‘나주 배 브랜드 가치 향상’과 ‘판로 확대’를 추진하기로 했다. 앞서지난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개년 원예산업 종합계획을 통해 노후화된 산지유통시설 현대화에 나서 금천농협 등 5개소에 169억원을 투입한 바 있다. 소비자 수요를 감안한 신품종 개발 및 재배에도 힘을 쏟고 있다. 다양한 소비 기호를 맞춰 일본의 신고배를 국산 품종으로 대체해 나갈 방침이다. ‘신화’, ‘창조’ 등 국내 육성 품종 출하 시 수매가 대비 비싼 가격에 전량 매입하고 국내 육성 품종의 품질과 생산성을 꾸준히 향상시킬 계획이다. 나주배 해외 시장 공략, 고부가가치 산업에 주목 나주배는 1929년 조선박람회에 출품돼 동상을 수상하며 나주를 대표하는 농산물로 유명세를 탔다. 나주배는 대만을 시작으로 미국, 호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 세계 각국으로 수출 판로를 넓혀가며 세계적인 명품 과일로 자리매김해왔다. 지난 8월에는 올해 첫 수확한 나주배 ‘원황’이 미국 수출길에 올랐다. 원황은 과즙이 풍부하고 새콤한 맛이 조화를 이루어 단맛이 많고 감미가 좋은 국내 육성 품종이다. 수출 물량은 지난해와 비슷한 약 70t으로, 나주시는 올해 수출 목표를 전체 약 2300여t으로 설정했다. 나주배 수출을 위해 ‘브랜드 수출포장재’, ‘농산물 수출물류비’, ‘수출 전문단지 해충 포획기’ 등 농가 지원사업과 ‘수출 전문단지 육성’, ‘해외 판촉행사 개최’ 등을 통해 수출 판로 다각화에도 노력하고 있다. 체계적인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해외수출 전문 에이전트를 운영, 전남도, 수출 유관기관 등과 함께 대규모 해외 판촉행사를 3~4회에 걸쳐 실시할 예정이다. 가공제품 개발 등 고부가가치 창출에도 힘을 쏟는다. 배즙에 치중된 가공제품의 다양화, 차별화를 목표로 이화쌀케이크, 배구움빵 등 새로운 가공제품들이 개발되고 있다. 맥도날드는 봄철 아이스 음료 메뉴로 나주 배로 만든 ‘배 칠러’를 출시해 화제를 모은 바 있다. 배 칠러 출시로 연간 약 164t에 달하는 나주배가 소비될 것으로 보인다. 1992년 개관한 국내 유일의 ‘나주배 박물관’도 시민에게 친근한 문화·체험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박물관은 단순 관람형 콘텐츠에서 벗어나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문화가 있는 날과 연계해 ‘궁중음식 배숙 만들기’, ‘배 수확’, ‘배 시식’ 등 다양한 문화체험 콘텐츠를 운영해 박물관 방문을 유도하고 있다. 윤병태 나주시장은 “추석이 예년에 비해 이르지만 적기 수확과 꼼꼼한 선과 작업에 힘써주신 농가, 관계자분들의 노고에 감사드린다”며 “지난해와 달리 저온, 병충해 피해가 적어 생산량이 45%가량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내수가격 안정화, 수출 판로 확보에 최선을 다해가겠다”고 말했다. 광주일보=윤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