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팔팔하다
“어이, 자네 아직도 팔팔해 보이네!” 코로나로 발을 끊자, 가끔 전화에 대고, 얼굴 잊어버리겠다는 성화에 못 이겨, 얼굴이라도 보여줄 요량으로 모처럼 동창회 사무실에 들렀더니 한 친구가 한 말이었다. 딴에는 반갑다는 뜻이었겠지만, 못 마땅해 하는 내 표정을 보고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었다. 그래서 보자마자 죽을 때가 되었다는 말을 듣는 것보바 났다고 했다. 그리고 열심히 방콕을 했을 뿐인데, 어느새 백발이 늘어 망구(望九)가 되었다며 무심한 세월만을 탓했다. 딴에는 늙었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마스크로 코까지 덮고, 머리 위엔 왕관 대신에 팔순때 선물로 받은 우산 형 모자까지 눌러쓰고, 열심히 등산도 하며 건강에 힘쓰고 잇다. 그런데 아직도 팔팔하다는 말을 들으니 언뜻 듣기는 기본이 좋을지 몰라도 비아냥 같이 들려 언짢았다. '998234' 99세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2,3일 안에 죽어야 복이라는 시쳇말이 있다. 그러나 이 말은 어디까지나 노인들의 희망사항이다. 많은 철학자들이 말한 대로 인간은 출생과 동시에 선고된 생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는 없지 않은가. 생로병사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다. 아침 식사 후에 외출 할 차비를 한 채 나서면 아내는 깜짝 놀라면서 나가지 말라고 붙잡는다. 코로나가 기저질환이 있는 노인들에게 치명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외출해야만 할 경우에도 절대로 식당에는 들어가지 말고 집으로 돌아오라고 당부한다. 살판난 듯 TV를 켠 채 방구석에서 뒹굴어도 보기에 흉하다고 핀잔하지 않는다. 쥐구멍에도 볕들 날이 있다는 속담처럼 삼식(三食)이라고 비아냥거림을 감내해야 하던 사람이 집에서 칙사 대접을 받고 있다. 그게 바로 코로나19의 덕이 아닌가. 코로나19 덕을 보는 사람들이 또 있다. 위정자들이다. 대구의 사태가 잘 마무리되자 위정자들은 성공한 K방역이라고 큰소리친다. 하지만 치료제나 개발된 백신도 없는 맹탕 방역이다. 그러다가 제2 제3차 감염이 확산되자 코가 석자나 빠져버린다. 실체도 모르고 팔팔하다는 말을 함부로 남용하다가 큰코다친 셈이다. 우리의 피 속에는 웅녀의 DNA가 흐르고 있다. 쑥과 마늘만으로 굴콕하면서 인간으로 환생한 DNA이다. 그 덕으로 우리는 쉽게 거리두기와 비대면 그리고 방콕을 감내하면서 호락질과 같은 생활로 어려움을 버틸 수 있다. 단군신화를 부정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그들은 단군신화 대신에 엉뚱한 신을 믿고, 곧 종말이 다가오고 있으니 2·3·4하기 전에 팔팔해져야 한다고 떠들어댄다. 결과적으로 코로나의 집단감염으로 다른 사람들마저 힘들게 하고 있다. 머리를 들고 팔팔하게 나대다가는 234할 수 있으니, 조용히 홀로 비우고 지내라는 것이 코로나의 경고다. 한참 친구들과 코로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아내에게서 식사 때가 되었으니 집으로 오라는 전화다.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를 한 채 집을 향하여 걷는 발걸음이 오늘따라 더 팔팔하다. 소크라테스는 스승의 죽음을 슬퍼하는 제자들 앞에서 처음 경험하게 되는 죽음에 대한 흥분으로 독배를 마실 시간이 아직 멀었느냐고 재촉하였다고 한다. 과연 삶에 대칭되는 절대적인 무(無)로서의 죽음이 있는가. 사르트르는 “나는 한때 과거였으며 앞으로 미래가 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무(無)가 있을 뿐이다”고 했다. 생(生)과 사(死)의 이분법에서 하루 빨리 벗어나는 것이 팔팔하게 사는 법이다. △이희근 수필가는 정읍 출신으로 계간 ‘문학사랑’ 수필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원종린수필문학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저서로 <산에 올라가 봐야> , <사랑의 유통기한>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