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백제] (62) 3장 백제의 혼(魂) 21
“네, 이놈!”
시선이 마주친 순간 김품석이 먼저 외쳤다. 계백과의 거리는 겨우 세걸음, 칼을 내려치면 닿는 거리다. 계백이 가쁜숨을 고른다. 뒤쪽에서도 거친 숨소리가 났고 그 뒤쪽에서는 함성과 외침, 비명으로 가득찬 상황. 그러나 계백의 바로 뒤쪽 무장들은 입을 다물고 있다. 잠깐동안 마루방, 복도 사이의 좁은 공간에 짧은 정적이 덮여졌다. 그저 숨 두번쯤 마시고 뱉을 만큼의 정적, 그리고 그 다음 순간 계백의 외침이 정적을 깨뜨렸다.
“백제 나솔 계백이 김품석을 친다!”
“오!”
김품석이 맞받아 소리치면서 칼을 내질렀지만 이미 기세가 꺾였고 살기가 떨어졌으며 검법 또한 미숙했다. 계백이 김품석의 칼을 겨드랑이 사이로 보내면서 치켜든 칼을 후려쳤다. 맹렬한 살기, 노도와 같은 기세, 빈틈없는 검술이다.
“으악!”
비명은 뒤쪽 시녀들한테서 터졌다. 왼쪽 어깨에서부터 오른쪽 허리까지를 비스듬히 잘린 김품석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기 때문이다.
“우왓!”
계백의 뒤에서 함성이 일어났다.
“김품석을 백제 나솔 계백이 베었다!”
화청의 외침이 복도를, 청을, 내성으로 울렸다. 뒤쪽 군사들이 따라 외친다.
“김품석을 베었다!”
“대야군주 김품석을 백제 나솔 계백이 베었다!”
군사들이 너도 나도 다투어서 외친다.
내성으로 따라 들어왔던 신라군이 외침을 듣고 흔들리기 시작했다. 전의(戰意)가 꺾인 것이다. 장수들이 독전했지만 더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대신 백제군의 외침은 더 커졌고 더 넓게 퍼졌다. 신라군은 머리를 잃은 용이 되었다.
“무엇이? 김품석을?”
펄쩍 뛰듯이 놀란 한솔 협반이 벌떡 일어섰다. 이곳은 서문의 성루 위, 협반은 북문에서 서문으로 옮겨온 것이다. 이곳이 지휘하기도 용이했고 윤충의 본군이 진입하기에도 쉬웠기 때문이다.
“이, 이런, 나솔이 대야성을 먹었다.”
협반이 반쯤 얼이 빠진 표정을 짓고 말했다.
“내가 그 뒷수습을 해야겠다.”
어깨를 부풀린 협반을 보고 장덕 하나가 물었다.
“한솔, 어쩌시렵니까?”
“어쩌기는, 내가 곧장 내성으로 가서 나솔과 합류하는 것이지.”
“성문은 어쩌시구요?”
“이놈아, 내가 수문장이냐?”
협반이 버럭 화를 냈지만 지금은 전시(戰時)다. 조금전까지 죽고 죽이는 싸움을 끝낸 무장(武將)들이라 거칠어져 있다.
“한솔, 우린 고작 2천3백이 남았소, 그 병력으로 1만이 넘는 신라군이 우글거리는 성안을 휘젓는단 말이요? 성문을 지켜서 방령이 오시기를 기다립시다.”
“이놈아, 그래서 너는 장덕에서 솔(率)품계로 승진하지 못하는 것이야. 우리가 성안을 휘저으면 머리 잃은 용이 제대로 대항이나 할까?”
“용 몸통이 꿈틀거리면 다 깔려죽소!”했지만 장덕의 목소리가 약해졌고 다른 장수들이 거들었다.
“가십시다! 2천으로 성을 빼앗읍시다!”
“신라군이 열린 서문, 북문으로 도망쳐 나갈 것이오!”
그때 협반에 대들었던 장덕을 손으로 가리켰다.
“곽청, 네가 나솔이 될 기회다! 앞장서라!”
그러자 장수들이 ‘와’웃었고 분이 난 장덕이 눈을 부릅떴다.
“좋소, 대공을 세워 한솔이 될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