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출근을 해서 창우, 창희, 다솔이와 뒷산 솔숲에 간다. 아이들은 하낫!, 둘!, 구호를 외치며 양다리, 양팔을 힘차게 내두르며 숲 속으로 난 작은 길을 간다. 창우는 1학년때 나랑 같이 이 숲을 자주 왔기 때문에 앞서 가며 여러 가지 것들에 대해 아는 척을 한다.
작년 봄, 잎들이 막 피어날 때 창우는 이 솔 숲의 그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솔잎들을 보며 “참, 아름답다.”는 말을 해서 나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었다.
다솔이는 서울에서 금방 전학을 왔기 때문에 이 솔숲에 대해 전혀 모른다. 다솔이는 커다란 소나무들을 올려다보며 이 나무들이 다 무슨 나무냐고 한다. 내가 “다 솔이다.” 그러니까 다솔이는 내 말뜻을 몰라 나를 말똥말똥 쳐다보며 “예? 뭐요?.”한다. 커다란 소나무 숲을 올려다보는 다솔이의 온 몸은 나무처럼 신비함으로 가득차 보인다. 이 큰 나무들이 다 소나무라고 하니, “그럼 소나무가 뭐예요?.”한다. 그리고 땅에 떨어져 있는 솔방울을 줍기 시작한다. 창희도 예쁜 솔방울을 한아름 줍는다. 다솔이더러 뭐하게 솔방울을 그렇게 많이 줍냐고 하니, 언니 가져다 준단다. 창희, 올 학년초에 우리 학교 1학년은 창희 한명이었다. 1학년이 한명이어서, 창희는 학교에 오면 너무 심심해했다. 혼자 놀기도 그렇고, 늘 교실에서 내 곁에 붙어 있었다. 내가 보기에도 안타까웠다. 다행히도 며칠만에 서울에서 다솔이가 왔다. 아, 창희는 신이 났다. 다솔이를 만나자마자 다솔이와 창희는 세상에 둘도 없는 하나뿐인 단짝이 되어버린 것이다. 다솔이가 우리 반에 들어올 때, 그 때 창희의 기대감에 찬 얼굴을 나는 평생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 이렇게나 천만 다행인 ‘아름다운 다행’을 나는 보지 못했다. 다솔이와 창희 둘을 내 앞에 앉혀 놓고 바라보면 나는 세상이 아름답다. 이들 둘이 호기심 가득찬 그 까만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은 나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으로 만든다. 이 아이들에게 내가 누구기에, 이 아이들이 나를 찾아와 이렇게 호기심 가득찬 새까만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가. 그런 다솔이와 창희의 두눈을 바라보며 나는 미소 짓고, 즐겁고, 신나고, 나는 가슴이 서늘해진다. 그랬구나. 가슴 서늘한 이 아름다운 사람의 눈동자들을 바라보며 나는 이 세상을 아름답다고 노래하며 살아 왔구나.
봄 햇살이 운동장에 가득하다. 아이들의 운동장 구석에 모여 놀고 있다. 며칠 전부터 아이들은 운동장 구석에 땅을 파 굽이굽이 작은 강모양의 도랑을 만든다. 처음에는 우리 반 2학년 창우와 다희가 장난 삼아 그 일을 하더니, 아이들이 하나 둘 달려들어, 지금은 전교생 18명이 모두 그 일에 달려들어 물을 긷고, 실같은 도랑을 만들어 물을 붓어 옥정호 모양을 만든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아이들의 흙장난 모습은 마치 개미들이 부산하게 일을 하는 것처럼 활달해 보인다. 이따금 내가 가서 이게 뭐냐고 물으면 아이들은 입을 모아 “이거, 섬진강이요.”한다. 넓은 호수, 좁은 계곡, 구불구불 재미있는 물굽이를 만드느라 흙에 서투른 다솔이는 옷이 척척하게 다 젖고 흙범벅되고, 얼굴에는 흙이 튀어 붙어 뽀얀 얼굴이 말이 아니다. 손톱 속에는 흙이 들어가 금방 새까매졌다. 그래도 아이들은 자기 세상을 만들며 즐겁고 재미가 있다.
아이들이 모두 돌아갔다. 아이들이 놀다 돌아 간 곳에 다 찌그러진 양동이, 자리 부러진 괭이, 물길어 나르던 빈 음료수 깡통, 호스가 어지럽게 흩어져 있다. 운동장에 며칠 째 어찌나 많이 물을 가져다 부었던지 그 근방 흙은 촉촉하게 젖어 있다. 온갖 모습으로 움직이던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아이들 중 서울에서 온 다솔이의 서툰 모습이 생각나서 나는 자꾸 웃음이 나온다. 다솔이는 궁금한 것도 참 많다. 뭐든지 나에게 와서 까만 눈을 반짝이며 묻는다. 끝없이 캄캄한 다솔이에게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할까. 나는 공동체를 잃어버린 이기주의가 판을치는 우리 사회의 무서운 현실과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고 아이들에게 경쟁력만을 부추기고 독려하는 교육 현실을 돌아다보며 진짜 겁나고, 한치 앞이 보이지 않아 깜깜하게 몸서리를 친다.
/시인 김용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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