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 우리나라에서도 상영된 말론 브란도 주연의 ‘닥터 모로의 섬’이란 영화를 보면 충격적인 장면이 많이 나온다. 노벨상을 받은 생화학자 모로박사가 남지나해의 한 섬에 숨어 들어가 유전자 조작으로 인간을 능가하는 완벽한 새 생명을 창조한다는 내용이 영화의 줄거리이다.
그는 인간의 유전자와 표범, 늑대, 고양이, 양 등 각종 동물들의 유전자를 조작하여 인간과 그 동물들의 장점만을 결합시킨 수많은 반인반수(半人半獸)들을 만들어 낸다. 이미 반인반수가 된 모로박사의 아들, 생체적으로 반수가 되어가는 딸과의 갈등, 몸은 짐승이 됐지만 아직 인간의 이성을 지닌 ‘야수인간’들의 분노등이 영화 전편에 흐르면서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야기는 결국 동물의 유전자가 한 몸속에 있는 인간의 유전자를 지배하게 되면서 광포하게 변한 야수인간이 모로박사를 죽이는 것으로 끝을 맺는데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는 ‘생명의 영역은 신의 섭리’라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는 듯 싶다.
느닷없이 모로박사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인간의 유전자 구조를 해독한 ‘게놈연구분석초안’이 어제 공개됐기 때문이다. 인류의 달 착륙에 버금가는 생명공학의 획기적 개가로 불리우는 게놈의 완성은 장차 인류의 질병극복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의학계는 기대하고 있다. 지금까지 난치병으로 남아있는 암·고혈압·치매·우울증같은 질환에 대해 유전자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치유할 수 있는 길이 트인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 정보의 해독이 꼭 긍정적인 평가만 받을 수는 없다. 유전자 정보가 잘못 이용되면 돌연변이나 생물학적인 신종 전염병이 생길 수도 있고 물론 공상(空想)이지만 모로박사같은 엉뚱한 사람이 나타나 가공할 제3의 생명체를 창조해내지 말란 법도 없다.
벌써부터 게놈지도의 완성이 의학적 기적만큼이나 많은 윤리적·도덕적 딜레머를 야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모양이다. 자연과학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생명의 질서는 ‘신의 손길’만이 좌우하는 것으로 믿는 사람들에겐 그 생명의 본질인 유전자 정보에 과연 어디까지 접근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혼란스러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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