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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국정운영의 난맥상

한달 전 필자가 본란의 칼럼을 쓸 때는 모든 국민이 남북정상회담의 성과에 환희와 희망으로 충만했다. 그러나 그 후 한 달은 의약분업사태, 롯데호텔, 국민건강보험공단, 금융노조의 파업 등 "사태"의 홍수 속에서 국민들은 짜증스럽고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초유의 금융대란을 가까스로 피하면서도 안도해 하기보다는 다음에 또 무슨 "사태"에 시달려야 할지 걱정하고 불안해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최근에 밀어닥친 각종 사태는 우리 사회가 다원사회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불가피한 현상으로 인식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집단들간의 이익갈등현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상적 사건이 될 것이다. 이에 대해 권위주의체제에서는 집단간의 이익갈등이나 집단적 이익표출을 정부의 공권력으로 억압해서 잠재웠다 그러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최고 이념으로 표방한 '국민의 정부'에서는 집단적 이익갈등을 조정·통합하여 사회전체의 공익과 합치시키는 것이 국정운영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이런 국정운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창출하는 과제는 권위주의적 문제해결방식으로 회귀하려는 충동을 억제하고 끈질긴 대화와 협상, 인내와 설득을 요구하기에 매우 어렵고 긴 시일을 요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나 정치권은 아직 집단적 이익갈등의 문제를 해결할 시스템과 규칙을 완비하지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집단이익의 표출이 종국에는 '사태'나 '파동'으로 변질되고 마는 악순환을 거듭해 왔다. 이 같은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정부의 신뢰가 상실되고 정부의 권위가 흔들려서, 걸핏하면 최종적인 문제해결자인 대통령에게 모든 문제가 집중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런 악순환의 사슬을 끊기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는 문제해결능력의 전략적 지점이 무엇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앞서 민주화된 다원사회에서의 정치의 본래적 기능이 집단이익의 조정·통합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할 때, 이 속에서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중의 하나가 바로 문제해결능력으로서의 '전문성'이다.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문제들을 정치과정으로 끌어들여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치수준이 권위주의체제에서의 투쟁수준을 벗어나 정책산출의 장으로 탈바꿈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의 정치권은 다원적 갈등해결을 위한 전문성 제고, 조정능력향상, 민주적 절차의 확립, 행정체제의 전체적인 시스템 능력을 제고시키는 데 아무런 기여도 못하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정치권의 이런 문제 때문에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여러 가지 문제들에 불가불 관료적 해결방식으로 주로 대처하고 있다. 그러나 관료적 해결방식은 각종 이익집단들간의 분배적 욕구에 제대로 반응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관료집단은 본질적으로 정책의 집행단위이지 국가의사결정의 단위는 아닌 것이다. 국가정책의 집행단위가 시민들의 이익표출에 곧바로 노출될 때, 국가의 정책내용은 이리저리 기운 누더기처럼 되고 만다. 따라서 정치권이 의사결정과정에서 각종 이익집단들과의 충분한 토론과 심의, 조정을 거쳐 정책집행의 방향에 대한 시민사회의 자율적 합의를 이끌어 낼 때, 정부의 정책추진에 과부하가 해소되고 일관성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또 한가지 일련의 사태들을 보면서 필자는 국정운영에서 정책문제채택(agenda-setting) 능력의 한계를 절감한다. 국정운영에서 사회문제의 경중과 완급을 따져 우선 순위를 설정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할 때 국정운영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개혁을 체계화 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필자는 개인적으로 의약분업 문제의 채택이 시기적으로 옳았는가 하는 의문을 떨칠 수 없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시민사회가 좀 더 성숙된 모습을 보여줄 것을 당부하고자 한다. 모든 집단들이 각자의 이익을 배타적으로 강제하려 할 때, 결국은 그 피해가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고 만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회전체의 공동번영의 관점에서 자신의 요구를 자제하고 조율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 이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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