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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칼럼] 가을과 한 편의 시

진부한 말이지만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 다가왔다. 현란한 시각문화가 판을 치는 이 시대에 마음의 등불을 밝히면서 느긋한 기분으로 한 편의 시작품을 읽어보는 것도 좋으리라. 문명의 속도에 지친 우리에게 그것이 큰 위안을 주지 않을까 한다. 특히 감각적인 대중문화에 물들어 있는 컴퓨터 세대들에게 ‘가을’이라는 계절과 관련하여 권해주고 싶은 시 한 편이 있다. 떨어지는 낙엽을 통하여 인생의 의미를 되짚게 해주는 정곡(鄭谷)의 ‘낙엽귀근(落葉歸根)’이라는 작품이 그것이다. 시작품의 전문과 대체적인 뜻은 다음과 같다. “개미는 돌아갈 구멍을 찾기 어렵고(返蟻難尋穴)/새는 돌아갈 둥지를 찾기 쉽다(歸禽易見巢)/낭하(廊下)의 뜰에 가득하나 스님은 싫어하지 않고(滿廊僧不厭)/일개 속인은 많은 것을 싫어한다(一個俗嫌多)”.

 

정곡은 개미와 새, 그리고 도(道)를 닦기 위해 정진하는 스님과 보통사람인 속인(俗人)을 등장시키고 있다. 문제는 ‘왜, 어째서’ 이러한 소재들을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는가를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 개미는 어째서 돌아갈 구멍을 찾기가 어렵고, 새는 돌아갈 둥지를 찾기 쉬운가? 뜰에 가득한데도 스님은 싫어하지 않고, 왜 일개 속인은 수북히 쌓인 그것을 싫어하는가? 동시에 가득히 쌓여 있는 것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 시의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의문들을 해결해야 한다.

 

첫째, 개미 구멍을 찾기 어렵고 새 둥지를 발견하기 쉬운 것은 낙엽 때문이다. 낙엽이 떨어져 개미구멍을 덮으니 찾기 어렵고, 무성한 나뭇잎 가지 위에 놓여있던 둥지는 그 잎들이 떨어지니 쉽게 눈에 띈다. 시간적 배경이 가을이라는 정보를 담고 있는 1-2구에서 시인은 ‘낙엽’이라는 단어를 단 한마디도 사용하지 않으면서도 ‘낙엽’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동시에 그것은 3-4구의 뜰에 가득히 쌓인 것과 속인이 싫어하는 많은 것도 낙엽임을 지시해 준다. 그 어디에서도 낙엽에 관한 말을 내비치지도 않으면서 시인은 ‘낙엽’을 함축하고 암시할 수 있도록 독자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

 

둘째, 낙엽이라는 소재를 통하여 시인은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했는가를 파악하는 문제이다. 이 시의 후반부는 보다 중요한 주제와 관련하여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것은 낙엽을 통해 ‘인생살이에 대한 어떤 인식과 성찰’을 발견해 내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 3-4구에서 대비되고 있는 두 인물인 스님과 속인의 마음가짐이 그것을 암시하고 있다. 한 사람은 낙엽에서 인생의 귀중한 교훈을 발견해 내고 있는 반면에 다른 또 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낙엽으로 대표되는 자연현상을 통해 인생살이를 관조하려는 스님의 마음이 그것을 말해준다.

 

비유컨대 우리 인생살이도 낙엽과 마찬가지로 생성과 소멸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가을이 되어 자신을 길러준 나무의 그루터기로 돌아가는 것이 낙엽만은 아닐 것이다. 스님은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인간도 때가 되면 자신을 길러준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연이라는 위대한 스승의 가르침을 발견한 까닭에 스님은 아침저녁으로 힘들게 쓸어버려야 할 낙엽을 귀찮아하지 않고 싫어하지도 않지만 속인은 그렇지 않다. 자연 앞에 서서, 그 스승이 가르쳐주는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스님과 그렇지 못한 속인의 대비를 통해 시인은 독자로 하여금 자연의 질서와 운행 속에 감추어진 참 진리를 발견하도록 유도한다.

 

‘보고 즐기는 것’보다는 ‘읽고 느끼는 삶’이 보다 진지하고 아름답다. 단 한 번뿐인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에도 그것이 매우 유익하다. 느릿느릿 음미하는 ‘독서’가 그런 것이다. 빠른 것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진지함과 여유를 빼앗아 간다. 속도의 시대 탓인지 독서에 대한 생각이 점점 희박해져가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그 속도와의 전쟁을 치르는 그 삶의 가치와 의미를 발견하는 길이 바로 독서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너무 감각적이고 표피적인 정서에 물든 컴퓨터 세대들이 한번쯤 마음의 등불을 켜고 인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계절이 되었으면 한다.

 

/전정구(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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