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진행중인 아프칸-미국 전쟁을 뒷받침하는 이론이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 충돌론인 듯 하다. 그의 한글 번역본이 5쇄를 찍은 것을 보면 우리나라 독서계의 상당한 주목을 받은 것 같다. 그러나 꼼꼼히 살펴보면 그의 이론이 지나치게 세계를 단순화하여 '우리:그들'로 가른후 서구/기독교 우월성을 보편화하려는 것 같다.
미국 건국 초기 국부들은 미국:유럽을 대비시킬 때, 미국을 앞서가는 사회:완고 하고 낙후된 유럽, 종교탄압이 없는 사회:종교탄압과 내전을 겪는 왕정, 새로운 예루살렘:악의 세계에 빠진 유럽으로 단순화했다.
미국역사의 중요단계마다 정착민:원주민, 북부:남부, 자유로운 미국:보수적 제국주의 권력으로 이분화 하여 어김없이 '우리:그들"도식으로 재단한다. 냉전론이 지배하던 지난 50년 남짓 미국은 나라밖의 분쟁지역에 개입하는 당위성을 위한 국민 설득 방법으로 이런 단순이론을 원용하였다. 적이 아니면 동지라는 극단주의적 이분법이 지금도 아프칸전쟁에서 세계 각국의 지도자에게 줄서기를 강요한다.
이런 단순화가 종전 후 세계 도처의 민족해방 운동을 모스크바 진영의 확대로 잘못 이해했고 베트남 전쟁에 개입하여 참담한 패전을 맛보았다. 그런데 패전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이 신봉하는 도미노 이론은 적중하지 않았다.
이런 미국의 어리석음과 단순성을 두고 미국의 저명한 언어학자이며 비평가인 노암 촘스키는 지난 11월 11일 인도 마드라스 음악당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아프칸 전쟁에 대한 미국과 서방세계의 접근이 매우 근시안적이고 파멸적이라고 지적한 후 미국이야말로 고발된 테러국가라고 비판했다.
미국은 수 차례나 다른 나라를 침략했으며 국제법도 상습적으로 위반했음에도 이제 와서 저들(빈 라덴)의 (뉴욕 무역센타)테러 행위를 비난할 도덕적 자격이 있느냐는 것이다.
테러 단체를 훈련 시켜 미국의 이해에 걸림돌이 되는 많은 나라 정부를 전복시킨후 친미 정권으로 대체 시켰다. 미국국제법학회 소식지(1999년 3월호)가 미국을 국제법 위반 제1위 국가로 지목한 것을 그런 오만을 잘 증명하는 사례이다.
대다수 국가의 눈에 미국이 "불량배 초강대국이 되어 가고 있으며 그들 사회를 위협하는 외부의 유일하고도 가장 큰 위협적인 존재로 비쳐지는" 데도 미국의 정책 담당자들이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전략 핵을 관장하는 미국 전략사령부의 1995년 비밀연구보고서를 보면 "미국의 이익이 치명적인 공격을 당할 경우 반드시 비이성적으로 보복하는 국가로 비쳐야하며 그럴 경우 국제법이나 조약에 매달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며 우리 자신을 너무 이성적이고 냉철한 머리를 가진 나라로 묘사하는 것은 자해 행위"라고 썼다.
미국을 건드리면 머리가 돌아버려 핵무기가 아니라 그보다 더한 짓도 불사한다는 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닉슨이 주장한 미치광이론(mad man theory)의 계승인 셈이다.
정말 미국은 미친 사람처럼 발광하는 중이다. 무고한 어린이와 양민의 처참한 주검을 외면하며 스스로 이성적이기를 거부하는 미국이 반미운동과 테러공격의 목표가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세계는 문명의 충돌보다 문명의 공존 사례가 더 많았음을 왜 미국 이론가들은 외면하는지 모를 일이다.
/ 박영학 (원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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