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 한 민족이 흥왕 발전하는 데는 몇가지 주요 조건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의 국제정치학자 한스 모건소가 규정한 '국력'의 기본요소를 보면 첫째 국토의 지정학적 위치나 그 넓이, 식량과 원료의 자급자족 등으로 상징되는 '자연적요소(自然的要素)'와 공업화, 군비(軍備)등으로 이어지는 '산업적요소(産業的要素)', 더하여 인구나 국민성같은 '인적요소(人的要素)'와 정치의 수준이나 외교력 등으로 포괄되는 '정치적요소(政治的要素)'등을 들고 있다.
정치수준 나라운명과 직결
이중 '자연적요소'같은 것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나 대체로 미리 운명지어져 있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산업화가 어느 정도 본 궤도에 와 있는 우리에게 있어 이제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인적요소', 즉 정치의 수준과 그 역량이라 아니 할 수 없다.
왜냐하면 경제, 사회, 노사, 학원 등 사회의 모든 분야가 바로 이 정치에 연관되어 있는 상황아래에서 정치의 수준과 질(質)은 바로 나라의 운명과 직결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정치 행태는 어떤가? 지난 월드컵때 '오 대한민국!' 하고 목이 터져라 외쳐대던 국민적 통합은 서서히 원점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느낌이다.
매스컴에서는 월드컵붐을 타고 관중석이 넘쳐나던 K리그가 벌써 관중석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있다고 전하면서 그 원인을 잇단 판정시비와 톱스타들의 잦은 결장에서 찾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대중이란 원래 환상을 지니며 살게 되어있다. 지구촌의 축제였던 월드컵이 국내 K리그에 그대로 이월되리라는 건 무리한 기대다. 월드컵 속의 환상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서히 무너지게 되어있는 바 그들은 또다른 환상을 찾아 떠나게 되어있다.
머리 좋은 히딩크가 어찌 이 원리를 모르겠는가. 그래서 그는 우리와의 영원한 밀월을 위해 알맞은 시점에서 알맞은 거리를 두며 일단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그렇다면 월드컵 이후에 증대되는 대중의 거창한 문화적 식욕(?)을 무엇으로 채워야 했을까? 그것은 멋진 정치였다. 세계 어느 박람회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멋진 정치상품이었다. 그것은 압제와 분열, 갈등과 권모술수로 일관되어온 근대 한국정치사에 종지부를 찍고 국민 대통합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절대절명의 기회였다.
그리하여 축구영웅 못지 않은 정치스타도 배출하고 아라비안나이트처럼 신명나는 정치판과 에피소드도 만들어내야 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 독재정권치하에서 형성되던 국민의 저항적 통합에너지도 소멸되고 다만 태풍으로 날아간 월드컵 경기장에서 허탈에 젖어있다.
정치월드컵에선 몇 위 할까
참으로 묘하다. 국민소득도 올라가고 단군이래 가장 폭넓게 마련된 민주화의 광장에서 우리는 왜 이렇게 허탈감에 젖어있는가. 과거의 언론탄압때처럼 입에 재갈을 물려서인가? 그게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무서워서인가? 아니다. 이따금 TV에 비치는 그의 모습은 머리 짤린 삼손처럼 초라하기 그지없다.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친 한 나라의 행정수반이면서도 한낱 감독이었던 히딩크가 누리는 영광과 찬사의 백분의 일도 천신을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파출소 순경이 두려워서인가? 아니다. 그 옛날 통금시간이 있을 때나, 걸핏하면 빨갱이로 몰던 때가 두려웠지 지금은 거꾸로 우리가 그들의 멱살을 잡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무기력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만일 정치판 월드컵대회가 열린다면 그때 우리는 세계 몇위나 할 것인가? 국가적 허무주의에로의 확산을 심히 우려한다.
/허소라(시인, 군산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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