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월드컵 행사는 여러모로 커다란 행사이었다. 해외에서 느끼는 효과는 특히 대단하였고 국가나 민족의 집단적인 차원을 떠나서 개인적인 면에서도 교민들이나 주재원들에게 외국 생활에서의 보람과 자부심을 심어주는 기회가 되었다.
교민들 중에는 마지막의 대 독일 전과 대 터키 전에서 우리 팀이 부진한 것에 심리적인 타격을 받고 며칠을 일하러 가지도 못하고 자리를 보전하고 누어서 지낸 분도 있다고 들었다.
더구나 이 행사는 비단 한국의 입장에서만 성공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세계축구협회로서도 72년의 FIFA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대회로 평가한다고 한다.
우리에게 이 "성공"의 의미는 경제적인 면에서 홍보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를 생각할 수 있겠고 정부는 정부 나름대로 이 "성공"의 효과를 여러 면에서 극대화하고 이를 사후 관리하는 방안들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월드컵성공 지구촌 큰 관심
다른 한 편으로 좀 더 긴 시간의 관점에서 보면 이 번의 행사는 중요한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신화 시대를 포함하여 5천년의 긴 역사를 자랑하고 있지만 수많은 자랑할만한 업적이나 성취에도 불구하고 세계사의 큰 차원에서 보아 세계무대에서 사람들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거나 인류 역사의 큰 흐름에 영향을 주는 계기는 몇 차례에 불과하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우리에게는 큰 의미를 갖는 사건들일지라도 세계사에 끼친 영향의 면에서 보면 그렇게 중대한 일은 아니었을 수도 있었고 세계 사람들의 집중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였던 경우를 가끔 생각할 수도 있다.
우리 민족의 입장에서 매우 통분하고 부정(不正義)의한 일이지만 3.l 운동은 수 많은 희생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열강이나 세계인들의 큰 관심을 차지하는 사건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8.l5 광복도 2차 대전이라는 큰 사건의 종결에 관련된 적은 부분적인 현실에 불과하였다.
현대사에 있어서 한국이 처음으로 세계사 무대의 중앙에서 관심의 초점으로 등장한 계기는 유감스럽게도 반세기 전에 일어난 한국 전쟁이었다.
그 당시 미국과 소련의 두 초강대국을 축으로 세계가 첨예한 양극 대결로 치닫는 상황에서 동북아시아의 적은 반도에서 일어난 전쟁은 급속히 세계 전쟁으로 발전하면서 온 세계가 어떤 형태로든지 이 전쟁에 참여하는 이른 바 "세계 시민 전쟁으로(weltburgerliche kriege)" 된 것이다.
이 전쟁은 세계에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었다. 이 전쟁으로 동 서 양진영의 대결 양상이 매우 경직되었고 이 대립은 단지 정치. 군사적인 면에서만이 아니고 경제, 사회, 문화 등의 전 영역에 걸친 것으로 되었다. 서방측은 이 때부터 본격적인 재무장으로 돌입하였고 이 것은 경제적으로도 온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두 번째로 한국이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된 것은 '88 올림픽이었다. 한국이 파멸적인 전쟁이 끝 난지 불과 4 반세기만에 놀라운 경제적인 발전을 이룩하여 올림픽을 주최하는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은 세계의 주목을 끌만한 사건이었다.
이 대회에 오랜만에 처음으로 두 초강대국을 포함하여 동서 양진영의 여러 나라가 대거 참여하여 모처럼 명실 상부한 평화의 제전을 만든 것도 큰 성과이었다. 그러나 가장 큰 충격은 사회주의 진영에서 일어났다. 한국의 올림픽은 한 세기가 넘도록 계속되어온 논쟁을 정리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한 셈이었다.
일반 사람들은 지식인들이 백 여 년이 넘도록 토론에 토론을 거듭하면서 결론을 내지 못하는 문제를 자신의 눈과 귀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어떤 체제가 더 우월한가하는 문제는 이제 상식으로 된 것이다. 이어서 일어난 동구에서의 벨벹 혁명에는 '88년의 올림핔이 숨겨진 기여를 한 셈이었다.
한국 세계사에 어떤 영향
올해의 월드컵은 세 번째로 한국이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기회이었다. 한국은 단지 경이적인 경제 발전을 이룩하고 어려운 금융위기를 쉽게 극복한 나라일 뿐만 아니라 위기를 활용하여 경제 구조를 새롭게 조정하고 세계화에 긴요한 개혁을 단 시일 내에 시행하고 지식 기반의 경제를 짧은 시일 내에 발전시키는 나라인 만큼 축구 경기도 잘 할 뿐만 아니라 그 조직도 빈틈 없이 해내는 나라인 것이다.
그러나 정말로 세계인의 관심을 끈 것은 일반 시민들의 공적 정신이었다고 느꼈다. 특히 구라파 사람들에게 그렇게 격렬한 열기에 찬 경기에 한 건의 폭력 사태도 없었다는 사실은 믿을 수가 없는 일이기도 한 것이었다. 이제 우리의 관심은 지난 일의 축하가 아니다.
경기의 마지막 날에 발생한 서해에서의 불상사는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과거를 돌아보게 하는 경고이었다. 할 일이 산적해 있는 한 반도는 이제 우리가 언제, 어떻게, 어떤 일로 다시 한 번 세계를 경탄시킬 일을 하겠는가, 그리하여 불우했던 지난 세기의 청산이 우리에게 새로운 미래를 열게 할 뿐 만 아니라 온 세계에 산재한 난제들을 해소하는데 기여할 수 있겠는가 하는 각성을 요구하고 있다.
/라종일(주영대사)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