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등록 직전까지만 해도 전혀 가망이 없어 보이던 노무현 후보의 당선으로 16대 대통령 선거는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번 대선 결과에 대해 일부 전문가들과 언론에서는 지역주의는 상당부분 완화된 데 비해 세대격차가 크게 두드러져 새로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처럼 침소봉대하고 있다.
또한 호남에서 노 후보의 몰표를 보고 다른 지역에서는 지역주의가 약화되었는데 호남에서는 시대 역행적으로 몰표가 나왔다는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노후보 몰표 부정적 시각
노무현 후보의 요청에 의해 필자는 작년 지방선거 직후 대선기획단에서 이번 선거의 전략과 기획을 수립하는 책임을 맡았다.
97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영남과 호남의 유권자의 인구격차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선거전략의 기본과제였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지역변수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필자는 선거전략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처음부터 호남의 득표율을 90% 이상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선거결과도 예상대로 나왔다. 그렇게 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호남유권자들 입장에서는 이회창 후보를 수용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민정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을 어떻게 호남이 수용할 수 있겠는가? 또한 야당 총재 5년 동안 사사건건 반DJ와 반호남만 추구해 왔고, 그에 기대어 정치적 이익을 한껏 누려온 이회창 후보가 어떻게 호남유권자들에게 표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선거는 후보로 나온 사람 중 누군가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선거에서 지지의 강도와 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순한 지지의 양만 결과에 나타날 뿐이다.
이번 선거에서 노무현 후보는 호남에서 97년 김대중 후보와 거의 같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또한 그가 얻은 1200만표 중 600만표 이상은 호남출신들의 표일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97년의 호남 몰표와 이번 호남몰표의 성격은 같은 것일까?
97년 호남의 몰표는 그동안의 한을 풀겠다는 집단적 염원의 표출이었다. 김대중 후보가 흔들릴 때도 요지부동의 절대적 지지였다.
거기에 비해 노무현 후보에게 몰린 표는 이회창 후보와 한나라당을 수용할 수 없어서 나타난 상대적 지지이며 이회창 후보가 당선됐을 때 벌어질 지긋지긋한 호남 소외현상이 두려워 결집된 결과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노무현 후보가 흔들리는 시점에서는 오히려 정몽준 후보의 지지율이 호남지역에서도 높았던 상황을 상기한다면 호남몰표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97년의 몰표가 적극적 공격적이라면 이번의 현상은 소극적 방어적인 것으로 설명 가능할 것이다.
영남 지역주의 벽 높아
필자는 호남의 득표율과 투표율을 극대화시키고 노무현 후보가 PK지역 출신인 것을 십분 활용하여 영남지역에서의 노무현 후보의 득표율을 최대한 끌어올려서 영.호남 지역의 격차를 10만표 이하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영남지역의 반DJ, 반호남이라는 벽에 걸려 투표결과는 97년보다도 격차가 더 커졌다. 97년에는 영호남의 격차가 29만 7천 표였는데 이번에는 36만 4천 표로 나타났다. 영남의 지역주의 벽이 여전히 견고함을 반증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아직도 지역주의 구도는 요지부동의 성곽으로 우리 앞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이다. 이 두터운 벽을 허물지 못하는 한 우리의 미래는 밝지 못할 것이다.
/이강래(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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