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전북일보 논설위원)
“내가 그림을 그린답시고 세상을 속였다. 놀면서 공밥을 얻어 먹고 다니면서 뒷날 무엇이 될 것처럼 사기를 쳤다.”
비극의 시대를 산 천재, 40살의 짧은 생을 마친 집념의 화가 이중섭(1916-1956). 이름 하나 만으로 신화가 되어버린 그는 항상 자기 그림을 ‘가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전시회에서 작품을 팔고는 “잘도 속여 넘겼다”며 겸연쩍어 했다.
한 때 그는 시인 김광림에게 그 유명한 담배 은박지 그림이며 소품들을 주며 몽땅 불태워 달라고 부탁했다. 타히티 섬에 표착(漂着)한 폴 고갱이 자기 그림을 불태우게 한 것처럼. 이중섭과 가장 가까웠던 시인 구상은 “이중섭에게 그림은 순도(殉道)였다. 황소같은 화력을 지녔고 인간적으로 용출(涌出)하는 사랑의 소유자였다”고 회고한 바 있다.
한국이 낳은 20세기 최고의 예술가 백남준(1932-2006). 그의 ‘예술사기론’은 지금도 인구에 회자된다. 그는 1984년 새해 첫날, 전 세계에 생중계된 위성 TV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크게 성공한 뒤 30여년 만에 고국 땅을 밟았다. 그리고 귀국 인터뷰에서 이렇게 내뱉었다. “원래 예술이란 게 반은 사기입니다. 속이고 속는 거지요. 사기 중에서도 고등사기입니다. 대중을 얼떨떨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거든요”
한참 뒤 그는 미술평론가 이용우에게 이렇게 털어 놓았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진지한 표정을 내세워 독자들을 속이는 경우가 많다. 내가 말한 사기라는 말은 에고(EGO)의 예술을 일컫는다. 나는 지금도 폼잡는 예술을 하고 싶지 않다.” 백남준의 일생은 진부한 ‘고정관념’을 깨는 과정이 아니었나 싶다. 기행(奇行)처럼 보이는 그의 행위는 창조를 위한 처절한 몸부림에 다름 아니었다.
그의 실험정신은 그가 ‘아버지’라고 부르며 존경했던 존 케이지의 음악적 충격에서 비롯된다. 케이지는 우리가 일상에서 듣는 ‘소음’이야말로 가장 자연적이며 경이로운 음악으로 생각했다. 또한 옥타브라는 제한된 음가를 인정하지 않았고 전통악기 대신 플라스틱이나 새털, 장난감 인형 등을 활용했다. 종래 음악의 정의를 폭넓게 해체시켜 버린 것이다. 이런 주장은 백남준이 서양의 전통악기인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때려 부수는 공격적 행위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지금은 이중섭이나 백남준 같은 자칭 ‘사기꾼’이 필요한 때가 아닌가 한다. 이중섭의 ‘사기’라는 말에는 온 몸을 던져 예술혼을 불사르지 못한 겸손함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백남준의 ‘사기’에는 그의 역설적 예술관과 해학, 반어법이 녹아있다. 그런 위대한 사기꾼과 달리 현실은 진짜 사기꾼이 득실거린다. 예술이고 학문이고 ‘짜가’가 판치는 세상이다. 위작(僞作)이 진품보다 더 진품같고, 표절시비로 교육부총리나 대학총장이 물러났다.
정치는 더욱 그렇다. 자기 몸을 던져 무심(無心)을 실천해야 할 정치가는 없고 상대를 헐뜯는 폭로전만이 횡행한다. 꼭 권력을 향해 달려드는 깔다귀 떼만 같다. 하긴 스탈린 이후 소련을 통치했던 흐루시초프는 “정치가란 결국 시냇물이 없어도 다리를 놓겠다고 공약하는 따위다”라고 했으니 기대 자체가 어리석은지 모르겠다. 누구 “정치는 사기다”라고 외칠 사람 없는가.
/조상진(전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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