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전북일보 논설위원)
미국 정치의 심장부인 백악관 브리핑룸에는 오랜 관행이 있다.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을 때면 헬렌 토마스라는 할머니 기자가 맨 먼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리고 회견이 끝날 무렵 기자단을 대표해 ‘대통령 각하, 감사합니다’하고 인사를 해야 기자회견이 끝난다는 것이다. 언론사 끼리의 불꽃 튀기는 경쟁속에서도 오랫동안 이같은 관행은 지켜져 왔다. 또 이 할머니의 자리는 그녀의 책 제목처럼 ‘맨 앞줄에’ 지정석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유일하게 동판으로 이름이 새겨진 자리다.
올해 우리 나이로 87살인 이 할머니 기자는 백악관 출입만 46년째다.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한 1961년 1월부터 현 부시대통령까지 그녀가 취재한 대통령만 9명이다. UPI통신 기자로만 57년을 보낸 이 할머니 기자가 지난해 두번째 책을 펴냈다. 제목은 “민주주의의 감시견?(Watchdogs of Democracy?)”. 자신의 64년 기자생활을 청산하며 미국의 언론을 비판한 내용이다. 이 책에는 ‘워싱턴 기자단이 어떻게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는가’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 책에서 토마스는 백악관 기자단이 민주주의를 지키는 감시견의 역할을 태만히 하고 부시 정부의 애완견 역할을 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의 기자들이 선배들에 비해 기자정신이 덜 투철하고 무기력하다고 지적하며 민주주의 감시견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공부하라’고 충고한다. 언론사 사주(社主)에 대한 비판도 혹독하다. 언론의 역할에 관해서는 개의치 않고 돈과 시청률에만 집착한다는 것이다.(장행훈·신문과 방송) 미국의 신문왕 조셉 퓰리처가 편집국 간부들에게 “내가 만약 부패와 타협한다면 나를 무시하라”고 하던 정신은 퇴색된지 오래인듯 하다.
이같은 할머니 기자의 지적은 우리 언론 현실을 새삼 뒤돌아 보게 한다. 언론계 안팎에서 지적되는 비판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흔히 한국 언론은 위기라고 말한다. 신문과 방송 모두 그러하다. 그 중에서도 신문, 특히 지방신문은 헤어나기 힘들 정도다. 신문의 위기는 신문 구독자의 감소가 극명하게 보여준다. 원인은 뭘까. 남재일(한국언론재단)은 3가지 가설(假說)로 설명한다. 뉴스 매체의 기능적 대체가설, 저가치 제공가설, 공정성 위기가설이 그것이다. 쉽게 말해 인터넷 등 뉴미디어 발달에 따른 매체 경쟁력의 약화와 경영합리화 실패, 신문사의 정파성으로 인한 신뢰의 추락을 가리킨다. 물론 여기에는 공정성과 전문성의 실패도 포함한다. 이 가운데 저가치 탈피와 공정성 확립은 위기탈출을 위한 기자들의 몫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지방신문의 현실은 열악하다 못해 참담하다. 신문사를 사업의 방패쯤으로 생각하는 사주들이 상당수인데다 기자들 또한 저임금에 허덕이다 보니 공정성이고 전문성은 생각할 여력조차 없다. 나아가 업자 사주와 그에 빌붙어 있는 건달 간부들, 자치단체 등 출입처의 애완견으로 전락한 일부 기자들, 광고와 기사의 바꿔먹기, 공공연한 협찬 압력과 인사청탁, 골프접대 한번에 바꿔지는 논조 등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띤다. 그러고도 지방언론을 믿어달라고 할 것인가. 신문의 날(7일)을 앞두고 “네가 기자냐?”며 스스로에게 던지는 화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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