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전북일보 경영지원국장겸 논설위원)
지난 2월, 열린우리당에서 탈당한 몇몇 의원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궁금했던 몇가지를 물었다. “탈당까지 할 상황이라면 그럴만한 까닭이 있을 텐데 무엇이 그렇게 못마땅하더냐”, “한때는 연대감을 갖고 같이 일한 동지들인데 탈당할 용기가 있다면 내부에서 투쟁하는 게 순리 아니냐”
그중의 정보통신부 차관을 지낸 변재일의원(충북 청원)이 답했다. “당이 어떤 사안을 채택했으면 그 결과를 존중하는 게 순리인데 열린우리당 사람들은 밖에 나가 이러쿵 저러쿵 얘기하며 당론을 뒤집기 일쑤다. 그러니 뭐가 제대로 되겠는가” 국가보안법 폐지, 사립학교법 개정, 언론관계법 제·개정, 과거사기본법 제정 등 4대 입법 등을 두고 하는 소리였다.
동석했던 너댓명의 의원들도 여러 사례를 열거하며 당과 구성원들의 행태와 색깔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고 “도무지 같이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랬던 그들이 도무지 같이 할 수 없다던 열린우리당과 통합을 선언했다. 지난 여섯달 동안 온갖 머리 다 굴리면서 돌고 돈 끝에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 '밤새 걸어 제집 안마당', '다람쥐 쳇바퀴 돈 꼴'이다. 살기 싫다고 소리소리 지르며 뛰쳐 나갔다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 꼴이, 그리고 고대광실 체통 다 잃고 집 나갔던 사람에게 얹혀 사는 꼴이 여간 안쓰럽지 않다.
그들이 내건 통합의 명분은 대선 승리다. 과연 그럴까. 실은 정치인 그 자신들의 살아남기 이벤트라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정치를 잘못 했으면 국민의 심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다음 선거때 국민의 신임을 얻도록 착실히 준비하는 게 옳다. 여당이 야당되고 야당이 여당되는 건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도 언제나 여당할 생각만 갖고 있으니 술수와 위선이 난무하고 집을 지었다 부수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정당사가 여실히 증명해 주고 있다. 5공 이후 3당이 합당해 출범한 민자당이 국민 지지가 떨어지자 신한국당으로 당 이름을 바꿔 달았다. 재집권에 실패하면서 한나라당으로 또 바꿨다. 평민당도 3당 합당때 여당에 합류하지 않은 통일민주당 잔류파와 합당한 뒤 새정치국민회의로 간판을 바꿨다. 새정치국민회의는 97년 대선 승리 이후 새천년민주당으로 개편했고 2003년 개혁세력이 탈당하면서 열린우리당으로 분화됐다. 우리는 열린우리당이 또다시 간판을 바꿔 다는 광경을 보고 있다
간판을 바꿔 달 때마다 ‘민주’ ‘평화’ ‘개혁’ 등 온갖 명분을 내걸고 있지만 정당발전은 제자리 걸음이다. 국민을 기만하는 행위가 아니고 뭔가. 정치인, 그 자신들을 위한 이벤트에 국민들이 휘둘리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오는 20일 출범하는 대통합민주신당 역시 말만 거창하게 대통합이지 아무런 감흥도, 미래비전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식상한 인물들이 떵떵거리고 있다.
정당의 이합집산을 바라보는 지역 정서는 착잡하다. 몰표를 주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홀대였다. 정당의 문패도 제대로 지키지 못한 정치인을 또 지지해야 한단 말인가. 신물이 난다. 그들이 어떤 수사(修辭)를 동원하며 지지를 구걸하는지 지켜보자. 또 어떤 속임수를 쓰는지도.
/이경재(전북일보 경영지원국장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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