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전북일보 경영지원국장)
30년전 전북대 캠퍼스 안에는 논 길이 있었다. 대학내에도 논 길이 있나 의아해 하면서 지름길인 그 논길을 따라 시험을 치러 갔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학교 환경이 아주 열악했을 망정 실력 있는 학생들이 몰렸고 대학 위상도 제법 높았다.
자부심도 컸다. 아무리 서울에 있는 대학이라 해도 이른바 '국'(國)자 들어가는 대학은 쳐다보지도 않던 시절이다. 나이 50대 이후 사회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전북대인들이 의외로 많은 건 당시의 이러한 우수한 인적자원이 밑바탕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캠퍼스는 넓혀지고 최신식 건물과 교수 학생 숫자는 크게 늘어났다. 헌데 덩치는 커졌지만 그 위상은 곤두박질 치고 있다. 당시 3류 4류로 쳐 주던 서울의 대학들에 치이는 현상도 이미 오래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안타까운 일이다. 내면을 뜯어놓고 보면 ‘국립 지방거점대학’이란 말이 사치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그 까닭은 돈과 사람이 서울로 모이는 이른바 수도권 집중, ‘탈(脫)지방’ 현상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에 집중된, 또는 서울지역의 대학을 매개로 한 인맥과 학맥, 일자리 구조가 ‘탈 지방’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구조화된 ‘탈 지방’ 만을 마냥 탓하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대학수준을 끌어올리는 핵심은 교수다. KAIST의 서남표 총장이 서울대 교수들 앞에서 "서울대가 세계 1류가 안되는 이유는 교수 때문"이라고 한 말은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얼마전 21년째 연구실에서 숙식하며 제자양성과 연구에만 ‘올인’하는 성균관대의 권철신교수(63. 시스템경영공학과)가 화제가 됐다. 환갑을 넘기고도 매일 밤 1시까지 연구하며 석· 박사 제자들은 모두 자신처럼 연구실에서 숙박하는 조건으로만 받아들인다. 그가 쓴 논문은 158편에 이른다. “교수는 잔인할 정도의 사명감을 가져야 하며, 죽기 살기로 연구하고 제자 키우는 일에 인생을 던져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경외감마저 느껴진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지역의 교수들은 어떠한가. 일부이긴 하지만 주중에 골프치는 교수, 금요일이면 서울로 올라가기 바쁜 교수, 어느 술집의 ‘물’이 좋은지 술집마다의 특성을 꿰뚫고 있는 교수, 용역 따기 위해 행정기관 주변을 얼쩡거리는 교수, 총장 선거 향배나 점치며 힘을 저울질하는 교수, 정치권 언저리를 맴도는 교수 등등 학자라고 하기엔 너무나 천박한 교수들이 많다. 교수간 파벌 때문에 신규 교수 임용이 무산된 사례도 있다. 이런 교수 밑에서 무얼 배우겠는가.
지난 15일로 개교 60주년을 맞은 전북대가 교수사회에 개혁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서거석 총장은 ‘2010년 국내 10대 대학’이란 목표를 내걸고 연구실적이 없는 교수를 퇴출시키겠다고 선언했다. 크게 강화된 연구실적을 충족시켜야 승진도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잘하는 일이다.
경쟁 없는 호시절을 즐기던 상당수 교수들이 스트레스를 받을 게 뻔하다. 조직이 발전하려면 리더는 욕을 얻어먹어야 한다. 더 많은 욕을 얻어먹고 전북대를 국내 10대 대학의 반열에 올려놓는 총장이 되길 기대한다.
/이경재(전북일보 경영지원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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