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전북일보 논설위원)
지도자의 조건은 무엇일까. 능력이 먼저일까, 도덕성이 먼저일까.
이에 관해 중국 고전에서 에센스를 뽑아 엮은 ‘제왕학(帝王學)’은 흥미를 끈다.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학’ 쯤 되는 이 책에는 ‘능력을 취할 것인가 행실을 취할 것인가’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서 고사 2개를 인용하겠다.
하나는 사기(史記)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에 나오는 고사다. 진평(陳平)은 유방(劉邦)이 한(漢)나라를 세울 때 크게 공을 세운 인물이다. 지모(智謀) 덩어리인 진평은 위무지(魏無知)의 천거로 유방을 알현한다. 그와 이야기를 해 본 유방은 그 비범함을 인정해 즉각 도위(都尉)에 임명, 왕의 수레에 함께 타고 다니며 군대를 감독케 한다. 그러자 한나라 장수들이 일제히 반발한다. 문제는 그의 과거 행실이었다. 장수들은 “소문에 듣건대 진평은 집에 있을 때 형수와 밀통했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위(魏)나라를 섬기다가 초(楚)나라로, 다시 우리 한나라로 도망쳐 왔습니다. 또 여러 장수들로 부터 뇌물을 받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생각을 바꿔주십시오.”
유방은 천거한 위무지를 불러 나무랐다. 하지만 위무지의 답변은 달랐다. “제가 진평을 추천한 이유는 그의 ‘능력’이지 그의 ‘행실’이 아닙니다. 행실이 고결하더라도 지금 우리 군대에는 도움을 줄 수 없습니다.”
또 하나는 심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고사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는 위후(衛候)에게 구변(苟變)을 장군으로 추천했다. 그러자 위후는 고개를 저었다. “구변은 이전에 관리였을 때 백성 한 사람당 2개씩의 계란을 공출토록 해서 자기가 먹어버렸다. 이런 자를 발탁할 수는 없다.” 자사는 이렇게 반론을 제기했다. “성인(聖人)이 인물을 등용하는 것은 목수가 재목을 다루는 것과 같습니다. 좋지 못한 곳이 있으면 그곳을 버리고 좋은 곳을 살립니다. 지금 당신은 난세에 처하여, 겨우 계란 2개 때문에 나라를 지킬 수 있는 인재를 버리려 하고 있습니다.”
요지는 청렴성 보다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반드시 그럴까. 도덕성 없는 능력이 과연 지도자의 조건일까. 그렇지 않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미국의 31대 대통령 후버와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 태국의 탁신 전 총리 등이 그 예다.
대통령이 되기 전 후버는 성공한 기업가로 미국인의 우상이었다. 하지만 경기상황을 잘못 판단해 후버댐 등 토목공사에 치중했다. 관세율을 올리는 바람에 보복관세를 당하고 주가폭락을 가속시켰다. 그 결과 1929년 그 유명한 ‘경제 대공황’을 맞았다.
또 이탈리아 최고의 부자인 베를루스코니 총리도 마찬가지다. 부동산으로 돈을 벌어 미디어와 금융, 축구팀을 소유한 그는 이탈리아를 경제성장률 1%의 수렁에 빠뜨렸다. 뇌물수수, 불법정치자금 제공, 세금포탈 등으로 징역을 살기도 했다. CEO출신인 태국의 탁신 전 총리 역시 회사주식을 싱가포르 국영기업체에 19억 달러에 팔아 엄청난 이익을 챙기고도 세금 한푼 내지 않았다. 결국 ‘피플파워’에 굴복, 2006년부터 영국으로 도피한 상태다.
능력과 청렴성을 겸비한 지도자를 갖는 것은 축복이다. 그러나 이 둘을 겸비하기는 힘들다. 그러면 이번 대선에서 우리는 무엇을 먼저 취해야 할까.
/조상진(전북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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