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전북일보 경영지원국장겸 논설위원)
변호사를 두고 ‘허가받은 브로커’란 비유가 있다. 당사자한테는 고약한 비유로 들리겠으나 잊을만 하면 터지는 변호사 비리 사건들을 들춰보면 이처럼 적절한 비유도 없다.
얼마전 간통혐의로 피소된 피의자에게 수임료 명목으로 1억8000만원을 받고도 “사건 무마를 위해서는 판·검사에게 금품로비를 벌여야 한다”고 속여 8000만원을 가로챈 전주지역의 어느 변호사가 구속됐다.
의뢰인이 로또복권에 당첨돼 45억원의 거액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악용해 이런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변호사가 변호사법 위반혐의로 구속된 것도 범상치 않지만, 시정잡배나 다름없는 수법 또한 놀랍다.
지난 3월엔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가 납치사건을 공모하고 범행을 배후 조종한 어처구니 없는 사건도 벌어졌다. 변호사업계의 총체적인 난맥상을 드러낸 97년 의정부 법조비리 사건은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다.
일부 변호사들의 관행적 탈세행위도 ‘노블리스 오블리제’(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조롱하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9월 대법원에 대한 국정감사때 노회찬 민주노동당 의원이 적시한 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의 탈세 사례는 탈세가 지능적으로 자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착수금 2000만원 중 700만원만 신고하고 나머지 성공보수 4억원의 신고를 누락한 사례,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가 20억원대 소송을 맡아 1억3천500만원을 받았으나 800만원만 신고한 사례, 13억원대 소송에서 승소한 변호사가 성공보수 4억3200만원의 신고를 누락한 사례 등이그런 것들이다. 고액 현금을 받고도 증빙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
과거엔 주로 '전관 예우'나 '과다 수임료' '불성실 변론' 등 도덕적 문제로 지탄을 받았지만 요즘엔 범죄를 저질러 사법처리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걸 보게 된다.
변호사 숫자가 급증하면서 자질 부족 변호사들이 양산되는 게 그 원인이라고 업계는 말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느슨한 감시, 솜방망이처벌 등이 더 큰 원인일 수 있다.
내후년이면 전국 변호사 수가 1만명을 넘는다. 법률시장이 경쟁과열로 치달으면 돈 되는 일이면 뭐든 한다는 인식이 더욱 팽배해질 것이다. 이런 인식이 더 확산되기 전에 근본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사실 어느 집단에서나 비리는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비리를 척결하려는 의지와 제도적 장치가 제대로 가동되느냐 여부가 중요한 것이다. 그 집단의 윤리수준도 이에 비례한다고 보면 틀림없다.
비리가 터질 때마다 자정결의,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서는 안된다. 비리회원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대신 몽둥이를 휘둘러야 한다. 변호사회는 회원 보호에만 치중할 게 아니다.
법률소비자가 변호사 비리정보를 파악할 수 있도록 징계자 전원의 실명을 공개하는 방안도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소비자에 대한 서비스인 동시에 비리 변호사에겐 사실상의 퇴출장치가 될 것이다.
이 세상에는 정의와 양심을 지키는 변호사들이 많다. 그들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보다 강력한 대안이 나와야 한다. 모든 분야가 개혁을 외치고 있는 마당에 변호사 업계만 예외일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경재(전북일보 경영지원국장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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