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언론인·전북향토문화연구회 이사)
숭례문(崇禮門)화재 사건으로 묻혀지고 말았지만 바로 그 날 전주시청 부근 건물 지하층에서 한 시민이 주검으로 발견된 일이 있었다. 자그마한 키에 세파에 찌든 외모, 차림새 또한 허술해 누구에게도 관심을 끌지 못할 그저그런 평범한 노인네였다. 그가 지난달 하순 외출했다가 행방불명된후 20여일만에 자주 다니던 식당 근처 건물 지하에서 변사체로 발견된 것이다.
정종실씨. 올해 나이 일흔셋. 사인은 폐쇄된 공간에서 출구를 찾지못해 헤매다 동사한것으로 추정된다. 가족들의 슬픔은 말할것도 없지만 그를 아는 주위 사람들에게 그의 죽음은 숭례문 화재 못지 않게 애잔한 심정을 떨쳐버릴 수 없게 하는 작은 충격이었다. 정씨의 별명흔 풍남문지기였다. 무슨 인연으로 그가 풍남문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는 잘 모른다. 지난 60연대 이후 그는 매일 풍남문 주변을 청소하고 관리하는것을 일괄 삼았다. 주춧돌 하나, 기왓장 한 장, 대들보며 서까레, 기둥까지 그의 손 길 닿지 않은것이 없다. 매일 쓸고 닦으며 그야말로 보물 다루듯 보살폈다. 행여 철부지들이 오물을 버리거나 문 주변을 어지럽히는 일이 있으면 여지없이 호통을 쳐 내쫒기도 했다. 문화재의 소중함을 몸으로 일깨우고 행동으로 보존가치를 증명해온 그였다. 그 반세기 동안 그가 풍남문에 쏟은 열정은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의 입을 통해 회자되면서 지역 메스컴의 단골 가십기사거리가 되기도 했ㄷ. 그 공을 인정받아 그는 전주시민의 장을 받는 영예를 안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상에 만족해 풍남문 돌보기를 그만두지는 않았다. 숨을 거두기까지 평생을 그는 쓸고 닦고 보살피며 풍남문과 함께 한 것이다.
국보1호 숭례문이 한 방화범의 충동적 범행의 희생물로 무너져 내리는 모습을 온 국민들은 비통한 심정으로 지켜 봐야 했다. 오늘도 그 비통함을 달래려는 국민들의 추모행렬이 비극의 현장에 줄을 잇고 있다. 스스로 문화국가라는 자긍심을 갖고 사는 나라에서 이런 어처구니 없는 비극이 또 있을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 분노하고 애통해하며 참담한 심정을 곱씹고 있을수만은 없다. 이어령박사의 말처럼 애이불상(哀而不像), 슬퍼하지만 상하지는 말아야 한다. 지금 할 일은 어떻게 하면 국민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를 하루빨리 치유하고 짝퉁이 되겠지만 최대한 옛 모습을 살려 숭례문을 복원할것인지 관계 당국과 국민들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리고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전국 각지에 산재해 있는 또다른 문화재에 대한 관리와 보존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 지금 지하에 묻힌 정종실씨 같은 사람이 한 두명씩이라도 늘어 난다면 그 길은 한 층 앞당겨 질수도 있을 것이다. 숭례문 화재와 풍남문지기 정종실씨의 죽음은 어쩌면 그런 경각식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운명적인 ‘우연’이 아닌가 싶다.
/김승일(언론인·전북향토문화연구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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