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본지 경영지원국장 겸 논설위원)
윈스턴 처칠에게 신문기자가 물었다. "정치인이 되기 위한 바람직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처칠이 대답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를 예언할 수 있는 재능이지요. 하지만 예언이 맞지 않았을 때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재능도 갖춰야 합니다" 허튼 소리, 거짓말 잘하는 정치인들의 속성을 비꼰 말이다.
스탈린 격하 운동을 벌였던 구 소련의 공산당 서기장 흐루시초프의 명언도 빛이 난다. "정치인들이란 강이 없는 곳에도 다리를 놓겠다고 공약하는 따위의 사람들이다" 비록 빌 공(空)자 공약(空約)이라도 늘어놓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정치인들의 타성을 비판한 말이겠다.
전주 재선거가 막판에 이르렀다. 후보마다 유권자 마음을 사기 위한 공약과 갖가지 수사(修辭)를 쏟아냈다. 그중에서도 "전주 구도심에 20차선 도로를 내겠다" 는 무소속 신건 후보의 공약은 압권이다. 구도심에 20차선 ? 이 내용을 들은 기자들이 폭소를 터뜨린 것도 무리는 아니다. 스케일은 대단한데 효용성도, 현실성도 없는 약속이다.
"완산구를 전국 최고의 복지지역으로 만들겠다"거나 "국민투표를 통해 사교육을 없애겠다"는 등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른 후보들의 공약도 마찬가지이다.
재원과 현실여건을 고려치 않은 공약들이 선거 때마다 남발되고 있다. 유권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수사에 불과한 것인데 후보의 자질도 의심스럽거니와 유권자를 기만하는 행태다.
말 바꾸기나 거짓말도 고질적인 병폐중의 하나다. "민주당을 위해 몸과 마음을 불사르겠다"던 예비후보들이 경선에서 탈락하자 탈당해 버린 몹쓸 행태를 보고 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이런 행태는 민주주의의 후퇴이자 이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할 짓이 아니다. 유권자들이 두고 두고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지난 18대 총선때 서울 동작 을에서 출마한 정동영후보도 "이 곳에서 뼈를 묻겠다"고 했지만 결국엔 거짓말을 한 것이 됐다. 민주당의 김근식, 무소속의 신건은 투표권도 없는 후보다. 그러면서 자신만이 지역을 위해 일할 적임자라고 하니 거짓말로 들릴 수 밖에. 하긴 "도덕군자가 되어서는 정치인이 될 수 없다"고 한 역사가 윌 듀랜트의 말 처럼 정치인이란 하나 같이 거짓말쟁이라는 시각이 들어맞는지도 모르겠다.
미국 같은 정치 선진국에선 거짓말이 용납되지 않는다. 워터게이트 사건 때 닉슨을 곤경으로 몰아넣은 것도 도청행위가 아니라 자기는 모른다는 거짓말이었다. 정치인에 대한 가장 큰 욕도 거짓말쟁이이다.
전주재선거는 선거문화를 한참 후퇴시킨 선거로 보면 틀림이 없겠다. 납득되지 않는 민주당의 전략공천, 경선 참여자들의 배신, 고의적인 토론 거부 등 버려야 할 것이 다 드러났다. 정동영과 신건 후보의 토론회 불참은 검증받기를 거부한 오만과 독선의 극치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건 이런 후진적 요인들이 후보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이 공약 점검과 인물탐구를 통해 아무리 많은 정보를 제공한들 투표장에 가면 유권자들은 대개 개개인의 친·불친이나 막연한 이미지에 따라 후보를 선택하고 만다.
한술 더 떠 아예 선거 초반부터 후보를 결정해 놓고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기표한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그러니 정치인들이 유권자 무서운 줄 모르고 함부로 까불게 되는 것이다. 선거판이 이런 식이라면 거짓말과 속임수에 능한 정치인만 살아남을 지도 모르겠다.
/이경재(본지 경영지원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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