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본지 경영지원국장 겸 논설위원)
케네디 대통령이 오늘날까지도 미국민의 사랑을 받고 있는 건 단순히 그가 뛰어난 대통령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통령의 체통과 격식을 떨쳐버리고 어린 자식들과 뒹글며 함께 노는 모습에서 친근감을 느낀 때문이다.
트루먼 대통령 역시 자기 딸의 음악회를 혹평했다 하여 음악평론가에게 상스런 욕을 거침없이 내뱉는 지극히도 인간적인 약점 때문에 사랑받을 수 있었다.
자녀 진학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골프가 잘 맞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대통령을 볼 때 오히려 사람들은 동질성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민 눈높이의 생각과 행동, 꾸밈 없는 모습들에서 국민들에게 처음으로 친근감을 느끼게 해준 대통령이었다.
국민장을 선포해 놓고 국민의 추모 발길을 막는 정권, 봉변이 두려워 봉하마을 조문도 하지 못한 대통령, 상중인데도 제2촛불을 걱정하며 분위기를 대립구도로 몰아가는 한나라당. 국민정서와 유리된, 친근감과도 동떨어진 것들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들은 불행한 역사를 갖고 있다. 존경할만한 대통령을 갖지 못한 건 국민적 불행이다.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이승만은 한때 국부로 불렸지만 결국 독재자로 낙인 찍혀 망명길에 올라 죽어서 돌아왔다. 4.19혁명으로 청와대의 주인이 된 윤보선은 쿠데타 집권세력이 마땅치 않아 권좌를 박차고 나왔지만 감시와 연금이 되풀이되는 불행한 나날을 보내다 여생을 마쳤다.
5.16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부하의 총탄에 목숨을 잃는 불행한 인생을 마쳤고, 대통령직을 승계한 최규하는 식물 대통령이었다. '전직 대통령이 증언에 응하는 나쁜 전례를 남기지 않겠다'는 어설픈 역사인식을 고집하며 도중하차 이유를 끝내 증언하지 않고 숨을 거두었다.
12.12와 5.18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 그리고 노태우는 유배와 구속이라는 사상 유례 없는 치욕을 당해야 했다. 문민 대통령인 김영삼 김대중은 아들이 구속되는 불명예의 꼬리표를 달고 있다.
그리고 노무현. 그의 서거는 미완의 죽음이다. 국민 가슴속에 부활해 있다. 지난 일주일 내내 그 무엇에 분노하며 애도했던 500만 추모물결에서 껍데기뿐이 아닌 마음속의 대통령임을 읽게 된다. 다른 대통령들이 불행한 말로를 걸었지만 그는 죽어서 행복한 대통령이 됐다.
계파 줄서기를 거부하고 정치개혁과 지역주의 타파를 실천한 비주류 정치인의 상징. 탈 권위, 권력기관의 정치적 중립, 반칙과 특권 없는 세상. 역대 대통령들이 하지 못한 가치들이다.
오늘날 우리 정치인들중 이런 가치와 신념을 갖고 정치하는 사람은 한손에 꼽기도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계파를 늘리고 지역주의에 업혀 국회의원이 되는 현실을 보고 있다.
민주당이 고인에 대해 재평가 작업을 한다고 하지만 업적나열에 그친대서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가 추구했던 가치들이 헛되지 않도록 하는 일, 많은 사람들이 왜 노무현을 그리워 하는지 그 까닭부터 성찰해야 할 것이다.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라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마침내 자연으로 돌아가 역사속에 묻혔다. 고인이 추구했던 가치와 서민적 삶은 두고두고 인구에 회자될 것이다. 고인의 족적은 이제 역사와 신화가 되고 있다.
경복궁 뜰 영결식장. 영정 속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 많은 정치인들을 굽어보며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당신은 왜, 무엇을 위해 정치를 하십니까?"
/이경재(본지 경영지원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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