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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대통령제를 폐기할 때다 - 정종섭

정종섭(서울대 법대교수·헌법학)

이제 우리는 개헌을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전직 대통령이 검찰의 수사를 받다가 투신하여 죽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 국민들은 대통령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5년마다 도박판 같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한판 붙어 이기면 다 먹고, 지면 다음날부터 절치부심 칼을 갈면서 다음 판을 기다리는 것을 무슨 스릴을 느끼듯 하다가 결국 전직 대통령이 목숨을 끊는 모습을 보고서야 승자독식의 대통령제에 대하여 회의를 느끼는 것 같다.

 

대통령제는 대통령 1인에게 강력한 권력이 집중된 국정운영 방식이다. 건국기의 혼란을 수습하거나 고도 성장기의 개발독재에서는 국민들을 앞에서 이끄는 강력한 카리스마의 '지도자'가 순기능을 하기도 하기 때문에 대통령제가 적합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런 단계를 넘어서면 대통령제는 여러 가지 점에서 제도의 한계를 드러낸다.

 

우선 한국의 경우 건국 이래 국민의 칭송을 받는 대통령이 한 사람도 없다는 점이 대통령제의 실패를 잘 보여 준다. 이승만 대통령은 말년의 독재로 국민의 저항에 부딪쳐 사임하였고, 윤보선 대통령은 정치적 혼란 속에서 군부 쿠데타를 막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박정희 대통령은 18년의 장기 독재 끝에 심복에게 피살당했고, 전두환 대통령과 노태우 대통령은 재판을 받고 감옥살이를 했다. 민주화 이후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도 안하무인(眼下無人)으로 권력을 휘두르다가 국민의 비난 속에 대통령직을 떠났다. 노무현 대통령은 탄핵소추까지 당하다가 임기 후에는 박연차게이트 사건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던 중 투신하여 목숨을 끊었다.

 

이런 실패한 대통령을 만들어 낸 한국 대통령제는 과거 권위주의든 민주화 이후든 다음과 같은 공통의 특징을 보인다.

 

첫째, 국민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해도 대통령으로 당선되어 강력한 권력을 행사한다. 민주주의에 어긋난다. 그래서 여론의 지지율이나 자기 지지세력에 의존하는 파당성을 보인다. 국민의 대통령이 아니라 자기 세력의 '그들만의 대통령'이다. 둘째, 대선에서 어떻게 이기든 이기기만 하면 권력과 돈을 모두 거머쥔다. 승자독식(勝者獨食)이고 패자무망(敗者無望)이다. 그래서 국가의 중요한 자리에 자기 사람을 심고, 국가예산을 자기 사람에게 유리하게 쓰거나 자기 출신 지역에 몰아준다. 셋째, 이 결과 대통령 출신 지역은 부유해지고 그외 지역은 소외된다. 이런 악순환이 민주화 이후까지 반복되어 지역주의는 더욱 고질화되어 간다. 한국의 지역주의는 대통령제가 만들어낸 자원 배분의 왜곡이 그 본질이다. 넷째, 대통령 1인의 판단에 따라 국민과 국가의 운명이 좌우된다. 대통령을 잘 뽑으면 성공이지만 잘못 뽑으면 망조가 든다. 도 아니면 모다. 이처럼 대통령제는 위험도(risk)가 높은 국정운영 방식이다. 우리 경험상 결국 모는 나오지 않고 도가 나온 것이다.

 

다섯째, 대통령이 된 사람은 자기가 마치 군주나 된 듯이 착각에 빠져 행동한다. 5년 임기, 국내외의 여건적 제약, 한정된 자원, 가용한 인적 자원의 한계, 자신의 능력상의 한계가 분명하다. 그럼에도 이를 무시하고 역사의 영웅이 된 듯 허세를 부리다가 결국 나라를 망쳐 놓는다. 국민들도 대통령을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착각하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대통령에게 접근하려고 한다. 역대 권력형 부정부패가 모두 여기에서 비롯된다. 여섯째, 대통령이 이렇게 자리매김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대통령에게 기대한다. 경제, 국방, 외교, 복지, 교육, 노동 등등 모든 것에 완벽하기를 요구한다. 어떤 사람도 이렇게 할 수 없음에도 대통령에 대한 잘못된 허상으로 이런 기대를 한다. 결국 이런 기대는 실현되지 않기에 대통령은 누구나 할 것 없이 퇴임시에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퇴장하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대통령제의 현주소다. 사람이 먼저라고 하는 견해도 있지만, 지금까지 실패한 것인데, 이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만큼 어리석다. 제도부터 고치고 사람을 찾아보는 것이 순리다. 이제는 대통령제를 폐기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보고서도 길을 찾지 못한다면 희망이 없다.

 

/정종섭(서울대 법대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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