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일(본지 객원논설위원)
자살이나 자결(自決)은 똑같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행위다. 하지만 동기에 따라 의미 선택은 확연히 달라진다. 가령 염세(厭世)나 신병, 생활고를 비관해 목숨을 끊는 경우는 자살이다. 반면 대의(大義)나 충정, 목적을 갖고 목숨을 끊었다면 자결로 표현된다. 그래서 같은 죽음이라도 자결의 경우 시대적 상황이나 동기에 따라 그 죽음에 대한 의미는 매우 심장하다.
자결 가운데도 대표적인 방식이 할복이다. 말 그대로 배를 갈라 목숨을 끊는 이 방식은 일본 쇼부(蓴 )시대 사무라이들의 전통적 풍습이다. 다른 말로 무사도(武士道)요 '칼의 문화'로도 불린다. 할복은 일본 전통 민중연극인 가부키(歌舞伎) 주신구라(忠臣藏)에서 잘 나타난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할복자살한 영주(領主)를 위해 그를 따르던 47명의 부하 사무라이들이 원수를 갚은 뒤 모두 할복자살 한다는게 이 연극의 기둥 줄거리다. 영주에 대한 의리와 쇼부에 대한 충성을 동시에 충족시킴으로써 국민적 영웅이 되는 것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지난 70년 11월 '이것이 일본이다'를 쓴 극우작가 미시마 유키오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육상자위대 건물 옥상에서 할복하며 '우익은 죽었는가'를 외쳤다. 군국주의 망령에 사로잡힌 극우 지식인의 죽음은 당시 세계를 충격속에 빠뜨렸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자결이나 할복이 없지 않았다. 구한말 절명시(絶命詩)를 남긴 매천(梅泉) 황현(黃玹)과 의병활동 끝에 대마도로 끌려간 최익현(崔益鉉)이 자결로 순국했고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자 할복한 충정공 민영환(閔泳煥)과 헤이그 밀사로 파견됐던 이준(李儁) 열사의 의거는 우리 근대사에서 가장 기록적인 우국충정의 표상이 되고 있다.
오늘로 노무현 전대통령이 서거한지 꼭 한달이 된다. 그의 비극적 죽음은 아직도 국민들 마음속에 알수없는 분노와 통한과 비장감을 남겨 놓고 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봉하마을의 추모객과 대한문앞 분향소의 조문객 행렬이 그 반증이다. 그런데 그 사이 그의 죽음을 두고 일부 극우 보수주의자들의 이성을 잃은듯한 욕설과 저주의 굿판이 애도하는 국민들의 가슴에 비수를 꽂고 있다. '비리에 연루돼 자살한 사람에게 무슨 국민장이냐'(극우단체 변재일회장) '조폭 두목이 조직원을 보호하기 위해 자살한것과 마찬가지'(조갑제 닷컴회장)라고 극언을 서슴치 않는 정신나간(?) 꼴통들의 망언·망발을 어찌할 것인가.
청렴과 도덕성을 정치의 금과옥조로 삼았던 노무현이 현실 정치의 높은 벽에 갇혀 좌절했고 끝내 부엉이골 벼랑으로 내몰리긴 했지만 나는 그의 죽음을 결코 자살로 보지 않는다. 살아있는 정권의 위선과 탐욕에 가득찬 정치권, 그리고 나팔소리 요란한 보수언론의 편견과 오만에 준엄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자결이었다고 나는 감히 믿는다. 그리고 기다려진다. 앞으로 남은 3년8개월,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 않는가.
/김승일(본지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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