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본지 경영지원국장 겸 논설위원)
35사단 이전사업이 올스톱돼 있다. 10여년 전부터 뜸을 들이다 마침내 장애물을 걷어제치고 막 시동을 건 사업에 제동이 걸린 것이다. 그 까닭은 흔하디 흔한 반대 민원 때문도 아니고, 사업의 타당성 때문도 아니다. 엉터리행정 탓이다.
35사단 이전 지역인 임실 대곡리의 주민들이 국방부 장관(보조참가인 전주시)을 상대로 낸 국방·군사시설사업 실시계획 승인처분 무효확인 청구소송에서 서울행정법원은 '국방부가 승인한 실시계획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사전에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지 않고 실시계획을 승인한 것은 현행 환경 등 영향평가법에 위반하는 것이고, 이는 곧 주민들의 이익을 침해하는 명백한 하자라는 것이다.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하거나, 관행적 또는 자의적인 행정행위에 대해 "정신차려라"며 법원이 쇠뭉치로 때려준 격이다.
헌데 문제는 이런 류(類)의 엉터리행정이 비일비재하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데에 있다. 이 사건을 맡아 승소를 이끌어 낸 송철한 변호사는 "법령이나 규정에 명시된 절차를 이행치 않고 이뤄지는 행정행위들이 너무 많더라. 소송을 당하면 모두 진다"며 대충 하는 행정행위에 대해 놀라워 했다.
엉터리 행정행위는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시군종합감사에서는 자잘한 것 빼고도 매년 지역마다 1백여건씩 적발된다. 행정력이 낭비되고 이해 당사자의 피해가 큰 데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표적감사' 의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표적감사는 대개 정치적이기 십상인데 말을 잘 듣지 않는 시장·군수를 견제하거나, 인사· 사업 등을 자신의 의도 대로 끌고 가기 위해 벌이는 감사를 속칭하는 말이다.
목표를 정해 놓고 틀에 짜 맞추는 식의 감사가 진행되기 때문에 무리수가 따르고 개인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되기도 한다. 그런데 표적감사가 잘못됐다는 것이 밝혀진다 해도 책임지는 사람도 없고, 명예를 회복시켜 줄 수단도 없다.
이를테면 중징계 조치된 당사자가 부당성을 들어 행정소송을 제기, 승소했다면 감사지시를 내린 단체장이나 감사실의 어느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 징계조치되는 순간 이미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세상에 알려지고 명예가 크게 훼손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죄사실'을 알리지도 않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형사범에게는 '무죄공시' 제도가 있다. 무죄판결을 받은 피고인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한 제도다. 무죄공시란 피고인이 침해당한 인권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국가가 비용을 부담해 무죄판결을 세상에 알리는 제도다. 행정도 이를 원용할 필요가 있다.
경전철 사업은 또 어떤가. 대표적인 예산낭비 사례중의 하나인 이 사업은 각종 용역비 등으로 32억원이라는 돈을 집어삼켰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엄청난 시민세금을 쓰고도 없던 일이 돼버렸다면 그 까닭을 명명백백하게 밝혀야 한다. 긍정-부정의 용역결과가 충돌하면 법정에 세워 엉터리용역, 작위적인 용역을 가리는 게 시민세금을 쓴 도리일 것이다. 그래야 시민세금 무서운 줄 알 것 아니겠는가. 새만금사업도 법정의 판단에 맡겨졌었다.
우리는 대충 하는 행정행위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 경제적· 시간적 손실을 생각한다면 책임을 묻는 일에 보다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주민 보다도 못한 법령해석, 자의적인 행정행위, 전시적인 행정행위 등이 용납돼선 안된다. 그릇된 행정행위로 인한 개인의 명예회복과 피해구제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고.
/이경재(본지 경영지원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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