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진(본지 논설위원)
세종시 문제로 지방이 난리다. 여기저기서 블랙홀과 역차별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가 9부2처2청을 포함한 36개 기관의 이전을 백지화 시키는 대신 '교육과학 중심의 경제도시'로 만들겠다고 수정론을 들고 나오면서 부터다. 이는'행정중심복합도시'의 포기 선언에 다름 아니다.
이 논란에 대통령이 직접 뛰어 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27일'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를 통해"대선 과정에서 원안 추진 약속이 부끄럽고 후회스럽다"고 사과하면서도 수정 추진을 밀고 나가겠다고 밝힌 것이다.
하지만 논란은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충청권은 물론 야당과 한나라당내 친박계 등은 더 강경 자세다. 그만큼 이 문제의 뿌리가 깊고 갈등이 크다는 얘기다.
대선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세종시 문제는 정운찬 총리가 총대를 매면서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정 총리는 기업 유치는 말할 것 없고 대학과 의료기관, 연구소 등의 이전을 전방위로 독려하고 나섰다.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함은 물론이다.
정부는 삼성과 롯데그룹, 세계 10대 병원그룹인 파크웨이, 호주 최대 투자기업인 맥쿼리 등에 투자를 요청했다. 또 서울대 고려대 KAIST 유치방안이 협의되었고 서울대 병원 입주는 기정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렇게 되자 전국의 자치단체가 발끈하고 일어났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이다. 겨우 공들여 옮기기로 한 기업들이 나자빠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구 경북의 경우 중이온가속기가 물 건너 가는 등 의료복합단지를 유치했으나 껍데기만 남을 공산이 커졌다. 부산은 1400억 원 규모의 삼성전기 공장증설이, 충북은 롯데맥주 건설이 물거품이 될 처지다. 전남은 J프로젝트와 F1그랑프리 사업이 어려워졌다고 목소릴 높이고 있다.
전북의 피해도 이들 못지 않다. 최대 사업인 새만금이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이다. 새만금에 입주키로 했던 국가핵융합연구소 제2캠퍼스가 세종시로 방향을 틀었고, 내년부터 분양될 새만금산업단지는 벌써 날 샜다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 어느 기업이 정부가 올인해서 밀어 주겠다는데 뿌리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해 이 대통령은 "세종시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갈 게 이곳으로 오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진화에 나섰다.
사실 대통령의 충정에도 일리는 있다. 그중 부처 이전에 따른 업무의 비효율은 옳은 지적이다. 또 통일 후를 생각하면 행정부 이전이 바람직한가도 의문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세종시 문제가 왜 나왔는가를. 세종시는 지방이 너무 피폐해져 특단의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희망이 없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선택한 것이다. 좁은 땅덩이에서 수도권은 비만으로 뇌출혈 직전인 반면, 지방은 황무지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어야 할 형편이 아닌가.
수도권을 제외한 전 지역에서 인구가 빠져 나가고 쓸만한 기업이 없어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향하는게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래서 전 정부에서 세종시-혁신도시-지방분권을 제시했다.
어찌보면 적은 비효율을 감수하고라도 지방 전체를 살리는 게 중요하다. 세종시는 그 바로미터라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는 국정철학 자체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 단기적인 성과에 급급할 게 아니라 긴 호흡으로 봐야 한다. 다음 정권에서 이 사업을 또 뒤집으면 어쩔 셈인가.
/조상진(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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