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성(본지 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연말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우리는 생각들이 뒤섞이곤 한다. 시간의 흐름에 어디 마디가 있을까마는, 낡은 것을 끊고 새것을 잇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다소 안도한다. 올해의 악몽과 단절하고 뭔가 새로운 지평을 열려는 억척스러움에 그런 뜻이 담겨 있을 것이다.
되돌아보면 올 한 해는 참으로 많은 일이 일어난 해다. 기대와 아쉬움, 열망과 탄식이 교차했던 일 년이다. 세계적 금융사태의 거센 폭풍 뿐 아니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투신, 세종시와 4대강 사업의 추진, 신종플루 유행 등 숨고를 겨를 없이 급행열차를 타고 터널을 통과하는 느낌이다. 작금의 위기가 각계의 처방이 불안하고 누구도 자신 있는 묘책을 내놓지 못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이번 겨울은 유난히 길게 느껴질 것 같다. 경제의 어려움 등으로 인한 우리 마음속의 긴 겨울 말이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면 분명 봄이 오고 말 듯, 이번의 위기와 난국도 분명 끝나는 날이 올 것이다. 문제는 그간의 겨울나기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다. 그 한가운데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이 있다.
다행스러운 건 나눔의 정신이 은은히 빛을 이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올해 도내에서 소리없이 선행을 펼친 익명의 기부자가 41명에 이른다고 한다. 연말이면 수천만원을 기부해온 기업인이 있는가 하면, '좋은 곳에 써달라'며 현금 100만원을 건네고 사라진 '고물 줍는 아저씨', 직접 농사지은 390만원 상당의 쌀을 선뜻 내놓고 간 기부자등 그 사연과 유형도 다양하다.
매월 일정액을 기부하는 도내 '착한가게'의 수가 전국 최고라는 통계 또한 전북도민의 열정을 넘어 이제 자부심으로 굳혀지고 있다. 적게는 2,000원부터 많게는 150만원까지 기부하는 이들 250개의 착한가게는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가장 많은 규모다. 매월 기부액도 1,260여만원으로 단연 으뜸으로 꼽힌다. 전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 김원배 회장은 이같은 적극적인 활동을 두고 "전북은 예부터 농경문화가 발달해 이웃끼리 서로 돕는 '품앗이 정신'이 생활에 배어있기 때문"이라고 풀어 말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엊그제 도청광장에서 '사랑의 온도탑'이 세워졌다. 경제불황 등을 감안해 목표성금을 지난번 실적보다 낮은 33억2,100만원으로 잡았다는 공동모금회측 설명이다. 이번 주말엔 전주와 익산, 군산, 정읍에 구세군 자선냄비도 걸린다. 이달 24일 자정까지 8,000만원을 모은다는 계획이다.
물론 어려운 이웃들이 더 힘들어지지 않도록 사회 안전망을 갖추고 이를 확충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정부 몫이다. 서민들이 벼랑 끝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선제적 재정정책을 통해 서민경제에 온기를 불어넣는 것도 더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이는 시혜나 구휼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이루려는 필수불가결한 투자로 접근해야 한다.
공동체의 존속을 위한 그런 노력에 기업이나 개개인이 예외일 순 없다. 나아가 나눔은 곧 사랑이요, 사랑 또한 나눔이 아닌가 싶다. 사랑, 그리고 나눔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낮은 곳에 내민 손길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희망의 큰 불길을 이루고 있지 않는가. 빨간 '사랑의 열매'와 자선냄비를 지나치지 마시길 기대한다.
/최동성(본지 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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