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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이재오와 정종환장관의 경우 - 이경재

이경재(본지 경영지원국장겸 논설위원)

장관급인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65)의 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전국을 돌면서 '이동신문고'를 열고 국민들의 민원을 해결해 주면서 부터다. 기관간 힘겨루기 때문에 방치된 고질적인 민원, 관행이라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룬 수십년 묶은 민원도 그가 어루만지면 눈 녹듯 풀린다.

 

속초비행장 일대 1422만㎡(430만평)의 고도제한 완화 민원이 반세기 만에 풀린 건 상징적이다. 비행안전구역에 묶인 고도제한 집단민원이 그의 중재로 해결된 것이다. 민원 해결로 국방부는 비행장 현대화 사업을, 국토부와 도로공사· 한전 등은 국책사업을 각각 차질없이 추진할 수 있게 됐고 주민들은 사유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됐으니 그야말로 윈-윈결정이다. 이미 그에겐 '민원해결사'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야당은 국민을 상대로 공개적인 대권행보를 하고 있다고 비난하지만, 이렇듯 간단히 풀릴 민원을 왜 진작 해결해 주지 못했는지를 먼저 탓해야 할 일이다.

 

며칠전 김제를 찾은 그는 영업정지로 피해를 입은 전일상호저축은행 피해자들의 애절한 호소를 듣고는 눈물까지 글썽이며 "금감위와 관계기관, 정부가 '3자 인수가 되는지', '공적자금을 투입할 수 있는지' 등을 논의해 진행 상황을 꼭 알려주겠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정치를 할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하지 않겠는가. 막힌 곳을 뚫고 해결해 주는 능력, 고통과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감성이야말로 정치인이 가져야 할 덕목이다.

 

그런가 하면 정종환 국토부장관(62)의 경우는 정반대다. 토지주택공사(LH) 통합본사 이전과 관련한 그의 행보는 막힌 곳을 뚫기는 커녕 좌고우면(左顧右眄)의 달인 처럼 비친다.

 

지난해 11월11일 경남지역 국회의원과 만난 자리에서 그는 "가장 좋은 방법은 통합본사를 한 곳으로 몰아주는 것"이라고 했다가 보름 뒤 전북지역 국회의원 간담회에서는 "전북이 주장하는 분산배치 원칙을 지키고 가능하면 연말 안에 최종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불과 보름 사이에 국회의원들 앞에서 상반된 발언을 쏟아냈다. 연말까지 최종 결정하겠다는 약속도 식언이 돼버렸다. 말바꾸기의 극치이다. 막스 베버(1864∼1920) 식의 영혼이 없는 관료라는 말인가.

 

막스 베버도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관료란 어느 정부에서나 그 정부의 철학에 따라 일 하는 게 숙명이지만, 정치적 결정은 정치인이 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최장수 장관이다. 충남지사 출마 얘기도 나오고 있다.

 

대한민국 대표적 부채 공기업인 LH는 지금 구조조정을 거쳐 새 면모를 갖추려 하고 있다. 건물도 모두 매각시키고 있다. 고도제한 민원처럼 통합본사 이전 역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 수 있는 중대 사안이다. 기업에겐 시간과 속도가 경쟁력이다.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무작정 망설일 만큼 한가하지 않다.

 

전국을 순회하며 민원해결사로 나선 이재오 위원장은 국민권익위원장으로서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반면 정종환장관은 왼쪽을 돌아보고 오른쪽을 곁눈질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직무유기다.

 

막힌 곳을 뚫는 장관이 있는가 하면, 뚫어야 할 곳을 저울질하며 오락가락하고 있는 장관의 전형을 우리는 보고 있는 셈이다. 도지사와 시장 군수도 비슷한 유형이 많을 것이다. 지방선거때 눈여겨 볼 일이다. 이제는 LH통합본사 이전문제를 이재오 위원장 한테 가져가야 할 것 같다.

 

/이경재(본지 경영지원국장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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