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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 원칙주의와 외교의 유연성

박후건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

 

중국의 삼국지에서 촉나라의 멸망은 형주의 상실로부터 시작된다. 형주는 삼국의 교차로 역할을 하면서 삼국의 중점, 중심의 역할을 하는 땅이었으며 촉에게 형주의 중요성은 제갈공명의 저 유명한 삼분천하(三分天下) 전략에도 나타난다.

 

제갈공명은 삼고초려로 자신을 모시러 온 유비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장군께서 익주와 형주를 걸터 타고 험한 지세를 이용하여 지키고, 밖으로 손권과 동맹을 맺고 안으로 정사에 힘을 쓰다, 천하에 변란이 일어나기를 기다려 상장에게 형주의 군사를 거느리고 완성과 낙양으로 향하게 하고, 장군께서 몸소 익주의 군사를 모아 진천으로 나간다면 대업은 이루어질 것입니다."

 

적벽대전의 수공으로 백하에서 조조군을 대파한 이후 유비는 형주에 본거지를 두고 익주를 공략하였다. 그러나 익주에서 군사 방통이 전사하는 등 고전하는 유비를 구원하러 제갈량이 장비, 조운 등의 장수들과 출병하자 관우 혼자 형주를 방비하게 되었다.

 

형주는 전략적 요충지이기 때문에 특히 외교가 매우 중요한 방어수단이다. 삼국이 중원을 차지하기 위해 대립하고 있었던 당시 정세는 시시때때로 변하기 때문에 외교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유연성이다.

 

그러나 관우는 무신(武神)의 반열에 오른 영웅호걸이었으나 원칙주의자였다. 공명도 이점이 우려되어 서천으로 출병하기 전 관우에게 글귀를 하나 적어주고 갔는데 '북거조조(北拒曺操) 동화손권(東和孫權), 즉 북으로는 조조에 맞서고 동으로는 손권과 화친하라' 는 내용이다. 이것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관우는 손권의 혼사제의를 '범의 딸을 개의 아들에게 주겠느냐'며 사신으로 온 제갈근을 내쫓았다.

 

관우는 군사들을 이끌고 번성의 조인을 공격했는데 관우의 번성 공격은 온전히 독자적인 군사행동이었다는 것이다. 번성공격의 실패는 부사인과 미방의 배반도 한몫 하였는데 원래 관우는 부하 부사인과 미방을 선봉으로 삼아 번성공격을 계획하지만 부사인과 미방이 실수로 술을 마시다 불을 내어 군량과 마초가 모두 타 버리자 관우는 부사인과 미방을 불러내 혹독하게 처벌을 하며 후방에 남겨두었다. 관우의 원칙주의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중국과 미국 양국은 남북대화→북미대화→6자회담으로 이어지는 3단계 재개 프로세서를 갖는 것에 대한 합의를 보고 북한과 한국을 설득하여 6자회담을 재개하려 하고 있다. 현존 핵무기를 완전히 제거하기 위한 단계적 절차를 밟아 나가는 것을 골자로 하는 '2010년 미국 핵권리장전'을 오바마 독트린으로 설정하고 있는 미국에게 북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UEP)은 반드시 해결하여야 할 과제이다. 국민소득을 4배로 올리고 보다 균등한 사회건설을 내용으로 하고 있는 '소강사회 (小康社會) 건설'을 2025년까지 완성한다는 국가적 목표와 이를 위해 야심차게 동북 4성을 개발하려 하는 중국에게 한반도 안정은 '소강사회 건설'의 또 하나의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이런 연유로 지난 1월에 워싱턴에서 열린 G2 중미 정상회담에서 후진타오 주석이 오바마 대통령과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한반도 긴장완화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던 것이다. 이 회담에서 중국과 미국은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모종의 합의를 보았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의 일환으로 중국은 북한을 설득하고 미국은 한국을 설득하여, 즉 힐러리 국무장관의 방한을 통해 그리고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 이후 이명박 대통령과 면담을 통해 3단계 재개 프로세서에 시동을 걸고 있다.

 

한국은 원칙적으로 북한이 천안함과 연평도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죄하는 것을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으로 내 걸고 있기 때문에 3단계 프로세서는 첫 단계부터 난항을 예고하고 있다. 가치관이 전도되고 있는 현실에서 원칙을 고수하는 것은 매우 용기 있는 일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삼국지 관우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외교는 원칙을 고집하기 보다는 유연하여야만 국익을 지키고 극대화 할 수 있다. 북한의 진정성은 남북대화의 전제조건이 되기보다는 남북대화를 통해서 검증하여야 할 것이다. 대화의 단절은 서로간의 더 큰 오해와 곡해 그리고 불신만을 낳을 것이며, 한국의 국익과도 상반되는 것이다.

 

/ 박후건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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