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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예술이다

본보 편집위원인 김용택 시인이 '문화예술, 일상에서 만나다'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격주 화요일 문화면에 연재될 김 시인의 칼럼은 전문 영역으로 어렵게만 여겨온 문화예술에 대한 벽을 낮춰 일반의 이해를 넓히는 소통의 장이 될 것입니다.

 

 

비가 오고 있다. 봄비답게 부슬거린다. 소리 없는 발걸음 같다. 방안에서 보면 비가 오는지 안 오는지 잘 모르다가도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들이나, 나뭇가지에 매달린 물방울을 보고 비가 온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봄이 더디다. 꽃들도 세상을 더듬고 멈춰 쉬고 움츠렸다가 꽃망울을 터트린다. 더디고 느려도 정도를 걷는 모든 진행은 아름답다. 같은 가지에서도 어떤 꽃은 피고 어떤 꽃은 필 생각이 없는 모양이고 또 어떤 꽃은 피려고 생각중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 사는 일이나 자연에서 일어나는 일이 다 그 일이 그 일로 보인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러한 모든 것들이 다 서로 깊이 관계를 맺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비와 풀잎이 그렇고 바람과 나무가 그렇고 해와 달이 그렇고 하늘과 새가 그렇다. 이 세상에 관계가 맺어져 있지 않은 것은 없다. 봄바람이 하는 일과 봄비가 하는 일이 다 서로 도와서 하나의 새로운 세계를 그린다. 그 더디고 느리고 터덕거리는 현실이 묘하다.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데 갈등이 없을 리 없다. 사람들은 갈등을 조절하고 조정해서 조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낸다. 조화로운 삶을 향한 인류의 의지는 불멸의 가치들을 창조해 냈다. 종교가 그렇고 철학과 과학이 그랬고, 사상과 교육이, 정치가 그랬다. 그 모든 것들 중에 세월이 갈수록 떼를 타지 않고 그 빛을 더욱 찬란하게 발하는 것이 있으니, 문학과 예술이다.

 

예술이 모든 역사적이고 사회적인 것들로부터 홀로 꽃 피울 수 없음은 다 아는 사실이다. 예술은 역사를 이끌기도 했고, 역사를 정리하기도 했다. 그런 큰 힘을 발휘하는 예술이 사람들의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삶속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예술이 사람들의 일상과 한 몸이 될 때 그 힘을 강하게 발휘했다. 쉽게 말하면 예술은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에서 나와 일상으로 새로운 얼굴이 되어 스며든다.

 

두 개의 작은 웅덩이가 한 몸처럼 서로 사심 없이 물을 주고받아 물을 맑게 하는 것 같은 공생과 상생의 가치가 일으킨 놀라운 질서가 곧 삶과 예술이다. 아주 구체적이고도 직접적이고 역동적이면서도 섬세한 일상의 정서들이 예술로 승화 되어 삶을 기름지게 추동한다. 일상을 바꾸고 사회를 흔들어 역사를 바꾸는 힘을 발휘한 이런 일과 놀이 즉 예술과 삶의 일치된 힘은 분산되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며 잘못된 지배 구조를 바꾸는 힘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자본과 권력의 힘이 강화되면서 예술은 일상으로부터 격리되고 분리되었다. 예술이 전문직이 되어 권력에 예속되어 무대로 올라간 것이다. 예술과 사회의 긴밀한 관계와 갈등 고리를 차단한 것이다. 일종의 타락이다. 그러면서 예술이 또 다른 권력이 되고 자본이 되었다. 현대 예술의 힘이 약화 된 것은 이런 모순을 의도적으로 조장한 권력 집단들의 관리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우리 인간들과 자연들 스스로도 다 들여다보지 못하고 눈치 채지 못하는 작용과 반작용의 갈등의 연속 속에서 낡은 질서는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가 탄생한다. 그러므로 예술은 적체된 일상의 구태를 과감히 고발하고 통렬하게 비판한다. 예술과 삶이 따로일 때, 예술은 일시적인 위안으로 끝나고 다시 일상은 팍팍하다. 보고 듣고 생각하고 표현하는 모든 것들이 다 예술이다.

 

이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모든 것이 디자인이다. 낡은 정치, 낡은 경제, 낡은 교육제도를 새로 디자인(?) 할 때다. 종합적으로 사고하고 서로 통섭하고 융합해서 일상을 실질적인 행복으로 바꾸는 일대 혁명이 필요하다. 말 그대로 실사구시 정신이다.

 

예술은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는 눈을 갖게 하고, 그것을 또 예술로 표현하게 한다. 예술은 감동을 가져 온다. 감동은 살아 있는 것들이다. 느끼고 스며드는 감동은 생각과 행동을 바꾸어 운명을 바꾸는 가장 큰 교육이다. 봄비를 맞으며 매화가지 끝에 흰 눈이 트듯 삶에 눈 뜨라. 구차함에서 벗어나 나의 일상을 한 음계 높이거나 낮추어 아름다운 음으로 다듬고 고르는 품위와 격, 그게 예술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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