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감나무를 좋아 한다. 낯선 길을 가다가 감나무를 보면 정답고 반갑다. 감나무가 보이기 시작하면 마을이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었다. 지금이니까 그렇지 옛날에는 곶감이 집안에서 큰 소득원이 되어주기도 했다.
우리 동네에서 조금 강을 따라 내려가면 천담 마을이 있는데, 순창 장날이 되면 수 십 명의 장정들이 곶감을 짊어지고 장으로 가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새잎이 피는 봄이 되면 나는 모양이 아름다운 감나무를 찾아다니기도 한다. 전주에서 시골집까지 가는 길 어디쯤에 모양이 좋은 감나무가 있는지를 다 알고 있다. 길가에 있는 모든 감나무를 나는 다 외우고 있다. 어디 쯤 가면 이만큼 큰 이런 감나무가 있고, 또 어는 밭가에는 저런 모양의 오래된 감나무가 있고, 또 어느 마을 어느 산길에는 이렇게 생긴 감나무가 있는지를 다 알고 있다. 그 감나무들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봄여름가을겨울을 생각한다. 까만 감나무 가지에 아기들의 젖니 같은 새잎이 돋아나는 감나무는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답다. 그 젖니 같은 잎이 점점 커져 강에 사는 임실납자루 만하게 잎이 커지면, 아! 그 잎에 아침 햇빛이 찾아들면, 감나무는 찬란하고 황홀하다.
봄꽃은 지는 햇살로 보아야 서늘하고 가을꽃들은 아침 햇살로 보아야 영롱하다. 지는 햇살 뜨는 햇살은 모든 사물들을 입체적으로 뚜렷하게 보여준다. 산그늘이 내린 봄날의 풀밭을 보라. 얼마나 가슴이 서늘한가. 가을 아침 산길 강 길을 걸어보라. 작은 풀꽃들에 맺힌 이슬방울들은 그 얼마나 영롱한가. 감잎이 이제 떡잎 만하게 커지면 그 아름답고 찬란하던 연두색에서 진녹색으로 건너간다. 초록이 동색이 되어 갈 때 감나무는 그 보습이 가장 성숙해 보인다. 마치 첫 아기를 낳은 여인처럼 평화로워 보이고, 득도한 스님 같은 깊은 얼굴이 되어 있다. 그러면 감잎은 더 두꺼워지고 감꽃이 핀다. 감꽃은 또 얼마나 수수하고 그 색이 우아 한가. 감꽃이 필 때 감나무아래에 가보면 녹두 색보다 옅은 감꽃들이 많이도 떨어져 있다. 그 감꽃을 주워 실에 꿰어 목걸이를 만들어 걸고 다니기도 했다. 감꽃이 그렇게 지고 나면 감이 열린다.
서양 아이들이 잠잘 때 쓴 모자 같은 꽃받침에 싸인 작은 감은 짙은 녹색을 띈다. 감이 조금씩 커지며 감은 서서히 얼굴을 드러내기 시작하는데, 그 새파랗게 탱탱한 감을 땡감이라고 부른다. 느닷없이 젊은 사람이 죽으면 사람들은 땡감도 떨어지고 익은 감도 떨어진다고 하며 인생의 무상함과 덧없음을 떨어지는 감에 비유하기도 한다.
넓고 두터운 감잎에 청개구리들이 앉아 울기도 하고, 느닷없이 내리는 소낙비를 후두두둑 맞으며 땡감을 떨어뜨리며 여름이 서서히 끝나 가면 감의 얼굴이 하나 둘 붉게 드러난다. 감꼭지에 감을 파먹는 벌레가 생기면 붉은 감빛이 드러난다.
병들어 익은 감이 붉게 익기 시작하면 가을이 시작 된다. 하나 둘 그렇게 서서히 감들이 붉은 얼굴을 내 밀면 감 잎 속의 붉은 감색은 감잎 색이 어울려 아름답다. 아직 단풍물이 들기 전 기름 끼 자르르한 감잎은 그야말로 약이 오를 대로 올라 그 색깔이 겁이 날 정도로 짙푸르러진다. 많은 나무들 중에서 일찍 단풍물이 드는 나무는 벚나무와 감나무다. 활엽수들 중에서 잎이 가장 두꺼운 것이 아마 감나무 일 것이다. 그 두꺼운 감잎에 단풍이 들면 붉다 못해 선지 피 같아서 떨어진 감잎을 주어 들면 섬뜩할 정도다. 독 오른 사랑 같은 감잎이 땅에 떨어져 붉은 색깔이 다 사그라질 무렵이면 감나무에 달린 모든 잎들은 다 떨어진다. 감잎이 다 떨어져 버린 감나무는 그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마을 곳곳에 시정 넘치는 모습들을 뽐내고 서 있다. 붉은 감은 오래 된 우리나라 파란 가을 하늘을 완성하는 낙관이다.
/본보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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