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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 4

감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검어진다

 

검은 가지에 쌓인

 

흰 눈의 대비도

 

고상한 느낌을 갖게 해 준다

 

감나무가 흔하다고 해서 하찮게 보이진 않는다. 마을 근처 어디서나 볼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귀티가 나고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품격과 격조가 있는 나무가 감나무다. 오래 된 감나무는 오래 된 나무대로, 어린 감나무면 어린나무대로 다 자기의 품위를 갖추고 서 있는 모습이 품격이 느껴진다. 오래된 감나무에 몇 개 달린 붉은 감과 그 감나무에 앉아 있는 까치의 모습은 고졸하다 못해 문기가 넘치는 한국화를 연상케 한다. '근원 수필'을 쓴 김용준 선생의 감나무와 까치에 대한 글은 오래 된 고전이다.

 

감나무 모습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뭐니 뭐니 해도 감나무가지에 눈이 쌓인 모습일 것이다. 다른 나무에 비해 가지가 굵고 검은 감나무는 눈을 많이 받는다. 뭉툭하게 꺾인 마디, 굵고 투박한 검은 가지에 가만가만 내려 소복하게 쌓인 눈은 눈이 부시다 못해 어지러울 정도다. 감나무 가지에 쌓인 눈이 여기저기서 천천히 허물어져 땅으로 떨어지는 모습은 적막을 깨운 것이 아니라 적막을 삼키는 것처럼 보인다. 감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점점 검어진다. 검은 가지에 쌓인 흰 눈의 대비도 다른 나무에 비해 고상한 느낌을 더 갖게 해 준다.감도 잎도 다 떨어진 겨울이면 서산을 넘어 온 햇살을 받은 감나무가지들을 눈이 부시게 바라보는 것을 나는 좋아 한다.

 

뭉툭한 감가지에 떨어진 겨울 햇살은 눈부시다. 유리창에 턱을 괴고 내가 제일 많이 바라보는 것은 봄여름가을겨울의 감나무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이었다. 모든 나무들이 다 그렇듯이 감나무도 나이가 들고 고목이 되어 이 가자 저 가지가 죽어간다. 뿌리에서 먼 곳으로부터 자기를 버리는 나무들의 자연사는 사람을 닮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할머니는 강을 건너지 못하셨다. 강가에 이르러 강 건너 밭을 보다가 강가까지도 못 가신다. 회관에서 노시다가 회관도 못 가신다. 그러다가 집 마당으로 마당에서 마루로 마루에서 방으로 들어오셔서 돌아가셨다. 나무도 그와 같다. 감나무의 꾸밈새 없는 모습은, 오래오래 한 마을에 살면서 품성을 곱게 쓰고 자연으로 살아 온 동네 어른처럼 믿음이 간다. 사람도 저렇게 나이가 들면 자기 생각을 죽이고 버리고 가다듬어 살아 온 세월을 말해주면 좋겠다. 나는 그런 감나무를 닮은 시를 쓰고 싶다.

 

빈 나무로 서 있으면 또 그런대로 그 모습과 자태가 품격이 있는 감나무는 그러나 이제 사람들의 뒷전으로 물러났다. 토종감이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으면서 한 그루 두 그루 사라지고 이제 산이 되어 버린 옛 밭 터 숲속에 몇 그루 초라하게 서 있다가 가을이 되면 붉은 감의 얼굴을 보여주다가 만다.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은 토종 감들이 눈을 하얗게 뒤집어쓰고 꽁꽁 얼어 있는 모습을 보면 우리나라 농부들의 일평생 같아, 꽁꽁 언 감보다도 내 마음은 더 춥다. 자기 나라에서 자라는 과일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내 팽개쳐 놓은 나라가 원망스럽기도 하다.

 

감나무가 있는 가을 풍경은 아름답다. 감을 다 따고 까치 밥 몇 개가 달린 감나무 아래에서 보리를 갈다가 쉴 참이면 우리들은 돌멩이를 던져 감을 따 먹었다. 서리를 맞은 감은 아! 얼마나 달고 맛이 있었던가. 감나무가 있는 풍경 중에서 선운사 감나무도 아름답다. 키가 큰 감나무에 달린 붉은 감들은 우아한 검은 기와지붕과 어울려 그 풍경이 고즈넉하고, 그 감나무 아래 서서 감을 올려다보는 아이의 모습도 그림이다. 산길을 가다 보면 잡목들이 우거진 까칠한 야산의 초겨울 풍경 중에 붉은 감빛도 우리의 산야를 아름답게 그려준다. 감은 가난한 농촌 사람들에게 그리 큰 힘을 들이지 않고 얻을 수 있는 큰 소득원이었고, 농촌의 풍경을 끝까지 소박하고도 조촐하게 그려주던 나무였다. 감나무는 순박한 삶을 가꾸어 온 우리네 저 유구한 농부들과 그 운명을 같이 해 온 셈이다. 〈끝〉

 

※ 그동안 제 글을 읽어준 독자 여러분들 고맙습니다. 저의 글 연재는 여기서 끝을 맺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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