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농사, 식당…안 해본 일이 없죠 / 조그만 분식점 차리는 게 꿈이에요
"이렇다할 경력도, 전문자격증도 없는 조선족으로서 취직을 하기란 참 힘들더라구요.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했죠. 그래서인지, 어렵사리 구한 지금의 첫 직장이 더 소중한가 봐요."
진안 제2농공단지 내 전북진안지역 자활센터에서 사무보조로 일하고 있는 백영애씨(이주여성·41·진안읍 군상리 거주)는 "역사적으로 얽히고 얽힌 나라(중국)의 소수민족 출신이라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인식에 힘들었다"면서 이같이 소회를 밝혔다.
중국 요녕성 심양시 출신인 백씨가 한국 땅을 밟게 된 것은 13년전인 지난 1999년. 한국 수원에 있는 친척의 소개로 농삿꾼인 현재의 부군 진규상씨(55)와 화촉을 밝히면서다.
결혼 전, 한국에 가면 같은 말을 하는 같은 민족이라 '귀속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같은 민족의 공평한 대우를 내심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과 달랐다. 조선족 출신이라는 민족편견 속에 경력은 물론, 변변한 자격증 하나없는 백씨를 덜컥 고용할 직장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백씨는 첫 직장을 가진 지난 3월 이전까지 시댁에 대물림되던 한봉벌 농사에만 전념해야 했다. 간간이 식당일도 나갔다. 시골 아낙으로 살아오기를 10여년. 멈춰있던 그녀를 움직이게 한 것은 커가는 1남2녀의 자녀들. "왜 엄마는 매일 농사만 지어. 다른 엄마들처럼 사무실에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라는 큰 딸의 말이 가슴에 비수로 꽂히면서다.
그 때부터 백씨는 알량한 자격증이라도 딸 요량에 '펠트만들기(바느질)'를 배우는 한편, 지역 자활센터에서의 교육 등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 위한 담금질에 들어갔다.
그러한 열정은 지난해 말 그녀의 손에 워드와 엑셀 자격증 2개를 쥐게 했고, 한국 정착 13년만에 진안자활센터에서 청소업무파트인 '마이크린사업단'의 사무보조로 몸담게 했다.
백씨는 "한국에 오기까지의 결심도 힘이 들었고 힘들게 내린 결심이 무색하게도 적응조차 힘들어 비틀대던 내게 하나의 큰 울타리가 되어준 것은 가족이었다"고 했다.
1년 계약직이지만 어엿한 직장인이 된 그녀는 "취직과 함께 마련한 자동차로 여느 일반 가정처럼 주말에 애들과 함께 가족 나들이도 갈 수 있게 됐다"고 소박한 너스레를 떨었다.
소탈한 여유만 생긴 게 아니다. 취업 후, 당당한 자심감까지 생겼기 때문이다. "이제 커가는 자녀들에게도 떳떳한 엄마가 될 수 있어 기쁘다"는 백씨는 "작은 분식점 하나 갖는 게 꿈"이라며 바람을 내비쳤다.
취직을 준비하는 이주여성들에게 그녀는 "산골에 산다는 강박감에 농사만 지을 게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간다면 모두에게 기회는 주어질 것"이라며 선배로서 조언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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