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함·책임감 기본, 연장근무도 척척…월급 많지 않아도 "오래 다니고 싶어요"
아이들 키우랴, 남편 뒤치닥거리하랴 바빴던 '아줌마'들이 가계 살림이 빠듯해지자 현장으로 나오고 있다. 전문직이 아닌 터라 생산직 현장에서 일 배우느라 삶이 버겁지만, 그래도 어쩌랴. 가족들에게는 '슬픈 장미' 보다는 '명랑한 콩나물'이 나은 것을. 전북여성교육문화센터(센터장 김보금)의 협조로 연재하는 '힘내라! 아줌마'는 매주 수요일 도내 산업 현장에서 뛰고 있는 아줌마들의 열정과 패기를 들여다보는 기획이다.
첫 주인공은 완주군 봉동읍에 위치한 자동차 부품 전문업체 (주)우신산업(대표 국중하)에서 여성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는 김옥순(62)씨. 불꽃 튀는 현장 속에서 기름이 안 새도록 기계로 두 철판을 잇는 11년 차 베테랑 용접공이다.
"처음엔 기계가 손에 안 익어서 고생도 많이 했지요. 그런데 내가 살림은 '꽝'이라…. (웃음) 일하는 게 좋아요."
남편 따라 제주도로 시집을 간 뒤 사업 실패를 겪은 그는 1987년 도망치듯 친정이 있는 전주로 왔다. 당시 그의 손에 쥔 게 고작 20만원. 지난 12년 간 한솔제지에서 그는 허리띠 졸라가며 4남매를 키워냈다. 하지만 2001년 기업의 구조 조정으로 하루 아침에 직장에서 떨려났다. 당시 아이들은 대학생 둘, 고등학생 둘이었다. 눈앞이 아득해진 그를 구원해준 것은 우신산업에 입사한 동료다. 당시 국중하 대표는 '나이 많은 아줌마'라는 꼬리표에도 불구하고 그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우신산업의 핵심 업무엔 아줌마들이 많다. 초반에 2~3명에 불과하던 여직원들은 현재 24명까지 불어났다.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나이가 적은 것도 아니었다. 여성들은 남성에 비해 일을 한 번 맡기면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책임감과 성실함이 담보됐기 때문이다. 다만 시시때때로 물량을 맞추기 위한 연장 근무를 소화하는 게 관건. 이미 자식들이 장성해 비교적 시간 여유가 있는 그와 같은 40~50대 아줌마 사원들은 그나마 낫다.
매일 오후 9시 퇴근으로 웬만한 대기업 사원들 보다 더 바쁘지만, 월급은 그보다 못하다.
경력이 쌓여 잔업과 특근까지 포함해 월 230여 만 원. 그는 "젊은 친구들이 들어와서 일을 배워가면 좋은데, 오래 버텨내질 못하는 게 정말 안타깝다"면서 "나를 받아준 회사가 고마워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끝까지 다니고 싶다"고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오히려 "나처럼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아줌마 때문에 젊은 사람들 일자리가 빼앗기는 거 아니냐"고 미안해했다.
본래가 긍정적인 에너지로 꽉 찬 사람이라 그는 자신의 운명을 탓해본 적도 없다. 남편 잘 만나서 일 안하고 호강하는 아줌마들의 부러워해볼 법도 하지만, 이 같은 지청구는 애당초 그의 것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이름 대신 '믿음','소망','사랑'이라고 휴대폰에 저장해둔 4남매들과 안부를 주고받을 수 있어 행복한 그는 오늘도 열심히 달린다. 그에겐 매일 매일이, 지금 이 순간이 인생의 황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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