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사업국장 겸 논설위원
새누리당 대선 주자들의 전북 찾기가 한창이다. 저마다 오가는 길은 달라도 마음들은 12월 민심 잡기의 한곳에 가 있다. 그걸 한번쯤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로 보는 시각이 있지만 그렇게 탓할 일만은 아닐 것이란 생각도 만만치 않다. 그런 점에서 선거철이면 부산을 피우는 양태를 보며 새누리당이 과연 어떤 도식적인 이념의 틀로 전북에 접근하는지 주목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엊그제 이재오 의원이 방문 한 달 만에 다시 민생탐방에 나섰다. 일찌감치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대선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된 직후 이곳을 다녀갔다.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과 정몽준 의원도 1주일 간격을 두고 차례로 구애행각을 벌였다. 앞사람 발자국을 따라 지나가듯 전통시장과 마을회관 등을 돌며 주민들과 손을 잡는 행각들이었다.
이들 예비후보들의 행적에 관통하는 것이 일면 유별나다. 새만금 3대 현안인 개발청 건립과 특별회계 설치, 분양가 인하에 공감하고 앞다퉈 지원을 약속한 것이다. "차기정부에서 할 일이면 챙기겠다"거나 "새만금을 동시대에 완성하려면 특별회계를 설치해야 한다", 그리고 "외국은 기업 유치를 위해 땅도 무상으로 주는 상황"이라는 등 지역의 요청에 호의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이런 반응을 보고도 안타깝고 씁쓸하기조차 하다. 특별법 제정과 경제자유구역 지정 등 새만금 관련 현안이 2007년 제17대 대선 국면에서도 지역의 최대 이슈였기 때문이다. 중국 동부권에 대규모 특구가 속속 들어선다는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한 것이 언제 일인가. 그런데도 전북의 꿈인 새만금사업은 5년의 간극을 뛰어넘지 못하고 세월의 크레바스(crevasse)에서 정권의 잔해를 찾고 있는 것이다.
이러고도 각종 정보로 넘쳐날 것 같은 집권세력이 전북민심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는 건 뭐가 잘못돼도 아주 크게 잘못된 일이다. 그렇게 된 것은 아무리 많은 정보가 있어도 제 식으로 여론을 읽으려고 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선지 그동안 지역발전과 직결되는 주요 정책에 대해서도 공허한 이념의 틀로 판단하려는 경향을 보여 왔다. 현실에는 관심이 없고 이념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렸다.
이처럼 이념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보니 현장을 있는 대로 이해하거나 이에 적절히 대응할 수도 없었다. 그러면서 다음 선거는 준비한다. 하지만 낡은 이념을 고치지 않고 선거를 장담하는 건 허세일 수 있다. 지금 새누리당에 가장 시급한 일은 갇혀 있는 이러한 이념의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그들 말대로 진심으로 대한민국을 사랑한다면 그 안에 있는 이 지역의 아픔과 고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지난 총선에서 나는 살아있는 전북을 보았다. 우리 정치가 물줄기가 바뀌었다. 박 전 위원장이 "전북도민이 마음을 열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한 대목과 얼추 상통한다. 한 때는 지역감정이, 그 다음은 이념문제가 한국 정치의 지형을 형성했지만 이제는 정치가 현실로 돌아왔다. 도민 각자가 "누가 우리의 현실 문제를 위해 나설 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어떤 정당에 볼모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신의 편에 서는 것이다.
우리는 누가 되었든 바꿀 수 있다. 최소한 떨리는 마음으로 답답한 현실을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정치인이 나와 주기를 기대한다. 정치공학적 이념만으로는 복잡한 현실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북이 더 이상 새누리당의 '산토끼'로 남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진정성을 갖고 전북을 찾고 움직여야 정권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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