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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사람 사이에도 궁합이 있다

▲ 최 수 철

소설가

독서의 중요성을 알리는 캠페인이 전국적으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70 년을 전후한 시기에는, 초등학교들을 대상으로 이른바 '자유 교양 경시 대회'라는 게 열렸다. 문교부에서 필독도서를 선정하여 학생들로 하여금 읽게 한 뒤, 그 책 속의 내용을 가지고 시험을 치러서 우수학생을 선발하는 제도였다.

 

독서 분위기의 진작이라는 취지로 만들어진 그 연례행사는 돌이켜 볼 때마다 쓴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게끔 한다. 학교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경쟁이 어찌나 심했는지, 담임선생에 의해 선발된 학생들은 운동회 매스게임에도 빠지는 특혜 아닌 특혜를 받으며 밤 10시까지 학교 도서관에서 책장에 밑줄을 그으며 여러 권의 책을 통째로 달달달 외워야 했다.

 

내 경우에는 〈김유신전〉, 〈이순신전〉 같은 위인전과 〈신유복전〉, 〈박씨부인전〉, 〈흥부전〉, 〈춘향전〉 같은 고대소설, 그리고 일연의 〈삼국유사〉를 읽어야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외에 뜬금없이 단테의 〈신곡〉도 포함되어 있었다. 덕분에 그 유명한 기독교 고전을 일찌감치 접하긴 했지만, 거기에 대응되는 불교 관련 서적이 없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책 선정 과정에서 외압에 의해 종교적 편향이 가해진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시험 방식에 있었는데, 독후감을 쓰는 게 아니라 수십 개의 단답형 문항들을 가지고 일종의 모의고사를 보아야 했던 것이다. 이를테면 흥부의 몇 번째 박에서는 어떤 물건들이 나왔는지, 〈신곡〉의 〈지옥편〉에서 지옥의 몇 번째 계곡에서는 어떤 인물이 어떤 벌을 받고 있는지 '맞춰야' 하는 것이었다. 달리 말해 학생들은 본의 아니게 늦게까지 책상 앞에 붙들려 앉힌 채 그 방대한 내용을 원시적으로 암기하는 고역을 치러야 했는데, 정작 본인들로서도 왜 그런 것들을 외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도통 알 수 없었다.

 

때문에 초등학교 시절의 독서 기억은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다. 하기야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국민교육헌장〉을 강제로 암기시키던 시절이니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와 유사한 상황이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발견되고 있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자기들이 고른 책을 읽게 하고서 반드시 독후감을 쓰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책 속의 내용에 대해 질문하여 정말로 읽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입에 담는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거기에는 책의 내용을 기억하기 위해 기계적으로 읽게 하는 폐단이 있거니와, 진부하고 틀에 박힌 독후감을 쓰는 버릇을 조장할 따름이다.

 

그런 뜻에서 나는 학생들에게 자유로운 독서를 권장한다. 읽을 책을 스스로 선택하여 발췌독이든 남독이든 정독이든 마음대로 하라고 한다. 책방이나 도서관에 가서 눈길을 끄는 책을 뽑아들고 내키는 대로 뒤적이며 책을 '맛'보다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덮어버리면 된다. 그러다가 책 속의 내용에 이끌리면 집중해서 읽으면 된다. 만약 처음으로 돌아가서 끝까지 읽고 싶은 마음이 들면 그 책과 독자는 궁합이 맞는 것이다. 나는 책과 사람 사이에 분명 궁합이라는 게 있다고 믿고 있다.

 

책을 반드시 진지하게 정독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버려야 한다. 받아들여야 하는 정보가 날마다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사실, 정보를 얻는 방식 중에 책은 가장 비효율적인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에너지와 시간을 상대적으로 너무 많이 필요로 한다. 빠르고 복잡한 이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어찌 보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게 하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책을 안 읽어도 되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그러나 독서의 비효율성이야말로 귀중한 것이다. 거의 무한정으로 널려 있는 수많은 정보들 중에는 단순히 기억하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을 쏟아야만 비로소 완전히 습득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정보들의 제공을 책이 담당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궁합이 잘 맞는 짝을 찾는 것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신중하게 행해야 좋은 결실을 맺는 게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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