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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본질

   
▲ 신정호 전주 동신교회 담임목사

‘금이 간 항아리’라는 우화를 아십니까? 어떤 사람이 물지게에 각각 항아리 하나씩을 매달고 물을 날랐습니다. 오른쪽 항아리는 온전했지만, 왼쪽 항아리는 금이 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물을 받아서 집으로 오면 오른쪽 항아리에 물이 차 있었으나, 왼쪽 항아리에는 물이 반 정도 비어 있었습니다. 금이 간 왼쪽 항아리는 주인님에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주인님에게 일을 두 번 시키는 것처럼 보여 너무 미안한 나머지 드디어 입을 열었습니다.

 

“주인님 제가 도저히 송구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저는 금이 간 항아리입니다. 저를 버리시고 좋은 항아리, 금이 안 간 깨끗한 항아리를 새로 사서 사용하세요.”

 

그러자 주인이 금이 간 항아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네가 금이 간 거 알고 있어. 그러나 나는 항아리를 바꿀 마음이 전혀 없단다. 우리가 물을 나르기 위해 지나온 길을 한 번 보렴. 금이 가지 않은 항아리가 있는 오른쪽은 아무런 생물도 자라지 못하는 황무지가 됐구나. 하지만 네가 지나왔던 왼쪽을 한 번 봐라. 네가 반쯤 금이 가서 물을 흘린 자리 위에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고 있지 않니? 금이 간 네 모습 때문에 많은 생명이 풍성하고 열매를 맺으며 자라고 있지 않니? 그러니 너를 어떻게 버릴 수 있겠니?”

 

우리 인생이 그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완벽한 사람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조금 금이 간 자, 부족한 자를 통해 일하기를 원하십니다. 금이 가지 않으니까 생명이 없었습니다. 금이 가서 좀 새는 모습이 있어야 생명이 자라게 됩니다.

 

깨끗하고 금이 안 간 항아리 같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 명문대 나오고 금이 간 데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너무 완벽했습니다. 그러자 자식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2등을 했는데도 ‘그것도 성적이냐’라고 하면서 욕을 합니다. 1등을 해도 욕을 합니다. 전교 1등을 해야지, 반에서 1등하면 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애가 바싹바싹 마릅니다. 자신의 완전함을 주장하면서 남을 아프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삶이 아니라 금이 간 항아리의 심정으로 겸손하게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의지와의 싸움이 아닙니다. 만일 우리가 구원 받는 것이 우리의 의지에 좌우되는 것이라면 우리 가운데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고무줄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고무줄은 잡아당기고 있는 동안에는 늘어나지만 손을 놓으면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처럼 사람은 외부적인 압력과 강요를 당하고 있는 동안에는 잠시 달라지는 것 같지만 그러나 그 외부적인 간섭이 떠나가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갑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세 번이나 제자들에게 다가가서 “너희도 나와 함께 깨어서 기도하자” 부탁을 했는데, 3번 다 제자들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예수님이 “그만 쉬고 자라”했습니다. 그 말은 예수님이 졌다는 얘기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이길 수 없었습니다. 너희가 깨어서 기도하라는 잔소리로 제자들이 깨어서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실을 아셨습니다.

 

욕망의 부재가 사람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거룩함은 부정적으로 안 함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긍정적으로 무엇을 함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억지가 아닌 기쁨으로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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