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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행 속에 숨어 있는 거짓

   
▲ 법진 송광사 주지 스님
 

한국 사회의 공직자가 갖춰야할 정직성이 어디까지여야 하는지 종을 잡을 수 없는 요즘이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총리 후보자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30여명의 후보군을 만들어 후보 검증 질의서 등을 바탕으로 검증작업에 들어갔으나, 검증 과정에서 자의나 타의로 후보군에서 모두 탈락하고 말았다고 한다. 그걸 두고, 박대통령은 ‘시대 요구에 부응하는 후보자를 찾고자 했으나 쉽지 않았다’고 했다.

 

공직자 청문회가 열릴 때면 ‘논문 표절,’ ‘위장 전입,’ ‘세금 탈루,’ 등이 어김없이 단골 메뉴로 오르내린다. 김명수 교육부 장관 후보자도 오는 9일 청문회를 앞두고 있는데, 논문 표절, 논문 가로채기, 연구비 부당 수령 등의 정도가 상식 선을 넘었다며 강한 반대 여론에 부딪히고 있다. 그것도 국가의 교육 정책을 총괄해야하는 부처의 장관 후보자가 그렇다니 그걸 바라보는 뒷맛이 참으로 씁쓸하다.

 

김명수 장관 후보자는 20년 이상을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었다. 그의 논문 표절과 가로채기에 피해를 입었다는 한 제자는 ‘뒤늦게나마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라’고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대학원 수업에서 학생들이 발표하고 토론한 내용을 제3자가 자신의 논문 논지를 전개해 가는데 활용하고자 할 때에도 해당 학생에게 동의를 얻어내는 진지한 장면을 여러 번 목격한 나로서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내가 모르는 곳에서는 부적절한 논문쓰기가 관행적으로 만연하고 있었던가 보다.

 

그 제자의 말대로, 논문 표절은 ‘잘못이지만 계속해서 행해져온 것이어서 잘못으로 인정되지 않았고, 잘못인 줄 알면서도 고치려고 나서지 않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회악’이다. ‘대중이 원하면 소를 잡아먹어도 된다’가 아니라, 대중들의 암묵적 동의 속에서 집단적으로 행해져온 관행이 사회악을 만들어내고 만 것이다. 사설 학원의 강사라면 지식을 적당히 가공하고 전달하는 기능이 특화된 사람들이니 그들의 글쓰기와 강의가 대학의 교수와 같을 수 없다. 대학은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집단을 형성해 새로운 이론과 개념, 논리를 찾아가는 곳이지 않은가. 그곳에서 일하는 교수는 창의성을 생명으로 삼는 논문쓰기 작업에다 연구와 교육이라는 숭고한 학문적 목표를 향해 묵묵히 걸어가는 자들이지 않은가. 그런 사람이 겉으로는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은밀하게는 관행이라는 병풍 뒤에 숨어서 많은 학문적 비리와 비윤리적 행위를 버젓이 자행해왔다는 것이다.

 

2006년 겨울, 한국 사회는 황우석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의 논문 조작으로 큰 홍역을 치뤘다. 모든 언론이 황 교수의 논문 조작을 앞 다투어 보도하는 바람에 그 뉴스에 노출된 국민들은 마냥 허탈해했다. 그 일이 있고 난 뒤에도 많은 공직자들의 논문 조작, 표절 등의 의혹이 잊혀질 만하면 한 번씩 간간히 터져 나왔고, 여러 공직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물러나거나, 직위에 올랐다고 하더라도 중간에 낙마하는 일이 있었다. 그런 과거 경험을 가지고 있는데도 논문조작, 표절이 공직자 청문회의 단골 손님으로 여전히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왕사성 영취산을 떠나 쿠시나가라로 힘든 열반의 여정을 걷고 있을 때, 마을 주민이 부처님을 찾아와 ‘왜 계를 지켜야하는가’에 대해 물은 일이 있었다. 이에 대해 부처님은 ‘스스로 비굴해지지 않고 떳떳해지기 위해서’ 계를 지켜야한다고 했다. 사람이 윤리적이고 대중적인 약속을 지키는 이유도 우선적으로 스스로 떳떳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논문 표절과 가로채기를 했다는 김장관 후보자는 그 동안 비굴함과 떳떳함 사이에서 어떤 갈등이 있었을까.

 

9일로 예정된 김장관 후보자의 청문회를 앞두고 후보자 스스로 사퇴하라거나, 후보 추천을 철회하라거나, 청문회에 올려 새워 일벌백계의 정신으로 낱낱이 밝혀야한다는 목소리가 무성하다. 자진사퇴하고 나면 한국인의 조기 망각증에 편승해 또 다른 김 장관 후보자가 등장할 것 같아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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